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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2 - 반동-복고 ㅣ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2
요하네스 부르크하르트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송충기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평점 :
새로운 자연과학이나 자연과학과 철학적으로 논쟁을 펼쳤던 저자들은 반동이라는 이 개념을 점점 더 빈번하게 사용했는데, 이런 현상은 뉴턴 Newton 제3법칙이 공표되고 나서 이 법칙이 공개적으로 정착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모든 작용에는 항상 그것에 맞서서 작용하는 같은 크기의 반작용이 있다. 또는 두 물체의 서로에 대한 상호작용은 항상 크기가 같으면서 반대 방향을 향한다. 이후,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계몽주의 시대 뉴턴 수용의 중요한 동반 현상으로서, 이 자연 과학 기본 개념들은 재해석되어 생물학, 인류학, 정치학 등의 영역으로 전이된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2 : 반동-복고>, P17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2번째 주제는 반동 - 복고(Reaktion, Restauration)다. 개념어의 역사 속에서 '반동 - 복고'의 개념은 처음에는 물리적 힘에 대응하는 대칭 개념으로 시작되었으나,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 1789 ~ 1799)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을 통해 의미 전환이 일어난다. 작용에 수반하는 동반 작용이 아닌, 처음의 물리적 작용 - 혁명 - 을 부정하고, 원상태로 복귀하려는 움직임으로 변이되는 움직임 - 반反혁명 - 을 확인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은 '작용-반작용'이라는 개념쌍을 분리시켰다. 언어적 차원에서 '작용Aktion'의 자리에 '혁명'이 등장하면서, 이제 이 단어는 자체적인 활력을 갖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반작용 개념의 정치화를 위한 전제가 만들어지게 된다. 왜냐하면 반작용 개념이 작용 개념과 언어적으로 단절되면서 자연과학적 은유와도 결별하게 되고, 이제부터는 실제적으면서 역사적/정치적인 기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2 : 반동-복고>, P18
그것은 단순한 의미 변화가 아니었다. '작용 - 반작용'의 관계에서 반작용은 작용에 대한 긍정과 이에 수반하는 부수작용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 혁명 이후 변화된 '혁명 - 반혁명'은 혁명에 대한 부정과 쇄신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작용 - 반작용'이 정적인 상태에서 일어난 시간적으로 미래를 향한 움직임인 반면, '혁명 - 반혁명'이 인위적인 과거로의 퇴행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다른 시간적 방향성을 갖는다.
복고가 단지 반동으로 축소된 것과 그래서 역사철학적 측면이 현격하게 변화된 것은 복고가 자신에게 요구된 정당성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복고 이데올로거들은 법질서와 법적 연속성이라는 이념에 의존했으며, 그런 만큼 그들은 혁명을 자의적 권력 탈취와 권력 행사, 즉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으로 취급했다. 혁명에 의해 만들어진 실재 상황들은 복고로 하여금 옛 상황의 복구를 위해 폭력 동원을 강요했으며, 그런 만큼 복고는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슬로건들을 어겼고, 이미 기존의 법규들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2 : 반동-복고>, P40
19세기 '혁명'이 자유주의 운동의 형태로 표현되었고, 이에 대항하는 '반혁명'은 구체제 기득권의 체제 유지의 움직임으로 극한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 그렇지만, 이들의 갈등과 대립은 '빈곤'과 '계급'문제의 해결이 아닌 '독일 제국의 성립'으로 마무리된다. 중앙집권적인 독일제국의 성립은 반혁명 세력이 주도라는 점에서 복고 세력의 승리였고 다른 한편으로, 독일 제국 아래에서 자유주의 운동의 많은 주장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운동의 성과라 할 수 있었다. 제국 내에서 수많은 목소리를 하나로 결집시키려는 정치적인 노력은 성과를 거두게 되고, 독일 제국이 민족주의국가로 자리잡아 나가면서 '반동 - 복고'의 움직임은 점차 쇠퇴하게 된다.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반동적 진행이 썼던 가면을 벗기는 것은 궁극적으로 빈곤 문제와 계급투쟁에서 시민계급의 입장을 그 중요한 실마리로 삼아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우선은 사회적 민주주의의 최초의 몇몇 이데올로기 대변자들이 가졌던 사회적인 것을 정치적인 것보다 우선시하는 원칙이 반동 개념에 대한 앞에서 언급했던 무관심을 변화시키도록 영향을 미쳤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2 : 반동-복고>, P68
우리는 '반동 - 복고'의 단어가 사용되어온 역사 안에서 자연법칙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들이 사회과학에서 차용되면서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생물다양성을 설명하는 단어인 '진화(進化)'가 사회과학에서는 '우생학(優生學)'으로 변질되었듯이, 물리적 작용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가 기득권들이 자신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활용해 온 역사가 바로 '반동- 복고'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자유주의는 자신들 스스로 싸움에 뛰어들 필요도 없이 승리했기에 패배한 것이다. 국내의 반혁명은 국가적 사건에서 오는 압력이 아니라, 유럽적 사건들의 압력에 의해 제압당했던 것이다. 독일인들은 반동의 쇠퇴를 고맙게 생각하지만, 그것은 자신들 스스로의 힘으로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 즉 유럽적 연관성들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2 : 반동-복고>, P94
반혁명세력이 이제 막 기대치 않았던 자신들의 성과에 따라 자유주의의 투쟁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들 반혁명세력에 의한 자유주의적 목표의 실현은, 반혁명세력으로 하여금 위상 강화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정체성의 위기에 빠지도록 만들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2 : 반동-복고>, P95
귀족정이나 과두정 같은 고전적 정치 전통을 갖는 개념들도 아직은 이 시기에 ‘반동‘ 대신 사용되었다. 이는 중요한 사실을 암시하는데, 즉 반동 개념이나 근대적 정치 용어의 최종적 관철은 고전 정치학 용어들의 폐기나 재해석으로부터 연유되었다는 것이다. 새로운 반동 개념에 대한 초기의 소극적 태도 또한 복수의 개념들이 널리 사용되었음을 반영한다. - P37
반동의 사회사적 골격 Physiognomie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신분제적 세력들의 공조와 협력이 군주제의 조력을 받아서야 비로소 발현되게 된다는 것이었다. 군주제의 위력은 여전히 국가기구(군, 관료제)에 대한 직접적 컨트롤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 - P75
반동 개념과 반동에 대한 비난 간의 경제적 고려를 두고 맺어진 이 연계는 그 자체로서 혁명기의 정치적 실망 이후 시민계층의 주된 이해관계가 이동한 것의 표지이다. ‘반동‘에 대한 모욕적 언어 용법은 이 경우에는 새로운 정치적 행동에 대한 촉구라기보다는 언어적/정치적 회고담 Reminiszenzdlek이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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