토마스 아퀴나스 새길에큐메니칼문고 4
박승찬 지음 / 도서출판 새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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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 중반 스콜라 철학 융성의 배경,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간략하게 다룬 요약서다. 저자인 박승찬 교수는 스콜라 철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책 자체가 120페이지 남짓의 요약서인 관계로 빠르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상세하게 설명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 다섯 가지 길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신 존재 증명 전에 중세 초기 기독교 철학자였던 아우구스티누스와 스콜라 철학 전성기 철학자 아퀴나스 철학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모든 진리는 신의 '은총의 빛'을 통해 조명될 때 비로소 발견된다고 주장한다. 세상 모든 것을 형이상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은 '이데아'를 강조하는 플라톤의 사상, 특히 신플라톤주의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이에 반해,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을 시작하면서 철학(과 기타 인문과학)과 신학의 영역을 구분한다. (p51) 아퀴나스에게 '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은총의 빛'에 의존하지만, '철학'은 '이성의 빛'에 의존하는 것이며 경험적인 것과 통한다. 또한, 아퀴나스에 따르면 신학과 철학은 각각 고유의 영역이 있고 아퀴나스의 철학은 신학 내에서 양자의 조화를 지향한다.


"신이 주는 은총은 피조물들이 지니고 있는 본성을 말살시키는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는 것이다. (Gratia non tollit naturam, sed perficit.)" (p52)


 '신 존재 증명' - 다섯 가지 길- 은 <신학대전> 제1부, 제 2문제, 제3절에서 다루어진다. 


1) 첫 번째 길 : 운동들의 원인


(1) 이 세계 안에는 어떤 것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확실하며 또 그 사실은 감각으로 확인된다. (2-A) 그런데 움직이는 모든 것은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진다. (2-Ba) 그러므로 어떤 것이 그것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그것이 움직인다면 그것 또한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져야 하며 그것은 또 다른 것한테서 움직여져야 한다. (2-Bb) 그런데 이렇게 무한히 소급해갈 수는 없다. (3) 우리는 다른 어떤 것한테도 움직여지지 않지만, 첫 움직이게 하는 자(제1동자)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된다. 모든 사람이 이를 '신(神)'이라고 이해한다.


박승찬 교수의 표현에 따르면,  z-> Y -> X .....-> ....(무한히 갈 수 없기 때문에 A가 올 수 밖에없다.) A : 우리는 신이라고 이해하는 존재 (p56)라고 요약될 수 있다.


2) 두 번째 길 : 능동인의 질서


(1) 우리는 이 세계안에서 아버지가 아들의 원인이 되고 할아버지가 아버지의 원인이 되는 것과 같은 수많은 능동인 질서를 경험한다. 그 아들이 자신이 존재하고 싶어서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닌 것처럼 (2-A) 이런 세계에서 어떤 것이 자기 자신의 능동인으로 발견되지도 않으며 또 그런 것은 가능하지도 않다. (2-B) 그런데 능동인들에 있어서 무한히 소급할 수는 없다. (3)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제1능동인을 인정해야 하며, (3') 이런 존재를 모든 사람들은 신이라 부른다. 


3) 세 번째 길 : 자체 필연유


(1) 우리가 사물 세계에서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생성소멸하는 것을 발견한다. (偶然有)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떤 때에는 사물계에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만일 이 세계가 모두 우연유로만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면, 어떤 것도 존재하기를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자는 필연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2) 그런데 모든 필연적인 것들은 자기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 갖거나 갖지 않을 것이다. (2') 그런데 그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서 갖는 필연적인 것들의 계열에 있어서 무한히 소급될 수는 없는 것이다. (능동인의 경우에서 증명) (3) 따라서, 우리는 자기 필연성의 원인을 다른 데에 갖지 않고 다른 것들에게 필연성의 원인이 되는 어떤 것, 즉 '그 자체로 필연적인 어떤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 자체 필연유를 우리는 신이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길까지는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주론적인 증명'이라고도 한다. 우주론적인 증명의 특징은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되, 이러한 사실의 원인을 찾아서 윗단계로 올라간다. 그리고, 위로 올라가는 것이 무한히 계속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하나의 원인'을 만나게 되고, 사람들은 이 존재를 '신(神)'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첫 번째 길에서 세 번째 길까지 논의는 일종의 '무한급수' 설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일상 경험에서 출발하여 결국 '신(神)의 존재'에 수렴한다는 논리 구성으로, '신'의 존재가 이미 기반에 깔려 있는 증명이다. 우리의 인식 저편으로 무한히 넘어가는 영역에 신이 있다는 아퀴나스의 우주론적인 증명은 중세(中世)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논리적으로 보여지지 않는다. 


