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형이상학 정초 대우고전총서 16
임마누엘 칸트 지음, 백종현 옮김 / 아카넷 / 201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선의지는 오직 이성적 존재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으로서 다름아닌 순수한 이성적 존재자의 실천을 지향하는 이성, 곧 '순수 실천 이성'이다.(p50)...  선의지만이 그 자체로 선한 것이라 함은, 결국 "의무로부터"의, 오로지 의무에서 말미암은 행위만이 "본래적인 도덕적 가치"를 가지며, 의무로부터의 행위란 도덕적 실천 법칙을 그 행위의 표준으로, "의욕의 원리"로, 곧 준칙(Maxime)으로 삼는 행위를 말한다.(p51)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윤리형이상학 정초 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에서 이성적 존재자만이 선의지를 가질 수 있고, 선의지만이  선(善)한 것으로 해석한다. 신(神)과 같은 이성적 존재자는 선의지의 자율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절대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시공간에서 감성적 욕구를 느끼는 존재에 불과하기에, 인간이 인격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정언적 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이 요구된다.


 칸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자로서 윤리법칙에 종속해 있음을 밝혀낸다.(p52)... "객관적인 원리의 표상은, 그것이 의지에 대해 강요적인 한에서, (이성의)지시명령(Gebot)이라 일컬으며, 이 지시명령의 정식[定式)을 일컬어 명령(Imperativ)이라 한다. 어떤 명령이 실천 법칙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져야만 한다.(p53)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주관적 욕구를 배제한 채, 객관적 법칙이 될 수 있는 행위의 준칙을 스스로 세우고, 그것을 보편적 자연법칙처럼 준수하려는 인간 의지는 그 자체로 거룩하고 '신성하다'(p54)... 그 자체로 존엄한 인간은, 그리고 이성적 존재자는 '목적 그 자체'이다.(p55)... 그렇다면, 무엇이 윤리적으로 선한 마음씨 또는 덕으로 하여금 그토톡 높게 존엄성을 요구할 권리를 주는가? 그것은 자율성이다.(p56)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이성적 존재자의 선의지는 '자유'를 매개로 도덕 법칙과 결합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성적 존재자의 자유 의지란 바로 도덕 법칙 아래에 있는 의지를 말한다.(p57)... 인간은 감성적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살아가는 시공상의 존재자이기 때문에, 바로 그 때문에 그에게는 당위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강제적으로라도 부과하는 정언 명령이, 도덕 법칙이 있는 것이다..(p60) <윤리형이상학 정초> 中 


  우리는 <순수 이성 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ft >에서 인간의 인식이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 조건의 제한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윤리형이상학 정초>에서 인격적 존재자로서 인간의 행동은 시공간의 제한으로 인해 의지의 자율과 도덕 법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역자의 해제로 위와 같이 큰 줄기를 파악하고, 상세 내용은 추가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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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5-25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칸트의 선의지에 이성이라는 전제 자체가 의문 시 됩니다. 칸트와 같은 천재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의 한계 아닌가 생각됩니다.

겨울호랑이 2020-05-25 22:03   좋아요 1 | URL
칸트 철학에서 최고의 통일 능력을 의미하는 ‘이성(Vemunft)‘은 마치 중세의 신(神)의 다른 모습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칸트 철학에서도 중세철학의 여운이 남아 있음을 저 역시 느끼게 됩니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신의 존재 증명에 대한 우주론적, 존재론적 증명 등은 그 일례라 여겨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세와 근대 사이, 아직 기독교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던 시기에, 신만의 속성을 인간에게도 가져왔다는 점에서 저는 칸트 철학이 마치 신의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 의 불‘과 같은 혁명이라고 느껴집니다. 칸트 자신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야기 했습니다만...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사람이 자신주변의 영향으로부터 크게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5-25 22:14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 님 통찰에 공감합니다. 더욱이 우리도 그 오랜 옛날 중세 이념에 자유로운지도 새삼 궁금할 때가 많습니다.

겨울호랑이 2020-05-25 22:28   좋아요 1 | URL
제 개인 생각입니다만, 우리 뇌 구조가 북다이제스터님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생명체가 진화하면서 간뇌에서 대뇌가 발달하는 구조가 되었던 것처럼, 과거의 사상이 영향력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함께 공존하지 않나 싶습니다. ‘간뇌‘를 양서류나 파충류의 뇌라고 놀리듯이 말하지만, 간뇌의 기능을 대신하는 대뇌의 부분이 없는 것처럼, 문명의 결과는 우리가 의식하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우리 자신이 되지 않았을까 짚어 봅니다..^^:)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내주신 문제 덕분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5-25 22:36   좋아요 1 | URL
이름이 ‘서연’이었던가요? 죄송합니다. 자주 불러보지 않으니 기억이 가물가물... 죄송합니다. 아무튼 자전거 타는 사진 뒷태만 봐도 이젠 어여튼 숙녀네요. ^^

겨울호랑이 2020-05-25 22:39   좋아요 1 | URL
^^:) 연의입니다. 아닙니다, 흔한 이름이 아니라서 친척들도 어려워합니다. 연의가 크는 것에 비례해서 저는 늙어감을 느낍니다 ㅋ 북다이제스터님 감사합니다!

2020-06-06 12: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6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