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샘 1 - 석유가 탄생시킨 부와 권력 그리고 분쟁의 세계사, 최신증보판 황금의 샘 1
대니얼 예긴 지음, 김태유.허은녕 옮김 / 라의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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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유에 관한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전략상의 우위를 지키려면 석유가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이었다(p237)... "석유는 석탄과 달리 품질이 저하되는 일이 없습니다. 막대한 양을 지하 창고에 저장할 수 있어 화재, 폭격, 방화로 인한파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수에즈 동부의 석유는 석탄보다 저렴합니다... 화물 증기선은 내연 추진 방식에 의해 연료를 78% 절감할 수 있고 화물 적재공간을 30% 늘릴 수 있소. 또한 화부 火夫와 기술자를 줄일 수 있소. 석유를 이용하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이 분명하오. _ 대니얼 예긴, <황금의 샘 1> , p238


 대니얼 예긴(Daniel Yergin, 1947 ~ )의 <황금의 샘 The Prize>은 19세기 말 영국, 석탄, 산업혁명으로 상징되는 세계의 패권이 20세기 미국, 석유, 에너지 혁명으로 대체되는 역사를 다룬다. 그 중에서도 1권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를 다루면서 대체에너지로서의 석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석유와 등유 램프는 미국인의 생활양식을 바꿔놓았다. 동부의 도시에 살든, 중서부의 농촌에 살든 사람들은 잡화상이나 약국에서 등유를 구입했다. 도매업자들은 소매상에 등유를 공급했고, 대부분의 도매업자들은 스탠더드오일에서 등유를 공급받았다. _ 대니얼 예긴, <황금의 샘 1> , p74


 <황금의 샘>의 시작은 오늘날 대표적인 유종인 휘발유(揮發油)가 아닌 등유(燈油)이며, 슈퍼메이저(Supermajor)라 불리우는 대기업 대신 이들의 부모에 해당하는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로 시작된다. 도시의 어둠을 밝히는 용도로 활용된 석유(등유)는 전기에 밀려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지만, 진정으로 석유를 20세기의 상품으로 만든 것은 휘발유였다. 새로운 운송수단으로서 자동차의 등장은 휘발유의 수요를 촉진시키면서 정유산업의 판도는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된다.


 사람들에게 전기는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력산업의 급속한 발전은 석유산업을 위협했고 특히 '올드 하우스'에 매우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조명 시장이 석유 수요원으로서의 역할을 상실해갈 무렵, 서유의 새로운 시장이 나타났다. 일명 '말 없이 달리는 마차'라 불린 자동차의 출현이었다. _ 대니얼 예긴, <황금의 샘 1> , p120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기 전, 휘발유는 석유제품 중 가장 변변치 못한 것이었다. 용제와 난로의 연료로만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892년 석유산업계는 휘발유를 갤런당 2센트에라도 팔 수 있는 것을 자축할 정도였다. 휘발유 가격을 이 정도 받게 된 것도 자동차의 출현 덕분이었다. 석유산업은 휘발유 시장뿐 아니라 공장, 기차, 선박 등에서 사용되는 보일러용 연료 소비 증가로 또 하나의 시장을 갖게 되었다. _ 대니얼 예긴, <황금의 샘 1> , p121


 이와 함께, <황금의 샘1>에서는 정유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치열한 다툼을 보다 상세하게 묘사한다. 존 D.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 ~ 1937)가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은 반트러스트법에 의해 해체되었지만, 석유 메이저의 상당수가 스탠더드 오일의 후신임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1999년 이루어진 엑슨-모빌의 합병은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스탠더드 오일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한 일환으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한편으로, 과거 스탠더드 오일을 해체할 정도로 강력했던 미국의 반트러스트법(반독점법)이 현재의 마이크로소프트사, 구글 등 이른바 빅테크 기업의 정보독점에 대해 유달리 관대해진 부분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봄직하다.


 1911년 7월 말, 드디어 스탠더드오일은 회사 해체를 위한 계획을 발표했다. 스탠더드오일은 몇 개의 사업 주체로 분할되었다. 이들 중 가장 큰 것은 지주회사였던 뉴저지 스탠더드오일로, 총 순자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이것은 나중에 엑슨 Exxon이 되어 계속 주도권을 행사했다. 두 번째로 큰 것이 순자산의 9%를 보유한 뉴욕 스탠더드오일로, 나중에 모빌 Mobile이 되었다. 캘리프니아 스탠더드올인은 쉐브론 Chevron이 되었고, 오하이오 스탠더드오일은 소하이오 Sohio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영국 석유 British Petroleum,BP의 미국 판매회사가 되었다. 또한 인디애나 스탠더드는 아모코 Amoco가 되었고, 콘티넨털오일은 코노코 Conoco가 되었으며, 애틀랜틱은 아르코 ARCO의 일부가 되었다가 훗날 선 Sun사에 흡수되었다. _ 대니얼 예긴, <황금의 샘 1> , p167


