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그 기원과 원인, 결정과 발발, 전개와 귀결의 모든 면에서 국제적 수준, 동아시아 수준, 국내적 수준의 세 층위로 나타났다. 전쟁의 기원은 이 세 수준으로 인해 놓였고, 전쟁의 결정 역시 철저하게 그러하였다. 따라서 전쟁의 전개와 귀결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세 층위의 밀접한 유기적 관련 속에 한국전쟁은 위치하였다. 각각, 첫번째 층위는 미소대립과 냉전이었고, 두번째 층위는 중국혁명과 일본의 존재, 그리고 세번째 층위는 남북갈등과 각각의 내부정치와 사회의 수준이었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64


 박명림(朴明林, 1963 ~ ) 교수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한국전쟁을 여러 층위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기존의 남북한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G2로 각각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을 대표하는 두 강대국 미국과 소련의 이익과, 국민당-공산당으로 내전을 겨우 봉합한 중공과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의 이해관계를 함께 고려했을 때 비로소 전쟁의 진면목이 보인다는 것이다. 


 분석의 영역과 관련하여 우리는 네 가지 요소의 분리와 종합을 시도하고자 한다. 즉, 남한과 북한의 사회를 분석하면서 우리는 정치, 경제, 이념과 멘탈리티, 군사영역의 분리와 종합을 시도한다(p77)... 이 네 영역 중 가장 중심적인 문제는 역시 정치이며 48년 질서에서 압도적으로 우월하였던 요소는 일부에서 말하는 이념도 경제도 아니었고 바로 정치였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80


  저자는 이러한 한국전쟁의 지층에 대해 4가지 영역으로 구분하여 분석을 수행한다.   구체적으로, 정치, 경제, 이념, 군사 영역의 4부분에 대해 남북 체제가 구성원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여러 노력들을 교육, 토지개혁 등의 이슈를 통해 살펴본다. 이러한 체제들의 노력은 균열과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체제를 변화시키는데, 저자는 해방 전후 한국전쟁에 이르기는 5년의 기간 중 변곡점을 1948년으로 본다. 


 필자가 이해하기에 한국전쟁의 연구를 위해서는 다음의 세 준거들이 필요하다. 즉, 농민, 민주주의, 그리고 민족주의가 그것들이다(p52)... 우리의 초점은 국가(state)와 정치사회(political society), 시민사회(civil society)의 관계에서 밑으로부터의 참여와 의사의 대표성 여부에 놓여 있다. 당연히 소련점령국과 미국점령군, 남북한 국가의 성격, 정당체제와 선거의 과정과 방법, 체제반대 세력에 대한 수용과 배제의 방법과 범위, 갈등의 정도와 수용 여부, 자율적 결사의 허용과 탄압의 문제 등에 초점이 놓일 것이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56


 우리가 세번째로 설정한 방법론은 균열(cleavage) 또는 갈등의 구조와 위계라는 문제틀이다. 여기서 말하는 균열은 특정의제를 둘러싸고 관계된 행위 주체, 이를테면 국가와 국가, 집단과 집단, 계층과 계층 사이에 수직적 수평적으로 벌어지는 힘과 정책의 길항관계를 지칭한다. 그리고 그것이 구조라는 지형위에 어떻게 놓여 있는가 하는 측면을 포함한다(p76)... 정당성을 두고 대립하는 두 국가를 둘러싼 균열의 수준과 위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국가(state)와 체제(regime), 정부(government)의 구별이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76


 1948년 이전에 서울을 수도로, 태극기를 국기로 인식하는 공감대를 남북한이 공유했다면, 이후에는 각각의 체제를 국가로 인식하는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인식은 38선을 임시구분선에서 분할선으로 받아들이는 변화이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한국전쟁을 내전, 지역전, 세계대전의 층위로 구분하고, 정치, 경제, 이념, 군사 영역에서 사회 체제 - 국가, 사회공동체 - 사이의 균열과 영향을 분석한다. 다만, 이러한 균열로 인한 변화는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한 체제의 내생변수(endogenous variable)는 다른 체제의 외생변수(exogenous variable)로 영향을 미쳤다. 구체적으로, 북한의 토지개혁은 남한의 토지개혁에 영향을 미쳤고, 남한의 토지개혁 결과 또한 북한 사회에 영향을 끼쳤다. 토지개혁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사회분야에 있어 경쟁과 영향관계는 한국전쟁 발발 직전까지 고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전쟁 직전의 배경을 형성하는 것이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이라면, 전쟁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정치의 영역이다. 이와 관련된 정치적 리더십의 관계가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에서 그려진다면,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2>에서는 농민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전쟁의 배경이 서술된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전체적인 책의 얼개를 살펴보는 것으로 하고, 다음에는 보다 상세하게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948년이전의 대립과 48년 이후의 대립의 근본적인 차이는 여기에 있었다. 이제는 정통성의 배타적 독점을 주장하는 '두 국가의 공존상태'가 도래한 것이다. 이 둘은 전부 사회적 갈등이라는 내적 계기가 냉정이라는 외적 계기를 매개로 하여 등장한 것이었다. 이 중첩으로 인하여 민족의 분할선으로서의 38선은 이미 세계의 분할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38선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에 의한 한국의 분할과, 같은 기준에 의한 동아시아와 세계의 분할의 중첩이었던 것이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63


 전쟁은 모든 정치적 선택 중에서 두 행위주체에 의해 가장 밀접히 맞물린 채 발생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어느 일방의 인식과 정책, 사회구조만을 분석하는 것은 부분적인 설명일 수밖에 없다. 두 쪽 모두를 동시에 분석하는 것은 부분적인 설명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졸버그(Aristide Zolberg)가 말한 바 있는 '대쌍관계동학'(對雙關係動學, interface dynamics)이라는 개념을 빌어 1945년에서 50년, 특히 필자가 '전간기'(戰間期) '48년 질서'라고 부르는 1948년에서 50년 사이의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고 본다. 대쌍관계동학을 이용한 접근은 남한과 북한 각각에 대한 독립적 이해와 그것들 사이의 관계의 다이내미즘을 분석하는 것을 말한다. _ 박명림,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1>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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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6-24 11:0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으시는군요. 읽은지 한 3-4년쯤 된 것 같은데 저도 재독하려고 찜한 책입니다. 겨울호랑이님이 이 책에 대해서 어떤 소감을 풀어내실지 궁금해집니다^^

겨울호랑이 2022-06-24 13:31   좋아요 4 | URL
여러 면에서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비교되면서도, 차이가 있다 생각됩니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외부적으로는 얄타체제와 같은 세계체제적인 측면에서, 내부적으로는 일제시대 식민지 상황으로부터 시작해 서서히 관점을 한국전쟁으로 모아간다면,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은 해방 전후로부터 1950년 6월 25일 38선에서 시작된 한국전쟁까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쓰나미를 표현할 때 전자가 대륙이동과 해류 등 기후적인 면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는다면, 후자는 쓰나미 전후 변화 상황을 보다 세밀하게 그렸다고 해야할까요... 한국전쟁의 거시사와 미시사. 이렇게 두 책들을 비교하게 되네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