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桓檀古記>는 계연수(桂延壽, ? ~ 1920)가 1911년 간행한 것으로 알려진 책이지만, 정통사학계에서는 이를 위서(僞書)로 판단하고 있어 역사사료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환(한)단고기>와 인연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8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중학생이었던 당시 <단 丹>과 함께 흥미롭게 읽었던 책으로 <환단고기>를 기억한다. 소설 <단 丹>도 역시 인상적인 소설이었는데, 특히 소련연방 해체 전에 이를 예언(?)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한단고기>는 강대한 우리 조상들의 역사가 담겨 있어 흥분하며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최근 <환단고기>를 다시 읽을 기회가 있어 다시 읽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환단고기>는 벅찬 감동 대신 몇 가지 의문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환단고기>를 읽으면서 전에 읽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충격을 몇몇 대목에서 받았다. <환단고기>의 목적성이라고 해야할까. 역사서로서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안에 담긴 목적이 너무도 뚜렷하기에, 책을 읽기 많이 어려웠다. 그 중 한 대목을 살펴보자. 


於阿 於阿여 

我等百百千千人이 皆大弓堅勁同心하니 倍達國光榮이로다.

百百千千年의 大恩德은

我等大祖神이로다.

我等大祖神이로다.


어아어아

백백천천 우리모두 큰 활처럼 하나되어

굳세게 한마음 되니 배달나라 영광이로세

백백천천 오랜 세월 크나큰 은덕이시여!

우리 대조신이로세.

우리 대조신이로세.<檀君世紀> 中(p105)


 천조대신(天祖大御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을 연상하게 만드는 대조신(大祖神)이라는 단어에서 내선일체(内鮮一体)를 표방한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이 떠올랐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일본인과 함께 아마테라스를 조상신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의 노래를 통해 전율을 느꼈는데, 역자의 주(註)는 나의 생각이 지나친 공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환국의 일곱 분(7세) 환인과 일본 창세기의 족보


<일본서기 日本書紀>와 <고사기 古事記>에 일본 건국신화의 신이 7세(대)로 되어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일본 창세기의 신세 7대는 환국의 7세 환인과 유사성이 크다. 일본 역사는 우리 조상들이 건너가 세운 기록이기 때문에 일본의 창세기에서도 인류의 종주 민족인 한민족의 뿌리 역사가 당연히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桓國本紀> 註 中(p346)


그리고, 12환국과 그 위치를 알려주는 <환국본기 桓國本紀>의 내용 안에서 '국(國)'의 사용이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天海以東之地를 亦稱波奈留國也라

基地廣이 南北五萬里오 東西二萬餘里니 摠言桓國이오 


천해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부르는데, 그 땅의 넓이가 남북으로 5만 리요 동서로 2만여리이다. 이 땅을 모두 합하여 말하면 환국이오. <桓國本紀> 中(p340)


  '國'이라는 단어는 한자 사전에 의하면 회의(會意)이며. 갑골문(甲骨文)에는 마을을 본뜬 글자에 창을 뜻하는 과(戈)가 결합하여, 무장한 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환국이 오래되었다면, 갑골문이 형성된 시기이거나 또는 그보다 이른 시기에 존재했을텐데. 국(國)의 의미가 마을 또는 도시 정도의 규모를 넘지 않음에도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의 영토를 가진 나라를 같은 뜻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환단고기>에는 이에 대한 반박 또한 실려있다. 근대에 이르러 사용된 용어가 혼용(混用)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만일 그렇다고 해도 <환단고기>가 위서임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환단고기>p102 참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논거의 타당성에 대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의심을 거둘 정도의 설명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환단고기>가 만약 위조되었다고 하다면 무슨 의도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 환단고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이 일제(日帝)강점기라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같은 시기 중국에서 등장한 <이하동서설 夷夏東西設>을 놓고 함께 바라본다면 어느 정도 의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1933년 푸쓰녠(傅斯年, 1896 ~ 1950)에 의해 주장된 하상이원론(夏商二元論)에 따르면 역사 속의 하(夏)나라와 상(商, 은 殷)나라는 다른 민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들이다. 푸쓰녠은 하나라는 서쪽의 화하족(華夏族)에 의해서, 상(은)나라는 동쪽의 동이족(東夷族)에 세워졌으며, 중국문명은 이러한 상이한 두 민족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주장인데, 현재는 퇴조한 사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하동서설>은 이러한 푸쓰녠의 사상이 담긴 책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하동서설>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문적인 내용은  학자들의 몫이겠지만, 이 주장이 나온 1930년대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으로 일본 관동군이 만주(滿州)를 침략해 이듬해인 1932년 만주국(滿州國)을 세우게 된다. 대륙침략의 야욕이 드러난 이 시기에, '이하동서설'이 나온 것이다. 동쪽의 오랑캐와 중원 민족의 다툼이 193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있었다. 그러니, '중화민족이여 깨어나라!'라는 목소리가 '이하동서설'에 전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도] 만주사변(출처 : http://crisissome.blogspot.com/2016/03/manchurian-incident-and-manchukuo.html)


