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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구조 ㅣ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0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2년 12월
평점 :
현대의 선진자본주의 국가에는 자뵨=네이션=스테이트라는 삼위일체 시스템이 존재한다. 먼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방치되면 반드시 경제적 격차와 계급대립으로 귀결된다. 그에 대해 네이션은 공동성과 평등성을 지향하는 관점에서 자본제경제가 초래하는 모순들의 해결을 요구한다. 그리고 국가는 과세와 재분배나 규칙들을 통해 그 과제를 해결한다. 자본도 네이션도 국가도 서로 다른 것이고, 각기 다른 원리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서로를 보완하는 형태로 접합되어 있다. 그것들은 어느 하나를 결여해도 성립하지 않는 보로메오의 매듭이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31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 1941 ~)의 <세계사의 구조 世界史の構造>는 '자본(capital)', '네이션(nation)', '국가(state)'의 긴밀한 연계로 얽혀진 현대 자본주의 사회 체제의 기원과 문제점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대안에 대한 논지가 담겨있다. 고진이 본문에서 '보로메오의 매듭'이라고 표현한 것처럼 복잡하게 얽힌 시스템의 본질을 알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세계사의 구조>에서 고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의 주장에 주목한다. 고진은 헤겔의 <법철학>에 나타난 사회 구조를 파악하려는 관점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드러난 역사를 정신적인 것이 아닌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노력을 통해 시스템의 본질에 접근해간다.
우리는 1990년 이후의 상황 하에서 칸트, 헤겔, 마르크스라는 고전철학이 반복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재검토하는 것은 액추얼한 문제이다. 이 경우 우리는 칸트는 헤겔에 의해 극복되고, 헤겔은 마르크스에 의해 극복되었다는 통념을 배척해야 한다. 우리는 오히려 칸트를 각지의 자본과 국가에의 대항운동이나 코뮌이 나누어지고 대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좋은지 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시 읽어야 한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427
그렇지만, 고진은 <세계사의 구조>에서 철학자들의 논지를 그대로 빌려오지 않는다. 헤겔의 논지는 시스템의 구조를 파악하는데는 유용하지만, 이들의 관계성을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것으로 비판되며, '생산양식'에 주목한 마르크스의 관점은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기에 부족함이 있어 고진에 의해 '교환양식'으로 바꾸어 해석된다. 이처럼 <세계사의 구조>에서 고진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논지를 '가로지르기(trans- )'를 통해 현재 문제를 해석하는데, 최종적으로 이러한 논의의 종점은 '초월적인' 칸트의 '세계 공화국'에 이른다.
헤겔이 <법철학 강의>에서 파악하려고 한 것은 자본=네이션=국가라는 매듭이다. 이 보로메오의 매듭은 일면적인 접근(approach)으로는 파악할 수 없다. 헤겔이 변증법적 기술을 취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헤겔에게 있어서는 이런 매듭이 근본적으로 네이션이라는 형태를 취한 상상력에 의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 망각되고 있다. 즉 네이션이 상상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망각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런 매듭이 지양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전혀 보이지 않게 된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323
칸트는 홉스와 마찬가지 전제에서 생각하고 있다. 홉스는 주권국가(리바이어던)에 의해 평화가 실현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평화는 국가 내부만의 것으로 국가 간에는 없었다. 한편 칸트는 국가 간의 평화상태를 창설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실현된 상태가 세계공화국이다... '세계공화국'이란 국가들이 지양된 사회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정치적 차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 간에 경제적인 '불평등'이 있는 한,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영원평화는 일국만이 아닌 다수의 나라에서 '교환적 적의'가 실현됨으로써만 실현된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335
<세계사의 구조>에서 우리는 다양한 보로메오의 매듭을 만나게 된다.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현재 자본주의 구조와 이들을 나타내는 '감성-상상력-오성(지성)' 그리고 이들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마르크스-헤겔-칸트'의 주장까지. 그렇지만, 이들 보르메오의 매듭은 서로 정합(整合)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교환양식 A에서 교환양식 B로 옮겨갈 때, 유목상태에서 정주상태로의 변화를 해결하기 위한 필요에 의해 국가가 태어나듯, 이들은 다르지만 동시에 공통된 부분을 갖고 있다. 다르지만 같은, 조금씩 어긋난 구조 속에 생겨난 틈 사이에서 생겨난 균열을 예리하게 파고들어 잘라냈을 때, 고르디우스 매듭을 풀어낸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E 356 ~ BCE 323) 처럼 문제를 풀어내고 '세계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교환양식으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전작 <트랜스크리틱>이 칸트, 마르크스, 헤겔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책이라면, <세계사의 구조>는 이러한 관점의 연장선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보다 많은 역사와 정치철학의 논의가 이루어지는 이 책은 <트랜스크리틱>을 통해 얻은 '비평'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다 깊게 하는 계기를 독자들에게 선물한다...
