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와 그 적들 I - 개정판 현대사상의 모험 16
칼 포퍼 지음, 이한구 옮김 / 민음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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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마술적 사회나 부족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는 닫힌사회라 부르며,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사회라 부르고자 한다. 닫힌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에 그대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닫힌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반(半)생물학적 유대에 의해 함께 묶여 있는 사회이다... 열린사회는 이와 반대로 유기체적인 특성이란 없는 추상적인 사회이다. 이 사회는 인간 상호 간의 직접적인 접촉이 거의 없는 비인격적 사회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283


 칼 포퍼 (Karl Riamund Popper, 1902~1994)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volume I: The Spell of Plato>에서 계(界)의 경계에서 질량과 에너지 이동이 자유로운 개방계(open system)와 이에 반대되는 에너지 교환만이 가능한 폐쇄계(closed system)라는 과학의 개념을 사회학에 접목시킨다. 사회 구성원들에게 보다 많은 정보와 자유, 평등이 균일하게 보장되는 열린사회를 거부하고, 소수에 의한 권력추구를 열망하는 이들, 그들이 바로 포퍼가 지적하는 열린사회의 적들이다.


 이것이 역사주의라 불리는 태도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다. 역사주의의 핵심적 원리란, 역사는 특수한 역사적 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며, 우리가 이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주의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단순한 형태는 선민사상에 의해 잘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p13)... 유신론적 역사주의인 선민사상은 현대의 가장 중요한 두 역사주의 이론인, 파시즘의 역사철학과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이 공유하고 있다. 인종주의에서는 선택된 민족이 선택된 인종으로 대체되며,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에서는 선민이 선택된 계급으로 대체된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14


 포퍼가 지적한 열린사회의 적들은 플라톤(Platon, BCE 427 ~ BCE 347)과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다. 다소 거칠게 보수적인 측면에서 열린사회의 적이 플라톤이라면, 진보적인 측면에서의 적은 마르크스다. 플라톤의 역사의 법칙을 퇴행으로 바라보고 민주주의 정체에서 수호자 중심의 귀족정으로 되돌리려는 반동(反動)주의자라면, 마르크스는 역사의 법직을 진보로 해석하고, 자본이 갖는 필연적 모순에 의한 붕괴와 공산주의 사회를 꿈꿨다는 점에서 다른 방향성을 전망한 같은 역사주의자들이다. 이들 중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은 2권에서 구체적으로 다루도록 하고, 먼저 플라톤에 대해 살펴보자.


 플라톤과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에는 유사성이 대단히 많지만, 헤라클레이토스와는 반대로 플라톤은 역사적 운명의 법칙, 부패의 법칙은 인간의 도덕적 의지로 깨뜨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확실히 부패로 치닫는 일반적인 역사적 경향과 모든 정치적 변화를 억제시킴으로써 정치 면에서의 더 심한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35


 플라톤은 정체(政體)에서 끊임없는 퇴행을 보았다. 완전한 이데아의 국가에서 귀족정, 과두정, 민주정, 참주정으로의 끝없는 퇴보 속에서 스승 소크라테스(Socrates, BCE 470~ BCE 399)의 죽음을 지켜봐야했던 플라톤은 스승의 뜻과는 다른 의미로 부패와 타락의 확산을 막기위한 철인(哲人)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며 궁극적으로 폐쇄된 사회로의 지향을 선택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열린사회주의자 소크라테스의 목소리로 전달하는데, 후대 독자들이 플라톤의 대화면에서 때로 낯선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열린사회에 대한 신념과 인간에 대한 신념, 평등과 정의에 대한 신념과 인간 이성에 대한 신념에 가장 위대한 공헌을 한 자는 소크라테스일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가장 재능 있는 제자였던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얼마 안 가 그를 배반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신념은 공개적으로 도전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하였기 때문에, 플라톤은 그것을 닫힌사회에 대한 신념으로 재해석하고자 했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284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자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진실로 지혜를 추구하는 자가 아니라, 오만한 진리의 소유자이며 학식 있는 현인이었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요구하는 것은 현자지배인 것이다(p231)... 철인왕의 첫 번째 기능이며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국가의 창건자와 입법자로서의 기능이다... 철인왕의 주권 이론 배후에는 권력에의 추구가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232


 우둔한 데모스(demos)에게 권력을 주는 것은 최종적으로 몰락에 이르는 길이기에 플라톤은 개인이 아닌 집단을 강조한다. 지식과 힘을 가진 소수에 의한 영속적 지배. 플라톤은 이러한 단절을 통해 끊임없는 역사의 퇴행을 막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현실의 아테네 대신 라이벌 스파트타에서 가야할 과정을, 이제는 사라진 아틀란티스(Atlantis)에서 이데아(Idea)를 발견하면서, 플라톤은 열린사회의 적(敵)이 되버렸다.


