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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사회와 그 적들 2 - 이데아총서 14
칼 R.포퍼 지음 / 민음사 / 1989년 3월
평점 :
마르크스의 분석이 성공을 거둔 곳은 역사주의적 예언을 한 곳이 아니라, 역사주의적 분석을 한 곳이다. 마르크스주의에는 분명히 종교적 요소가 있다. 마르크스의 예언은 깊은 모멸감과 비참에 빠져 있던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미래의 건설에 대한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예언적 종교는, 우리의 비판적 이성의 지원을 받아 세계를 변화하려는 평등주의에 대한 하나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성에 의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온통 내동댕이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65
칼 포퍼(Karl Riamund Popper, 1902~1994)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The Open Society And Iti's Enemies 2>에서 열린 사회에 대항하는 역사주의자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 사상을 비판한다. 그렇지만, 1권에서 플라톤(Platon, BCE 428/427 ~ BCE 348/347)에 대한 포퍼의 비판이 매우 날이 서있다면, 2권 마르크스에 대한 포퍼의 비판은 사뭇 결이 다르다. 비록 역사주의에 빠져 비과학적인 교조주의적인 논증을 폈다는 점에서는 플라톤과 같지만, 최소한 마르크스에게는 시대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있으며, 이 점에 대해 포퍼는 분명히 인정한다.
마르크스의 역사주의는 보수주의자였던 헤겔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다. 세계의 변화를 지향하는 그의 태도 속에 나타난 그의 행동주의는 오히려 역사주의(역사결정론)에 의해서 밀려나는 형편에 있음을 본다... 마르크스는 지식사회학적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도덕론의 의의를 과소평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엄청난 영향력의 비결은 그의 도덕적 호소력에 있다. 그의 자유에 대한 사라오가 사회적 책임감은 계속 살아 남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는 죽었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77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에서 포퍼의 비판 초점은 주로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에 있다. 플라톤이 고대의 부족주의를 부활시켜 소규모의 전체주의를 구현했다면, 헤겔은 이를 계승하여 정신의 흐름을 통해 민족과 국가 수준으로 고양시켰다. 이후 등장한 파시즘은 이러한 헤겔의 바탕 위에 더 넓게 자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포퍼는 헤겔의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헤겔은 현대 역사주의의 원천을 형성하고 있는데, 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직계 후손이다. 그의 철학의 위력과 매력은 그것이 무엇이나 다 척척 해답을 주는 만능의 철학이라는 것과, 그가 당시 프러시아 제국의 비호 아래 프러시아의 전체주의를 옹호하는 어용철학으로써 당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사실과 부분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 그의 전체주의적 사상은 플라톤의 전체주의 사상과 현대의 전체주의 사상 사이에 교량 역할을 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56
비록 지적 원천에서는 헤겔의 좌파인 마르크스주의와 파시즘이 거의 동일하다 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에는 말할 것도 없이 인도주의적 충동이 밑에 깔려 있다. 더구나 헤겔우파와는 대조적으로 마르크스는 인간의 사회적 문제 가운데 가장 절박한 문제에 합리적 방법을 적용하려는 정직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의 가치는 그 노력이 대부분 실패에 그쳤다는 사실에 의해 감소되지 않는다. 과학은 시행착오에 의해서 진보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123
물론,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에서 사상의 주된 비판은 마르크스로 향한다. 그가 주장한 잉여가치론, 계급갈등, 자본주의 사회의 붕괴와 공산주의 사회의 도래 등 그가 사회과학적 방법을 통해 제시한 예언은 본문을 통해 철저하게 비판된다. 대신, 그가 인정받는 것은 <자본론 1>을 통해 통계적으로 제시된, 실증적으로 제시된 처참한 노동현실과 그에 대한 정당한 분노다. 이런 점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플라톤에 비해 덜 하다 할 수 있다.
