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모테트가 보여주는 빛나는 자유, 자신의 창조주를 찬양하며 보여주는 우아한 기쁨, 그리고 죽음을 명상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그의 완벽한 확신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우리의 운명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응답이다.

이 바흐 성악곡들을 하나로 묶어서 보면 그가 루터교 종말신학의 본질을 표현하며 이룩한 특별한 성취를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말로는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영겁에 대한 아이디어다. 이 음악들이 오늘날 우리에게 호소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이 만들어내는 확신에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전통적인 종교나 정치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물론 멘델스존이 1829년 「마태 수난곡」을 리바이벌할 때처럼, 지금보다 이른 시기 바흐 음악에 대한 반응도 지금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것은 바흐 서재를 채우고 있던 17세기 루터 신학자들이 구상한 ‘영원한 미래’라는 중심 교리다.

지금까지 보아왔듯 바흐는 음악과 언어를 함께 사용하며 기념비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이는 음악이나 언어를 따로따로 다루어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음악이 때때로 글이나 말로 표현된 언어를 능가하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한 음악의 힘은 의식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서 사람들의 편견과 유해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우리는 원죄와 구원, 악이나 회개에 대한 깨우침을 위해 여전히 그의 칸타타와 모테트에 의지할 수 있다. 이는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유일한 해결책을 기독교에서 찾고’ ‘모든 인류 안에 있는
화산 분화구를 열었던’* 도스토옙스키 같은 19세기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것보다 쉬운 일이다. 사실 바흐의 음악을 들으면 세상의 모든 추잡함과 공포보다도 이웃을 사랑하라는 금언에 더 집중하게 된다.

바흐는 여기서 가사, 혹은 그 이면의 의미들을 투명하게 표현하고자 많은 공을 들인다. 이러한 시도는 여러 유리한 시점에 그 자신이 고안한 고도로 개성적인 양식으로 청중에게 들려온다. 그는 동시대 오페라 레치타티보에서 들을 수 있는 기계적인 재잘거림을 시도하지 않는다. 대신 중요하게 고조된 순간에 아리오소를 노래하고, 언어의 이미지를 피웠다 지울 수 있을 만큼 유연하게 음악적 표현을 전개한다.

글렌 굴드가 말했듯 ‘그 어떤 작곡가보다도 바흐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위법의 전제조건은 선율적 정체성을 선험적으로 구상하는 능력으로, 이 정체성은 일부 전적으로 새롭지만 완전히 조화로운 윤곽을 가지고 있어서,
순서를 뒤바꾸거나 도치시키거나, 역행하거나, 혹은 리듬적으로 변형이 되었을 때, 그럼에도 여전히 오리지널 주제와 함께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바흐를 신학자로만 보고 이 대부분의 칸타타들을 신학적인 의미로만 해석해야 하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앞서 보았듯이 신학은 주로 언어를 통해 표현되는 반면, 바흐가 표현한 자연스러운
양식과 음악적 전개는 고유의 논리를 가진다.

아놀드 토인비는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죽음이 가하는 고통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뉜다. 그리고 고통을 분담하는 과정에서 생존자는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바흐는 선량한 루터 신자답게 양쪽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즉 죽은 자는 축복의 잠에 빠지고 그 유족들은 끝없는 죽음의 결실 속에 영적인 평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의 전략은 죽음에 대한 진실을 날것 그대로 알리는 렘브란트의 〈검은 웃음의 광풍 속에〉*보다도 공감이 간다.

음악과 언어의 관계는 늘 한결같지만은 않은데, 그 이유는 칸타타처럼 시인이나 작사가와 공동 작업을 하면서 절충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 모테트들은 코랄?(우리가 아는 한) 남의 간섭 없이 작곡가 본인이 직접 선택하고 수정한?과 결합한 압축된 경구 위주의 성경 문장에 의지한다. 덕분에 그는 화성을 만족스러울 만큼 통일성 있게 전개할 수 있었다. 이러한 통일성은 다양한 텍스트와 다소 한쪽으로 치우친 형식을 사용한 교회 칸타타에서는 성취하기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이 지닌 비전의 범위 안에서, 바흐는 조화로운 전체로서의 우주적 개념을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고 이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가 작곡하던 시점은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사회 통합이 와해되고 종교라는 낡은 산물이 빠르게 붕괴되던 때였다.

