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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ㅣ 경문수학산책 20
마이클 슈나이더 지음, 이충호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 은 기하학과 철학을 숫자를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각 장은 숫자 1부터 9까지 의미를 되새겨보고, '자와 컴파스, 연필'을 사용해서 원을 활용하여 기본 작도를 해보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철학적 의미는 추천사에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이 저술한 <티마이오스>의 주석서 서문에 적합할 듯한 내용이 이 책의 추천사로 등장한다.
"하나의 원형을 가진 무수한 산물이 존재한다는 이 사실은 일자(一者, the One)와 다자(多者, the many)라는 케케묵은 철학적 문제를 낳았다. 문제는, 다자는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고, 언제든지 조사할 수 있는 반면, 일자는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으며, 그 존재는 그 산물인 다자에 미친 영향으로부터 추측할 수 있을 뿐이라는 데 있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일자가 다자보다 더 실재적이다.... 기하학은 일자와 다자를 이어주는 다리이기도 하다... 우리가 모델로 삼는 것은 원이나 삼각형의 추상적인 이데아다. 그것은 변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지도 않는 일자인 완전한 형태이다. 그 아래에 다자가 있으며, 그 표현은 디자인이나 예술, 건축등에 나타난다."
우리에게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변명>, <국가>를 쓴 철학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플라톤이 피타고라스 학파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과 수학(특히, 기하학)을 중시했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티마이오스>는 대화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본문(本文)의 내용으로 기하학적인 연상을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대부분의 <티마이오스> 번역본에 [부록]으로 플라톤의 입체가 실려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박종현 역주의 <티마이오스> [부록]이 잘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플라톤의 도형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권의 수(數)에 대한 이해를 소개하고 있다. (플라톤의 4원소 사진)
각 장(章) 은 수로 구성되어 있어, 특히 인상적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나드(Monad) : 전체로서의 하나, 점의 탄생
눈은 첫 번째 원이고, 눈이 형성하는 지평선은 두 번째 원이다. 자연 전체에서 이 첫 번째 도형은 끝없이 반복된다. - 랠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 1803-1882 미국의 수필가이자 시인 -
2. 디아드(Dyad) : 대담함과 고뇌의 이중성 집단, 선의 탄생
2에서 우리는 다른 어떤 수보다도 수의 본질, 즉 다자를 일자로 묶고, 복수와 단수를 동등하게 만드는 본질을 더 강하게 경험한다. 우리의 마음은 세상을 하늘과 땅, 낮과 밤, 빛과 어둠, 오른쪽과 왼쪽, 남자와 여자, 나와 너로 나눈다.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 이러한 양극 사이의 분리를 우리가 더 강하게 느낄수록 우리는 그들의 통일성을 더 강하게 느낀다. - 칼 메닝거 Karl Menninger : 1893-1990 미국의 심리학자 -
3. 트리아드(Triad) : 세 부분의 조화, 삼각형의 탄생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 노자, <도덕경>42장 -
4. 테트라드(Tetrad) : 3차원의 부피(입체), 정사각형의 탄생
올바른 일은 2차원에서 3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를 입체와 그 밖의 3차원 도형들로 인도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 플라톤 -
5. 펜타드(Pentad) : 생명을 얻다, 정오각형과 펜타그램 별들의 탄생
전체 우주는 데카드(Decad : 10)에 의해 분명하게 완성되고 둘러싸이며, 모나드(1)에 의해 씨를 맺고, 디아드(2) 덕분에 움직임을 얻고, 펜타드(5) 덕분에 생명을 얻는다고 흔히 이야기 한다. - 이암블리코스 -
6. 헥사드(Hexad) : 구조-작용-질서, 정육각형의 탄생
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엿샛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이리하여 하늘과 땅과 그 가엔데 있는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 창세기 1장, 2장-
7. 헵타드(Heptad) : 일곱단계를 통한 완전한 사건, 정칠각형은 세 가지 도구로 작도할 수 없다.
완벽한 수학적 정확성을 지닌 칠각형을 그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을 해보려고 시도하면, 자신의 노력이 조롱을 받는다는 사실을 틀림없이 확인하게 될 것이다. -존 미첼-
8. 옥타드(Octad) : 주기적인 재생(팔괘) , 정팔각형의 탄생
중생이여, 이것이 바로 슬픔의 종식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고귀한 진리이다. 이것은 고귀한 팔성도(八道), 즉 정견(正見),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 정념(正念), 정정(正定), 정사유(正思惟), 정정진(正精進)을 말한다. - 부처 -
9. 엔네아드(Ennead) : 지평선, 정구각형의 탄생
면벽 구 년 끝에
존재도 비존재도 없고, 우주는 완전히 텅 비었다.
면벽 구년 끝에 거기에 아는 자 누구 있는가? - 도교의 시(詩) -
10. 데카드(Decad) : 수(數)를 넘어서, 정십각형과 십각형 별의 탄생
이것들이 열 가지 세피로트(Sefirot)이다. 아홉도 아니고 열하나도 아닌 열 가지이다. 이 지혜를 이해하려고 행동하고 시도하는 사람은 지혜로워질 것이다. -<세피르 예치라>(창조의 서, 3세기의 카발라 경전) -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에서는 이러한 경구 이외에도, 음악, 미술, 건축 등에 녹아 든 수학을 인문학적으로 풀어서 쉽게 접근하고 있어, 중학생 이상이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수식이 없다! 심지어 '1+1'도)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었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기하학 도구를 사용할 때 유의할 점'(p5)으로, 기하학에 대한 경건함이 표현된다. 이 글 속에서 피타고라스나 유클리드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수학자들이 수학을 대하는 자세, 플라톤의 창조신 데미우르고스(demiourgos)가 4가지 질료(원소)를 재료로 세상을 창조할 때의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기하학자의 도구를 사용할 때 유의할 점]
1. 이 세 가지 도구(컴퍼스, 직선 자, 연필)는 아주 오래 되었으며,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견된다. 미술가, 건축가, 장인이 사용한 이 도구들은 실용적인 동시에 상징적이다.
2. 여러분이 금속제 컴퍼스를 사용하든, 막대에 끈을 매달아 흙 위에서 사용하든 간에, 이 도구들은 신성한 속성을 나타내므로 존경심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3. 아무런 의식 없이 어떤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이들 도구를 가지고 하는 행위는 모두 분명하게 의식해야 한다. 기하학 작도에서는 어떤 행동도 하찮지 않으며, 세상의 창조 과정에 대해 심오한 상징을 갖지 않은 것이 없다.
4. 실수한 것을 지우지 마라. 인생에서 저지른 잘못을 돌이킬 수 없듯이, 여러분이 작도 도중에 실수한 것도 그대로 남겨두고, 작도를 다르게 할 수 있을 때까지 그것들과 함께 살도록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