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의 역사 - 유라시아의 교차로 서울대학교 중앙유라시아연구소 교양 총서 2
제임스 A. 밀워드 지음, 김찬영.이광태 옮김 / 사계절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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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의 발전을 촉진한 최초의 중앙 지도자는 사실상 장쩌민이나 덩샤오핑, 마오쩌둥도 아닌 건륭제였다. 18세기 중반 그는 황제로서의 권위를 이용하여 서쪽에 있는 '새로운 영토'의 대부분을 토착 지배자들의 자치적인 지배 아래에 있는 완충 지대로 남겨 두기보다는 이 지역을 개발하여 안정시키자고 주장했다.... 이같은 (강희제와 관료들, 지식인 계층간의) 논쟁은 19세기와 20세기에 다양한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중국 내지에 기반을 둔 정권들은 신장의 불안, 신장의 국경에 대한 외국의 침입, 그리고 이로 인해 생겨난 압박감을 고려해 볼 때 과연 이 지역을 통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딜레마를 늘 고민했기 때문이다. _ 제임스 A. 밀워드, <신장의 역사> , p414


 제임스 A. 밀워드 (James A. Millward)의 <신장의 역사 Eurasian Crossroads: A History of Xinjiang>은 고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신장(新疆) 지역사를 다룬 책으로 신장의 현대사에 특히 무게를 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현재 중국의 일부면서 동시에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문제로 국제적인 관심을 받는 신장 지역의 역사에서 오늘의 문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밀워드는 본문에서 오늘날 신장 지역에 대한 중국정부 정책의 기원을 청(淸)으로부터 찾는다.


 청(淸) 강희제(康熙帝, 1654 ~ 1722)는 준가르 복속 이후 이 지역을 결코 방치하지 않았다. 대신, 이 지역에 대한 집중적인 경제적 투자와 유교문화권 편입 노력이 행해지면서 '이슬람 유목 제국'이었던 신장 지역은 제국의 질서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렇듯 강희제 이후 청조의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일정 수준의 자치권을 보장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 지역이 청 제국 내 편입되면서 눈에 띄게 경제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장 내 청의 통치 체제는 다양한 행정 체계를 갖추고 현지인에 의존했다는 점에서 영국의 인도 통치 및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통치 체제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예외를 제외하면 신장의 군정과 벡 체제 및 다른 행정 체제는 결코 절대적으로 공정하다거나 문명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발전이 지역의 반란을 억제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효율적인 방식으로 수십 년 동안 작동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이 되면 이 지역은 불붙기 직전의 마른 장작과 같은 위태로운 상태가 된다. _ 제임스 A. 밀워드, <신장의 역사> , p166


 <신장의 역사>에서 저자는 청 제국의 주요 정책이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책으로 계승되었음을 말한다. 제국주의(Imperialism)의 주변부가 아닌 제국(Empire)의 일부로서 신장을 바라보는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이 고조된다면, 그것은 이들 지역을 제국의 일부로 묶어주었던 사슬이 붕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신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책은 한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건륭제와 그 이후 청 황제들의 정책과 동일하다. 즉, 동부 지방의 인구 압력을 완화하고 변경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신장에 중국인들을 정착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이 재정착 혹은 식민화 프로그램의 핵심은 중국의 변경 정책에서 오래된 기원을 갖는 군둔(軍屯)이었다. _ 제임스 A. 밀워드, <신장의 역사> , p356


 1990년대 중화인민공화국의 지도자들은 신장의 상황을 다시 평가하고 신장과 중국의 다른 지역 및 세계와의 통합을 재촉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이와 같은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1991년 소련의 해체였는데, 이로 인해 19세기 이래 신장에 대한 중국의 통치를 위협하던 국경 바로 너머에 있는 거대한 경쟁자가 제거되었다. 동시에 계속된 중국과 미국의 긴장은 신장과 중앙아시아의 석유/천연가스 매장지의 전략적 중요성을 높였다. 신흥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등장과 1980년대 이래 시작된 시장 사회주의에 대한 중국의 실험으로 인해 촉발된 폭발적인 경제 성장은 위구르 기업가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주었다. 반면 1980년대 중국 전역에 걸쳐 상대적으로 국가의 통제가 이완되고 민주화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신장에서는 무슬림 민족 집단, 특히 위구르 족이 주도하는 시위와 소요가 늘어나고 심지어 무장 저항도 발생했다. _ 제임스 A. 밀워드, <신장의 역사> , p403


