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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평점 :
움(wom) 1.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라고 분류되는 성(性)의 인간 2. 어떤 성의 인간이든 인간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맨움(manwom)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이라고 분류되는 성(性)의 인간. -새로운 세계, 이갈리아의 용어들 - 中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 1941 ~ )의 <이갈리아의 딸들 Egalia's Daughters: A Satire of the Sexes>을 통해 우리는 성(性)역할이 뒤바뀐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작품에는 여성 중심의 세계에서 주변인의 역할에 머무르는 남성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맨움해방주의자의 입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의 이야기가 표현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로 남성들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미러링(mirroring)을 통한 문제 제기를 효과적으로 살린 작품이다. 반면, 작품의 초점이 성(性)에 맞춰져 있는 부분은 작품의 한계로 느껴진다. 사회의 문제는 서로 얽혀 있어 이들간의 상관(Correlation)관계를 무시하고 말하기는 어렵다. 성문제, 세대 문제, 빈부, 계층 간의 문제를 따로 떨어뜨려 놓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성을 제외한 나머지 요인들은 상수(常數)로 한정된다.
성 정체성은 계급 정체성보다 훨씬 더 중요해... 노동자 계급이 억압받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보다 맨움이 억압받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 훨씬 더 지독하고 극단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성적 억압이 계급 억압보다 훨씬 더 지독하고 극심하기 때문일 거야.(p247) <이갈리아의 딸들> 중
결국,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性)역할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전개되고, 이갈리아 세계는 성역할을 축(軸)으로 한 현실세계의 데칼코마니(Decalcomanie)다. 성(sex)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거의 현실과 동일하기에, 우리는 현실의 남성(man)의 모습을 움(wom)에서, 여성(woman)의 모습을 맨움(manwom)에서 거의 그대로 발견한다.
이러한 점은 미러링을 극대화시키는 효과가 있지만, 한계 또한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갈리아 국회에서 논의되는 내용과 처방은 현실과 큰 차이가 없다.
노동시장의 상황이 불안정했다. 출생률은 떨어졌고 이것은 지속적인 노동력 감소를 의미했다. 게다가 젊은 세대들은 초봉 인상과 교육 보조금 인상, 연금 인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마치 현재의 임신 수당이 부족하다는 듯이 임신 수당도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의회에서는 논쟁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처음으로 노동시장에 들어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임금을 더 낮출 것을 결정했다.(p63) <이갈리아의 딸들> 중
불안한 노동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취하는 정책은 현실의 자본주의 세계, 신자본주의 처방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같은 Ceteris paribus(other things being equal)과 같은 상황. 이는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지만, 새로운 세계의 비전이 담기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만일, <이갈리아의 딸들>안에 현대 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여러가지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었다면 어땠을까. 지속가능한 체제를 가동시키는 이상국가 이갈리아. 이갈리아의 어원이 평등주의(egalitarian)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러한 대안 제시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사뭇 아쉽게 느껴진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1977년임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내 생각 또한 욕심일 것이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성역할 전환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로부터 느껴지는 불편함은 단순한 역전된 성관계에서 오는 억울함이 아닌 불평등에 대한 인류의 공통된 감정이어야 할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