침울한 참회의 장면 위로 막은 내려오자마자 다시 올라간다. 우리는 천상에서 천사들이 양치기들 앞에 내려오는 장면을 그린 새로운 예술 작품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작품이 헨델의 「메시아」다. ‘주께 영광’에서 한 무리의 천사들은 저 멀리에서 내려와 메시지를 전달한 뒤 하늘로 다시 날아간다. 그 모습은 순진무구하고 극적이며 고도로 효과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바흐의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다.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에서 바흐의 천사 합창단은 대위법에 완전히 통달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와 반대로,
세속 춤곡으로 이루어진 「글로리아」를 외치며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한다.

루터 달력은 단식일에 못지않게 많은 축제일을 가지고 있으며, 바흐는 절기와 기독교 달력에 포함된 이교도 축제를 위한 칸타타를 여러 차례 작곡한 바 있다. 하지만 그중에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 즉 공식적으로 승인되지 않은 기념일을 위한 곡도 있었는데, 세례요한축일(6월 24일-옮긴이)이 그날이다. 이날은 카니발 스타일로 기념하는데 ‘그 방종함은 완전히 이교도적인 것이 아니라면, 거의 전(前) 기독교적이라 할 수
있다.’16)* 이 마지막 마디에서 바흐가 만들어내는 대위법적 묘미?그로 인해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쁨?는 어마어마하다. 그 마법 중 일부는, 한 마디에 있는 12개의 16분음표를 나눈 교차 리듬 패턴과 당김음을 포함한 다양한 연주 방식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바흐는 헨델처럼 상습적인 모방꾼은 아니었다.
헨델이야말로 자신의 상상력을 점화하기 위해서 다른 작곡가의 아이디어를 부싯돌로 사용하기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18세기 문학 및 음악 관습상 표절은 널리 허용되긴 했지만, 헨델과 달리 바흐는 다이아몬드를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의 거친 조약돌을 가져다 쓸 필요가 없었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것처럼, 바흐의 방식은 늘 고전적이었다. 우선 모델이 될 만한 작품들을 공부하고, 그들을 베낀 뒤, 거기에 서문이나 주석을 추가해서 자신만의 창의적인 방식으로 결합시켰다. 이를 통해 그는 다양한 테크닉과 스타일에 정통한 어휘를 일거에 습득했다. 이는
모든 것을 최대한 포괄하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과정이었다.

헤르더는 인간의 창조적이고 정신적인 활동이 개인의 삶의 비전을 표현하는 데 이른다는 중요한 생각을 깨달았다. 이는 공감적 통찰에 의해서만 이해가 가능한데, 타인의 염원과 관심에 ‘스스로 감정을 이입하는’ 능력이다. 그는 바흐 성악곡들이 지닌 가장 고결한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단순히 대상이나 예술품으로써가 아니라 한 개인의 비전으로서, 그리고 그의 추종자들과 소통하는 귀중한 형식으로서 말이다. 바흐가 남긴 유산이 그 이전 그리고 이후의 작곡가들의 그것과 다른 점은 바로 이것이다.

우월한 가문과 혈통을 타고났음에도, 바흐의 압도적인 인상은 자기 안으로만 몰입하고, 부모를 잃은 후 처음에는 학업에, 그 다음에는 음악에 모든 힘을 쏟아 붓는 지극히 사적인 개인이다. 그의 삶에 끊임없이 존재했던 죽음?부모, 형제, 그의 첫 번째 아내, 그 이후 여러 자식들?은 감정적인 은둔 내지 경계심으로 이어졌다. 이는 지극한 애정은 상실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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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문트 2022-11-22 15: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후덜덜...... ^^;;;

겨울호랑이 2022-11-22 20:06   좋아요 0 | URL
책을 읽으며, 바흐의 음악은 정말 깊이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골드문트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