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 -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경작법과 농경 의례에 관한 연구 아카넷 한국연구재단총서 학술명저번역 516
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 지음, 유기쁨 옮김 / 아카넷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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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브리안드에서 땅을 경작할 때 토착민들은 힘든 작업도 해야 하고 땅의 성질과 날씨 변화, 그리고 농작물의 특성에 대한 견실한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적인 노련함도 발휘해야 하며, 현명하게 땅에 적응할 필요도 있다. 그렇지만 트로브리안드의 경작에는 또 다른 요소가 관여되어 있다. 토착민들이 성공적인 경작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이것은 바로 주술이다. _ 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 , p175

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는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을 통해 트로브리안드 군도의 농경문화를 심도있게 분석한다. 본문 1권에서 저자는 경작과 (공적)주술과의 관계를 밝힌다. 말리노프스키가 파악한 트로브리안드 농경문화에서 주술은 핵심적 요소다. 실제 작업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으로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그 중요성과 함께 실천적 행위와 구분되는 주술의 한계를 구분짓는다. 경작을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한 뒤 인간의 힘이 미치지 않는 부분에 대한 기원. 트로브리안드 농경문화 속의 '주술'에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통하는 바가 있으며,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보편 종교의 정신과 맞닿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문명화된 사회에서 버젓하게 주술의 영역과 작업의 영역을 혼동하는 것이 용인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그 주술이 공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한 기복신앙(祈福神仰)이라면.종교의 자유가 있기에, 개인의 무속신앙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겠지만, 이를 공적 영역으로 끌어내는 모습은 우려할 수밖에 없다. 대선선거 국면에서 연일 보도되는 무속 관련 기사들을 보면, 대통령 선거를 하는 것인지 호그와트 마법학교 교장선거를 하는 것인지 혼동될 따름이다...

경작지 주술(메그와 토워시 혹은 단지 토워시)은 트로브리안드 군도에서 대중적이고 공식적인 의식이다. 역시 토워시로 일컬어지는 경작지 주술사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여 경작지 주술을 수행한다. 모든 사람은 예식의 일부에 참여해야 하며, 예식의 나머지 부분도 모두를 위해서 수행된다. 또한 모든 사람은 주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주술과 실제적인 작업은 토착민의 생각 속에서 서로 분리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혼동되지도 않는다. 경작지 주술과 경작 작업은 하나로 엮인 일련의 꾸준한 노력으로 진행되는데, 그것들이 합해서 하나의 연속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주술과 작업은 한 이야기 속의 주제임이 틀림없다. _ 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 , p177

경작지 주술사가 터부를 준주하면서 의례와 주문을 통해서 공식적으로 수행하는 주술은 특별한 영역을 형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각자가 노력과 성취의 인과관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상식에 따라 몸소 행하는 실제적 농사일은 또 다른 영역을 구성한다. 주술은 신화에 기초하며, 실제 작업은 경험적 이론에 기초한다. 전자는 설명할 수 없는 재난을 미리 제압하고 받을 자격이 없는 행운을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후자는 인간의 노력이 당연히 가져온다고 여겨지는 것을 준다. 첫 번째 것은 우두머리, 토워시의 사회적 특권이며, 두 번째 것은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의 경제적 의무이다. _ 브로니슬로 말리노프스키,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 1>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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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2-20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왜 토토로가 생각날까요. 토토로랑 친구들이 밭에서 팽이 타고 춤 줘주면서 싹들이 막 웅트거든요. 토토로가 숲의 정령이라지만, 호랑이님 글 읽으니 경작지 주술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ㅎㅎ 이 책 재미있겠어요 찜 !

겨울호랑이 2022-02-20 13:57   좋아요 1 | URL
미니님 말씀을 듣고 보니,그렇게도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토토로가 경작지 주술사라고 하기엔 덩치가 좋아서 먹성 좋게 보이긴 합니다만 ㅋ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이 미니님께 즐거운 독서친구가 되었으면 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 2022-02-21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저 waxing moon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겨울호랑이 2022-02-21 16:32   좋아요 1 | URL
오랫만입니다. 한동안 안 보이셔서 무슨 일이 있으신가 했는데, 잘 지내셨는지요? ^^:)

. 2022-02-2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이들면 미신이나 무속신앙에 의지하게 되는 것 같네요. 그것이 경작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겨호님의 글을 잘 읽었네요.

겨울호랑이 2022-02-21 16:36   좋아요 1 | URL
<산호섬의 경작지와 주술>에서는 농경문화와 종교 - 원시 종교 - 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권위를 무시할 수 없는 농경사회에서도 종교의 역할과 한계는 구성원들에게 분명히 인식되었다는 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듯 합니다. ^^:)

2022-02-23 23: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24 0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