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2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2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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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적으로 보아 자본은 생산자본, 화폐자본, 상품자본으로 공간적으로 나란히, 상이한 단계에서,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각 부분은 끊임없이 한 단계 또는 하나의 기능적 형태에서 다른 것으로 이행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차례차례로 그 모든 단계 또는 기능적 형태에서 기능하게 된다... 세 순환의 통일 중에서 비로소 총과정의 연속성 - 위에서 말한 중단이 없다 - 이 실현된다. 사회적 총자본은 항상 이 연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과정은 항상 세 순환의 통일을 포함하고 있다.(p124) <자본론 2> 中


 산업자본은 잉여가치 또는 잉여생산물의 취득뿐 아니라 그것의 창조까지도 자기의 기능으로 삼고 있는 유일한 자본의 존재방식이다. 그러므로 산업자본은 생산의 자본주의적 성격을 조건으로 하며, 그것의 존재는 자본가와 임금노동자 사이의 계급적대를 내포하고 있다. 산업자본이 사회의 생산을 지배함에 따라 노동과정의 기술과 사회적 조직이 변혁되며, 이와 함께 사회의 경제적, 역사적 유형이 변혁된다.(p64) <자본론 2> 中


 <자본론 2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conomie 2>에서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는 화폐자본의 순환에 대해 상세하게 접근한다. 구체적으로 마르크스는 유통단계에서 나타나는 자본의 모습을 화폐자본, 상품자본, 생산자본의 모습으로 구분하고, 이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사회적 총자본을 구성한다고 보았다. 이 과정에서 마르크스가 제기하는 것은 화폐자본의 문제인데, 구체적으로 화폐자본이 생산자본으로 변화하면서 시작되는 시작점에서 이미 자본주의는 잘못된 출발을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지적이다.


 M - C(LP+MP), 또는 그것의 일반적 형태 M - C [각종 상품구매의 총계]는 일반적 상품유통의 한 행위인데, 그것은 또한 자본의 독립적 순환의 한 단계로서는 자본가치가 화폐형태에서 생산적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며, 더욱 간단히 말해 화폐자본이 생산자본이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고찰되는 자본순환에서는 화폐는 자본가치의 최초 담당자로 나타나며, 따라서 화폐자본은 자본이 투하되는 형태를 대표한다.(p35) <자본론 2> 中


 자본주의 생산은 투하가지의 증식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자본가는 생산을 통해 투하된 가치보다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 그렇지만, 가치의 창출은 노동력에 의해서만 가능하기에, 순환단계에서는 가치의 이전만이 가능할 뿐이다. 때문에, 자본가들은 자신들이 구입한 노동력의 대가를 적게 지급함으로써 이윤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자본론2>의 결론이다. 본문에서는 이에 대한 고찰이 상세하게 이루어지는데, 이번 리뷰에서는 간략하게나마 이를 따라가보도록 하자.


 자본주의적 생산의 주된 동기는 항상 투하가치 capital advanced의 증식인데, 이 가치가 독립적인 형태[즉 화폐형태]로 투하되든 상품으로 투하되든 마찬가지다. (p187) ... 자본가는 자기가 유통에서 인출하는 것보다 적은 가치를 화폐의 형태로 유통에 투입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가 상품의 형태로 인출한 것[ c+ v ] 보다 더욱 많은 가치 [ c+ v + s]를 상품의 형태로 투입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자본의 인격화, 산업자본가로서만 기능하는 한, 그에 의한 상품가치의 공급은 항상 상품가치에 대한 그의 수요보다 크다... 그가 비싸게 팔 수 있는 것은, 그가 자기의 상품들을 가치 이상으로 팔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상품들의 가치가 그것을 생산하는 데 소요된 요소들의 가치총액보다 더욱 크기 때문이다.(p139) <자본론 2> 中


 자본가계급이 그들의 이윤을 끌어내는 원천은, 노동력의 대가를 그 가치[즉 임금노동자가 노동력의 정상적 재생산에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 이하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정상적 임금에서 떼어냄으로써 형성될 것이다. 따라서 정상적 임금이 지불된다면, 산업자본가나 놀고먹는 자본가들에게는 이윤의 어떤 원천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p610) <자본론 2> 中 


  자본의 순환 공식 M - C ... P ... C' - M' 은 자본가에게 자본 순환이 증대된 C', M'을 가져다주는 것을 보여준다.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 순환구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자하는 유인을 갖는다. 순환구조 내에서 회전시간은 생산시간과 유통시간으로 나뉘는데, 유통시간은 상품의 시공간 이동만을 가능하게 할 뿐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잉여가치의 창조를 위해 생산시간을 늘리려 한다. 이제 생산으로 들어가보자.