 이와 대칭적으로, <환단고기>에서는 몽골-만주-조선-일본의 대동이(大東夷)가 환국(桓國)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중국 왕조를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는 내용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역사적 기원이 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여겨진다. 그렇게 본다면, <이하동서설>과 <환단고기>는 20세기 민족주의(民族主義) 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일종의 어용(御用) 사학이 아니었을까.


 <이하동서설>과 <환단고기>의 내용을 실증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말하기 어려우나 이들 책이 나온 시점은 그 의도가 불순하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여겨진다. 


 사람은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해왔다. 그리고, 역사(歷史)는 부족함이 많은 인류(人類)의 기록이다. 때문에, 마치 수험생들의 기출문제처럼 우리는 역사 속의 교훈을 통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찾는 것이고, 이것이 '과거와 미래의 대화'의 진정한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끄러운 역사와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부끄러운 자신 또는 역사의 교훈을 깨달은 똑똑한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현세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역사의 왜곡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며, <이하동서설>과 <환단고기>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吾桓建國이 最古라. 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삼성기전  상 三聖紀全 上>(p17)


 <환단고기>이 일부인 <삼성기전  상 三聖紀全 上>의 첫 문장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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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wurself 2021-03-23 17: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쪽에서 동이라는말은 대륙안에서의 동쪽한반도와만주간도 등 그 위치쪽에서 살고 활약했던 사람들 즉 한국쪽을 의미하지 애초에 대륙에 있지도 않은 일본은 포함되지 않으니 대동이를 그렇게 보는 것 자체가 이후대동아공영권이라는 헛소리를 한 일본의 생각을 대변해 주는 것이고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삼국시대 사신들의벽화에서만 봐도 최대의 문명국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삼국의 사신들과는 달리 왜는 신발조차 없는 맨발의 후진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위대한 문명을 가진 동이족이었다고 묘사된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우리 삼국쪽에서 왜에게 문화와문명을 전수해 주었으니 더더욱이나 일본은 동이국에 속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대륙문명과는 무관합니다. 중국등의 역사서는 중국문명 위주로 쓰이고 타민족의 역사는 의도적으로 삭제축소시키거나 실존이 아닌 것으로 신화화했다고 많은 비판을 받았고, 일제에 의해서 우리 고역사서는 거의다 소멸되고 단군마저 없는 역사인양 이야기수준으로 만들어버렸는데 그나마 현존하는 우리의 역사서를 일부의퍼센트로위서판명운운하며 폄하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오히려 역사연구의 실마리로 삼고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더욱 적극적으로파고들어 고증보완하고 조상들의 대륙에서의 발생과활약들을 제대로 연구하여 후대에 소중하게 남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사족이긴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일본키티캐릭터라니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웃음이나는군요..

