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왕 윌리엄 - 노르망디 공작에서 잉글랜드 왕으로
폴 쥠토르 지음, 김동섭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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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들에게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 1028 ~ 1087)은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를 통해 잉글랜드를 정복한 노르만 공작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 정복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설명하는 책도 이를 찾는 이들도 그리 많지 않지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실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왕조의 변동이 갖는 의미까지 관심을 갖기에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 중세 유럽은 너무도 멀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폴 쥠토르의 「정복왕 윌리엄」은 11세기 프랑스에 의한 잉글랜드 정복이 갖는 의미를 사회전반에 걸쳐 조망한 책으로 당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의 갈증을 풀어줄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윌리엄 1세라는 인물에 집중하면서도 책은 중세 유럽의 문화, 사회, 자연 환경 등 전반을 설명하는데 많은 페이지를 할당한다. 그리고, 윌리엄 1세의 치세가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양을 서술하면서 평전의 한계를 넘어 독자들에게 시대를 이해시켜 준다. 무엇보다도 11세기 유럽의 많은 모습을 보다 생생하게 일반독자들에게 설명한 부분은 이 책이 갖는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된다. 


 다만, 저자의 사관(史觀)에 대해서는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교수를 지낸 저자의 이력을 고려한다면, 책의 내용이 친(親)노르만, 친 프랑스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책은 전체적으로  노르만족의 정복이 현대 영국의 융성을 이끈 토대가 되었다는 결론으로 나가는데, 이러한 저자의 주장 안에서 파괴된 앵글로색슨 문화에 대한 배려를 찾기 어렵다. 노르만 왕조 이후 잉글랜드 - 후에 스코틀랜드, 웨일즈를 포함한 영국 - 이 로마 제국 이후 라틴 문화의 영향을 받아 서유럽의 일원이 되었다는 사실은 다른 한 편으로 섬나라 영국의 독자성의 소멸을 의미한다. 고유 문명의 손실이 대륙 문화 편입으로 인한 긍정적 영향을 상쇄할 것인가에 대한 고려도 분명 필요하겠지만, 본문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많이 다루어지지 않아 아쉽게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저자의 관점 속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떠올리게 된다. 과거 일제 식민을 경험한 우리의 입장에서 일본제국의 식민 경험이 21세기 한국의 발전을 이끌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 불편하듯, 노르만 정복 이전의 켈트족, 앵글로 -  색슨족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선뜻 수용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이들 민족은 대부분 융화되어 구별하기도 어렵겠지만.  이러한 한계를 감안하고 책을 읽는다면 11세기 중세 유럽의 전반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정복이 영국에 가져온 변화는 정치 제도보다 사회 구조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노르만인들이 가져온 봉신제도와 봉건제도는 앵글로색슨 제도보다 더 발전되고 단순한 형태였다. 정복 전 영국에는 많은 자유민이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일부 지주들에게만 매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형식적이었다. 그러던 것이1085년경에는 봉신제도와 봉토로 연결된 지주와 농민의 관계가 파기할수 없을 정도로 긴밀해졌다. 그 결과 대륙에서 여전히 남아 있던 자유지는 영국에서는 모두 사라졌다.(p524)


 기마 전투 전술의 발달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촉진시켰다. 기사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화살 모양의 창은 점차 주무기인 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칼은 살상력이 약했고, 다루기가 용이하지 않았다. 얇은 금속판을 이어 만든 갑옷은 금속 고리를 연결하여 짠 쇠사슬 고리 갑옷으로 대체되었는데, 이 갑옷은 공격 방법을 바꾸어놓았다. 실제로 이 갑옷을 입은사람 앞에선 대부분의 방사물(돌, 화살)이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므로 전투는 마주보고 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게 되었고, 사전에 두 당사자가 장소를 합의해서 결정하는 것도 중요해졌다.(P552)


 대부분의 앵글로색슨인들은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았다. 노르만인이 주재하는 재판은 통역사에 의해서 진행되었다. 그러므로 재판 중에 얼마나 많은 오역이 있었을지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당시의 상황은 이러했을 것이다. 즉 2개 국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고, 두 언어가 공존하는 상황이 보다 더 현실에 가까웠을 것이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자들은 소수였지만 지배층이었고, 다수의 앵글로색슨인들은 비천한 계층이었다. 공식 문서에 사용되는 라틴어는 두 언어의 갈등을 봉합해 주었다. (P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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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10-20 15: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해 하던 책이었는데 리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작가의 관점이 친프랑스
적이라는 점에 눈길이 가네요.

노르만 족의 잉글랜드 정복으로
수구적인 중세 봉건제가 가속화
되고, 영어와 프랑스어의 혼용
이 문제가 되었다는 지적도 인
상적이네요.

기회가 된다면 읽어 보고 싶네요.

겨울호랑이 2020-10-20 15:46   좋아요 0 | URL
유럽의 중세, 그리고 당시에는 변방이었던 영국사의 한 부분을 대중적으로 깊이있게 들어간 책이라 생각됩니다. 북유럽 문명과 라틴 문명의 변방에 있던 잉글랜드를 중세질서 속으로 끌고 들어간 것이 윌리엄1세의 영국 정복이라는 과거와 오늘날 신자유주의 질서를 세계에 전파하는 영미 문화가 비교되어 나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독서 되세요! 감사합니다. ^^:)

sickthing 2022-02-17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수의 지배계층의 관점에 다소 치우쳐 쓰여진 책이라는 말씀을 염두하고 읽는다면, 어느 정도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는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 같네요.

겨울호랑이 2022-02-17 18:54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잘 요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ickthing님 좋은 독서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