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상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199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게 모델과 관찰을 병행하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내가 늘 확인하게 된 것은 정상적인, 나아가서 일상적인 교환경제[18세기에서라면 자연[natruelle]경제라고 불렀을 것이다)와 상위의 정교한 경제(18세기에서라면 인공[artificielle]경제라고 불렀을 것이다) 사이의 끈질긴 대립이다. 나는 이와 같은 구분이 명백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리하여 서로 다른 층위마다 경제 주체(agent), 사람, 그들의 활동과 심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신한다. 고전경제학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은 시장법칙들은 일정 수준에서는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상층의 영역에서는 자유 경쟁이라는 모습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상층의 영역은 차라리 계산과 투기의 영역이다. 여기에서는 그림자의 영역, 역광(逆光)의 영역이 시작되며, 이곳에 관한 비전(秘傳)을 물려받은 자들의 활동무대가 시작된다. 이곳은 자본주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의 뿌리가 되는 영역인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p12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2-1>에서 도시와 시장 그리고 화폐가 만들어낸 교환 경제로부터 최상층인  자본주의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다. 이전에서 최하위 단계인 물질문명에서 '소비'를 발견한 브로델이 '생산'이 아닌 '교환(Exchange)'의 영역을 시장경제에서 발견한 근거는 무엇일까. 


 아주 초보적인 경제적인 경제라는 의미의 "물질생활(vie materielle)"과 경제생활 사이의 접촉면은 연속된 것이기보다는 시장, 가게, 상점 등의 수많은 작은 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들은 동시에 단절점이기도 하다 : 한쪽에는 교환, 화폐 그리고 우월한 수단이 되는 집산지 - 교역 중심지, 교환소, 정기시 등 - 를 가진 경제생활이 자리잡고 있고, 다른 쪽에는 완강히 자급자족에 매달려 있는 "물질생활"이라는 비(非)경제가 자리잡고 있다. 경제는 교환가치의 영역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p11


 경제는 얼핏보면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개의 거대한 영역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 같다 : 소비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완수되고 파괴되며, 생산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소비한다"라고 마르크스는 썼다. 정말로 지당한 진리이다. 그러나 이 두 세계 사이에 세번째의 세계가 끼어들어간다. 그것은 바로 교환의 세계이며 달리 말하자면 시장경제이다... 시장경제는 늘 균형을 고집하고 어쩌다가 그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곧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총체를 이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변화와 혁신의 영역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유통권(sphere de circulation)이라 지칭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7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에서 브로델은 '생산'이 결코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는 고정자본(Fixed Capital)이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전까지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생산부분에 끊임없는 비용이 투입되어야 했으며, 결코 비용을 넘어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15~18세기 경제활동의 중심은 생산이 아닌 교환이 된다. 생산부문은 언제나 유통부문의 통제 아래에 놓여 있었다.


 확실한 것은 생산 영역에서 전(前)산업적인 자본주의의 결산은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몇 가지 예외들이 있지만 자본가들 - 다양한 활동을 무차별적으로 하던 "대상인들" - 은 생산에 전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대지에 두 발을 굳건히 뿌리박은 지주가 아니었다(p525)... 그의 참된 모습이란 시장, 거래소, 상업망, 긴 교환의 연결망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분배야말로 이익을 내는 참된 분야인 것이다.... 자기 영역[교환의 영역]이 아닌 곳에 자본주의가 침투한 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가 안 된다. 단지 상업의 필요성이나 이익에 따라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생산에 손을 댔다. 자본주의가 생산 영역에 침입하는 것은 기계 사용이 생산의 조건들을 변화시켜서 산업도 이윤의 확대가 가능해진 영역이 된 산업혁명기에 가서야 일어난다. 이때 자본주의는 그런 것에 의해서 크게 변형되고 나아가서 확대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526   


 어느 한 사회가 매년 생산하는 전체 자본을 조자본(粗資本 ; gross capital)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중 일부는 활동적인 경제생활의 과정에서 침식되는데, 이것을 뺀 나머지 부분이 순자본(純資本 ; capital net)이 된다. 그런데 쿠즈네츠는 조자본과 순자본 사이의 차이는 현대 사회에서보다 과거 사회에서 훨씬 클 것이라고 보았다. 쿠즈네츠의 이 가설을 그야말로 핵심적인 것이며, 또 그에 관한 증거 자료들이 풍부하게 있어서 거의 확실해 보이는 내용이다. 확실한 것은 지난날의 경제는 상당한 액수의 조자본을 생산하지만 일부 분야에서 이 자본이 봄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 생산의 틀이 본질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대량의 노동으로 그 자본의 부족을 메꾸어야 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48