네이션-국가는 네이션과 국가라는 이질적인 것의 결합이다. 하지만 그것이 성립하기 전에 실은 자본=국가, 즉 자본과 국가의 결합이 선행하고 있다. 이것이 절대왕권이다. 네이션이 나타나는 것은 그 후, 즉 절대왕권이 시민혁명에 의해 무너진 이후이다. 간단히 말해, 네이션이란 사회구성체 중에서 자뵨=국가의 지배 하에서 해체되어 가던 공동체 내지 교환양식A를 상상적으로 회복하는 형태로 등장한다. 네이션은 자본=국가에 의해 형성된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본=국가가 가져오는 사태에 항의하고 대항하는 것으로서, 그리고 자본=국가의 결락을 보충해서 매우는 것으로서 출현했다. _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 p304
마르크스가 강조한 것처럼 상품교환은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발생했다. 그곳에서 성립한 것은 일반적인 등가물(화폐)에 의한 교환이다. 국가는 이에 관여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는 국가와 법이 없으면, 상품교환이 성립하지 않는다. 즉 계약이 이행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는 화폐가 가진 힘을 불러오지는 못한다. 화폐는 국가에 의해 주조되지만, 그것이 통용되는 것은 국가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다. 상품(소유자)들의 세계 속에서 형성된 힘에 의한 것이다. 국가나 제국(광역국가)이 하는 일은 화폐의 금속량을 보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화폐의 힘은 제국의 범위를 넘어서기에 이른다. - P47
미니세계시스템은 교환양식A에 의해, 세계=제국은 교환양식 B에 의해, 세계=경제(근대세계시스템)은 교환양식C에 의해 형성되어 왔다. 이것을 안다면 그것들을 넘어서는 세계시스템X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교환양식A의 고차원적인 회복에 의해 형성된다. 구체적으로 말해, 그것은 군사적인 힘이나 화폐의 힘이 아니라 증여의 힘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칸트가 ‘세계공화국‘이라고 부른 것은 그와 같은 세계시스템의 이념이다. - P66
화폐경제는 개인을 공동체의 구속에서 해방시키고, 제국=코스모폴리스의 인민으로 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급진적 평등주의‘는 공동체에 존재했던 평등주의, 바꿔 말해 호수적 경제와 윤리를 파괴해버린다. 즉 그것은 빈부의 격차를 가져온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보편종교가 등장하는 전제이다. 요컨대 보편종교는 제국형성 과정에서 교환양식 B의 지배하에 교환양식 A를 교환양식C를 통해 해체해갈 때, 이에 대항하는 교환양식D로서 출현한 것이다. - P207
네이션이란 상품교환의 경제에 의해 해체되어가는 공동체의 ‘상상적‘ 회복에 다름 아니다. 네이션은 말하자면 자본=국가에 결여된 ‘감정‘을 거기에 불어넣는 것이다. 헤겔은 <법철학 강의>에서 홉스적인 국가를 ‘오성적 국가‘라고 불렀다. 그것은 거기에 ‘감정‘이, 따라서 ‘네이션‘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헤겔이 생각하기에 자본=네이션=스테이트야말로 진정한 ‘이성적 국가‘인 것이다. - P312
우리는 호수적 원리의 고차원적인 회복을 소비=생산협동조합에서 보아왔다. 이제는 그것을 국가 간의 관계에서 보아야 한다. 국가연방을 새로운 세계 시스템으로 형성하는 원리는 증여의 호수성이다. 증여는 군사력이나 경제력보다 강한 ‘힘‘으로서 작동한다. 보편적인 ‘법의 지배‘는 폭력이 아니라 증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세계공화국‘은 이렇게 해서 형성된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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