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컨대 2018년은 참으로 평화와 희망의 한 해였다. 불행히도 2019년 2월 27일 ~ 28일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한반도는 불확실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국이 제시한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이라는 빅딜(big deal)과 북한이 제시한 "영변 핵시설의 완전하고도 영구적인 폐기와 유엔안보리 제재의 부분적 완화의 동시 교환"이라는 섬딜(some deal)간에 절충이 실패하면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은 결렬되었고 그 여파로 한반도의 불확실성은 과거 어느 때 보다 크게 증폭되고 있다.(p3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6.> 中


  2020년 6월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에는 한국전쟁 70주년이자, 6.15 20주년을 맞아 문정인 특보의 기고문이 실렸다. 며칠 전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되면서 급냉한 현 시점에서 이 글을 읽으니 마음이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고문에는 몇몇 생각할 지점이 있기에 이번 페이퍼에서는 기고문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려한다. 


 문정인 특보는 한반도 정세가 불안정하게 된 시기를 2차 북미회담 결렬 이후로 파악하고, 이 시기를 전후해 우리 정부도 상황의 주도권을 잃고 상황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또한, 문특보는 이러한 상황 이전 평화로운 2018년을 주도한 정부의 정책은  임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의 평화론에 기반하였음도 함께 밝힌다.


 평화 유지가 소극적 평화전략이라 한다면 평화 만들기는 적극적 평화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평화 구축(peace - building) 전략이다. 평화 구축은 임마누엘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맥을 같이 한다. 영구평화론의 제1명제는 '무역하는 국가들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소위 자본주의 평화론이다. 제2명제는 '민주주의 국가들끼리 싸우지 않는다'는 민주평화론이다. 그리고 제3명제는 평화연방(The pacific federation)이다. 세계 정부의 한 형태인 평화연방을 만들면 사실상 국가간의 전쟁은 있을 수 없다.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영구평화가 가능하다는 게 칸트의 기본명제이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구축 전략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남북한이 경제교류협력을 하고 철도, 에너지를 연결하여 경제공동체가 형성되면 남북이 싸울 일이 없는 것이 아니냐는 게 이 구상의 핵심이다.(p32)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6.> 中


 위의 내용에 대해, 칸트의 <영구 평화론>에서 해당 내용을 찾아보자. 문 특보가 말한 영구평화론의 제1명제는 '제1추가조항 영구 평화의 보증에 대하여'에 나온다. 칸트는 해당 명제의 설명에서 재물의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정신을 통해 자연이 영원한 평화를 보장함을 밝히는데, 이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국부론> <도덕감정론>을 통해 개인의 이기심이 타인의 동감을 불러와 최선의 결과를 도출시킨다는 논증과 통한다. 우리가 물질적이라고 여길만한 감정이 보다 높은 이상을 달성시킨다는 아이러니는 여기에만 머무르지 않는데, 이는 뒤에서 칸트의 '자연'에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자연은 여러 민족을 현명하게 분리시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한편으로 자연은 또 세계 시민법의 개념에 의해서는 폭력과 무력에 대항해서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었던 여러 민족들을 상호 이익에 의해 서로 통합시킨다. 그것은 전쟁과 양립할 수 없는 상업적 정신인데, 조만간 각 민족을 지배하게 된다. 금력(金力)이야말로 국가 권력 안에 포함되는 모든 권력(수단) 가운데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이기 때문에, 각 국가는 부득불 영예로운 평화를 추구해 가지 않을 수 없게 되며, 그리고 전쟁이 발발하는 곳이 어디가 되었든 간에 중재를 통해 전쟁을 막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연은 인간의 경향성의 기제에 의해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게 된다.(p56) <영구평화론> 中


 또한, 칸트는 이러한 인류의 영원한 평화는 자연의 숨겨진 의도에 따라 '세계공화국'으로 이끌린다고 보고, 자연의 의도에 따라 영원한 평화라는 국제 질서가 확립될 수 있음도 밝힌다. 개인적으로는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와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를 투쟁상태로 파악하는 칸트가 영원한 평화를 주는 존재로 자연을 말하는 것은 또한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힌두교의 친절하면서도 난폭한 신 루드라(Rudra) - 시바(Siva)을 떠올리게 하는 칸트의 '자연'. 이러한 '자연'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판단력 비판>과도 연결지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일단 넘기자.