 이러한 판단은 고대 유목제국인 흉노(Huns)와 농경제국인 한(漢)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뒷받침 될 수 있다. 유목 세력의 남하가 경제적 요인에 의한 것이었다면, 농경 세력의 북침은 안보 요인때문이었다. 만약, 자연환경이 척박한 신장 지역사람들에게 경제적 이익이 보장될 수 있고, 황하 지역의 한인들의 안전이 확보될 수 있다면 이들은 공생할 수 있었고, 전통적인 조공(朝貢)관계가 성립된 배경이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한-흉노 투쟁의 기초가 되었던 두 가지 원동력이다. 우선 몽골과 중가리아에 있는 유목 세력은 식량과 세입을 위해 타림 분지와 투루판 분지를 이용했다. 다음으로 중국에 기반을 둔 세력들은 북방 민족과의 전쟁에서 유목 적대 세력의 자원 기반을 손상시켜 북중국을 침략할 역량을 감소시키기 위해 서쪽의 신장으로 군사 원정을 했다. 다시 말해 한의 '서역'으로의 팽창은 흉노와의 오랜 대립에서 기인한 것으로, 무역로나 새로운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열망이 아니라 안보에 대한 우려로부터 유발된 것이다. 이는 다시 확인하게 될 패턴이다. _ 제임스 A. 밀워드, <신장의 역사> , p68


 청나라 말기 이후 국민당 정부를 거쳐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할 때까지 이 지역에서는 티베트 지역에서와 같이 종교에 기반한 독립운동이나 구 소련지역에서의 독립국가들처럼 민족에 바탕을 둔 독립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신장 지역의 중앙정부에 대한 경제적 기대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한, 이러한 높은 기대가 그들을 제국 내에 머무르게 했다면, 이러한 기대감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의 배신감은 그만큼 커지지 않을까.


 20세기 신장에서의 권리 운동 또는 독립 운동은 '이슬람의 성전'이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개념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 실패로 끝난 1933~1934년의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선포는 온건한 이슬람식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적 목소리를 냈으나, 1940년대에 투르크족 자치 또는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조직한 주된 세력은 친소적이고 세속적이었다. 1950년대에 신장의 이슬람 기구들은 공개적인 저항을 거의 하지 않은 채 중국 공산당에 의한 재산의 국유화와 감독을 받아들였다. 반지방 민족주의 운동과 문화 대혁명에서 나타난 중국의 수사학으로 판단해 보건대, 신장에서 '단결'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으로 인식된 것은 이슬람이 아니라 소련과의 연계였다. _ 제임스 A. 밀워드, <신장의 역사> , p394


 이같은 상황에서 민족주의나 종교에 기반한 중앙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반발감이 생긴다면 그 이유는 하나 뿐일 것이다. 한족과 위구르족간의 심해진 소득불균형 문제. 경제적 문제로부터 시작된 중앙정부(공산당)에 대한 불만이 민족적 갈등으로 이어졌고, 때마침 시진핑習近平)의 일대일로(一帶一路)정책의 핵심 관문으로 이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강경하게 진압한 것이 국제 이슈로 대두되면서 오늘날 신장 위구르 지역의 문제가 국제문제로 커지게 되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실, 신장 지역의 역사를 다룬 좋은 책들은 이전 리뷰,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고 <신장의 역사>가 미처 다루지 못한 상세한 내용이 이들 책에는 담겨있다. 신장 지역의 고대 유목제국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돌궐유목제국사>, <위구르 유목제국사 744 ~ 840>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며, 이후 강희제의 준가르 정복사는 <중국의 서진>이 매우 상세하게 설명되지만, 오늘날 신장지역 문제를 이해하기에는 <신장의 역사>가  적합한 책이라 생각된다. 신장의 과거를 통해 현대를 바라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홍콩 출신의 한 학자는 신장의 한족-위구르족 관계의 상태를 정량화하려는 시도를 해 왔다. 위구르인 응답자들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을 내켜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우루무치에서 거의 400명의 한족과 위구르족을 대상으로 한 그의 조사는 두 공동체 사이에 대단히 깊은 골이 있음을 밝혀냈다. 많은 비율의 위구르인 응답자들이 중국 시민이라는 것(88퍼센트)보다는 위구르인이라는 것(91퍼센트)과 신장의 주민이라는 사실(95퍼센트)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대답했으며, 거의 40퍼센트에 달하는 위구르인들이 자신들의 삶의 질은 한족보다 더 느리게 향상되고 있다고 믿었으며, 과반수의 위구르인들은 한족과 위구르족 사이에 심각한 소득 불균형이 있다고 생각했다.  _ 제임스 A. 밀워드, <신장의 역사> , p477

