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과 나토가 벌인 합동 작전 그리고 국경을 넘는 파키스탄의 군사적 조치들로 아랍, 체첸을 비롯한 전 세계 곳곳에서 모인 해외 전사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알카에다 수뇌부 또한 도주하거나 살해당했다. 하지만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온 탈레반은 발붙일 곳이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술로 무장한 미국과 유럽의 침략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시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시간을 갖고 있다." _ 팀 마샬, <지리의 힘> , p585/660


 지난 8월 31일. 미군과 NATO군의 아프가니스탄 완전 철수가 이루어지면서 '제국의 무덤'이라는 아프가니스탄에 매장된 제국(帝國)이 또 하나 추가됐다.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2001년 개전 후 빠르게 승기를 잡았던 서구 연합군이었지만, 결국 전쟁의 최종 승리는 탈레반 차지가 되었다. 19세기 영국, 20세기 소련, 21세기의 미국을 차례로 물리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지만, 이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멸망에 이른 제국이 있으니, 바로 아케메네스(Archaemenes) 왕조의 페르시아(Persia)다. 


 다레이오스(다리우스 3세, BC 380~ BC330)를 구금한 이는 기병대장인 나바르자네스, 박트리아의 태수 베소스, 아라코티아와 드랑기아(Drangia)의 태수인 바르사엔테스(Barsaentes)였다.... 다레이오스를 구금한 자들은 알렉산드로스에게 따라잡힌다면 다레이오스를 넘겨주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하려 했다. 그리고 만약 추격을 받지 않으면 가능한 대로 대군을 모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한동안 베소스가 지휘권을 행사했다. _ 아리아노스, <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기 Anabasis Alexandrou>, p168 


 박트리아((Bactria)) 태수 베소스가 다리우스 3세를 인질로 알렉산드로스(Alexander III Magnus, BC356~ BC323)에게 협상을 제의하지만, 거절당하고 다리우스 3세의 칼로 찌르고 도주하면서 다리우스 3세가 숨진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것은 알렉산드로스였지만, 황제의 숨통을 끊은 것은 현 아프가니스탄 지역 태수 베소스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제국의 무덤 첫 안장 국가가 페르시아라는 것이 큰 무리는 되지 않을 것이다. 서론은 이 정도로 하고.


[지도] 아프가니스탄과 주변국들(출처 : 구글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1.9월호에서는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다. 정확하게 20년 전인 2001년 9.11 테러의 배후로 알 카에다(al-Qaida)를 지목하고 아프가니스탄에 폭격을 개시하며 시작된 전쟁은 개전 며칠 만에 탈레반을 무력화시키고, 해를 넘기기 전에 아프가니스탄의 새 정부를 수립하면서 전쟁은 조기 종식되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탈레반은 파키스탄의 지원받기 쉬운 남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숨어들어갈 수 있었다.


 

 국제법이 박살났다. 미국은 아무런 승인도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먼저 폭격을 쏟아부었다. 국제연합에 지원을 요청한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국제연합은 2001년 9월 12일부터 12월 20일까지 만장일치(러시아와 중국 포함)로 관련 결의안들을 가결시켰다. 이제 이 전쟁은 정당방위나 침략국에 대한 무력사용의 범주를 벗이났다. 이것이야말로 '테러와의 전쟁'이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실패와 혼돈>, p29


 마치 마오쩌둥의 홍군(紅軍)이 국공내전(國共內戰) 당시 농촌을 근거로 세력을 확장한 것과 같이 탈레반 역시 농촌에 자리잡을 수 있었고, 같은 이슬람국인 파키스탄의 지원으로 세력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현정부에 대한 반감이 더해져 결국 탈레반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재점령이 가능했다는 것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탈레반은 카불에서 점점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다른 진영들과 달리 종족적 잠론을 모두 거부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민족주의의 옹호자를 자처했다... 탈레반의 전략은 중앙정부의 결함을 해결해서 공공 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는 것이었다. 탈레반은 시골 지역에 자리잡고, 주지사, 판사, 학교 교육 담당자와 보건 담당자, 비정부기관 관련 담당자들과 함께 그림자 정부를 건설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중앙정부의 '결함'을 파고든 탈레반의 '해결사' 전략>, p33