겨울호랑이 2021-03-22 12:57   좋아요 0 | URL
먼저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답을 남겨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white님께서 남겨주신 글의 요점은 1) 일본은 동이족이 아니다. 2) 환단고기는 위서가 아니다 3) 일본 캐릭터인 헬로키티를 프로필 사진으로 쓰면서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을 하지 마라. 로 정리될 수 있을 듯 합니다. 먼저, 2) 환단고기가 위서가 아니다 ->이 주장은 white님의 주장이고, 위서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입니다. 이는 white님의 인정 여부와는 관련이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근거를 원하시면, white님께서 직접 찾아보시면 어렵지 않게 위서의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만약, 이와 관련된 반론이 있으시다면 비전문가인 제가 아닌 역사학계에 반론제기를 추천드립니다. 1) 일본은 동이족이 아니다. -> 제가 잘못 알고 있지 않다면, 황화와 양자강 사이 중원(中原)이라 부르는 지방 동쪽 민족을 통칭해서 동이(東夷)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이 동이에 포함된다고 보는 편이 보다 더 일반적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물론, 일본 또는 왜(倭)의 기록이 고대에는 나와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은 동이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white님께서는 말씀하시겠습니다만... 정설이 없는 상황에 여러 주장이 난무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이 경우 일본을 동이에서 빼야한다고 말씀하시는 white님의 주장은 역사적 사실이라기 보다는 신념이라 생각되기에 3자인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마지막 3) 헬로키티라는 일본캐릭터를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면서 적절치 않은 말씀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관점의 차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white님께서 프로필 사진을 보고 ‘일본 캐릭터‘라고 보시는 듯 합니다만, 제게는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만든 틱톡블록‘ 입니다. 이 정도면 3)에 대한 답변으로 충분하다 여겨집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white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담긴 책과 논문 등을 알려주시면 기쁜 마음으로 제 부족한 점을 채우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

2021-03-22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22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knowurself 2021-03-23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님의 타인의 말을 1.2.3번으로 일축시켜버리고 특히 사족이라 밝힌 단순 느낌을 솔직히 표현한 3을 보고 타인의 말을 님 뜻대로 왜곡하는 솜씨를 잘 보았고 이로써 친절하게 말씀하시는 듯 하나 일면으로는 식민주의역사관을펼치는 사람들처럼 뒷받침도없이 강한 일방향의 주장을 하심으로 역시 처음의 찜찜한 느낌이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환단고기는 일부의 내용에위서논란이 있었으나 식민사관역사학자들이 아니라면 모두에게 위서판명이 난 역사서가 아닙니다. 특히 당시 왜가 동이가 아닌 이유는 다양한 역사서에서 증명하고 있고 하나의 예만 들어 보더라도 뚜렷이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중국을 대표하는 강은 양자강과 황하이다. 양자강 남부를 고대 중국인들은 월(越)이라 부르면서 자신들과는 다른 민족이 사는 땅으로 간주했다. 중국인들도 자신들의 발상지는 황하이므로 일반적으로 염황족 또는 화하족으로 불렀다. 그러므로 양자강 남쪽의 오늘날 절강성 일대는 화하족의 손이 미치지 않는 땅이므로 ‘백월(百越)’ 또는 ‘백오(百奧)’라고도 불렀다. 이는 중국 중원에서 볼 때 너무 멀고 외지라는 뜻이다. 중국과 다르다고 중국인조차 인정한 월족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중국 학계조차 이견이 많은데 가장 근접한 대답은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고 이들 풍습은 중국의 화하족과는 생활습관이나 언어, 문화 등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하튼 월족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월족의 조상으로 황하의 홍수를 다스렸다는 우(禹)의 후손이라는 설명이 사마천이 쓴 월왕구천세가에 나온다. ‘월왕 구천의 조상은 우의 후예이며 하왕조의 후제 소강의 아들로서 회계(會稽)에 봉해져 우의 사당을 지켜왔다.’ - 우리나라에 있는 우씨는 하나라 우임금의 후손이며 동이족이 세운 중국최초의 국가 하나라는 후에 갑골문자 등을 만든 은나라로 이어집니다. 우씨 자체를 한자로 찾아보면 하나라 우임금의 후손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임금우 하우씨우를 씁니다. 이 역사에 비교 문명이랄 것도 없었던 왜나라가 들어갈 여지는 없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연구에 참가한 다른 유적으로도 그 증거를 밝힐 수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21-03-23 08:16   좋아요 0 | URL
글을 읽다보니, 한 가지 의문점이 들어 여쭤봅니다. 오(吳) 월(越) 지역이면 동쪽 보다는 오히려 남만(南蠻)에 가깝지 않을까요? white님의 말씀대로라면 고대 중국에서 ‘남만‘이라고 불렀던 민족들도, 동이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인지요? 또한 <환단고기>의 내용대로라면, 주나라를 위협하여 낙읍으로 천도시킨 서융(西戎) 또한 대제국의 일부이며, 북적(北狄)이라 불리는 민족 또한 여기에 포함되겠지요. white님의 말씀대로 황하 지역 인근이 모두 하나의 제국이었다면, 이와 같이 중국어에 이와 같은 언어가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제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이들이 서로 다른 민족 또는 집단이었기 때문에 다른 표현이 남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환제국 안에 12개 연방이 구성되고 고대 수메르 문명 또한 수밀이 왕국으로 제국의 일부라는 <환단고기>의 세계관 내에서는 황하 유역 바깥은 모두 하나의 제국으로 표현됩니다. white님께서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자료나 공인된 책을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일방적인 주장이 아닌 객관적인 근거를 부탁드립니다.