 산업의 순환[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의 가장 분명한 특성 중의 하나는, 한편에서는 생산자본의 구성요소들이 상품시장에서 상품으로 구입되어 끊임없이 갱신되지 않으면 안 되며,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과정의 생산물이 노동과정에서 나와서 상품으로 끊임없이 판매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p137) <자본론 2> 中 


 자본의 순환을 개개의 단일 과정이 아니라 주기적 과정이라고 파악할 때 그것은 자본의 회전이라고 불리다. 이 회전의 시간은 자본의 생산시간과 유통시간의 합계에 의해 결정된다.(p188) <자본론 2> 中


 생산은 생산자본에 의해 이루어진다. 마르크스는 <자본론2>에서 생산자본을 가변자본과 불변자본으로 나누고, 생산은 가변자본인 노동력과 자본가 소유의 불변자본의 결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작업이라 보았다. 여기서 노동력의 특성에 대해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즉, 노동력은 불변자본과는 달리 상품으로 소유권이 분리되며, 노동자는 가치 이전 후 화폐형태로 그 대가를 받는데, 자본가에 의한 착취가 이루어진다.


 가치의 형성, 따라서 잉여가치의 창조와 관련하여 생산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의 상이성에 의하여, 생산수단과 노동력은, 그것이 투하 자본가치의 존재형태인 한,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구별된다. 생산수단과 노동력은 생산자본의 구성부분으로서 또 하나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즉 생산수단은 일단 자본가의 소유로 되기만 하면 생산과정의 외부에서도 그의 자본으로 남아 있지만, 노동력은 생산과정 안에서만 개별자본의 존재형태로 된다는 점이다.(p45) <자본론 2> 中


 노동력은 노동자의 손에서는 자본이 아니라 상품이며, 그리고 노동자가 그것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팔 수 있는 한 그에게 수입을 가져다준다. 노동력은 팔린 다음에 자본가의 손에서 생산과정 그 자체가 진행되는 동안에 자본으로 기능한다. 여기에서 노동력은 두 가지 목적에 봉사한다. 즉 노동력은 노동자의 손에서는 그 가치대로 팔리는 상품이며, 노동력을 구매한 자본가의 손에서는 가치와 사용가치를 생한하는 힘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자본가로부터 화폐를 받게 되는 것은 그가 자본가에게 자기의 노동력의 사용을 맡겨버린 다음, 즉 그의 노동력이 이미 노동생산물의 가치 중에 실현된 다음의 일이다.(p474) <자본론 2> 中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대가가 화폐라는 점은 자본가들이 형성된 잉여가치를 노동자로부터 가져가는 것을 정당화한다. 유통되지 않은 화폐인 퇴장화폐로 가치는 이전되며, 축적된 예비자금은 노동의 대가로 활용되며 이 순환을 원활하게 한다. 예비자본에 더해 산업예비군까지 존재한다면, 자본가들은 더 저렴한 비용으로 노동력을 살 수 있을 터이지만,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자본론 3>으로 미루도록 하자. 


 잉여가치의 형성은 유일하게 진정한 비밀이지만, 자본가들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투하가치액은 잉여가치에 의하여 증식되지 않는다면 자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잉여가치는 처음부터 전제되고 있으며, 그것의 존재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잉여가치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가치를 화폐화하기 위한 화폐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p406) <자본론 2> 中 

 

 퇴장화폐라는 형태는 유통하지 않는 화폐의 형태며, 유통이 중단되어 화폐형태로 보존되고 있는 화폐의 형태다. 화폐퇴장의 과정 그 자체에 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모든 상품생산에 공통적인 현상인데, 그것이 목적 그 자체로서 구실한 것은 오직 미발달한 전자본주의적 상품생산에서이다... 퇴장화폐는 화폐자본의 하나의 형태로서 나타나며, 화폐퇴장은 자본축적에 일시적으로 수반하는 하나의 과정으로서 나타난다.(p98) <자본론 2> 中 


 자본가들은 예비자금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만 똑같은 규모로 사업을 계속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가변자본가치가 화폐형태로 환류하는 것이 빠른가 느린가에 관계없이, 사업을 중단 없이 계속할 수 있기 위해서는 화폐형태의 예비자본이 필요하다.(p558) <자본론 2> 中  


 <자본론 2>에서는 이처럼 추가자본의 투입없이도 자본순환이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이러한 순환은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 소유의 자본[가변자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필요노동시간과 최소생계비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본은 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확대된 규모의 재생산으로 끝나는 <자본론 2>는 <자본론 3>에서 어떤 내용이 전개될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확대재생산이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붕괴로 이어진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은 다음 과제로 넘기고 일단은 여기서 멈추도록 하자.


