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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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에 끈기를 더하고 고온, 고압에서 면을 뽑으면 세상에서 가장 쫄깃한 면이 탄생한다. 바로 쫄면이다. 쫄면은 풍성한 채소와 함께 불처럼 맵고 새콤달콤한 고추장 소스에 비벼서 먹는다. 엄청난 쫄깃함과 눈물을 쏙 빼는 매운맛의 조합 덕분에 쫄면을 먹는 경험은 철인 3종 경기에 비견할 만하다. 극도로 어렵지만 극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밀가루 반죽에 탄산나트륨Na2CO3을 더하면 쫄깃한 알칼리성 국수를 만들 수 있다. 한국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국수가 이 알칼리성 국수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114/336

장하준 교수의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Edible Economics: A Hungry Economist Explains the World>는 제목 그대로 요리책이다. 요리법과 요리 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동시에 이 책은 경제학 책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흔히 생각하는 딱딱한 수리적인 경제이론이 자리하지 않는다. 우리 삶과 무관한 듯 보이는 한계비용체증의 법칙, 유동성 함정, 시장청산 등 이론 대신 우리 삶의 다른 축인 경제(經濟)에 대한 이야기가 책 내용의 다른 한 편을 차지한다.

이런 식으로 이해하면 경제학은 소득, 일자리, 연금 등에 관한 학문이라고 좁게 규정할 때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다양한 면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그래서 나는 우리 모두가 경제학의 원리를 몇 가지라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더 중요한 차원, 즉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34/336

음식과 경제학의 조합. 다소 안 어울리는 듯한 이 조합이지만,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저자가 이들을 하나로 묶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유학 생활 초기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고생하고 요리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만의 요리법을 찾아낸 경험은, 이제는 신고전학파라는 경제학 제국(帝國)으로 통합된 학문의 세계에서 일종의 향수처럼 느껴졌으리라. 다양한 이론이 백가쟁명(百家爭鳴)을 통해 세상의 이치와 다양한 처방을 제시하며 조화롭게 세상을 설명하는 그런 다양함을 저자는 원한다.

1970년대까지의 경제학 분야는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 수없이 다양한 음식 문화가 공존하며 경쟁을 벌이는 요즘의 영국 음식 분야와 닮은 데가 많았다. 모두 각자의 전통에 긍지를 가지고 있지만 서로 배우지 않을 수가 없고, 그 과정에서 의도하든 하지 않든 크고 작은 융합이 많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p28)... 1980년대 이후 경제학 분야는 1990년대 이전의 영국 음식 문화처럼 되어 버렸다. 한 가지 학문적 전통, 다시 말해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메뉴의 전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학파와 마찬가지로 신고전학파 또한 장점이 있다. 그리고 심각한 단점도 있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29/336

저자 장하준은 본문에서 절대 진리, 절대 선을 말하지 않는다. 처한 상황에 따라 경제주체들에게 적절한 행동은 다른 것이며,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어야 한다. 마치 청량고추가 모든 이들에게 똑같은 매움을 선사하지 않듯이.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는 주제는 '조화'와 '균형'이 아닐까 싶다. 더이상의 리뷰는 불필요한 먹방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고 책의 맛은 각자 느껴보도록 하자...

인생의 경주를 진정으로 공정하게 하려면 그 경주에 참여하기 전 모든 어린이가 경주에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어린이가 균형 잡힌 영양, 의료, 교육, 놀이 시간(어린이 성장에 놀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을 누리며 자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려면 자녀를 기르는 사람들(부모, 친척, 보호자 등)이 처한 환경과 상황의 차이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224/336

내 친구 덩컨은 쓰촨 요리 음식점이 고추에 대해 가진 철학을 받아들이고 매운맛에 대한 관점을 점점 바꾸면서 그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음식 문화의 지평이 열리고 더 맛있는 식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더 균형 잡히고, 더 공평하며, 서로 더 잘 보살피는 사회, 한마디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도 돌봄 노동에 대한 관점과 관행과 제도를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_ 장하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p24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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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란공 2023-05-04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중에서도 손이 제일 안가는 책이 경제학분야라서 장하준 교수의 유명한 저작들을 한번도 접해보진 못했네요. 딱딱한 수리적인 경제 이론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시니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일반 독자가 경제학 기본을 알아야할 이유... 설득되었습니다~! ㅋ 책소개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05-04 09:44   좋아요 1 | URL
저는 초란공님과는 다른 지점에서 같은 이유로 이 책을 건너뛸까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요리책을 별로 좋아하진 않거든요 ㅋ 그런데 부담스럽지 않게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 담백하게 좋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란공님 좋은 책과 함께 여유로운 연휴 맞이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