 플라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개인주의를 극렬하게 혐오했고, 이를 분쇄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혐오는 플라톤 철학의 근본적인 이원론에 뿌리박고 있다. 정치적 영역에서 개인이란 플라톤에게는 악 그 자체였다. 이리하여 국가의 이익이라는 오직 한 가지의 도덕적 기준이 등장한다. 이것은 집단주의나 정치적 공리주의의 법전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선이란 나의 집단이나 나의 부족, 혹은 나의 국가 이익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148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에서 저자는 플라톤의 역사주의에 기반한 반동주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거부하는 퇴행적인 움직임을 비판한다.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의 최적화를 보장해주지 않지만, 그 역도 마찬가지다. 개인과 전체의 유기적인 흐름에 대한 거부와 획일적인 접근이 갖는 위험성을 저자는 본문을 통해 분명하게 지적한다. 


 저자 칼 포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riedrich Hayek, CH, 1899 ~ 1992)와도 많은 교류가 있었지만, 전체주의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열린사회와 그 적들 > 에서 보여준다. 신자유주의가 전체주의와 사회주의를 동일시한다면, 포퍼는 전체주의는 사회주의와 함께 보수적인 요소도 있음을 본문을 통해 보여준다. 파시즘과 사회주의는 동일한 것인가? 라는 물음에 대해 하이에크는 '그렇다', 포퍼는 '그렇지 않다'는 다른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과학자가 바라본 사회학.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은 이런 점에서도 한 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유토피아주의에는 플라톤적 접근법의 독특한 특성이 되는 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유토피아주의의 전폭성, 즉 돌멩이 하나도 그대로 두지 않고 사회를 전체적으로 다루려는 시도이다. 그것은 사회악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는 확신이며, 세상에 어떤 품위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위에 거슬리는 사회제도를 완전히 근절해 버려야 한다느 확신이다. 그것은 비타협적인 급진주의이며, 탐미주의이며, 완전주의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비타협적인 급진주의이며, 탐미주의이며, 완전주의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지금보다 좀 더 낫고 좀 더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추함이 전혀 없는 세계, 참으로 아름다운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262


 우리가 플라톤으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은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그것은 잊어서는 안 될 교훈이다. 플라톤의 사회학적 진단이 우수했을지라도, 그 자신의 발전은 그가 대항해서 싸우고자 했던 악보다도 그가 추천했던 치료법이 더 나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치적 변화를 억제하는 것은 치료가 아니다. 그것은 그것은 행복을 가져올 수 없다. 천국에의 꿈은 지상에서는 실현될 수 없다. _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1> , p330


역사주의의 핵심적인 원리란, 역사는 특수한 역사적 법칙이나 진화적 법칙에 의해서 지배되며, 우리가 이 법칙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인간의 운명을 예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유신론적 해석, 즉 신을 역사적 무대에서 공연되는 연극의 작가로 해석함으로써 역사를 이해하려는 시도의 하나이다. - P16

플라톤은 국가를 인간 영혼과 비슷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국가의 질병, 즉 그 통일성의 분열은 인간 영혼 내지는 인간 본성의 질병에 대응한다. 국가 쇠퇴의 모든 전형적 단계는 인간의 영혼, 인간의 본성, 인간 종족의 각 쇠퇴 단계에 대응함으로써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도덕적 부패가 종족적 부패에 근거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플라톤의 자연주의에서 생물학적 요소는 결국 그의 역사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 P100

플라톤에게서는, 미래의 지도자를 선정하고 그들에게 지도력을 습득시키는 일이 교육의 과업으로 등장하며, 이를 담당하는 기구가 국가의 문교부라 할 수 있다. 순전히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을 플라톤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중요한 제도이다. 이것이 권력의 열쇠를 쥐고 있다. 이런 이유 하나만으로도 적어도 고급 단계의 교육은 통치자에 의해 직접 통제되어야 한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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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7-31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1권만 번역되어서 기다리는 분들이 많은데 왜 아직도 안나오는 것일까요?
저도 1권만 갖고 있어요

겨울호랑이 2023-07-31 13:52   좋아요 1 | URL
아, <열린사회와 그 적들 2>는 1989년에 번역이 되었네요. 1권은 현대 사상 신서로 개정판이 나왔는데, 2권은 구판으로 나와있어 지금 읽고 있어요. 곧 조만간 정리해서 리뷰 올리겠습니다 ^^:)

그레이스 2023-07-31 13:54   좋아요 1 | URL
^^
저도 구판은 있는데 이 판본 갖고 있으니 나올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핑계가 생기네요 ^^
어딨는지 찾아보기도 싫고 ㅋㅋ

그레이스 2023-07-31 13:55   좋아요 1 | URL
리뷰 기다릴께요

겨울호랑이 2023-07-31 13:55   좋아요 0 | URL
^^:) 네 그레이스님 마음 동감입니다. 구판은 여러 면에서 개정판에 비해 아쉽게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