 공세가 시작되기 전부터 전국 75개 지구가 탈레반 통제하에 있었고, 탈레반은 주로 농촌 지역을 관할했지만 대부분의 다른 지역에서도 활동했다. 탈레반은 모습을 감추지도 않았으며, 여성 인권의식이 없는 일부 국민의 시각에서 그들은 부패한 정부 권력보다 더 올바르고 때로는 더 나은 방식으로 지역을 통치했다...  탈레반은 여러 도시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국가 전체를 고립시켰다. 도시 간의 주요 통신선을 단절시키고, 30개의 국경검문소 대다수를 점령했으며, 정권의 수입원을 끊고 공급망 중에서도 특히 식량 공급을 통제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9月, <탈레반의 속전속결 아프간 장악, 그 비책은?>, p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무리한 군사공격, 부패 무능한 정부, 농촌에 근거하여 지방정권화한 탈레반의 세력보존 등이 미군의 철수와 거의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수중으로 넘어간 여러 이유들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일까? 단순한 절차적 실패가 아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없는 것일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배에는, 서구권의 각종 실패가 집약돼 있다. 우선, 미국이 베트남전 이후 그 어떤 무력 충돌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군사적 실패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 더 해롭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실패했다. 새로운 정권들의 심각한 부패, 참정권에 대한 불신 확산 측면에서 도덕적 실패이며, 침공을 한 사람이 결정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실패다. 현지 정부들이 무너지고 축출해야했던 세력들이 단기간에 최고 권력을 차지할 상황이므로 정치적으로도 실패한 것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아프가니스탄, 미국의 실패와 혼돈>, p29


 이에 대해서는 <지리의 힘 Prisoners of Geography: Ten Maps That Explain Everything about the World>의 저자 팀 마샬 (Tim Marshall)이 중국 지인과 나눈 대화가 답이 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자유, 평등, 인권이라는 이른바 서구의 가치들을 깃발에 걸고 자신에 이익에 맞게 행동하면서 '근대화' '문명화'라는 이름으로 상대에게 무리하게 강제하려 한 모든 행동들이 지난 세기 많은 비극들의 진정한 원인은 아니었을까. 강대국이 심판자의 입장에서처럼 이들을 단죄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힘의 논리'가 국제질서에 존재하는 한, 언제든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은 재현될 수 있다고 여겨진다. 


 나는 인권이라 부르는 것들이 중국에 전면적으로 도입되었을 경우 어떻게 폭력과 사망이 만연하게 된다는 것인지를 묻는 내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에게서 엄중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당신들이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화에서 당신들의 가치가 먹힐 거라는 생각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겁니까?" _ 팀 마샬, <지리의 힘> , p69/660 


 미군 철수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아프가니스탄 소식은 이제 거의 들리지 않느다. 대신,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주변국들의 치열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이 새롭게 국제 뉴스에 올라온다. 


관련기사 : https://www.ytn.co.kr/_ln/0104_202109250521499096


 

인도가 참여한 쿼드(Quad) 정상 회담이 오늘 아침 뉴스에 등장했다. 쿼드의 성격이 대(對)중국 포위망임을 생각해본다면, 자연스럽게 인도의 라이벌이자, 중국의 우방인 파키스탄을 떠올리게 된다. 이 두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의 동쪽과 남쪽의 인접국임을 생각해본다면, 일대일로(一帶一路)를 둘러싼 미-중 양 강대국의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과거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이 그레이트 게임의 일환으로 벌어진 것처럼,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의 여파로 '한반도 정전선언' 제안에 대한 답으로 '한국의 쿼드 참여 희망'을 답으로 받은 우리의 상황은 아프가니스탄의 일이 결코 우리와 무관한 사건이 아님을 일깨운다...

 

카슈미르는 인도-파키스탄의 비대칭성을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분할 당시부터 인도의 국력이 압도적이었다. 영토와 인구 등 모든 면에서 월등했다. 그 비대칭적 분할체제는 파키스탄의 경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비동맹 노선을 표방하며 '대국 大國 외교'를 추구했던 인도와는 달리 파키스탄은 인도와의 세력 균형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동맹 정책을 추진했다. 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2> ,p350/970


 '중국'과 '파키스탄'의 '철의 형제'는 역사적 산물이다. 파키스탄은 비고산권 중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가장 먼저 승인한 국가 중 하나였다. 양국이 국교를 수립한 해는 1951년이다. 보답으로 중국은 핵무기 등 민감한 기술을 전파해 주었다.... 이제는 21세기 실크로드의 첫 삽을 뜨는 모델하우스가 되었다. 중국개발은행(CDB)과 중국공상은행 등은 금융을 지원하고, 기간산업을 담당하는 기업들은 인프라 사업을 펼치는 첫 번째 훈련장이 된 것이다. '철의 형제'는 '전천후 동반자'가 되었다. _ 이병한, <유라시아 견문1> ,p206/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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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25 13:3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에 대통령이 유엔 연설에서 한국전쟁 종전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물밑협상이 진행되고 있음을 직감하였어요. 다음날 뉴스에서 미국의 반응 역시 긍정적이더군요. 종전의 당사국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할런지 생각해 보게 되더군요. 때마침 겨울호랑이 님이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9-25 15:28   좋아요 4 | URL
저 역시 어제 북측과 미국에서 나온 긍정적 반응에 기대감을 가지게 됩니다. 다만, 오늘 아침에 쿼드 정상회담에서 한국도 함께 하길 바란다는 미국의 반응은 마음에 걸리네요... 단순한 희망인 것인지, 아니면 부드러운 압력인지 쉽게 판단하기 어렵지만, 쉽지 않은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거서님, 평안한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