 고정자본이라는 개념은 근대 경제와 근대 기술에 의해서만 생산된 것이다. 이 말은, 역시 약간 과장하여 말한다면, 산업혁명은 무엇보다도 고정자본의 변화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 자본은 이제 아주 비싼 것이 되었지만 대신 훨씬 더 지속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며, 그 결과 생산성을 급속도로 증가시켰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50


  확실한 것은 자본가들의 선택은 산업과 상업이라는 두 단계 사이의 간격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상업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이윤은 언제나 상인들의 수취에 짓눌렸다. 이 점은 기계제조식 양품류나 레이스 산업 같은 근대적인 산업이 아무 제약 없이 곧게 성장했던 중심지들을 살펴보면 명백히 볼 수 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485


 도시와 그 안에서 발달한 시장은 교환의 중심지였다. 교환을 위해 도시 중심부에 세워진 시장, 정기시, 거래소 등에서는 어음을 활용한 지불유예가 가능했으며, 이는 당시 유동성을 증가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금융발달에 대항하는 반(反)시장 움직임도 커져가는데 구체적으로 정기시에 대항한 창고와 보세창고의 실물거래 증가, 거래소에 대항한 은행의 등장이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다. 시장과 반시장의 대립은 이 시대 체제(system)에 균열과 팽창을 동시에 가져오면서, 시장경제는 유럽 도시의 체제가 아닌 세계체제로 확산된다.


 시장, 상점, 행상의 위에 강력한 교환의 상층 구조가 존재한다. 그것은 탁월한 수단을 가진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교환기구와 대규모 경제의 층위이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층위이다. 자본주의란 대규모 경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날에 원거리 교역을 하는 데 핵심적인 기구는 정기시와 거래소였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01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기시((foire)의 핵심은 역시 대상인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업 도구를 완성시킴으로써 정기시를 대사업 중심지로 만든 것이 바로 이들이었다. 확실한 것은 정기시야말로 크레딧을 발달시켰다는 점이다... 정기시란 결국 채무들이 모여들어서 서로가 서로를 상쇄하여 봄눈 녹듯이 사라지게 만드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스콘트로(scontro), 즉 어음 교환(compensation)의 비밀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15 


 어음 교환으로 대표되는 신용거래의 증가는 체제의 안전성을 요구한다. 또한, 신용거래로 증가한 유동성은 점(點)으로 형성된 시장을 선(線)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구는 자본주의만의 것이 아니다. 


 상업순환을 완수하는 것을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상품 대 상품, 나아가서 상품 대 금속화폐와의 교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 때문에 환어음을 쓸 수 밖에 없고 또 실제로 그것이 정규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원래 환어음은 결제수단이었으나, 교화가 화폐 이자를 금지하는 기독교권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신용수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서 결제와 신용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p191)... 반대거래(return)에 대한 일상적인 해결책이 되었던 환어음에서는 금융 순환의 안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 안정성은 파트너 개개인의 신용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효과적인 연결 가능성에 달려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96 


 부피가 크고 묵중한 상품과 달리 사치품은 가볍고 빛나는 존재이며 많은 소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돈은 사치품을 향해 달려가고 그 명령에 따르려고 한다. 따라서 사치품에 대해서는 초(超)수요(super-demande)가 있고 그 자체의 교역과 변덕이 작용한다. 결코 일관적이지 않은 욕망과 언제나 변화하기 쉬운 유행은 인위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필요"를 만든다. 그것은 쉽게 변화하지만 결코 그냥 사라져버리는 젓이 없으며 단지 또 다른 근거 없는 열정에 자리를 양보할 따름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246


 사치품을 통해 높은 이윤을 확보하려는 경향은 교환이 활성화된 곳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러한 곳에서 물자와 노동이 몰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며 그 결과 해당지역의 상품가격은 전반적으로 높게 형성될 것이었다. 이들의 중심지에 위치한 시장에서는 신용거래를 통해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었고, 시장들은 교역망을 통해 연결되면서 시장경제의 세계는 선으로 팽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線)을 둘러싼 면(面)에는 아직 자급자족의 경제라는 배후지가 공존하는 세계. 바로 15~18세기 교환의 시대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2층인 시장경제에 '교환'의 주제가 부여되었다는 것은 다음 단계인 자본주의에게 당연하게도 '생산'이 할당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점이라는 체제에 기반한 생산. 이는 자본주의의 시대의 특징이 될 것이다.