한화(漢化)라는 개념은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으로 적어도 2가지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첫째로 이 개념은 주변의 민족들과 중국을 정복한 민족 모두 일단 중국의 문화와 조우하게 되면 우월한 중국 문화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고 가정한다. 중국 고전에서 기원한 이 사고방식은 경험적/이론적 기반 모두에서 무시되거나 고도로 제한되었다. ‘한화‘의 두 번째 의미는 비중국적인 문화 요소들을 제거하고 특정 민족이나 지역을 중국적인 방식으로 변환시키려는 국가의 직접적인 노력을 지칭한다... 그러나 사실상 청은 19세기 중반 이전에는 이 지역의 투르크계 무슬림, 몽골족과 한족 주민들에게 서로 다른 행정/법률 체계를 시행했으며, 한족 농부들이 신장의 북부와 동부로 이주하는 것을 제한하며 느슨한 민족 분리 정책을 고수했다. - P172

청 제국의 붕괴로 인해 토착 엘리트들이 신흥 국가, 즉 중화민국으로부터의 민족 독립을 선언한 티베트나 몽골에서와는 달리 신장에는 이러한 선언을 할 만큼 충분히 두드러지는 위치에 있었던 엘리트들이 없었으며 청의 붕괴에 대한 통일된 대응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장의 좀 더 세속적인 투르크계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적 사고의 동요가 있었다. 이러한 경향은 신장 성에 신식 투르크 학교가 설립된 것에 가장 잘 나타나 있었는데, 이는 몇몇 도시에 거주하는 부유하고 자주 여행을 다니는 상인들이 선도한 운동이었다. - P254

개발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역사 편찬과 교육 개혁의 목적은 신장을 중국의 다른 지역들과 더욱 밀접하게 통합하는 것이었다...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들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탈퇴하도록 이끈 것이 민족주의 그 자체는 아니었지만, 소련은 스탈린이 정의 내린 바로 그 민족 경계를 따라 분열되었다. 중국의 헌법은 소련과 달리 중국의 ‘소수 민족 자치구‘에 분리권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0여년간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 민족 정책은 이어 붙인 중국 민족 구조의 갈라진 틈을 지우기보다는 오히려 부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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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3-05-24 14: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담이 아니고 잠시 소름이 끼쳤네요! 제가 얼마 전에 이 책을 샀거든요(물론 시작은 못했지만ㅋㅋ) <오리엔탈리즘>에서 참고도서로 이 책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담아놨다가 중앙유라시아지도 주는 행사도서에 포함되길래 샀답니다. 신장의 역사를 알기가 쉽지 않잖아요. 이런 연구총서는 왠만해서는 중쇄 찍는 경우도 드물고 품절이나 절판되면 다시 나오기도 힘든 경우가 많아서 이럴 때 사야해! 하면서 샀답니다. 겨울호랑이님께서 별점 5점을 주셨다니! 역시 잘 샀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중에 만주족의 역사와도 병행해가면서 읽어야겠습니다. 올려주신 리스트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구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덧) 그러고보니 돌궐유목제국사부터 읽어야겠네요ㅋㅋ

겨울호랑이 2023-05-24 15:07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거리의화가님처럼 저도 정말 보고싶은 연구총서는 제법 있지만, 언제 절판, 품절될 지 모르는 시한부 삶이라 항상 조마조마합니다. 덕분에 밀린 재고량도 꽤 되고 참 부작용이 크네요 ㅋ 그래도, <신장의 역사> <중국의 서진>과 같은 책들을 보면 든든한 현인을 모신 듯한 느낌이 들어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거리의화가님께서는 워낙 책을 다양하게 읽으시니 저보다 낫겠습니다만. 지도를 보면서 지정학적으로 보는 역사도 즐거울 것 같아요. 거리의화가님, 화창한 날 즐거운 독서 시간 가지세요! ^^:)

거리의화가 2023-05-24 15:11   좋아요 1 | URL
<중국의 서진>은 그래도 지역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을 듯한데 <위구르 유목제국사>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신청해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재고로 쌓이는 병폐는 있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런 책들은 결국 사두어야 좋은 듯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05-24 15:30   좋아요 1 | URL
^^:) 재고 처리를위해서도 정말 부지런히 읽어야할 것 같아요. 시간을 짧은데 읽어야 할 책은 참 많고, 좋은 책은 계속 나오는 것을 보면 빠른 런닝 머신 위를 걷고 있는 느낌을 받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