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요하네스 부르크하르트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송충기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 푸른역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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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Wirtschaft'와 '살림살이 Okonomie'라는 이 한 쌍의 개념은 한 학문의 모든 핵심을 포괄하고 근대 세계의 모든 것을 관통해온 핵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p12)... 그리스어 오이코스 oikos[집]라는 단어에서 발전된 살림학 Okonomik이라는 용어는 18세기 전까지는 다름아닌 '총체적 가정 ganzes Haus'에 대한 가르침이었다(p13)... 고대에 '오이코스'와 '오이코노미아 oikonomia'라는 용어는 각각 가정 家庭과 그것을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관계 속에서 관리하는 것을 의미했다. 중세에는 '살림살이'와 오늘날 '경제'라고 부를 만한 것의 용어가 역사적으로 더욱 더 벌어졌다(p14)... 18세기와 19세기를 지나면서 이 양쪽의 용어가 근대적 의미에서 경제 영역을 뜻하는 하나의 포괄적인 개념으로 통합되어, 경제 영역이 이제 생산과 교환의 영역을 포괄하고 서로를 연관시켰다. 바로 이 지점이 이 개념사가 특별한 문제의식과 특별한 인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15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21번째 주제는 경제(Wirtschaft)다. 본문에서 우리는 가정 경영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경제'라는 단어가 가정을 넘어서 사회질서를 설명하기 위한 의미의 확장이라는 근대 이전의 단계와 근대 이후 변화된 개념어의 내용을 확인한다. 다소 거칠게 요약하자면, 근대라는 변곡점 전후의 '제가 - 치국(齊家 治國)'의 관계 설정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헤시오도스의 <일과 날>은 당대 농부의 상황을 주로 다루었다. 이 서사시의 핵심은 농부의 일과를 묘사함으로써 '오이코스' 소유자에게 농사일과 사회적 태도에 구체적인 조언을 제시하는 것이다. 유럽적 전통 내에서 보자면 이것은 '가장귀감서 家長龜鑑書'의 원형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26


 '경제'라는 단어가 집과 '살림살이'라는 용어와 확고한 연관을 갖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당시 '가장귀감서 Hausvaterliteratur'라는 새로운 문학 장르가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가정은 숭고한 존재로서 필요하다는 점이 이 장르의 원칙으로 관철되었는데, 말하자면 가정은 공간적이고 물질적인 통일체이자 동시에 인간의 연합체로서 그에 부과된 실제적인 활동 영역을 지닌 포괄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90


 근대 이전의 '경제'는 '가장귀감서'의 내용을 근간으로 한다. 농작물 재배와 농장 경영이라는 농업 활동과 이를 위한 가정의 질서 등을 규정한 <가장귀감서>는 기본적으로 자급자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와 함께 노동집약적인 농업의 특성상 안정적인 사회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가부장적인 계급질서가 긍정되고 있음을 플라톤(Platon, BCE 428 ~ 348)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E 384 ~ 322)의 저술안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중세에 이르러서도 큰 무리없이 받아들여지지만, 중세에 싹튼 변화 - 상업혁명 - 은 근대에 큰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플라톤은 '돈벌이'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자 했는데,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윤리학>을 저술했다. 시민을 가능한 한 '행복하고', 서로를 '친밀하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였다. 경제적 이해의 당사자들을 무턱대고 억압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법적인 대립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데, 이는 플라톤의 목적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재산에 대한 근심'이 윤리적 가치 기준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놓인다. 이러한 평가는 <변명>에서 소크라테스가 '돈벌이'와 '오이코노미아'를 등한시한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35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살림학을 정치학에 종속시킨 것은 그가 '오이코스'와 '폴리스'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 때문이다. 플라톤과 달리 그는 이 두 가지 '공동체' 형태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강조하고 정치학과 살림학을 체계적으로 차별화했던 근거도 바로 거기에서 찾았다(p36)... '오이코노미아'에 속하는 것으로 그는 오로지 자연에 합당한 벌이를 들었는데, 거기에는 수렵말고도 무엇보다도 농업이 속하며, 또한 필요한 물품에 한해 물물을 교환하는 것도 그에 속한다. 그런데 물물교환에서 화폐 사용의 필요성이 나왔고, 결국 '상업적인 것'이 발전하고 말았다. 이것은 돈벌이 Chrematisik에 속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37