 

 "높은 상품 가격은 최고의 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안내자이다." 오늘날에도 "최선진국"의 임금 및 물가 수준은 "발전이 지체되어 있는 국가들보다 훨씬 높다."고 레옹 뒤프리에의 이론적 고찰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구조와 조직의 우월성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이 바로 세계의 구조인 것이다... 고물가와 고임금은 18세기 영국 경제에 유리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제약 요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18세기의 기계화 혁명은 정말로 경이로운 탈출구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237


 화폐와 토지 및 노동의 가격, 모든 곡물 및 상품들의 가격이 언제나 변함없이 자유롭다. 어떤 합법적인 제약도, 그 어떤 개인 사이의 담합도 가격을 굴종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판단들의 이면에는 누구에 의해서도 조정되지 않는 시장이 경제 전체의 모터 역할을 하는 장치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유럽의 성장 내지 세계의 성장은 다름 아닌 시장경제의 성장이고, 이것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점점 더 많은 근거리 및 원거리 무역이 시장이라는 합리적인 질서내에 이끌려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이 전체가 세계의 단일성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14


 교역이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자극하고, 생산의 방향을 지시해주며, 광대한 지역을 경제적으로 특화해주고, 또 바로 그 때문에 이 지역들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교역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한마디로 교역은 여러 경제들을 엮어주는 것이다. 교역은 고리이며 경첩이다. 구매인과 판매인 사이에는 가격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다. 그러나 아무리 활동적인 경제라 해도 상당히 넒은 지역이 시장의 움직임과 거의 무관한 채로 남아 있었다... 자체조절적이고 경제 전체를 지배하며 합리화시키는 시장, 이것이 경제 성장의 역사의 핵심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15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에서 보여주는 교환의 세계에서 우리는 15~18세기의 생산의 한계와 함께 교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부족한 생산 능력은 더 많은 부(富)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따를 수 없었다. 생산 대신 교환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욕망은 금융제도를 발달시켰고, 교역을 활성화시켰으며 이로부터 활성화된 운동은 체제를 분열시키고, 분열된 체제는 세계로 확장된다. 아직까지도 자본주의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유럽의 재판농노제와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은 농업부문에서의 노동집약적인 생산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직까지는 불안정한 고정자본이 과학기술로 인해 안정화되면 이제 노동집약적 산업은 자본집약적인 산업으로 대체될 것이다. 비록 브로델은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 슬로건은 '인권', '해방'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사상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자유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되리라는 점을 확인하며, 다음 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갤브레이스와 레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그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내가 "경제(economie)" - 또는 시장경제 - 라고 부른 것과 "자본주의(capitalism)"라고 부른 것 사이의 영역차이가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 중세 이래 유럽에서 언제나 지속되던 상수(常數)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산업화 이전 시기의 모델에 세번째의 영역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것은 비(非)경제라는 제일 아래층이다. 경제는 이곳을 부식토로 삼아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전체를 장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 최하층은 거대하다. 이 위에 시장경제의 영역이 수평적으로 여러 다양한 시장과 연결을 늘려간다. 이곳에는 어느 정도의 자동성(automatisme)이 있어서 수요와 공급과 가격을 연결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시장경제라는 층의 옆에, 차라리 그 위에, 반(反)시장(contre-marche)의 영역이 있다. 이곳은 가장 약삭빠르고 가장 강력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바로 이곳이 자본주의의 영역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3


  자본주의를 위치시키는 영역은 두 개가 있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가 장악하여 편하게 거주하고 있는 곳이며, 또 하나는 자본주의가 옆길에서 새어들어올 뿐이고 지배적이지도 못한 곳이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자본주의가 산업 생산을 장악하여 거대한 이윤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자본주의는 유통의 영역에서만 제자리를 찾았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6


 원칙적으로 시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하는 것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은 다시 말하면 경쟁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결국 통제와 경쟁을 동시에 억압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영국의 사거래 시장(private market)과 같은 "자유(libre)" 시장일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0


아무리 초보적인 시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곳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는 선택된 곳이다. 만일 이런 것들이 없다면 통상적인 의미의 경제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고 단지 자급자족, 혹은 비(非)경제 속에 "갇힌(embedded)" 생활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시장은 해방이며, 개방이며, 또 다른 세계로의 접근이다. 그것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과 인간이 교환하는 잉여는 조금씩 조금씩 이 좁은 틈을 통과해간다. 그 구멍은 점차 커지고 또 많아지며, 그러다가 이 과정의 마지막에 가면 사회가 "시장이 일반화된 사회(societe a marche generalise)"로 된다. - P20