 (제8명제) 인류의 역사는 국내적으로도 완전하며, 그리고 이 목적에 맞으면서 국제적으로도 완전한 국가 체제를 성취하고자 하는 자연의 숨겨진 계획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p38)... (제9명제) 인류의 완전한 시민적 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는 자연의 계획에 따라서 보편적 세계사를 편찬하려는 철학적 시도는 가능한 것으로서, 또 이런 자연의 의도에 공헌하는 것으로서 간주되어야만 한다.(p40) <칸트의 역사철학, 세계 시민적 관점에서 본 보편사의 이념> 中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1941 ~ )은 <세계공화국으로>에서 칸트의 평화론이 단순히 국가간의 관계를 고려한 국제정치에서 통용되는 것이 아니나, 세계공화국의 틀 안에서 행해질 수 있음을 밝힌다. 그는 구체적으로 세계공화국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국가가 가지고 있는 군사 주권을 국제연합에 양도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현실적으로 이루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한계 안에서 우리는 칸트의 평화론이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 속에서 그대로 적용되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칸트의 평화론에 근거한 평화구축 전략 역시 구체적으로 진행되기도 전에 예비 조항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칸트의 생각은 단순히 단독행동주의에 대한 다국 간 협조주의 같은 것이 아닙니다.국제연맹이나 국제연합이 칸트의 '국가연맹' 구상에 기초한 것이 확실하지만, 그는 딱히 그런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것을 제기한 것은 현실적인 타협안에 지나지 않습니다.(p222)... 그의 이념은 궁극적으로 각국이 주권을 방기함으로 형성되는 세계공화국에 있습니다.  그 이외에 국가 간의 자연상태(적대상태)가 해소될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이외에 국가가 지양될 방법은 없습니다. 한 나라 안에서만 국가를 지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p223) <세계공화국으로> 中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위한 예비 조항 (1) 장차 전쟁의 화근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암암리에 유보한 채로 맺은 어떠한 평화 조약도 결코 평화 조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 <영구평화론> 中


 문 특보는 기고문의 마지막에서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현재의 접근법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제시한다. 최종 목적은 분명히 하되 유연성있는 태도 변화가 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첫걸음임을 밝히는 그의 글 속에서 효과적인 군비 축소를 위해서는 정치 문제 해결이 먼저라는 한스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1904 ~ 1980)의 논지를 떠올리게 된다. 비록, 핵 군비 통제와 재래식 무기 통제라는 차이는 있지만, 정치 분쟁 해결을 위한 협상이 필요함은 석학들의 주장을 통해 분명해 보인다.


 밴 잭슨 교수도 주장한 바 있지만 '선 비핵화'에 기초한 비핵화 패러다임으로는 북한 핵문제를 풀지 못한다. 목표는 비핵화에 두지만, 실질적으로는 핵군축 협항의 기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북한이 현재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제재 완화를 의제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일방적이고도 맹목적 제재 완화는 비핵화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북이 원하는 것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 폐기다. 북미간 국교 관계가 정상화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제도적으로 구축이 된다면 북한의 핵보유는 정당화되기 어렵다.(p3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0.6.> 中

 

 (다양한 국가들이 군축 시) 적용하는 기준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결정될 뿐 객관적인 기준 같은 것에 따라 결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이런 기준은 관련 국가들이 자신들을 갈라놓는 정치적 문제의 해결에 일차적으로 합의한 뒤에야 비로소 자유로운 합의를 통해 결정될 수 있다. 따라서 군비 할당 기준의 문제는 비율 문제와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치적 분쟁 해결이 군비 축소에 선해오디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해결 없이는 군축은 성공 가능성이 없다.(p173) <국가간의 정치 2> 中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평화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지고도 분명하게 평화로 나가기 위한 걸음을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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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6-19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축사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나 나와 김정은 위원장이 8천만 겨레앞에서 했던 한반도 평화의 약속을 뒤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평화는 누가 대신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개척해야 합니다
남과 북이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이 땅에 민주. 평화.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기대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6-19 07:00   좋아요 1 | URL
여러 모로 뜻깊은 한 해인데, 상황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시간 중 어렵지 않았던 시기가 많지 않았음을 생각해 봤을 때, 중단없이 왔던 길을 다시 나가야한다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