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해버린 것, 그것들은 모순이며 회의이며 욕망, 또한 절망이기도 했었다. 그것은 혈기였으며 자기 추구였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지순한 것, 방종 뒤켠에 숨겨진 맑은 것, 진실이었을 것이다. 끝도 시작도 없었으며 풀지도 맺지도 못하는 몸부림과 쓰라렸던 것. 그러나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적당한 곳에서 매듭짓고 적당한 곳에서 풀어버리고...... 그것들이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듯이 사람도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겠으나, 그게 바로 방편일 수는 없다. 방편은 오히려 인위요 섭리에 반(反)한 것일 수도 있다. _ 박경리, <토지 13> , p416/596


 <토지> 독서챌린지 26주차. 이번 주 읽은 <토지 13>에서는 이혼을 둘러싼 조용하와 임명희의 대립이 그려진다. 동생 찬하와 아내를 부정한 관계로 엮어 내며, 이들을 괴롭히던 즐거움을 바라던 용하는 오히려 이혼(離婚)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고 만다. 용하에게 명희는 일시적 장난감이 아닌 지속적인 장난감이라는 면에서 놓쳐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명희는 용하의 음모를 통해 '박제되어 버린 학'이 아닌 창공으로 날아오를 백조로 새롭게 자신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에서 헨릭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1906)의 <인형의 집 Et Dukkehjem>을 떠올리게 된다.  


 지체만 얕았다 뿐이지 기품 있는 용모에 지적 분위기, 멍청하다 싶을 만큼 집착하는 것이 없었으며 약간 살풍경하고 무관심한 듯, 그런 감성은 이기적이며 싫증내기를 잘하는 용하 같은 성격에는 새로운 매력으로써 지속되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물질적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욕망이 강한 여자를 용하는 싫어했다. 밀착해오는 여자는 일시적 장난감으로서 끝내버린다. 홍성숙이 그런 예에 속한다. _ 박경리, <토지 13> , p597/724


 '나는 생각을 잃어버린, 다리도 목도 다 부러져버린 인형일까? 현실 같지가 않아. 누가 내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려버린다 해도 아플 것 같지가 않아. 피도 흐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일까? 저기 저 계속하여 끝없이 주절대는 사내도 사람일까? 점심을 가져가는 농부의 아낙, 가래질을 하는 농부, 그들보다 천배만배 불행한 나와 저 사나이. 왜 화가 나지 않지? 나는 지금 모욕감도 없다! 구경꾼을 넘어서서 난 이제 송장이 되었나?' _ 박경리, <토지 13> , p603/724


 <인형의 집>의 노라가 빌린 돈에 대한 채무로 인해 '인형'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면, <토지>의 명희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용하를 통해 '인형'임을 알게 된다. 비록, 두 인물 모두 자신이 '인형'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도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자가 외부에서 주어진 충격을 계기로 자신의 삶 전반을 돌아본다면, 후자는 가정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곪아온 상처가 가정 내부의 폭발로 터졌다 것을 다른 지점이다.


헬메르 : 당신은 아내의 도리 그대로 나를 사랑했어. 통찰력이 부족해서 수단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지.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다고 내가 당신을 덜 사랑할 것 같아?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나에게 기대면 내가 당신에게 충고를 해 주고 인도하겠어. 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88/112


노라 : 그래요.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91/112


 이러한 이별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인식 문제는 노라의 남편 헬메르와 명의의 남편 용하가 이별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헬메르는 이별 직전의 대화가 채무와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되었기에 노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반면, 용하는 이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싶지는 않지만 알기에 명희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닐런지. 결국, 용하는 명희를 능욕하며 마지막 잔도(棧道)를 스스로 불태우고 만다. 이런 면에서 헬메르-노라의 관계보다 용하-명의의 관계가 더 파멸적이다.


