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
데이비드 로버트슨.빌 브린 지음, 김태훈 옮김 / 해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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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레고는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는 블록 기반의 완구회사 레고(LEGO)가 2000년대 디지털 시대를 맞아 변화하지 못하고 파산의 위기에서 어떻게 부활했는가를 그리고 있다. MBA 교수인 저자는 레고의 성공적인 변신 이유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에서 찾는다. 창의적 인재 고용, 비전 공유 등 경영학 책에서 강조하는 수많은 혁신을 통해 레고가 새롭게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이 책의 결론이다. 정말 그럴까?

잠시 이야기를 돌려 소비자의 입장에서 LEGO 블록을 바라보자. 딸아이와 함께 [레고 프렌즈] 시리즈 41335를 함께 조립하게 되었다. [레고 프렌즈] 시리즈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듀플로 duplo]시리즈를 제외하고는 매우 쉬운 단계의 블록이다. 때문에, 과거 레고 [흑룡성] 을 조립한 경험을 바탕으로 손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판이었음을 오래지 않아 깨달았다. 같은 레고 였지만 1990년대 이전의 레고 블록과 요즘의 블록은 분명 달랐다. 블록 모양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다르다는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그 원인이 ‘개별 블록의 호완성 약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기억의 블록에 비해 연의의 [프렌즈] 블록은 그 크기가 작고, 더 정밀해졌고, 더 다양한 색상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같은 구조물을 만들더라도 더 많은 부품을 사용하게 된다. 형형색색의 수많은 부품이 조립설명서에 따라 정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개체를 만드는 것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너무도 잘 조직된 블록을 보면 감히 다른 것으로 만들 엄두를 못내게 된다. 반면, 과거에 내가 만든 레고 블록은 색상도 단순했고, 부품 모양도 단순하여 다른 모양으로의 변환이 쉬웠기에, 수많은 변형 작품이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립설명서에 의해 엄격히 통제된 창의성. 이것이 레고 혁신의 결과라 생각된다.

문제는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레고 블록은 그 자체로 완결된 작품이 된다는데 있다. 본래 블록 완구의 특성이 개별 블록의 다양한 조합으로 무한대에 가까운(블록 개수가 많다면) 작품이 나오게 되지만, 구조화된 틀에 최적화된 부품으로 어렵게 만들어낸 작품이다 보니, 만들어 놓은 작품을 부술 엄두를 못내게 된다. 다시 만든다고 해도 조립설명서를 넘어설 작품을 만들 자신이 없기에 결국 레고 블록 41335는 완성과 함께 피규어(Figure)가 되어버리고, 소비자는 이제 새로운 제품을 구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소비자 입장에서 바라본 레고 혁신의 결과는 이렇다. 여기에 레고는 마블(Marvel), DC를 비롯한 영화, 비디오 게임의 캐릭터도 제품으로 내놓고 있으니, 레고 마니아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인재영입, 비전공유 등은 MS(market share), 이익창출의 수단이며 과정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끌어내는가가 경영학의 궁극적 목적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레고는 어떻게 무너진 블록을 다시 쌓았나>에서는 레고의 과감한 경영혁신이 레고의 부흥을 일으켰다고 주장하지만, 이론이 아닌 제품을 통해서 바라본다면 제품의 복잡화를 통해 소비자에게 더 많은 지출을 강요한 결과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강요가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전문화되고 인력의 대체가 어렵게 되었다는 우리 현실의 은유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레고 구조물을 이루는 블록 하나하나가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꺼내본다..

PS. 조립 도중 딴 생각을 하느라 채 조립을 끝마치지 못했다. 내일 딸아이와 다시 머리를 맞대고 부품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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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1 2020-03-12 09: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구 좋아하는데 완성과 함께 피규어가 되어버린다는 것 너무 공감가네요 ㅜㅋㅋ 뿌듯함은 줄지 몰라도 블럭을 재료로 창조성을 뻗긴 힘들어서 아쉬워요. 계속해서 새 제품을 구입해야 하는것도..

겨울호랑이 2020-03-12 10:03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블록 완구의 특성이 개별 유닛을 활용해 창의적인 모양을 만드는 것인데, 레고의 변신은 이러한 부분을 없애버린 듯 합니다. 물론, 작은 조각으로 섬세한 예술품을 만들 수는 있겠으나, 전문가의 손으로 가능할 뿐 일반인에게는 다가가기 어렵네요. oneday_jung님 감사합니다. 건강한 하루 되세요!^^:)

레삭매냐 2020-03-12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레고 지옥 ~~~

오늘도 바닥에 굴러 다니는 레고 조각
들을 치우고 출근했습니다.

집에 가서도 치워야 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3-12 11:13   좋아요 0 | URL
레고를 한 번 만들고 나면 부수기 어려운 이유중 하나가 블록 크기가 많이 작아져 분실의 위험이 큰 것이라 생각됩니다. 집안 곳곳에 돌아다니는 레고 조각들을 보면 피규어 상태로 두는 것이 여러모로 좋아 보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