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
이해영 지음 / 사계절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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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을 포함한 서방의 언론이 개전 이후에 내보낸 뉴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경향을 발견했다. 이것을 미디어와 사실 fact의 관계 변화라고 해도 좋겠다. 진실 truth은 어떤 도덕적 함의를 내포한다는 점에서, 사실이 곧 진실인 것은 아니다. 포스트트루스 post-truth의 진행 단계가 고속화/고도화되면서 이제 미디어는 사실이나 진실에 특화된 사회적 체계와 기능에서 이탈했다. 미디어는 그 자체로 하나의 권부 mediocracy가 되어 사실과 진실을 선별하고, 기사를 권력자원화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201

이해영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는 언론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하기에 ‘달의 뒷면‘과도 같이 낯설게 느껴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 지적한 언론에 의해 은폐된 진실은 개별 전투(combat)에서 전쟁(warfare)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쟁의 전반을 망라한다.

저자는 본문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국외적 배경과 국내적 배경 설명에 지면의 상당부문을 할애한다. 우선 국외적 요인으로 단극체제를 유지하려는 미국의 기획이 지적된다. 이미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우방이었던 서독과 일본의 경제적 부상을 저지시킨 경험이 있는 미국은 1990년대 냉전 종식 후 정치적 경쟁자가 될 우려가 있는 소련을 해체시켰고, 나토(NATO)의 동진을 통해 러시아를 압박시켜왔다.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 1928 ~ )와 제프리 삭스(Jeffrey David Sachs, 1954 ~ )는 정확히 이 지점을 지적하며 미국 역할론을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네이콘이 추진한 30년 프로젝트의 정점이다. 바이든은 네오콘을 몰고 거대한 파국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와 미국, 그리고 EU는 또 하나의 지정학적 파탄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만일 유럽에 약간의 통찰이라도 남아 있다면 이들은 미국의 외교정책 판탄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것이라고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 컬림비아대학 교수는 말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38

‘브레진스키 함정‘의 요체는 이렇다. 적을 원하지 않는 전쟁으로 유도해 한정된 자원을 고갈시키고 전력을 약화시킨 뒤 최종적으로 압박해 무너뜨린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의 베트남‘이 되었고, 소련은 자국의 생산력으로 더 이상 냉전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결국 붕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러시아의 아프가니스탄으로 우크라이나가 지목되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67

국외적 요인이 미국 네오콘의 프로젝트라면, 우크라이나-러시아 문제는 아조프(Azov)로 대표되는 극우집단 문제다. 일찍이 1940년대 볼린 Volyn 지역에서 대학살을 주도한 세력을 기원으로 하는 극우 파시스트 문제는 전쟁 이전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 계 주민을 향한 폭력을 행사하며 악명을 떨쳤다. 언론에 의해 거의 보도되지 않는 이러한 사실을 펼쳐놓고 종합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본다면 선악(善惡)을 판단하는 문제는 이해 당사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우크라이나전 개전 이후 미영 등 서방 언론에서는 거의 삭제된 부분이 우크라이나의 극우 파시스트 문제이다. 우크라이나는 적어도 전전까지 전 세계에서 네오나치가 무장력을 갖춘 유일한 나라였다. 그리고 무장한 나치가 거리의 정치뿐 아니라 의회와 언론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전 세계 네오나치의 허브로 자리 잡았다. 2014년 이른바 유로마이단은 네오나치의 공간을 활짝 열어놓았다. 그 배후에는 당연히 미국이 있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96

아조프는 군사운동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점을 기억하라. 아조프는 압도적 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아르코프 지역의 ‘우크라이나 애국자‘에서 넘어온 극우 세력이 모체이다. 그런데 아조프 민족주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 달리 우크라이나 언어, 인종, 혹은 종교 이슈에 집중하지 않는다. 아조프는 ‘민족‘을 이탈리아 파시즘의 정신을 이어받은 국가주의로 인식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104

그런데 이런 판단을 전쟁과는 전혀 무관한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에서 편향된 정보와 낡은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를 기준으로 내린다면 섣부른 결정이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그 나라가 우리나라라는 점이고, 때문에 정부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에 대해 무겁게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NATO의 동진(東進)으로 러시아의 시각을 아시아로 돌린다면, 결국 다음 대립은 쿠릴열도를 둘러싼 러시아-일본의 갈등이 될 것은 너무도 명확한 상황에서 한미일 동맹을 통해 러시아를 견제하고,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중심으로 인도까지 포함한 인도-태평양 동맹으로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의도는 노골적이다. 빠른 한미일 동맹을 위해 오염된 미군 기지 위에 살짝 흙을 덮듯 서둘러 과거사 문제와 독도 문제,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를 통으로 양보하는 윤석열 정부의 연이은 외교 참사.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는 이러한 일련의 흐름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닿아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보여준 통찰이 현재 우리의 정세 분석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모습이 과거의 반복이라면, 책을 통해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기원‘ 뿐 아니라 ‘한국전쟁의 기원‘에 대해서도 보다 깊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 ~ ) 의 <한국전쟁의 기원>리뷰에서 보다 깊게 살펴보도록 하자...

2022년 11월까지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M777 견인포 142문과 155밀리미터 포탄 92만 4000발을 제공했다. 미국 정부는 155밀리미터 견인포를 감산하려 했지만 최근에 긴급 예산을 편성하여 물량 확보에 나섰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포병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장사정포의 역할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미국의 포탄 재고는 위험 수위에 도달했지만, 그럼에도 포탄 생산력을 늘려려면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미국은 한국에 포탄 공급을 요청했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182

우크라이나전쟁은 타이완의 향배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리아와 이스라엘을 둘러싼 서아시아에서의 갈등 역식 마찬가지다. 역으로 타이완 문제는 우크라이나 문제와 맞물려 중러 관계의 지속성을 강화하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래서 어쩌면 이 모든 요인이 한편으로 미국 단극 체제의 동요를 수반하고 다른 한편으로 신냉전을 강화하는 경향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것이 군사적으로 한층 고조되어 3차 세계대전이 될 가능성 또한 실재한다. _ 이해영,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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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23-05-13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을 통해 많이 교류하고 있는데, 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른 시각에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저는 2020년부터 우크라이나 네오나치즘을 비판해왔고, 다른 사람들이 반데라의 존재를 모르던 시절부터 이에 대해 글은 쓴 적이 있습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읽어야할 책이 이해영 교수님의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참고로 <한국전쟁의 기원> 완역판은 이미 후원했습니다. 이것도 완독할 생각입니다.

겨울호랑이 2023-05-13 17: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저 또한 언론이 다루지 않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다른 측면에 대해서는 단편적으로 접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신세계 질서>에서처럼 종합적으로 정리된 내용을 찾기는 쉽지 않았는데, 이번 기회에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어느 일방이 아닌 여러 각도에서 사안을 바라볼 수 있는 폭넓은 시야가 요즘처럼 혼란한 시기에 더욱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NamGiKim님 좋은 하루 되세요!

2023-05-13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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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3 2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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