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6
가라타니 고진 지음, 윤인로.조영일 옮김 / 비(도서출판b)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나는 이 책에서 도덕과 윤리라는 말을 구별하려고 했습니다. 칸트는 일관되게 도덕적 실천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그가 도덕적이나 실천적이라는 말로 뜻하고자하는 것이 통상적인 의미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것을 윤리라고 부르고 도덕이라는 말은 통상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싶습니다. 즉 도덕이라는 말을 공동체적 규범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윤리라는 말을 '자유'라는 의무와 관계하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정의가 아닙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14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은 <윤리 21>에서 '전후(戰後) 책임' 문제, 제2차 세계대전의 책임 문제에 대해 논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를 분리하고, 윤리를 자유(自由)와 연결시키며, '자유로운가'로부터 비로소 책임(責任) 소재를 논한다. 그렇다면, 고진에게 도덕과 윤리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좋은 사원이 되라, 좋은 아버지가 되라는 것이 세상의 도덕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에 반하여 행동해야 합니다. 윤리적이라는 것은 그와 같은 도덕성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으로 오랜시간 괴로워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의무'에 반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102


 고진은 <윤리 21>에서 도덕을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규범으로, 윤리를 보다 인류적 차원에서의 기준, 가치로 바라본다. 칸트의 무조건적인 정언명령(定言命令)에 따라 생겨난 자유와 이러한 자유를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는 (결과적으로) 몰랐다고 할지라도 (동기적으로) 책임이 있다. 고진이 <윤리 21>에서 결과적으로 인지(認知)여부를 문제시 하지 않는 것은 인지에는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관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관계성을 걷어버린 후 고진은 직접적으로 '윤리-자유-책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묻는다. 고진에게 이들은 하나의 집합(set)이다.


 '자유'란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행한 일을 "자유로워지라"는 의무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꿔 말하면 '책임'은 바로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116


 칸트는 확실히 "자신의 격률이 보편적인 법칙에 합치하도록 행동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본래 그것은 행위지침이 아닙니다. 앞서 인용한 것처럼 우리는 행위에서 자유(자기원인적)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그렇게 하려고 해도 잘못을 저지르고, 원하는 대로 실현되는 일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경우에도 우리가 그 일에 책임감을 갖는 것은 실제로는 자유가 아니어도 자유인 것처럼 간주할 때입니다. 칸트의 "우리는 행위자 스스로가 이런 행위 결과의 계열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한 것처럼 간주해도 좋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모르고 저지르곤 합니다. 그렇다면 몰랐을 경우에는 책임이 없을까요 그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임이 있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80


 고진은 이러한 구도 속에서 전후 일본의 책임 문제를 거론한다. 일본 제국의 테두리에서 모두가 도덕적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규범을 준수하며 위로부터의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며 각자의 책임을 부인하며, 책임은 아래로부터 위로 (bottom up) 끊임없이 전가되었다. 그리고, 전후 냉전(冷戰) 구도 아래에서 일왕 - 일본 제국의 모든 죄를 짋어진 어린 양 - 은 '면죄부'를 받으며, 전후 일본은 아무런 책임을 묻지도, 지지도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전후 첫 수상은 황족인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淵宮秘였는데, 그는 수상으로서의 첫 라디오 방송에서 '일억총참회'를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전쟁의 책임을 일부 지도자 탓으로 돌리지 말고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짊어지고 반성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최고지도자의 책임을 전혀 묻지 않은 상태에서 '국민'의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할까요. 전후 도쿄재판에서 전쟁범죄에 대해 책임추궁을 당한 군인, 정치가 다수는 상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명령이 천황의 이름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이 명확합니다. 그런데 그런 천황이 면책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결국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됩니다. 그리고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맙니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그것을 '무책임의 체계'라고 부르고 그 원인을 해명하려고 했었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158


 예를 들어 나는 소를 죽이지 않지만 비프스테이크를 먹습니다. 나는 군사적·경제적 제국주의에 반대하지만, 그것을 통해 얻는 생활수준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생각하기 위해서는 직접적으로 자기가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라는 차이는 괄호에 넣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는 인간이 죄가 많다는 이유로 모든 인간을 용서합니다. 실제로 간음을 하는가 하지 않는가, 실제로 죽이는가 죽이지 않는가라는 차이는 절대성 앞에서 사라지고 맙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윤리도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113


  가라타니 고진은 <윤리 21>에서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의 이론을 바탕으로 일본의 전쟁 책임이 일왕에게 있음을 규명한다. 이와 함께,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세계사적 사건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함께 말한다. 세계사 구조에서의 재검토. 이에 대해서는 그의 다른 저작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종군위안부 문제도 옛날부터 있었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에서 나온 페미니스트운동이 제기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무시되었기 때문에 직접 일본에 가져와서 일본의 페미니스트가 일거에 커다란 문제로 만든 것입니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의 남성(가부장제)도 비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기존에 문제가 되었던 한일관계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졌지만, 거기에는 이질적인 물음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여성의 관점에서 전쟁을 재검토하는 것, 세계사를 재검토하는 것입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188


 역사의 재검토revisionism라는 것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아우슈비츠는 없었다, 남경대학살은 없었다와 같은 사고가 리비저니즘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책임'을 소거하는 방향에서 이야기되는 재검토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재검토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배 하에 있었던 자의 눈에 비친 역사가 있고, 여성의 눈에 비친 역사가 있고, 동성애자의 눈에 비친 역사가 있습니다. 아직 그것들은 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서서히 침투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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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3-03-20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같은 시대에 이 책에 나오는 아무런 책임을 묻지도 지지도 않는다는 가라타니 고진의 말이 와 닿네요

겨울호랑이 2023-03-20 20:35   좋아요 0 | URL
네, 책이 나온 시점인 90년대보다도 후퇴한 역사인식과 대응에 많이 어두운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