 결코 저자세도 아니었다. 손이 떨렸던 것은 분노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 사실이 그랬다. 조용하는 명희를 철저하게 부숴버리고 망가뜨리고 싶은 분노와 증오의 불을 태우고 있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는 이를 갈았다. 집 앞에서 잡는 팔을 뿌리치며 명희가 대문을 밀고 모습을 감추었을 때는 살기마저 느꼈던 것이다. 그는 결코 단념하지 않으리라 맹세를 했다. 그러나 한밤중이면 문득 명희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얼음장 같은 여자 옆에서 조용하는 지금 한밤중에 생각하곤 했던 그 절망을 되씹는 것이다. 단념을 하고 싶기도 했다.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포기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속수무책으로 끝낼 수는 없다. 낯가죽이라도 벗겨놔야지.(p585)... 능욕! 능욕, 스스로 목숨을 끊을 그런 힘조차 빼앗긴 능욕이었다. 철저하게 무자비하고 백정의 손에 달린 한 마리 가엾은 짐승같이 도살, 분명 그것은 육체를 통한 영혼의 도살이었다.(p607) _ 박경리, <토지 13> , p607/724


노라 : 우리가 함께 사는 생활이 진정한 결혼이 될 수 있다면 되겠죠. 잘 있어요.(현관문으로 나간다.)

헬메르 : (문 옆의 의자에 주저않아 머리를 손으로 감싼다.) 노라! 노라! (주위를 둘러보고 일어난다.) 아무도 없군. 그녀는 이제 없어. 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100/112


 작품 안에서 노라와 명희는 모두 가출(家出)을 통해 가정과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지만, 가출이 기존 관계의 청산이 아닌, 기존 관계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이 가출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열강의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일본의 욕망은 아시아라는 기존 체제를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나아감이고 탈출이다. 노라와 명의의 나아감과 일본의 탈출은 무엇이 달랐을까. 문제는 그들의 나아감이 그들이 형서했던 기존 세계를 자신의 나아감을 위한 연료탱크로 활용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만일, <인형의 집> 노라가 집을 나가기 전에 집 명의와 통장의 잔고를 자신 명의의 계좌로 이체시켜 놓았다면, 이 작품의 장르는 아마도 범죄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며 유럽체제로 편승하면서 벌인 모습은 이와 다르지 않게 보인다. 다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선택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근대화된 경제 시스템과 천황제에 기반한 봉건전인 정치시스템. 전근대와 근대에 걸쳐진 이들의 갈등은 유럽제국과는 또다른 양상으로, 그리고 더 긴급하게 다가왔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았을까.  


 일본의 사회구조는 최상층에서는 가장 고도로 합리화된 독점자본이 우뚝 솟아 있지만, 그 저변에는 봉건시대와 거의 다름이 없는 생산양식을 지닌 영세농과 또한 거의 대부분 가족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가내공업이 서로 비집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최고도의 기술과 가장 원시적인 기술이 중첩적으로 산업구조 속에 병존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봉건적 절대주의의 지배,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의 독점화의 진전이 결코 서로 모순하지 않고서 상호 보완해주는 관계에 있다는 것, 그것이 일본 파시즘 운동에서의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운명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_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 p124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봉건제 - 천황제로 대표되는 - 와의 모순속에서 이 모순이 드러나지 않도록 '밀폐'하려는 일종의 '방편'이 제국주의 침략이었다는 점을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결국 '탈아입구'로 표현되는 일본의 가출은 끊임없는 '과거 부정'과 '과거 지우기' 그러면서도 '과거 수탈'에 근거한 것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용되었던 것이 바로 일본의 '내선일체(內鮮一體)'에 근거한 민족이론이라 여겨진다.


 인간의 총체는 인류가 아닌가. 민족은 부분이다. 인간의 비극은 인류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도 인류의 비극이다. 개인이건 민족이건 생존을 저해하고 압박하는 것은 죄악이며, 근본적으로 부조리다.(p661)... 흔히들 국가와 국가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엔 휴머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하지. 그 말은 국가나 민족을 업고서 저지르는 도둑질이나 살인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과도 통한다. 하여 사람들은 얼굴없는 하수인, 동물적인 광란에도 수치심 죄의식이 없게 된다. 군중은 강력하지만 군중 속의 개인들은 무책임하고 방종하다. 권력이 그것을 조종할 때 권력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 포악한 속성을 식지(食指)가 움직이는 곳으로 풀어주고 사냥해온 물소의 고기 한 점 던져주면서 국수주의의, 애국 애족의 이리를 만드는 거지. _ 박경리, <토지 13> , p663/724