 마지막으로 우리는 <황금의 샘 1>을 통해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우는 중동문제를 기원을 찾을 수 있다. 20세기 초반 영국-독일 간 군함 건조 경쟁이 단순한 대형함 건조가 아닌 석유를 원료로 하는 함정 건조에 있었고, 때문에 석유 산지를 점령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세계 도처에서 이뤄졌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철도에 의한 전장으로의 병력운송이 승패의 관건이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전차, 항공기, 군함 등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하는 거점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이러한 자원 거점 확보를 위한 지정학적인 다툼이 그레이트 게임으로부터 시작된  오늘날 중동 문제 임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남방지대에 풍부한 석유, 기타 천연자원, 식료품들로 본토의 자원 부족을 해결하고 경제발전에 활용함으로써 '태평양의 벽'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영국의 단호한 의지를 꺾고, 전쟁에 지친 그들과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을 대일본 제국의 수중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전략은 일종의 도박이었다. _ 대니얼 예긴, <황금의 샘 1> , p563


 영국의 입장에서 전쟁에 필요한 석유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전쟁의 발발은 필요한 석유의 양이 비약적으로 증가함을 의미했다. 이제 의지할 곳이라고는 세계 석유 생산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미국뿐이었다. 영국 정부와 쉘-멕스 하우스에 있는 석유 관계자들에게는 두 개의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외환 사정이 악화되고 있는 영국에 지불 능력이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은 워싱턴에 있었다. _ 대니얼 예긴, <황금의 샘 1> , p583


  제2차 세계대전까지 석유사를 다룬 <황금의 샘 1>에서는 이처럼 주력 석유제품의 변천, 메이저의 역사, 지정학적 문제 등이 눈에 띈다. 이러한 문제들이 <황금의 샘 2>에서는 보다 강력한 상품으로서의 석유의 위상과 함께 보다 복잡하게 얽혀나갈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미 수개월 전에 영국 외무부의 지도를 가지고 경계를 확정지었던 것이다. 누가 경계를 결정했든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석유 협상의 타결은 이후 '적선협정 赤線協定'이라 불리게 되었다. 페르시아와 쿠웨이트를 제외하면, 중동의 모든 주요 유전이 이 적선 안에 있었다. 합의에 따라, 터키 석유회사의 동업자들은 서로 협력하지 않고서는 이 방대한 지역 내에서 어떤 석유사업도 할 수 없었다. 1914년 외무부 협정에서 만들어진 '자제 조항'이 14년 후 적선 협정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는 미래의 중동 지역 석유 개발을 위한 틀이 되었고, 동시에 향후 수십 년 동안 격심한 갈등의 초점이 되었다. _ 대니얼 예긴, <황금의 샘 1> , p316

스탠더드오일은 소비자를 확보하기 위해 마케팅 분야의 지배를 강화했다. 1880년 중반, 마케팅 분야의 점유율은 정유 부문에 대한 점유율과 거의 일치하는 80%수준이었다... 스탠더드오일은 마케팅의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일련의 혁신을 거듭했다. 부피가 크고, 기름이 잘 샐뿐만 아니라, 다루기 힘들고 비싼 석유통(배럴)을 없애려 노력한 것이다. - P75

베랑제 상원의원은 더욱 달변이었다. 그는 프랑스어로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석유는 ‘대지의 피‘이며 결국 ‘승리의 피‘가 되어주었습니다. 독일은 철강과 석탄에 대한 우월성을 과신했고, 상대가 석유에 대해 가진 우월성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석유는 피와 같았으며, 평화를 위해서도 이런 역할을 할 것입니다. - P281

자동차가 널리 보급됨에 따라 미국 사회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석유산업의 기본체제는 극적으로 변화했다. 1919년 하루 103만 배럴이었던 미국의 석유 수요는 1929년 258만 배럴로 2.5배 증가했고, 총에너지 소비 중 석유의 비중은 같은 기간 10%에서 25%로 늘어났다. 석유 소비 중에서도 휘발유의 소비 증가가 가장 컸고, 1929년 휘발유와 연료유의 소비는 전체 석유 소비의 85%를 차지했다. 등유의 소비나 생산량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였다. ‘새로운 불빛‘에서 ‘새로운 연료‘로 주용도가 바뀐 것이다.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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