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0 - 군대에 부는 혁명의 바람, 낭시 군사반란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4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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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적 조건과 법은 새로운 갈등을 낳았으니, 헌법을 빨리 제정하면 혁명을 끝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보다 혁명을 더욱 철저히 해야 이제까지 이룬 성과를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더욱 자기 확신에 빠질 수 있었다. 여전히 파리와 지방에서는 민중이 봉기하여 크고 작은 소요사태를 일으켰고, 국경지대에서는 외국 군대가 침략할까봐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더욱이 파브라 후작의 음모에서 보았듯이 왕당파는 국내외에서 계속 일을 꾸며 혁명의 성과를 지우려 하고 있었으니, 1790년을 생각할 때 전국연맹제의 화합보다는 새로운 체제가 탄생하는 가운데 옛날부터 물려받은 재정적자와 새로운 문화조건 때문에 생기는 갈등을 더 강조해야 마땅할 것이다. _ 주명철, <1790> , p10/366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4권 <1790 - 군대에 부는 혁명의 바람, 낭시 군사반란 Liberte>에서는 혁명(革命)이라는 급격한 변화가 가져온 혼란의 모습이 낭시 군사 반란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진다. 저자는 본문을 통해 의문을 던진다.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 기관'인 군대에서 시민의 가치관은 여전히 유효한가. 왕의 백성으로서 한 명의 군인이었을 때는 제기되지 않았던 물음은 이제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구성원이 되면서 문제가 된다. 여기에 혁명을 지지하지만 역량이 부족한 병사들의 다수는 시민인 반면, 역량이 넘치지만 반혁명적인 성향인 장교단 등 지배계층의 이해가 충돌한 결과를 낭시군사반란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유용한 말, "민주 군대는 있어도 군대 안의 민주주의는 없다"라는 말을 1790년 프랑스의 왕의 군대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병사들은 민간인의 정치클럽에 드나들었고, 거기서 배운 정치생활을 병영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그들은 일종의 의사결정기구인 위원회를 조직해서 자신들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한 뒤 장교들에게 그 결정대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리하여 일사불란한 명령계통을 중시하는 군대의 기강이 무너졌다. _ 주명철, <1790> , p13/366

군인들의 불복종행위는 가장 큰 골칫거리입니다. 그런데 모든 장교직은 귀족과 특권층이 차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혁명에 충성한다고 생각해야 합니까? 병사들은 어떻습니까? 병사들은 애국자입니다만 식견이 많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장교들은 식견이 많지만 애국자가 아닙니다. 이러니까 불행한 일이 발생합니다. _ 주명철, <1790> , p71/366

이러한 혼란의 배경에는 국회와 국왕을 지지하는 세력 간의 다툼이 자리한다. 루이 16세를 지지하는 우파와 보다 적극적인 공화정을 지지하는 좌파간의 대립은 여론전의 형태로 나타났고, 이러한 혼란 속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하려는 움직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이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가, 공동체에서 유일하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기를 들고 있는 집단인 군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1790년에 국회가 모든 정치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의원들이 제정한 헌법, 법률, 명령이나 시행령을 왕에게 승인하고 시행하도록 요구하는 과정에서, 겉으로는 간청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강요하다시피 의지를 관철시키는 모습을 보면서, 왕당파는 왕의 지위가 낮아지고 점점 권력을 잃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래서 왕을 지지하는 세력은 틈만 나면 국회와 그 지지세력에 반대하는 여론을 조성했다. 아직 혁명/반혁명의 구도가 어느 한편의 완전한 승리로 깨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애국자 신문 못지않게 왕당파 신문도 반혁명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 한몫했다. _ 주명철, <1790> , p12/366

여론 전쟁이 낭시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었다. 대부분의 주민은 현실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몇몇 저명한 시민은 자신들이 겪을 손실을 전혀 계산하지 않았고 오직 국가의 행복만 생각하면서 국회가 제정한 법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 법은 사실상 오랫동안 억눌렸던 비참한 계급에게 유리했다. 이들은 그 법에 찬동했고, 그 법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대립했다. 낭시의 주둔군도 분열과 무관할 수 없었고, 전국을 휩쓸던 혼란의 분위기에 말려들었다. _ 주명철, <1790> , p319/366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4번째 <1790>은 혁명의 과정에서 빚어진 혼란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서 질문을 받게 된다. 과연 변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추구해야할 가치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의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따라 가치의 적용이 제한될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제약이 누군가에게는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을 때, 우리 모두는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할 수 있을까? 아니면, 혁명 자체를 부정하게 되는 것일까. 이러한 혼란상 속에서 서서히 반혁명의 움직임은 내부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한마디로 낭시에서는 반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_ 주명철, <1790> , p318/366

새로운 헌법을 받아들인 낭시 시민들은 병사들이야말로 자신들이 공격당할 때 기꺼이 지켜줄 친구로 생각했다. 병사들은 지금 체제에서 자신을 시민과 같은 존재로 보기 시작하면서 이제 자유의 열매들을 따먹으려고 노력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규율을 어기는 잘못을 저지르면서 아주 분명한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고 아직 그 벌을 받지 않았다. 애국심에 불타는 병사들이 그 애국심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고통스럽지만 인정해야 한다. _ 주명철, <1790> , p321/366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반혁명은 혁명보다 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기존질서 속에서 특권을 누리던 사람들은 조그만 변화에도 반발하며 더욱이 혁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반혁명세력,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수구세력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태초에 반혁명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뜻밖의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그것을 혁명이라 했다. 그때부터 혁명이 아닌 것, 혁명에 저항하는 기존의 것을 반혁명이라 불렀다. 마치 새 체제가 생기면서 이미 존재하던 체제를 구체제라 부르듯이." _ 주명철, <1790> , p36/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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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2-08-18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1권 들쳐볼까 하는데 정말 머나먼 길인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님 리뷰 보니 책 말고 10권 다 리뷰 기다릴까봐요 ㅎㅎ 너무 재밌는데요 ㅎㅎ 이거 읽기 전에 <짧게 쓴 프랑스 혁명사> 가와노 겐지 지음 이 책을 먼저 읽는데 영 재미가 없어요ㅠㅠ

겨울호랑이 2022-08-18 22:00   좋아요 1 | URL
저자가 프랑스 혁명사 10부작을 쓰던 시기가 마침 촛불혁명이 일어나던 시기이기도 하여 서문과 여러 곳에서 저자의 역사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독자들에게 생생한 혁명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더해져서 우리에게 더욱 와닿는 작품이 되었다 여겨집니다. 저도 매우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만, 꼬마요정님께서 원하시는 시간 내에 리뷰를 다 쓰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ㅜㅜ 이번에는 딴길로 새지 않도록 한 눈 안팔겠습니다... 꼬마요정님 감사합니다! 하루 마무리 잘 지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