knowurself 2021-03-22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기자는 중국 남방 지역의 월족과 한국인이 같은 부류라고 추정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목했다. 우선 고인돌이 한국인과 월족과의 유대 관계를 설명해주는 실마리가 된다고 설명했다. 고인돌은 세계의 3분의 2가 한반도와 만주를 포함하는 지역에 분포되어 있어 동이족의 대표적인 유산이다. 특히 동이족의 고인돌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대부분의 경우 대형 고인돌이 중앙에 있고 그 주위에 소형 고인돌이 분포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학자들은 고인돌 1톤을 옮기는 데 약 10명의 장정이 필요하다고 계산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인돌의 상판만 해도 200톤이 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고인돌을 세울 당시에 2천여 명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에 2천명을 동원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집단이라고 볼 수 있다. 고인돌을 고고사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고인돌에부장품이없더라도 청동기로인정한다는데있다. 학자들은 청동기에 들어서서 비로소 국가라는 구조 형태가 성립될 수 있다고 인정한다. 고인돌을 만들기 위해 장정 2천명을 동원하기 위해서는 초보적인 위계질서나 제도가 갖추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인돌의 건립 상한선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전역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는 고인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려 5∼6천 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는 동이족이 중국의 화하족과는 전혀 다른 문명을 독자적으로 영위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일본에서는 2016년에나 와서야 작은탁자형태 고조선식 고인돌이 발견되었는데 이런 일본을 역사기록과도 다르게 동이족에 포함시키려는 님은 어떤 역사관을 지니신 것인지? 일본의 고조선식 고인돌은 학계에서 한반도의 문명이 전달된 증거로 평가되고 있으며 따라서 님이 우기고 싶건 아니건 이들이 동이족이라는 주장 또한 황당한 주장이 됩니다. 이런 2016년에 발견됐다는 고인돌마저 처음에는 의혹의 눈초리로 보아졌는데 그 이유는, 일본이 구석기문명을 통째로 위조하려고 고고학자와 함께 역사교과서에 역사를 실어온것이 가짜로 들통난 엄청난 사건이 있죠. 혹시 고대사의 문명자체가 일천하여 자신의 나라에 없는 구석기시대와 유적을 위조해서 교과서에 싣다가 들통난 후지무라신이치와 그 나라 심각한 역사왜곡을 옹호하고 우리의 역사를 폄하하는 그런 분은 아니시죠? 이게 20세기인 1999년에 있었던 일인데 이런 일본이라는 나라가 식민제국주의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는 얼마나버리고 왜곡했을지? 딸의 작은 선물도 큰 의미로 간직하시는 분께서 설마 국적 한국인이라면 나라의 장구한 역사를 폄하하는 그런 분은 아니시기를. 식민주의시대의 심각하게 왜곡되고수정된역사는 모두 제대로 쓰여져야 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3-23 08:02   좋아요 0 | URL
white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어느 부분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주장의 근거는 김상태의 <한국 고대사와 그 역적들>이라는 책에 쉽게 잘 정리되어 있으니 확인하시면 되겠습니다. white님께서 역사 전문가라고 하신다면 저와 같은 비전문가와 소모적인 논쟁을 벌이는 편보다 학계 전문가들과 직접 논쟁을 하시면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을 주셨습니다만, 저는 white님께서 쓰신 근거의 출처가 궁굼해집니다. 사마천의 <월왕구천가> 짧은 인용문 뒤에 붙은 긴 수식어의 출처가 믿을만한 근거인지에 대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 근거가 믿을만하다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받아들일 ‘진실’이 되겠지요. 앞서 글에서 밝혔듯 저는 <환단고기>는 위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고대사에 대해서 왜곡된 부분이 많다는 것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고대사를 다시 들여다 볼 필요는 분명 있지만, 그 길이 <환단고기>는 아니라 여겨지네요. 개인적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 윤내현 교수의 주장에 상당 부분 공감합니다.

