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철학 케니의 서양철학사 2
앤서니 케니 지음, 김성호 옮김 / 서광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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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어떤 시대의 철학보다 중세철학에 접근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장애물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중세철학자들의 사상을 제대로 파악하려 한다면 반드시 극복하여야 할 장애물로 다음의 네 가지를 들 수 있다. 즉 언어상의 장애물, 전문성과 관련된 장애물, 종교적 장애물 그리고 소속 교단과 관련된 장애물이 존재한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머리말, p15


  앤서니 케니(Anthony Kenny, 1931 ~ )는 <중세철학 Ancient Philosophy: A New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volume 2>에서 중세철학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면서 시작한다. 학자들에게는 어려움이겠지만, 일반독자들에게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심리적 장벽으로 작동한다. 중세철학이 라틴어와 로마 가톨릭이라는 공통 분모 위에서 주로 성직자들에 의해 수행되었기에, 이 시기 철학을 일반적으로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로 요약되며, 이는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관심을 가지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렇지만, 중세철학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흐름 아래 무수히 많은 여러 갈래의 흐름이 있으며, 이러한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바람이고 이 바람은 이슬람으로부터 불어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어느 시기보다 중세철학이 서양철학에서 보다 세계적이었다는 의미임을 이해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종교적 세계관을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적 전통 안에 놓으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는 가능한 한 성서를 플라톤, 키케로와 조화시키려 애쓰며 이런 일이 불가능할 경우에만 반기독교적인 철학적 주장들을 상세히 언급하고 이를 반박하지 않을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여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화자로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이후 라틴어권에서, 심지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를 넘어서까지도 철학적 논의의 기본 체계를 제공한 성서적이고 고전적인 요소들을 처음 생각해 내었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머리말, p44


 

 중세철학의 큰 흐름을 결정 지은 이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430)였다. 그가 <신국론 De Civitate Dei>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를 대조하면서 로마의 역사를 히브리의 역사와 결부시키면서 자연스럽게 플라톤(Platon, BCE 427~348)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E 384~322)의 철학 또한 성경 해석의 틀로 들어오게 된다. 다만, 이 시기 그리스 문화 유산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로 나뉘어 전승되었고, 서구 세계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다 자세히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군 원정 시기 이후였다. 


 이븐 루슈드는 플라톤의 저술들도 알고 있었지만 플라톤을 아리스토텔레스만큼 높이 평가하지 않았으며 오직 아리스토텔레스만을 최고 수준의 인간 지성을 드러낸 천재로 여겼다. 사실 그는 플라톤의 <국가>를 의역하기도 했는데 - 이는 어쩌면 당시 스페인에서 구할 수 없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대용으로 어쩔 수 없이 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는 <국가> 중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등장하는 중요한 대목들을 생략하기도 했으며 <니코마코스 윤리학>에 더욱 가깝게 만들기 위하여 여러 곳을 변형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그는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난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주석가로서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사실상 그는 자신이 깨달았던 것 이상으로 플라톤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95


 그렇지만, 서구 세계에 전해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및 비롯한 자연과학은 온전히 그리스 문화의 유산만은 아니었다. 이븐 시나(Ibn sina, 980~1037),  이븐 루슈드 Ibn rushd, 1126~1198), 알 가잘리(Al ghazali, 1058~1111) 등에 의해 해석된 사상이 서구 세계에 전해지면서 로마 가톨릭 교리 또한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는 점은 이 시기의 철학이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이라는 중세철학의 논제를 성격으로 갖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공의회가 열리는 동안 플레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업적을 비교하는 강의를 하였다. 여기서 그는 라틴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한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오히려 플라톤을 더욱 선호하여야 한다. 플라톤은 단지 최초의 운동을 일으킨 존재가 아니라 창조주로서의 신의 존재를 믿었으며 또한 영혼의 불멸을 진정으로 믿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를 잘못 파악하였으며, 덕을 중용으로 잘못 생각하였으며, 행복을 관조와 잘못 동일시하였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174


 <중세철학>을 통해 우리는 화이트 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의 유명한 '서양철학은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말의 의미를 깊이 음미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이교도의 철학으로 배척되었지만, 플로티누스(Plotinus, 205~270)의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 철학과 갖는 공통분모를 통해 받아들여지고, 뒤이어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4~1274)로 대표되는 스콜라 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용되며, 이와는 별도로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1308)와 윌리엄 오컴(Gulielmus Occamus: 1287~1347) 등의 일단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에 의해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는 등 기독교 신학이라는 흐름 아래 무수히 많은 소용돌이가 일었음을 확인한다.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택한 스콜라철학자들 대부분이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지복을 누리면서 신을 바라보는 일정의 지적인 과정으로 생각한 반면 스코투스는 천상에서 축복받은 자들이 신과 하나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자유로운 행위로 구성된다고 생각한다. 스코투스는 인간과 신의 의지 모두를 이전의 그 어떤 철학자가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폭넓은 능력으로 생각한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148


 또한,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 ?~1384)의 사상에서 엿보이는 사회주의 사상은 중세철학이 고립된 '신학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근대혁명의 씨앗을 내부적으로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중세철학이 갖는 보편성과 후대 철학과의 연결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철학에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은 이러한 모든 논의의 끝에 신(神)이 있다는 것과 이를 위해 삼단논법과 같은 쓸데없이 어려운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중세철학의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매달릴 수 있는가'와 같은 내용을 오늘날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를 위해 사용한 방법론까지 무시한다면 뒤이어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과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를 이해하기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그 점에서 중세철학은 '신학의 시녀'인 동시에 '근대철학의 씨앗'이 아닐까 하는 요약으로 리뷰를 갈무리한다... 


 위클리프의 혁신적 생각들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자신의 소유권(dominium) 이론에 기초하여 사회주의를 제안한 점이다... 신의 모든 재화는 모두가 공유하여야만 한다.이는 다음과 같이 증명된다. 모든 사람이 은총 받은 상태라고 생각해 보자. 만일 누군가가 은총 받은 상태라면 그는 세계와 세계에 포함된 모든 것의 주인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우주 전체의 주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른 모든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의 수가 많다면 이는 일종의 모순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반드시 공유되어야만 한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167


 유명론과 실재론 모두 어떤 단어가 지시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결과로 등장한다. 단어들이 지시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단어들은 사물을 의미하기도 하며, 사고를 표현하기도 한다. 단어들은 적절한 사고를 일깨움으로써 사물을 정확하게 의미하는데 이때 적절한 사고는 우리의 정신으로 하여금 세계 안에 있는 사물을 떠올리게 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는 바로 이런 개념들을 통하여 사물에 관하여 말할 수 있게 되며, 우리 목에서 나는 소리 또한 의미를 지닌 단어가 된다. _ 앤서니 케니, <중세철학>,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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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9-12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니의 중세철학은 정말 좋죠!

겨울호랑이 2023-09-12 21:05   좋아요 0 | URL
네 특히 전반부에서 철학사상의 전체적인 흐름을 조망한 후 뒤에서 주제별로 보다 깊이 있게 들어간 구성이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

2023-09-12 2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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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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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2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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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12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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