 다른 한 편으로 '내선일체'의 민족주의 속에서 어네스트 겔너(Ernest Gellner, 1925~1995)의 민족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내지(內地)의 근대화를 위한 사상기반으로 중심부-주변부를 아우룰 수 있는 사상 기반으로 '내선일체'가 이후 조선어 사용 금지 정책 등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생각하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겔너의 민족주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한 스미스(Anthony D. Smith, 1939~ )의 민족주의는 과거 전통과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일종을 민족주의라는 점에서 결을 조금 달리한다. 겔너와 스미스의 민족주의 차이는 거칠게 일본 제국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독립투쟁의 민족주의의 차이로 여겨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넘기자.


 겔너에게 민족주의는 근대 산업사회의 문화이다. 즉 서구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성공한 근대화가 마치 해일과도 같이 전 지구를 불균등하게 휩쓰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민족주의이고, 그 민족주의의 핵심 내용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언어문화(linguistic culture)로 설명된다....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이전에는 저급한 문화들(low cultures)이 주민의 다수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주민 전체의 삶을 차지하고 있던 사회에 고급문화(a high culture)를 전반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주선하고 국가교육기관이 감독하는 이디엄(idiom, 언어)의 확산, 즉 상당히 정확한 관료제적,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조건에 맞게 기호 체계화된 이디엄의 전반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_ 김인중, <민족주의와 역사> , p749/927


 이번 주 <토지> 독서 챌린지를 통해 가정의 속박을 거부한 근대화 시대의 두 여성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정을 욕망을 밀폐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방편이라고 본다면 비근대적인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과거 전통을 떨쳐버리고 근대화를 향한 일본의 제국주의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부정과 새로운 곳으로의 나아감. 이것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명희와 노라, 그리고 탈아입구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ps. 내부의 모순을 밖으로 표출하려는 일본의 다음 시선이 만주(滿州)로 향할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일전쟁(中日戰爭) 때 함께 다루는 것으로 계획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일본은 지급 급해 있거든, 중국이 통일되어 물론 아직은 국공 간의 도저히 용해될 수 없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일단은 내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은 일본에 비하여 두말할 것도 없이 대국 아닌가. 공포지. 특히 공산당의 집권을 무서워한 것은 바로 시장을 잃는다, 그것과 직결이 되는데 그럴 경우 일본은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어 순식간에 쭈그러들어. 해서 그들은 만주를 두고 염치 좋게 일본의 생명선(生命線)이라 외쳐대는데 그들의 현실이 그런 것만은 사실이거든, 초조해하고 서둘러대는 건 조금도 무리가 아니야. _ 박경리, <토지 13> , p574/724


  1904~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러시아를 대체하여 이 지역의 지배적 외세가 되어 특히 1910년 조선의 합병 뒤, 그리고 1차대전 중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파워의 공백에서 이권과 영향을 증대시켰다.(p104)... 농업은 1898년과 1908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한 인구의 요구로, 그리고 대두 수출의 지속적인 수요로 촉진되었다. 20세기 초 만주 수출의 80%나 차지한 대두(大豆)와 그 추출물들은 세계 대두생산의 59%를 점하며, 1920년대 말까지 계속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대체로 수출지역이 일본이었지만, 후일 유럽의 축산 사료시장도 확보했다... 만주 경제의 성장으로 이 지역에 대한 중국 본토와 일본의 이권들도 증대되었다. 1903년에서 1928년까지 만주의 대 중국 무역은 3.5%에서 32.5%로 늘었지만, 상당량의 것은 일본 무역이었다. 1931년에 여전히 만주는 주로 농업경제였지만, 소비재 생산을 위한 공업생산의 성장도 있었다. _ 프래신짓트 두아라, <주권과 순수성>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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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1-16 19: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단하세요.
토지가 총 22권이라고 하던데
절반 넘으셨습니다.
정말 대단하고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2-01-16 20:1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 혼자 읽으면 도중에 그만둘 듯하여 독서챌린지에 참여하여 하드캐리 당하다보니 밀려밀려 여까지 왔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