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뀌었는가
애덤 투즈 지음, 우진하 옮김 / 아카넷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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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지금 고려해야 할 것은 2012년과 2013년의 기본적 가정과는 달리 위기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위기의 반복이 아닌 위기의 돌연변이와 전이(轉移)다. 2007년에서 2012년까지 이어진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는 2013년과 2017년 사이에 냉전시대 질서 이후의 포괄적인 정치적, 지정학적 위기로 변모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명백한 정치적 의미를 감출 수가 없다._애덤 투즈, <붕괴> , p47


 애덤 투즈(Adam Tooze)의 <붕괴 - 금융위기 10년, 세계는 어떻게 바꾸었는가 Crashed: How a Decade of Financial Crises Changed the World>는 2008년 미국발  금융공황의 시작과 확산과 진정 국면으로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담은 책이다. 

 이미 우리 주변에는 무수히 많은 세계적인 금융공황의 원인과 전개과정을 서술한 책들이 있는데, 이들 중 이 책을 선택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개인적으로 이 책이 갖는 장점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정치문제의 뿌리가 금융위기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다는 점이라 여겨진다. 


 "전체의" 이해관계를 위협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의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현재는 제한이 없는 거대 정부가 지배하는 시대로, 합법적 지배 구조보다는 군사 작전이나 응급 처방과 같이 대규모의 행정적 조치나 개입이 이뤄지는 시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꼭 필요했지만 대단히 당혹스러운 진실도 밝혀지는데, 1970년대 이후 경제정책의 전반적인 개선과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건 바로 정부의 개입 덕분이었다는 사실이다. 현대 화폐 시스템이 정치적 개입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_애덤 투즈, <붕괴> , p33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맞아 전 세계적인 협조체제가 가동되었지만, 이를 결정하는 최고 의사 기구는 국가(國家)였다. 각 국의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을, 각 국의 정부가 재정정책을 수행하면서 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는 세계공화국의 모습을 보였으나,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나라의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맞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전쟁은 파괴와 함께 엄청난 규모의 유효수요(有效需要)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케인지안의 방식으로 금융위기를 극복하려는 이들이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어나는 지정학적 위기의 싹은 사실 이때부터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영국에서 보다 악화된 소득분배와 경제 불평등은 소외된 계층의 극우화를 이끌었으며, 그 결과 2016년 트럼프(Donald John Trump, 1946 ~ )의 대통령 당선과 브렉시트(Brexit)가 만들어졌다. 브렉시트의 경우에는 소외계층 문제 외에도 유럽(EU)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영국 금융기업들의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는 점에서 보다 경제적인 면이 부각된 사건이라 하겠다.


 사회적 개선을 위한 방안들은 결국 미국 사회의 더 큰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내어주려는 의식 있는 부자들에 의해서 실행에 옮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 밑바닥에 있는 소외계층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새로울 것이 없었다.(p638)... 불평등은 "총체적"인 문제이며 "시스템"이 보통의 미국 노동자 계층에 불리하게 조작되어 있다는 가정은 피해망상이 아닌 현실적 결론이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미국 좌파들이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는 중도파 진보주의자들과 갈라선 것도 이런 급진적인 회의주의 때문이었다._애덤 투즈, <붕괴> , p639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영국과 유럽연합 사이의 관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영국 경제가 불황으로 접어들면서 유럽에 대한 국민들의 감정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의 묵인하에 급격하게 수가 늘어난 동유럽 이민자들은 노동당 정부를 공격할 아주 확실한 구실이 되어주었던 것이다. 한편, 영국의 편향된 경제성장은 국민들에게 좌절감을 더해주었는데, 2010~2014년 영국의 건설이나 제조업 같은 생산 분야는 침체기에 들어섰지만 같은 시기 금융업은 12.4퍼센트나 성장했다._애덤 투즈, <붕괴> , p752


  최근 불거진 미-중 갈등 구도를 많은 경우 급부상하는 중국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제재로 인식되지만, <붕괴>에서는 여러한 이유외에 미국이 중국의 역할을 뺏어와야 할 당위성을 제기한다. 소외계층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후화된 시설에 대한 투자가 필요했던 미국은 '세계 공장'의 위치를 중국으로부터 어느 정도 찾아와야 할 상황이었고, 이러한 구도 속에서 중국에 대한 제재가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바라본다. 결과적으로 '미-중' 갈등은 여러모로 예정된 수순이었던 셈이다. 


  래리 서머스는 적어도 지난 20여 년 동안의 미국 경제성장이 취약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단지 "보통의"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비정상적인" 금융 거품에 의존해왔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투자 부족 타계를 위해 래리 서머스가 주장한 방식은 새로운 정부 행동주의의 시대다. 물론 이런 면에서 미국이 중국과 겨룰 수는 없으며 적절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대규모 공공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절적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은 분명했다._애덤 투즈, <붕괴> , p632


