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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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반야바라밀다심경 大般若波羅蜜多心經>의 핵심을 담고 있는 <반야심경 般若心經>. 불자(佛子)가 아닌 가톨릭 신자로서 불교 경전을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부처님의 자비를 사랑으로 어렴풋하게 이해하는 마음으로 비춰보면 대강의 느낌을 짐작한다. <신약성경>에서 4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제외한 내용이 바오로의 편지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부처님 이후의 보살의 말씀이 더해지면서 대승불교가 성립되었고, 많은 이들이 스스로 깨달음(自覺)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성령(聖靈)의 인도로 하느님께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발견한다.

대승불교는 이미 싯달타의 가르침을 준수하겠다는 사람들의 종교가 아닌, 보살들, 즉 스스로 싯달타가 되겠다고 갈망하는 보살들의 종교입니다. 자각의 종교이지 신앙의 종교가 아닙니다. ˝자리리타 自利利他˝, ˝자각각타 自覺覺他˝(스스로 깨우침으로써 타인을 깨우침)의 목표를 제1의 목표로 삼습니다. 철저히 구도의 과정이 사회적 관계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p177)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부처님의 말씀이 아닌 후대에 등장한 보살의 말씀으로 지고의 경전이 성립했다? 이것이 바로 대승경전의 특징입니다.... 보살이 성문 聲聞을 가리친다! 이것이 바로 대승의 정신이지요.(p202)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반야심경 般若心經>은 철두철미한 ˝무 無의 철학˝입니다. ˝공 空이다˝라는 규정성조차도 부정해버리는 철두철미한 부정의 논리이지요.(p222)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마지막으로, <반야심경>의 반야바라밀다의 주문 안에서, <영광송>의 의미를 발견한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복잡한 계율(戒律)과 유대교의 율법(Mosaic Law)에서 민중을 벗어나게 한 것이 대승불교와 초대 기독교 공동체의 통하는 바였음을 <반야심경> 안에서 확인하게 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揭諦揭諦 波羅揭諦) 바라승아제(波羅僧揭諦) 모지사바하(苦提娑婆訶) 건너간 자여 건너간 자여! 피안에 건너간 자여! 피안에 완전히 도달한 자여! 깨달음이여! 평안하소서!(p238) <스무살, 반야심경에 미치다> 中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영광송 Doxology>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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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20-01-30 0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라는 고백이 얼마나 엄청나고 위대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1-30 08:0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반야심경>과 <영광송>의 짧은 문구 안에 담긴 사상(일반 대중들 역시 기도를 할 수 있고, 깨달음과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것)은 종교사에서 위대한 전환이고, 사건이라 여겨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