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의 이해
천병희 지음 / 문예출판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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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비극의 이해>는 그리스 고전의 번역학자 천병희 교수의 그리스 비극(悲劇)에 대한 해설서다. 책의 목적과 주요 내용은 작가의 머리말을 따라가 보자.

이 책에서는 그리스 비극의 기원에 관한 설명에 이어 3대 비극 작가들의 생애에 관한 자료들과 현존하는 비극 31편 및 사튀로스 극 1편에 대한 해설이 제공될 것이다. - 천병희-

특히, 3대 그리스 비극작가인 아이스퀼로스(Aischylos), 소포클레스(Sophok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생애와 작품 소개가 책의 주요 내용이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짧게 이름만 들어봤던 이들이지만, 그들의 작품은 그리스 신화와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의 재해석이 대부분이다. <그리스 비극의 이해>를 통해 그리스 비극의 주요 내용이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그리스 비극에 세 작가가 미친 형식적인 영향

배우의 수를 한 명에서 두 명으로 늘린 것은 아이스퀼로스가 처음이며, 소포클레스는 배우의 수를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리고 무대 배경을 도입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詩學)-(p11)


아이스퀼로스는 이런 의미에서 비극의 창시자이고, 소포클레스는 비극의 완성자라고 불린다.

우리의 판소리가 소리꾼 1명에 의해 진행되는데 반해, 그리스 비극에서는 주요 화자인 배우가 2~3명으로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를 거치면서 늘어가고 있는 것은 대조적이다. 배우의 수가 늘어난 이유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이스퀼로스가 배우의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려 대화가 드라마의 중심이 되게 하였고, 소포클레스가 다시 배우의 수를 2명에서 3명으로 늘린 것도, 인간이 주역인 드라마에서는 좀더 폭넓은 인간 관계를 통하여 다양한 시각에서 주인공의 성격과 의도와 행위를 조명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p114)

서양에서는 이처럼 배우의 수(數)를 늘려가면서, 보다 복잡한 인간 내면을 표현하려고 했던 반면, 우리나라의 전통 판소리에서는 전지(全知)적 시점에서 사건을 조명하려고 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형식의 우열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간(人間) 내면의 감정에 대해서는 그리스에서 보다 많은 관심이 있었고,  그러한 관심은 사실적인 그리스 미술(美術)에도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한편, 세 작가들이 사용한 주요 기법과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은 동일한 행위가 한 순간에 두 얼굴을 가진다는 특징을 가지며, 이러한 특징은 <아가멤논>에서 잘 나타난다.(p49)

소포클레스 비극은 '비극의 확대(parekstasis tragica)'라는 기법을 통해 인간의 생각과 현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p92)는 면에서 다른 작가들과 차별점이 있으며, <아이아스>에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는 '상황 희극(狀況 喜劇)'적인 면을 통해 희극에 영향을 주었다.(p200)

2. 세 작가의 내용적 특성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이스퀼로스는 전사로서 몸소 이 전투에 참가했고, 소포클레스는 소년 합창단의 선창자로서 이 전투의 승리를 감사드리는 찬신가를 주도했으며, 에우리피데스는 전투가 있던 바로 그 날 태어났다....

아이스퀼로스가 평생동안 자신의 드라마에서 신들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신들의 섭리에 관하여 사색했다면, 아테나이의 욱일승천(旭日昇天)과 서산낙일(西山落日)을 다 겪은 소포클레스는 아이스퀼로스 못지않게 신들의 힘과 위대함을 인식하고 신을 공경하는 경건한 생활을 하지만, 신은 알 수 없는 존재였기에, 소포클레스는 인간 존재의 한계성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다른 세대로부터 이 승리를 전해들었을 뿐인 에우리피데스는 소피스트(sophistes)들의 상대주의에도 영향을 받아 모든 정신적 유산에 대해 비판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했다.(p80)

공통적으로 세 작가 모두 그리스 신화에서 그 소재를 가져와서 작품을 구성했다. 청중들과 공감할 수 있는 소재를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들의 해석은 저마다 달랐다. 재해석된 작품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다른 주제로 씌여져 있기때문에, 마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랴소몽(羅生門)> ,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같은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세 작가의 다른 시선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해석하는 것도 그리스 비극을 감상하는 다른 매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작품 해석을 보니 그리스 비극에는 고대 신화를 바탕으로 구성되었으면서도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상은 2000년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빛이 바랜 채색화처럼 되버렸지만, 그 안에 뼈대를 구성하는 인간에 대한 공통된 고민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호소력을 가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공통된 고민이 생명력을 가지고, 작품들을 고전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그리스 비극의 이해>를 읽기 전 <그리스 비극 걸작선>을 먼저 읽었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접한 비극(悲劇)은 내게 다른 의미에서 비극(비劇)이었다. 그리스 비극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품을 접하고는 '다시 읽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섣부른 판단이었다. 문학작품에 있어서는 특히 작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리스 비극의 이해>는 충분히 우리에게 그리스 비극에 대한 안내자의 역할을 수행해 준다.

그리스 비극에 있어 불행한 결말보다는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관련된 비극적 상황이 비극의 필수 조건이었다.(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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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0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고전 하면 겨울호랑이 님이십니다..

겨울호랑이 2016-08-10 14:24   좋아요 0 | URL
제겐 과찬이십니다만, 센스하면 곰곰생각하는발님이시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