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셰브스키의 《우크라이나- 루스의 역사》7권은  '코자크의 시대' 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으며 그 후  10권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내용이 코자크 지도자들과 코자크 집단의 활동에 대한 서술로 채워지고 있다. 흐루셰브스키는 코자크를 우크라이나 민족성의 근간으로까지 여긴다(p64)... 흐루셰브스키의 이러한 목적론적 사고와 밀접히 관련된 것이 동서 우크라이나의 연결성, 단일성에 대한 강조이다. 그는 옛 키예프 루스의 동북부지방과 서부지방을 구분하여 서부지방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구성 부분으로 확신하는 반면 동북부지방은 이 구성에서 제외해 버린다. 동북지역이 외부자로 여겨지는 반면 서부지역은 키예프 루스의 적통을 공유하는 우크라이나 공들의 통치영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_ 미하일로 흐루셰브스키, <우크라이나의 역사 1> , p68


 미하일로 흐루셰브스키(Mykhailo Hrushevskyi, 1866~1934)의 <우크라이나의 역사 >는 '코자크'에 근간을 둔 '친(親)서방적'인 저자의 사관(史觀)이 잘 드러난 책으로 서술된 여러 곳에서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루스'라는 용어 사용이다.


주) 루스라는 말은 동슬라브인들의 역사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곧 동슬라브인의 최초의 국가 이름이 되었고 이 말에서 러시아라는 이름이 나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루스의 기원이 어디에 있는가를 둘러싸고는 수많은 논쟁이 있다. 노르만 기원설의 지지자들은 루스가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의 한 부족 이름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흐루셰브스키는 루스를 키예프 일대의 슬라브계 주민 집단인 폴라녜와 동일시하고 있다. _ 미하일로 흐루셰브스키, <우크라이나의 역사 1> , p132


 저자는 '루스'에서 '러시아'의 흔적을 완전히 제거한다. 우크라이나의 중심지 키예프를 중심으로 한 집단을 지칭하는 용어로 한정하면서, 러시아와 구별된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렇지만, 폴란드 건국신화인 '레흐 Lech와 체흐 Czech, 루스Rus' 삼형제 이야기에서 사냥감을 쫓던 형제들이 흩어져 레흐는 훗날 폴란드의 조상이, 체흐는 체코의 조상이, 루스는 러시아 민족의 선조가 되었다는 내용을 생각해 본다면 의도적인 '러시아 배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9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작성되어 남아 있는 외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우크라이나의 공들과 그들이 군대는 항상 루스 혹은 루스 사람이라고 불린다. 현지의 사료들에서도 키예프 땅은 루스라고 불렸다(p171)... 우리에게는 이 이름이 키예프와 밀접하게 결부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를 근거로 우리는 9세기, 10세기에 외국 사료들에 등장하는 루스 혹은 루스 드루쥐나에 대한 보고들이 키예프 국가에 관한 것이자 키예프를 수도로 삼고 있던 공들과 그들의 드루쥐나에 관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_ 미하일로 흐루셰브스키, <우크라이나의 역사 1> , p172


 <우크라이나의 역사>의 저자 흐루셰브스키에 대해 옮긴이는 해제에서 '역사서술로 우크라이나 민족을 만들어내다'고 간결하게 표현한다. 민족적으로는 러시아와 가깝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리스-로마, 비잔틴, 독일-오스트리아 등 서방과 가까워지고 싶어하는 우크라이나인의 정서가 이런 면에서 잘 드러난 책이 <우크라이나의 역사>라 여겨진다. 친러시아와 친서방의 대립이 현대 우크라이나 정치의 중요한 두 축임을 고려해 본다면, 그 뒷면에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크라이나 역사> 1권과 2권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개별 리뷰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흐루셰브스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족성이 러시아와는 다르며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보다는 서방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할리치나에 대한 오스트리아 제국의 통치를 드니프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제국의 통치에 비해 전반적으로 더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물론 비판적인 서술이 없지 않지만 이런 경우에도 오스트리아 제국이나 제국 지배자의 사정을 이해해 가면서 온건한 용어를 사용한다. 그러한 흐루셰브스키인지라 그가 이끄는 중앙 라다 정부가 러시아 혁명 이후  불확실성이 가득한 상황에서 독일 군을 불러들인 것은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위해 독일 세력의 지원을 받자는 의도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독일을 서방의 일원으로 보았고 러시아보다는 독일과의 정치적 동맹을 선호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_ 미하일로 흐루셰브스키, <우크라이나의 역사 1> , p77


* 흐루셰브스키의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함께 셰브첸코의 <유랑시인>도 우크라이나인의 정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 생각된다. 또한, 20세기 초반까지 다루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에서 다루지 못한 현대사를 이해하는 것에는 구로카와 유지의 <유럽최후의 대국, 우크라이나의 역사>가 도움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각각 별도의 리뷰로 다루기로 하자.


**  아카넷에서 번역된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러시아 번역본을 원전으로 번역한 책이다. 때문에,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기존 러시아어로 사용되던 명칭이 우크라이나어로 변경되는 현 상황과는 다소 맞지 않지만, 리뷰 작성을 위해 모든 지명을 우크라이나어로 찾아서 수정할 수도 없기에 번역본의 지명, 인명 등은 그대로 가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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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18 16: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18 16:51   좋아요 0 | URL
종이달님, 감사합니다.

종이달 2022-05-20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