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가 한중 일대에서 포교한 대상은 가난한 백성들이었지만 위나라에서는 지배층을 상대로 포교하면서 교리와 의식에 변화가 있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장로는 전투에서 패했지만 전쟁에서 이긴 셈이다. 오두미도의 교주였던 그에게는 넓은 땅을 차지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교(오두미도)를 전파시키는 것이 중요했을 테니 말이다.

장비 등의 촉군이 무도군을 점령하면 그와 합류한 뒤 위수 상류로 진격하여 관중으로 쳐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장비 등의 군대가 무도군을 점령하지 못하고 후퇴하면서 북벌 시도는 막혔다. 유비는 한중군을 점령하고 조조가 직접 이끄는 군대를 처음으로 격파해 생애 최고의 승리를 맛보았으나, 절반의 승리였다. 장안과 관중을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중군을 점령한 후 유비가 성도로 돌아온 것이 전략상 착오였다. 형주에서 북진하여 번성을 포위하고 있던 관우는 유비처럼 철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우의 고립. 그 결과는 관우의 죽음이었다.

회남에 주둔하여 손권의 군대를 막고 있던 장요까지 불러들인 것을 보면 당시 관우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조조가 직접 관우와 싸우려고 했다. 조조의 맹장 5명 가운데 장합을 제외한 4명이 관우를 막기 위해 투입된 것이다. 조조가 관우의 북벌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던 사실에서 관우의 번성·양양 공격은 단순한 영토 확장이 아니라 유비가 제갈량의 융중대 계획대로 추진한 북벌의 한 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익주와 형주에서 동시에 출정하는 전략 말이다.

손권은 조조와 유비 모두에게 결정적인 순간에 일격을 가했다. 그는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대를 물리쳐 조조의 천하통일 야망을 무산시켰다. 또한 유비로부터 형주를 빼앗고 2인자인 관우를 죽임으로써 유비의 북벌 계획에 큰 타격을 주었다. 두 사람이 천하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손권이 날려버린 것이다. 손권은 두 사람(조조와 유비)의 천하통일 시도를 막는 동시에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는 데 성공했다. 한편으로 형주를 점령함으로써 조조의 공격을 막아내기 좋은 자연의 방어벽인 장강도 확보했다.

『삼국지』에서 관우의 기사는 965자에 불과하다. 이렇듯 짧은 기록으로 관우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현존 자료에 의지하여 관우를 평가하면, 그는 시기심이 강하고 남을 깔보는 성격이어서 적을 많이 만드는 스타일이었던 것 같다. 관우가 학문에 조예가 깊다는 학자 이미지는 말 그대로 이미지일 뿐이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도 있지만, 관우가 사후에 이렇게 추앙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전근대 중국 정부는 백성들이 믿는 종교를 국가권력 안으로 포섭하려고 했다. 조정은 불교의 승려나 도교의 도사들에게 관직을 주어 황제의 신하로 격하하는 작업을 꾸준히 벌였다. 관우는 점점 일반 백성들의 신앙 대상이 되어갔고, 국가 차원에서 그에게 보인 예우는 한편으로 ‘관우 신앙’을 통제하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산서상인들이 부를 축적하자 다른 지역 사람들은 산서상인들이 돈을 잘 버는 이유가 관우에게 제사를 지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너도나도 앞다투어 관우의 사당인 관제묘에서 제사 지내며 돈을 잘 벌게 해달라고 빌게 되었다. 이 덕에 관우는 산시성의 토착신에서 전국적인 재물의 신(財神)이 되었다.

관우가 반동탁연합군에 종군하는 동안 더운 술이 식기 전에 동탁의 부하 화웅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5회)는 소설 초반부터 관우의 압도적인 용맹함을 보여주며 독자를 사로잡는데, 정작 『삼국지』에 따르면 화웅을 죽인 사람은 관우가 아니라 손견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데워먹는 술, 즉 증류주(배갈, 소주)도 없었다. 증류주는 몽골이 중국을 지배하던 원나라 시대 아랍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었다.

『삼국지/관우전』에서는 관우가 안량을 참했다고 기록했지만 문추를 죽인 주체는 기록하지 않았다. 또 그렇게 조조의 휘하에서 공을 세우다가 유비가 원소 진영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으러 떠나는 도중에 5개의 관(五關)에서 자신을 막아서는 여섯 장수를 죽였다는 이야기(24~28회)도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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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1-14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삼국지를 정비석 작가의 6권 세트로 읽었어요. 열 권짜리가 길어서 나 나름대로 머리를 쓴 거죠. 히힛^^
좋은 독서 시간을 가지시길 응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3-01-14 14:17   좋아요 1 | URL
저도 소설 <삼국지>를 재밌게 읽었는데, 이번에 역사 <삼국지>와 소설 <삼국지>의 차이를 알게 되니, 소설 못지 않게 흥미롭게 읽히네요. 비가 제법 많이 오는 주말입니다. 페크님께서도 여유로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