4) 네 번째 길 : 최고 완전자 존재(안셀무스 <모놀로기온>, 신플라톤주의)


(1) 우선 선함과 참함과 같은 (초월적) 속성들을 지니고 있는 사물들이 최고도로 있는 어떤 것에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정한다. 이것과의 멀거나 가까운 정도에 따라서 그 속성들이 지니는 단계가 결정되는 것이다. 이 최고의 것은 바로 그 속성들이 최고로 높은 단계로 그것에 속하는 존재자이고 그 자체로 가장 높은 존재로 존재하는 것이다. (신플라톤주의, 유출설) (2) 그 다음에 그 최고도의 것이 자기에게 연관을 맺고 있는 속성들, 그러므로 그 존재의 측면에서 그 사물의 원인이다. (3) 결론적으로 그 최고도의 것이 세상 사물들의 최고의 존재 원인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신이라고 부른다. 


네 번째 길은 아퀴나스가 비판한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의 방식을 빌려온 것이며, 신플라톤주의의 위계질서에 근거한 것이다. 안셀무스의 '신 존재 증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신은 그보다 더 큰 것이 상상될 수 없는 존재다.(가장 큰 존재다.)

2. 이런 신의 개념은 인간의 지성 속에 존재한다. (즉, 그런 개념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다.)

3. 신이 실재가 아닌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고 가정하자.

4. 그것은 마음 속에 한정된 신보다 더 큰 개념이므로, 그보다 더 큰 것이 상상될 수 없는 존재라는 신의 정의에 모순된다.

5. 따라서 신은 실제로 존재한다. (출처 : 위키피디아)


네 번째 길은 사물들에 내재되어 있는 특정 속성에서 출발한 논증이라고 하지만, 신플라톤주의의 영향과 안셀무스 증명방식을 활용하고, '신의 속성은 완전성을 포함한다'는 기독교의 신앙을 기반으로 한 증명이다.


5) 다섯 번쨰 길 : 우주 안에서의 질서


(1) 우리는 이성에 의해서 목적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에는 이성이 결여된 사물들이 목적에 알맞게 행동하고 있는 것을 경험한다. (2) 그런데 인식을 갖지 않는 것들은 인식하며 꺠닫는 어떤 존재에 의해 지휘되지 않으면 목적을 지향할 수가 없다. (3) 그러므로 모든 자연적 사물들을 목적에로 질서 지어주는 어떤 이성적 존재가 있다. (3') 이런 존재를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 


다섯 번째 길은 세상 만물이 '목적' 이 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진 논증으로, 이 세상이 '우연의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이들(리처드 도킨스 등 진화론자)에게 특히 공격받고 있는 논증이다. 아퀴나스의 증명 중 네 번째 길과 다섯 번째 길에서는 모든 것의 '원인'과 '목적'이 언급이 된다. 이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4가지 원인 (질료인, 형상인, 운동인, 목적인)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논증으로 알려져 있다.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을 살펴보면 다섯 가지 길의 증명은 기본 전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중세에 받아들여진 기본 전제 중 하나는 '세계가 조화롭게 이루어져(창조되어) 있으며, [원인- 목적]의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는 전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전제 위에 '다섯 가지 길'은 유신론자에게는 아름다운 신앙고백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무신론자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 인식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참조) 

 개인적으로는 아퀴나스의 '신 존재 증명'이 '신앙의 빛'과 '이성의 빛'의 조화를 추구한 아퀴나스의 노력이라고 생각된다. 다만, 그 논리가 객관성이 부족하여 철학사적 의의는 거의 없는 논증으로 여겨진다. 이 논증의 의의를 찾자면 당대 스콜라 철학자들의 인식구조를 파악하는 정도가 적정하다고 판단된다.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는 '다섯 가지 길'을 다른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위와 같은 다섯 가지 길 이외에도 <신학대전>에 나타난 아퀴나스의 인간관과 윤리학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비잔틴제국 유스티아누스 황제의 아카데미아 폐쇄 이후 유럽에서 사라졌던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신학대전>에서 사라졌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중세인들에게 받아들여졌는지 간략하게 알고 싶은 이들에게 <토마스 아퀴나스>는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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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0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0-10 1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10-10 2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이 논리로 증명될 수 있다고 방향 잡은 중세인들 사고 방식과 계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

겨울호랑이 2016-10-11 04:10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지금 우리들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네요.. 한편으로는 그만큼 신의 존재를 확신한 것 같기도 하구요..여러 면에서 현대인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