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시대 1415~1784 - 중국은 왜 해양 진출을‘주저’했는가?
조영헌 지음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제시하는 논의의 출발점이자 결론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앞서 언급했던 이 시기의 중국과 그 주변은 정적이고 단절되고 폐쇄된 곳이 결코 아니라, 물자와 인력, 정보가 끊임없이 교류하고 있었던 곳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류는 결국 대운하 및 이와 연결된 북경으로 수렴되고 이와 관련된 이해관계 속에서 통제되거나 풀렸다는 사실이다. _ 조용헌, <대운하 시대 1415 ~ 1784>, p16/278

명(明)나라는 서양보다 더 큰 규모의 함대를 구성할 힘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왜 '대항해 시대'에 동참하지 않았는가. <대운하 시대 1415 ~ 1784>는 중국이 '대항해 시대' 대신 '대운하 시대'를 선택한 이유를 잘 보여준다. 황하와 양자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통해 사람과 물자 유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전세계의 은(銀)이 모여들었던 시기에 중국의 선택을 탐험심 부족으로 볼 수 있을까?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신교도들의 청빈과 근검 절약이 자본의 축적을 가져왔다고 분석하지만, 필사적으로 저축을 통해 자본을 축적하고 투자를 해야만 했던 대항해시대를 과연 당시 세계무역의 중심으로 볼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발전이 경쟁의 심화를 통해 결국 과점(寡占)과 독점(獨占)으로 나아가는 헤게모니(hegemony) 쟁탈전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미 세계체제에서 중심국으로서의 면모를 17세기 중국의 모습에서 발견하게 된다. 중국 상인들이 운하를 선택한 이유는 'Low Risk, High Return'였고, 서양인들이 바다로 진출한 이유는 'High Risk, High Return'을 찾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독점자본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중국이 서양에 비해 뒤쳐지지 않았음을 본문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다만, 이 지점에서 주목할 지점은 서양인들은 자신들의 주된 수출품을 직접 운용하여 무역 조건을 개선하고, 무력을 보여줌으로써 상품의 가치를 높여다는 점이라 생각한다. 또한, 면(面)으로 연결되는 육지 제국과는 달리 점(点)과 선(線)으로 연결되는 해양제국의 구축이 보다 경제적이었기에 효율적으로 제국주의를 운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서양이 동양에 앞서게 된 원인은 자본주의 이전에 과학(科學)과 정량화에서 찾아야하지 않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개략적인 생각은 이 정도로 정리하고 보다 자세한 부분은 리뷰에서 다루도록 하자...

사실상 포르투갈의 경쟁력은 신식 화기에 있었다. 중국 관헌에게 '불랑기(佛郞機)'라로 불렸던, 포르투갈인들이 가져온 화포가 동아시아에 불랑기포로 전래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동아시아에서 패권을 다투는 세력에게 유럽인들이 가져온 신식 화기는 전투력 향상을 하는데 이용 가치가 높았으므로, 포르투갈은 신식 화기를 세력을 확장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_ 조용헌, <대운하 시대 1415 ~ 1784>, p114/27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원 2022-10-06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무력을 보여줌으로써 상품의 가치를 높여다는 점˝이 과소평가 되어 온 게 아닌가 생각하곤 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가을 날씨에 따땃하게 지내시길 바래요.

겨울호랑이 2022-10-06 14:02   좋아요 0 | URL
초원님 말씀처럼, 서양의 주요 수출품이 무기였다는 점은 여러 면에서 접점을 가진 듯 합니다. 효과적인 군사작전 수행을 위한 과학의 발전과 정부의 지원, 무력사용으로 인해 상대에게 공포감과 동경을 주는 것 등 오늘날까지 패권국가에게서 보여지는 여러 행태는 그 뿌리를 대항해시대에 두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초원님께서도 화창한 가을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