 중세에 예고된 근대의 변화. 고대 그리스에서 사회적 필요에 의한 교환은 인정되었지만, 화폐와 화폐로부터 얻어지는 이자 등은 부덕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반해, 중세로 넘어오면서 상인계층의 성장으로 교환 가치에 대한 인정이 이루어지게 되고, '자가 소비를 위한 생산'이 아닌 '타인 소비를 위한 생산', '교환을 위한 생산'이 대규모로 일어나면서, 경제 활동의 정의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이 변화는 '중세 - 가정'과 '근대 - 국가' 사이에 큰 틈을 만든다.                                                                                                                                                     

 (중세에서) 모든 논의의 기저에는 교환과 분업이 사회적으로 필요하다는 긍정적인 판단이 깔려 있다. 곧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은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가족공동체만으로는 이에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시민 집단 multitudo civilis'을 필요로 한다(p81)... 당국에서는 빈민 구제를 제한하고 걸식에 엄하게 대응함으로써, 노동할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노동 의무를 부과하고자 했다. '노동'과 '빈곤'이 서로를 규정했던 과거 고대, 기독교, 중세의 견해와는 분명히 대조적으로, 이 두 개념은 이제 하나의 대립물로 나란히 하게 되었다. 곧 일하는 사람은 가난할 필요가 없으며, 가난한 사람은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증거일 뿐이라는 것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84


 중세까지 '경제'라는 단어가 '가정질서'를 근간으로 한다면, 근대화(Modernization)는 이 단어의 의미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전과는 다른 가치관의 극적인 전회(轉回)는 사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며, 사회의 미덕(美德)이 절대가치가 아님도 함께 보여준다. 특히, 독일과 같이 다소 늦은 시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국가에서는 이전에 설명될 필요가 없는 경제발전의 명분도 함께 설명해야 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경제에 대한 개념이 새롭게 도입되는 등의 변화가 생겨난다.


 (18세기 이후) 가족생활과 살림이, 다른 한편에서는 생산과 생업이 서로 점차 분리된 길을 걷게 되면서, 사회적 단위로서 가정의 쇠퇴는 결국 용어와 장르까지도 분열시켰다. 곧 가장귀감서는 가사 안내서나 가족 기도서로 전화되었다. 그렇지만 '살림살이'와 '경제'라는 한 쌍의 개념이 생업의 세계로 들어왔고, 거기에서 실제와 이론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다시 새로운 개념으로 이어졌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104


 세이 Say가 세운 19세기 교과서적 전통에 따르면, '정치적 살림살이'는 생산 요소로 토지, 노동 그리고 자본을 한꺼번에 고려하는 생산 법칙으로 시작되곤 하는데, 이로써 근대 경제적인 기제의 형성에서 생산의 결정적인 위치가 확립되고 그에 따라 보편적인 경제 개념도 정립되었다. 마찬가지로 생산이 단초가 됨으로써 근대 경제에 대한 생각에서 아주 독특하고 보편적인 개념, 곧 확대와 성장의 관념이 형성되었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134


  1990년대 씌여진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에서는 '경제'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 '최소비용 이윤극대화'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이러한 개념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경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임을 생각하게 된다... 