white님의 글을 읽고 나서 님의 서재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이후 일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white님께서는 제 서재의 다른 글을 읽어보셨는지요. 글이 많다면 제가 요즘 쓰고 있는 3.1 운동 100년 관련 리뷰를 읽으셨는지 궁금해집니다. 오늘도 이와 관련한 글을 올렸습니다. 그 안에 식민지 근대화론과 관련한 제 생각도 담았습니다만, 제가 식민사관론자가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제게 역사왜곡을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왜곡인지 white님이 기억하고 싶은 사실과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봅니다. 제게 white님의 주장의 근거를 댓글이 아닌 생각의 근거가 되는 책을 알려주세요. 그리고, 그 책을 통해 white님의 역사관을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knowurself 2021-03-23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탄생정벌이동융성 등 다양한 역사가 펼쳐졌던 고대사에서한지역으로 국한시키거나 한가지 서적으로 모든 걸 말할수 있을까요? 님은 식민주의역사관을 옹호하는 분은 아니시겠지만 증거를 말해도 동이에 계속해서 왜를포함시키며 우기시는 것과 큰 증거보다 작은 사안으로 걸고넘어지는 모습이 항상 그래왔던 숫자하나라도 틀리면 그것봐라거짓이다전쟁범죄는없었다고 말하는 일본극우들의공식이 떠올려졌습니다. 역사서에 대해서 전문 역사가들하고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건 아니며 소모적이라 생각하시는 것은 님 주장에는 틀린부분이 없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아 소모적이라 생각하시는 게 아닐지. 님의 생각에도 오류가 있다면 바꾸어야 님께서 말씀하시는 우리 고대사에 대한 왜곡이 많았다고 인정하신 부분이 진심에서 하신 말씀이 될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동이족은 중국동북쪽에 살고 있었던 우리조상들을 지칭한다는 것이 많은 역사서에서의 주류이며 동이족의 초기거주지는 중국 황화하류 산해관이남 지역이었고 한반도지역으로 점차 이동한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중국 후한시대 설문해자에서는 동이의 이가 큰활과 관련되었다고 밝히고 있어 과거부터 활을잘다루어온 우리민족임이었음을 확인시켜줍니다. 동북공정을찬성하지않는 중국학자들마저도 자신들 본류로 여기는 화하의 문화보다 동이족의 문화가 우수했으며 한자의 유래 또한 동이족의 문화로부터 유래하였다고 보았습니다. 대만학자인 서량지교수는 한민족은 중국보다 더오래된역사를가진 민족으로 문자를창제한 민족인데 중국인이 한민족역사가기록된 포박자를감추고 중국역사로조작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저는 님이 역사왜곡을 했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님께서 타인의 말을 본인 의도대로 123으로 일축하여 왜곡하심에 대한 부분을 지적하였고, 그 배경에는 님께서 말씀하셨듯 제리뷰가 일본에 대해서 부정적이라는 본인의 판단에 있다고 봅니다. 부정적이라 하셨는데 잘못된 식민사관학자에 대한 비판과 일본관련 책을 읽고 열악한 내용들 혹은 무분별하게 남발하는 일본어포함 외래어에 대해 비판하면 일본에 부정적인 것인가요? 읽어볼 가치조차 없는 매국역사왜곡의 책을 제외하고 부정적이기만 했다면 애초에 그런 책들을 사서 읽어보았을까요? 아베와극우일본이 실체를 드러내기 전까지는 일본인 지인들도 있었고 아무리 과거식민역사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거이고 양국의 관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입장에서 일본에 대해서는 중립의 입장이었으나 일본에 대해서 그 실체를 알면 알수록 심각한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보다 과거부터현재까지 도가 넘치는 혐한과 고대 문화전수를 해준 민족에게 침략식민지시대 하나로 말도 안되는 열등민족으로 비하하는 생각이 일본인들의 저변에 기본적으로 깔려있고 산업계로도 외교적으로도 공격을 계속해왔는데 거기에 비판하지 않고 경각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한국인들은 너무 관대하거나 멍청한것이 되지않을지? 이런저런 이야기는 다 차치하고서라도 구석기시대 유적까지 조작하여 그들의 역사교과서에 실어오다가 탄로나니 한개인의 일탈식으로 무마시켜버린 그런 일본이 아무리 조작하려해도 고대문명의고인돌까지는 조작을 하려야 할수 없으며 동이족에 왜는 포함되지않는다가 최종 결론입니다. 님이 왜를 동이족본류에 포함시키는 한 더 이상 대화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고 님 말씀처럼 소모전일뿐이군요. 님께서 적어도 역사연구에 대해 대체로 중립적이거나 민족주의역사관에 더 관심을 보이시는 분이라면 식민사관역사관에대해서 비판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일견 일치되는 부분이 있을거라는 약간의 희망적인 생각을 해보면서 그만 마치겠습니다. 좋은하루 보내시기를.