 2011년 미국 재무부와 무역대표부는 캐나다와 멕시코를 압박해 더 넓게 확대된 교역 및 투자 협정이 아시아의 주요 경제대국들과 함께 할 것을 종용했다. 여기에 중국은 제외되었는데, 이의 진짜 목적은 중국의 급상승하는 국력과 균형을 이룰 수 있을 정도의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p674)...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일본과 베트남을 미국이 생각하는 지리경제학적 동맹체제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는 건 어떻게 생각하면 대단히 손쉬운 일이었다. 이들 국가가 중국을 막아내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건 분명했다. 다만 미국이 아시아에서 이런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면 해당 지역에서의 상황이 복잡해지는 동시에 갈등을 부추길 위험이 있었고 그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았다._애덤 투즈, <붕괴> , p674


 다만, 이러한 미국의 중국 제재는 EU로부터 적극적인 반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는데, 이는 EU와 중국이 아시아 인프라 투자 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 AIIB)을 통해 굳건한 동맹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곧 EU-중국의 굳건한 유대가 깨지게 되는데, 이는 외환 위기를 맞은 그리스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이를 저지한 독일의 갈등 때문이다. 이미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EU-중국의 관계는 같은 시기 발생한 우크라니아를 둘러싼 EU/IMF - 러시아의 갈등을 계기로 더 악화되고 만다.


 만일 (그리스가) 미국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면 세계 경제의 새로운 거인인 중국은 어떨까? 중국은 지중해 동부지역을 유라시아 일대일로(一帶一路) 물류 네트워크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으로 보고 있었다. 또한 이미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에 대해서도 논란이 될 정도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p725)...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중국으로부터 추가로 자금을 지원받을 가능성에 대해 열심히 알아봤지만, 결국 중국이 약속한  채권 매입은 실행되지 못했다. 중국이 한 걸음 물러난 건 그리스 위기에 대한 중국의 개입을 결코 환영할 수 없다는 독일의 입장이 정확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_애덤 투즈, <붕괴> , p726


 경제 위기 이후 극심한 경제불황에 시달리던 우크라니아, 아르메니아가 對EU 친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지정학적 이익'과 '지경학적 이익'을 동일시하는 러시아와 EU는 크림반도의 이권을 두고 부딪히면서 러시아는 다시 서구 세계와 등을 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이미 미국과 불편한 관계에 놓인 중국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1960년대 이후 구(舊)공산권의 2대 강국이었던 러시아-중국의 협력이 보다 명확하게 되었다는 것이 <붕괴>의 설명이다. 그리고, 중국-러시아의 굳건한 동맹을 서구 세계에 선포하는 그 자리가 2015년 중국 전승절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중국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는 우리 대통령의 모습을 서구 세계는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를 이해하는 것은 이제 그닥 어렵지 않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전승절 참석 대가로 2016년 사드를 받아야만 했다.


 우크라이나를 서방측으로 떠민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봉기였으며 2014년 6월 새로운 대통령 포로셴코가 합의한 유럽연합 협약은 2017년 7월 마침내 정식으로 비준되었다. 서방측은 우크라이나가 붕괴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았지만 위기에서 완전히 구해주지도 않았다.(p703)... 러시아와 중국 모두에게 지금 중요한 건 비단 경제 문제만은 아니었다. 다극성의 세계를 확인하고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재설정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했다.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건 기존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국가들이 아니라 아시아의 신흥 강국과 그 동맹국들이었다. 2015년 각국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기념식의 참석자 명단이 갖는 상징성은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이제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는 새로운 관계가 구축되고 있었고 이 관계를 통해 유라시아의 정세가 새롭게 바뀔 수도 있었다._애덤 투즈, <붕괴> , p705


 이상의 분석에서 처럼 애덤 투즈의 <붕괴>는 금융위기가 가져온 국제정치의 변화를 잘 설명한다. 책에서 서술된 적절한 분석을 통해 현재의 지정학적 갈등이 단순히 민족주의나 우발적인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각자의 경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행해진 결과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향후 합리적 예측과 바람직한 행동에 도움이 될 것임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붕괴>는 이런 점에서 왜 우리가 2008년의 위기를 올바르게 바라봐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진다.

사회적 개선을 위한 방안들은 결국 미국 사회의 더 큰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이 가진 것을 더 내어주려는 의식 있는 부자들에 의해서 실행에 옮겨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 밑바닥에 있는 소외계층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새로울 것이 없었다... 불평등은 "총체적"인 문제이며 "시스템"이 보통의 미국 노동자 계층에 불리하게 조작되어 있다는 가정은 피해망상이 아닌 현실적 결론이라는 사실 또한 알았다. 미국 좌파들이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는 중도파 진보주의자들과 갈라선 것도 이런 급진적인 회의주의 때문이었다. - P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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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21-06-23 15: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과거의 경험에 비춰보면 인류는 경제 거품( 또는 위기)의 문제를 전쟁으로 해결했죠.(제 의견) 과연 전쟁이 아닌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면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고, 전쟁으로 해결하다면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는 인류의 愚昧함을 보여 주겠죠.

겨울호랑이 2021-06-23 16:02   좋아요 2 | URL
마립간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많은 경우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이의 구명조끼를 빼앗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는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해왔음을 봅니다. 어쩌면 빼앗기 위해 위기를 조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폭력과 강제에 의해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은 것이 오늘날까지 적용되는 질서라 여겨집니다. 몸에 생긴 통증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듯, 위기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노력이 함께 일어날 때 누군가 말하는 ‘후천개벽‘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마립간님 오랫만에 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