 경제학적 분석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물과 투자율에 집중되었고, '경제적 성장'이나 '경제 성장'이라는 단어에서, 살림살이 기제가 시간대를 걸쳐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현상을 설명해주는, 일상적 언어와 결합된 이론과 개념을 찾았다. 경제 이론에서 경제 성장에 대한 생각이 지배적임을 잘 말해주는 단어가 바로 경기 변동이 움직이는 영역인 성장 궤적 Wachstumspfad이다... 실제로 성장의 관념은 생산과 보편적 성장가능성에 근거한 근대적인 경제 개념의 요체이다. _ 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21 : 경제>, P163 



초기 그리스 시문 詩文에서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는 ‘오이코스‘를 잘 꾸려나가는지에 대한 서술이다. "오디세우스가 가계와 농장을 경영하는 방식이야말로 가장 치밀하고 탁월하게 묘사된 이상형으로서, 호메로스의 시가 詩歌는 이것을 가능한 모범으로 삼아 고대의 사회적 관념을 제시했다." 그리스 초기의 귀족사회에서 오이코스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가장 중요한 사회적 통합체였다. 그렇지만 호메로스 저작에서 오이코스는 사회적 통합체만이 아니라 경제적인,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생산과 소비를 위한 통합체 이기도 하다. - P25

근대에도 보편적인 경제생활, 특히 물질생활의 필요성과 재화의 생산을 지칭하는 사례를 18세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고 19세기에 비로소 관철되었다. 요컨대 이 단어의 근대 초기의 역사를 더 천착해봐야 하는 이유는 우선 이 ‘경제 Wirtschaft‘라는 단어가 가정과 가사의 관리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살림살이 Okonomie‘라는 단어는 근대 초기에 아리스토텔레스식 의미의 가정학을 지칭하는 기술적 용어로 사용되고, 거기에서 ‘경제‘라는 단어 및 그 의미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었다 - P89

국가경제라는 명칭 형태를 독일에서 밀어내고 대신 들어선 것이 ‘국민살림살이‘와 ‘민족경제‘라는 개념이다(p147)... 19세기 백과사전에 나오는 합성어에서도 가내경제라는 요소가 사라지고, 그 원초적인 형태 대신에 중상주의에서 중농주의를 거쳐 산업사회로 넘어가는 발전 경로를 보여준다. 이러한 근대적인 경제 개념은 학문적으로 형성되었지만, 이어 ‘사회‘ 및 ‘역사‘와 맺는 현실적인 관계에서도 그 쓰임새를 스스로 입증해야만 했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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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man 2023-02-05 2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관련해서 푸코의 흥미로운 언급을 옮겨봅니다. ˝18세기에 중요했던 어느표현이 이 점을 잘 특징짓습니다. 케네는 훌륭한 통치는 경제적 통치라고 말합니다...16세기에 ‘경제‘라는 말은 통치의 한 형식을 지시했습니다. 그러나 18세기가 되면 경제는 우리의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련의 복잡한 절차를 통해 통치가 개입하는 현실의 한 수준, 어떤 영역을 지칭하게 됩니다...라 페리에르의 말에 따르면 통치가 담당해야 하는 사물이란 인간이지만 그것은 부 식량 자원 같은 사물과의 관계, 연결, 연루 속에 있는 인간입니다. 물론 특질 기후 가뭄 풍요 등과 더불어 국경을 갖춘 영토도 사물에 포함됩니다. 풍속 습관 행하고 사유하는 방식 같은 것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 마지막으로 기근 전염병 사고 등의 사고나 불행과도 관계를 맺고 있눈 인간이 바로 사물입니다...<사회계약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자연‘ ‘계약‘ ‘일반의지‘ 같은 개념으로 어떻게 통치의 일반 원리를 제시할 수 있느냐입니다. 주권의 법률적 원리뿐만 아니라 통치술을 정의하고 특징지을 수 있게 하는 요소들까지 모두 감안한 일반 원리를 말입니다.˝ <안전, 영토, 인구>

겨울호랑이 2023-02-05 23:3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글 안에서 푸코는 케네의 <경제표>를 하나의 변곡점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네요. 이전까지 정형화된 객체가 통치의 관심사였다면, 순환적인 경제 구조를 제시한 케네 이후 대상의 관계성에 보다 중점을 둔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라고 요약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변화라 해석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법칙, 일반원리를 끌어내는 것이 현대 사회 과학과 자연 과학이 추구하는 바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김민우님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