겨울호랑이 2021-03-23 21:09   좋아요 0 | URL
white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와 가장 큰 인식의 차이가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white님께서는 ‘동이 東夷‘를 현재 우리 민족으로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저는 ‘동이‘를 하나의 민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중국 동쪽의 여러 민족의 총칭이라고 생각합니다.white님과 제 생각의 차이는 ‘동이‘를 고유명사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일반명사로 받아들이는가의 차이라 여겨지네요. 사실, 제 생각이라기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학설이라는 편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동이‘를 어느 범주까지 보느냐부터 white님과 차이가 있다보니 제 입장에서도 소모적인 논쟁이라고 여겨집니다. 저는 ‘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보편적이고 받아들여지는 사실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실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을 때 역사관이 세워지고, 역사관을 바탕으로 바른 정신이 자리잡는다고 생각합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열등의식을 주입하는 식민사관도 경계해야 하지만, 같은 정도로 민족의 영광을 강조하는 역사관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환단고기>에 담긴 사관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영광스러운 역사를 거부할 이유는 없지만, 그러한 영광이 근거없는 자화자찬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바른 역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white 님만큼 제가 고대사를 공부하지는 못했겠지만, 저도 다물총서 시리즈,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대동이>, <맥이> 등을 안 읽어본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일방적인 주장만 있고 또한 책들마다 주장도 서로 상이하기에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때문에, 제 생각이 잘 못되었다면 이와 관련된 서적 또는 고고학적 근거등을 알려주신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말씀을 드린 것 뿐입니다.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white님 좋은 저녁 시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