 단순재생산에서도 잉여가치의 일부는 생산물로서가 아니라 항상 화폐형태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있는 화폐량이 퇴장화폐와 유통하는 화폐로 분할되는 비율은 끊임없이 변동하지만, 화폐량은 언제나 퇴장화폐와 유통하는 화폐로 있는 화폐의 합계와 동등하다.(p401)... 노동력과 생산수단에 지출된 유동자본의 화폐형태는 생산물의 판매에 의하여 보충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 자체의 현물형태에 의하여 보충되며, 따라서 그것의 가치를 화폐형태로 유통에서 끌어냄으로써 보충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 생산된 추가적 화폐에 의하여 보충된다.(p403) <자본론 2> 中 


 확대된 규모의 재생산은 생산물의 절대적 크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 확대재생산은 상품량이 주어진 경우에는 주어진 생산물의 절대적 크기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 확대재생산은 상품량이 주어진 경우에는 주어진 생산물의 여러 요소들의 조합이나 기능이 달라지는 것을 전제로 할 따름이라는 것, 따라서 가치량으로 보면 먼저 단순재생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변화된 것은 단순재생산의 주어진 요소들의 양이 아니라 그 질적 특성이며, 이 변화가 그 다음의 확대된 규모의 재생산의 물질적 전제다.(p640) <자본론 2> 中 


 <자본론 2>에서 마르크스가 설명한 자본주의 세계의 모습은 다분히 기독교 세계의 비유로 느껴진다. 상품 자본, 화폐 자본, 생산 자본으로 구성된 산업자본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구성된 하느님의 모습. 이처럼 마르크스의 자본 구분은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를 연상시킨다. 또한, 잉여가치의 형성과 관련하여 '처음부터 전제된 잉여가치'의 모습 속에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 ? ~ 1274)의 제1원인으로서 신(神)을 떠올리게 된다. 또한, 노동으로부터 창출된 잉여가치의 의미는 인간으로부터 신에게로 나아가는 일종의 방향성을 느끼게 되는데, 여기에는 그의 유물론적 사관이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출처 : https://medium.com/poets-unlimited/in-nomine-patris-et-filii-et-spiritus-sancti-1d35bc836d07)


 <자본론 2>에서 다루어지는 자본의 모습은 산업자본이다. 때문에, 화폐/금융과 관련해서는 설명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루돌프 힐퍼딩 (Rudolf Hilferding, 1901 ~ 1941)의 <금융자본론 Das Finanzkapital>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자본론 2>에서 이루어진 고전학파 경제학자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1823)의 비판을 옮기면서 리뷰를 갈무리한다...  


 스미스가 알아야 할 것은, 동일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자본의 운동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 여하에 따라 고정자본(노동수단, 생산자본의 요소들)으로서 기능할 수도 있고 '유동'자본, 상품자본(생산영역에서 유통영역으로 밀려나오는 생산물)으로서 기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p235)... 스미스는 그가 제기하고 있는 예에서 '생산도구'를 고정자본으로 규정하고, 임금과 [보조재료를 포함한] 원료에 투하된 자본부분(생산물의 가격에 의해 이윤과 함께 회수된다)을 유동자본으로 규정하고 있다.(p236) <자본론 2> 中


 부르주아 경제학은 임금에 투하되는 자본부분을, 원료에 투하되는 자본부분과 전혀 구별하지 않고 있으며, 오직 형식적으로만 - 즉 자본이 생산물에 의하여 일부분씩 유통되는가 또는 한꺼번 유통되는가 하는 점에서만 - 불변자본과 구별한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따라서 또 자본주의적 착취의 현실적 운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오직 투하가치의 재현이 문제로 되고 있을 뿐이다.(p268)... 리카도는 바턴과 마찬가지로 가변자본, 불변자본 사이의 비율과 유동자본, 고정자본 사이의 비율을 계속 혼동하고 있다.(p277) <자본론 2>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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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7 1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7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6-07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윗 글에 단 하나의 전제 조건이 있더라구요.
자본에 소유권이 없어야 한다.
근본적으로 자본에 소유권이 있는 자본주의에서는 통용되기 힘든 주장일 수 있기에 마르크스가 소유권 철폐를 주장한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20-06-07 17:14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노동을 상품화하는 가변자본과는 달리 감가상각분으로 가치이전 하는 불변자본은 생산구조 내에서 충돌하고, 이러한 충돌이 계급간 착취의 형태로 나타나기에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만드시 몰락한다고 예언했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이후 체제에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의한 생산수단 공유라는 주장이 등장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