직접적인 것이든 간접적인 것이든 시장과, 다양한 형태의 교환은 끊임없이 경제를 뒤흔들어놓는다. 가장 정태적인 경제라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시장은 경제를 교란시킨다고도 할 수 있고,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모든 것이 시장을 거쳐가게 된다. 토지와 산업의 산물만이 아니라 토지 재산, 화폐 그리고 인간의 노력인 노동이 시장을 거쳐간다. - P55

서양의 발전의 핵심을 두 가지 들라면 첫째, 상부에서 여러 도구가 발달한 것이고 둘째, 18세기에 여러 수단과 방법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어땠을까? 유럽과 가장 거리가 먼 경우는 중국으로서 이곳에서는 제국의 행정이 경제의 계서화를 가로막았다. 단지 효율성 있게 돌아가는 것은 하층의 읍 및 도시의 상점과 시장뿐이었다. 유럽과 가장 유사한 경우는 이슬람 권과 일본이다. 물론 우리는 세계적인 차원의 비교사를 다시 시도해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확하게 문제를 제기하도록 해줄 것이다. - P184

교역은 세계를 포괄한다. 교차로마다 그리고 연결점마다, 정주 상인이든 행상인이든, 언제나 상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상인의 역할은 그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19세기 이전의 대상인들이 대부분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은 단지 신중함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의 수중에 닿는 여러 흐름을 동시에 전부 이용해야만 했던 것일까? 어쨌든 하나의 영역만을 고집했다가는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다면성(polyvalence)"은 교역량이 충분치 못하다는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다... 상업망이라는 것은 상업순환의 여러 지점들에 분포되어 있는 대리인들(agents)이 연결되어 이루어져 있다. 상업은 이런 연락지점 들 사이의 협력과 연결을 통해서 살아간다. 반대로 이런 연락지점들은 이 일에 이해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성공을 거두면 거의 저절로 증가한다 - P201

전(前)산업화 시대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를 보인다 : 공급(offer)은 아주 작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공급은 탄력성이 모자라기 때문에 모든 수요에 대해서 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다. 이 시대 경제의 핵심은 농업활동이다. 일반적으로 농업생산은 [빠른 발전이 이루어지기 힘든] 타성(惰性)의 영역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명백한 진보가 이루어진 영역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공업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이다 - P249

결론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 고전적인 문제인 발틱 해 무역은 그 자체로서 완결된 유통체계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품과 현찰과 크레딧이 유통되는 다자간 무역체제였다. 그중 크레딧의 유통로는 끊임없이 확대되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이프치히, 브레슬라우, 포즈나니뿐만 아니라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어쩌면 더 나아가서 이스탄불과 베네치아까지 여행해야 한다. 발틱 해 지역이라는 경제 전체는 흑해와 아드리아 해에까지 확대하여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여튼 발틱 해 지역의 교역과 동유럽 경제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 P301

(95퍼센트에 이르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민소득의 75퍼센트만을 가지고 살게 되므로, 이것을 정확히 계산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인당 평균소득 수준 이하로 살았던 것이 된다. 특권층에 의한 착취는 이들을 명백한 궁핍 상태로 몰아갔다. 간단히 말해서 저축은 사회의 특권층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사회는 비록 일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낮더라도 저축이 가능했고 실제로 저축이 이루어졌다. 사회적 굴레는 저축에 불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축을 장려한 것이다. 이 계산에서 두 개의 핵심적인 변수가 있다 : 인구 수와 그들의 생활수준이 그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한 것은 1750년 이전에 유럽의 자본생산율은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 P347

대부분의 전(前)산업은 수공업과 선대제라는 기초단위가 무수히 많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분산된 조직들 위로 보다 자본주의에 가까운 매뉴팩처(manufacture)와 공장(fabrique)이 솟아올라 있다. 이 두 단어는 서로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마르크스를 따라서, 매뉴팩처는 수작업을 하는 - 특히 직물업에서 - 수공업 방식의 노동력이 집중해 있는 곳을 지칭하고, 공장은 광산, 야금업, 조선소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던 바와 같은 시설과 기계를 사용하는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구분했다. - P468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05-05 0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우리집에 장식용으로 꽂혀 있는 책. ㅠㅠ 겨울호랑이님 발췌문으로 대략의 내용만 짐작하네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2-05-05 07:58   좋아요 1 | URL
^^:) 부족하나마 제 리뷰로 바람돌이님의 독서에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소년 2022-05-05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나는 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5 13:26   좋아요 1 | URL
^^:)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저마다 좋은 일과 나쁜 일들 갖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