마르크스의 분석이 성공을 거둔 곳은 역사주의적 예언을 한 곳이 아니라, 역사주의적 분석을 한 곳이다. 마르크스주의에는 분명히 종교적 요소가 있다. 마르크스의 예언은 깊은 모멸감과 비참에 빠져 있던 당시의 노동자들에게 인류를 위한 새로운 미래의 건설에 대한 사명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의 예언적 종교는, 우리의 비판적 이성의 지원을 받아 세계를 변화하려는 평등주의에 대한 하나의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추종자들은 이성에 의해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을 온통 내동댕이쳐 버리기가 일쑤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65
무엇보다도 포퍼의 마르크스 경제론에 대한 최대의 비판은 '국가권력에 대한 경시'다. 앞서 헤겔의 사상이 국가의 의미를 한껏 고양시켜 자유를 억압시켰다면, 마르크스는 이와는 반대로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 간 대립에만 지나치게 몰두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사회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력의 부재. 물론, 여기에 대한 마르크스의 인식이 당대의 현실에 기반한 것임은 분명하지만,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움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지 못한다. 이렇게 당대의 현실에 갇힌 마르크스 이론은 '민주주의 체제'라는 훌륭한 대안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혁명의 당위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교조주의라 하겠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들이 권력을 쥐었을 때는 정치력으로 경제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국가 권력의 증대가 지닌 잠재적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국가 권력은 심각한 문제를 제기해 주지 않으며 오직 부르주아의 손에 든 힘만이 고약한 것이라고 그들은 보았다. 우리가 너무 많이 계획하면, 즉 우리가 너무 많이 국가에 힘을 부여하면 자유가 상실된다. 이것은 모든 계획의 종말을 뜻한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171
중요한 것은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느냐'이다. 이것은 정치적 문제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제도의 문제임을 뜻한다. 평등에로의 역사의 진보는 권력을 제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11
이처럼 칼 포퍼의 <열린 사회의 그 적들>은 직접적으로는 역사주의에 함몰된 전체주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으나, 반증과 검증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사회공학, 사회과학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가정과 이에 기반한 논증은 결국 합리성을 가장한 비합리성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과학은 진정한 과학이 될 수 없다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본문에 실린 칼 포퍼의 비판은 분명 예리하며, 무비판적으로 <국가>, <법률> ,<정신현상학>, <자본>을 읽었던 이들에게 생각할 지점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쉘러와 만하임에 의해서 과학적 지식의 사회결정론으로서 개발되었다. 지식사회학에 의하면, 과학사상, 특히 사회/정치문제에 관한 사상은 사회적으로 결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대부분 무의식적 수준에서 영향을 받는다. 이와 같은 무의식적 요소가 그가 몸을 담고 있는 바로 그 장소, 즉 그의 사회적 서식처를 구성한다. 한 인간의 사회적 서식처가 거의 사상체계를 결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그의 사상은 적어도 그에게는 아주 자명한 틀림없는 진리로 보인다. 이렇게 일련의 사상체계를 지식사회학자는 이데올로기 총체라 부른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96
그렇지만, 추상과학이라 할 수 있는 수학 역시 공리(axiom))와 공준(postulate)을 자명(self-evidence)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증명을 펼쳐나가고, 실험에 의해 경험적으로 증명되는 현상 역시 특수한 조건 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본다면 과연 객관적인 과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관찰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결과값이 달라진다는 양자역학의 이야기까지 나오지 않더라도 포퍼가 주장한 진정한 객관성은 영원히 도달하기 어려운 이데아(Idea)가 아닐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과학적으로 이데아를 추구하는 칼 포퍼야말로 본문에서 그렇게 플라톤주의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은 아닐런지 생각하게 된다...
과학적 객관성은 학문에 종사하는 한 개인의 심성에 그 토대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방법이 지닌 상호주관적인 공적 성격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첫째로 자유로운 비판이 그것이며 둘째로 과학적 서술이 논리와 경험에 의해 시험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짜여져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과학적 방법의 공적 절차가 객관성을 점진적으로 높여 준다. _ 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2> , p297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뼈대를 이루는 목적론은 플라톤의 변화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낙관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플라톤은 모든 변화는 원형인 완전한 형상 즉 이데아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는 퇴화의 과정 즉 파멸에로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는 궁극 목적을 향해 움직여 가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 궁극 목적은 다름아닌 사물이 지닌 본질인데 그것을 형상이라고 그는 불렀다. 그러므로 모든 사물의 변화는 결국 사물이 잠재적으로 지니고 있는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 P24
플라톤과 더불어 ‘파멸하는 사물은 본질에 그 토대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연유한다‘고 헤겔이 말하긴 햇지만 헤겔은 플라톤과는 반대로 본질도 변화한다고 주장한다. 헤겔의 세계 속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의 세계에서처럼 모든 것이 변화 속에 있다. 그리하여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획득하기 위해 플라톤에 의해 애초에 도입된 본질도 여기서 면죄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변화는 파멸이 아니다. 헤겔의 역사주의는 낙관적이다. - P69
인간의 삶의 물질적 측면인 생산과 소비는 인간의 신진대사의 하나의 연장이라고 마르크스는 보고, 인간의 자유는 바로 이러한 신진대사의 필수품들에 의해 재한을 받는다고 보았다. 그는 헤겔과 같이, 자유가 역사발전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또 헤겔과 마찬가지로 자유의 영역과 인간의 정신적 삶의 영역은 동일하다고 보았다. 인간은 순수한 정신적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는 신진대사의 필수품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품위에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노동 조건을 개선하며, 노동조건을 평등화하며, 또한 단조롭고 기계적인 힘든 일들을 가능한 한 줄임으로써, 인간 모두가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의 삶에 대한 중심 사상이다 - P147
한 때의 소수파 정당이 다른 정당을 폭력이나 다수표에 의해서 억압하기를 계획한다면, 그것은 현재 다수파 정당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현재 다수파 정당이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것은 압박에 대해 불평할 도덕적 권리마저 상실한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자를 힘에 의해서 억압하려고 하는 현재 지배정당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이다. - P224
나는 도덕적 실증주의(특히 헤겔의 도덕적 실증주의)에 관해 언급했는데, 그것은 이런 이론이다. 지금 있는 도덕적 표준 이외에는 아무런 도덕적 표준이 없다. 지금 있는 것이 합리적이며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힘이 정의다. 이 이른의 실제적 의미는 현존하는 사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고찰하고 있는 역사주의적 도덕론(마르크스의 도덕론)은 도덕적 실증주의의 또 다른 한 형태에 불과하다. ‘도래하는 힘이 정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미래가 현재 대신에 들어섰을 뿐이다. - P286
역사 자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역사에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부여한 의미이다.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이 수동적으로 끌려가야 할 역사의 의미나 법칙은 없다. 역사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우리는 역사 자체가 지닌 법칙과 의미가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예언하려고 하는 대신에, 우리가 역사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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