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桓檀古記>는 계연수(桂延壽, ? ~ 1920)가 1911년 간행한 것으로 알려진 책이지만, 정통사학계에서는 이를 위서(僞書)로 판단하고 있어 역사사료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환(한)단고기>와 인연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988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중학생이었던 당시 <단 丹>과 함께 흥미롭게 읽었던 책으로 <환단고기>를 기억한다. 소설 <단 丹>도 역시 인상적인 소설이었는데, 특히 소련연방 해체 전에 이를 예언(?)한 내용이 담겨 있어서, <한단고기>는 강대한 우리 조상들의 역사가 담겨 있어 흥분하며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최근 <환단고기>를 다시 읽을 기회가 있어 다시 읽었지만, 예전과는 달리 <환단고기>는 벅찬 감동 대신 몇 가지 의문을 내게 주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환단고기>를 읽으면서 전에 읽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충격을 몇몇 대목에서 받았다. <환단고기>의 목적성이라고 해야할까. 역사서로서의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안에 담긴 목적이 너무도 뚜렷하기에, 책을 읽기 많이 어려웠다. 그 중 한 대목을 살펴보자.
於阿 於阿여
我等百百千千人이 皆大弓堅勁同心하니 倍達國光榮이로다.
百百千千年의 大恩德은
我等大祖神이로다.
我等大祖神이로다.
어아어아
백백천천 우리모두 큰 활처럼 하나되어
굳세게 한마음 되니 배달나라 영광이로세
백백천천 오랜 세월 크나큰 은덕이시여!
우리 대조신이로세.
우리 대조신이로세.<檀君世紀> 中(p105)
천조대신(天祖大御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을 연상하게 만드는 대조신(大祖神)이라는 단어에서 내선일체(内鮮一体)를 표방한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이 떠올랐다면 지나치게 나간 것일까. 일본인과 함께 아마테라스를 조상신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의 노래를 통해 전율을 느꼈는데, 역자의 주(註)는 나의 생각이 지나친 공상만은 아니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환국의 일곱 분(7세) 환인과 일본 창세기의 족보
<일본서기 日本書紀>와 <고사기 古事記>에 일본 건국신화의 신이 7세(대)로 되어 있음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일본 창세기의 신세 7대는 환국의 7세 환인과 유사성이 크다. 일본 역사는 우리 조상들이 건너가 세운 기록이기 때문에 일본의 창세기에서도 인류의 종주 민족인 한민족의 뿌리 역사가 당연히 그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桓國本紀> 註 中(p346)
그리고, 12환국과 그 위치를 알려주는 <환국본기 桓國本紀>의 내용 안에서 '국(國)'의 사용이 어딘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天海以東之地를 亦稱波奈留國也라
基地廣이 南北五萬里오 東西二萬餘里니 摠言桓國이오
천해 동쪽 땅을 또한 파내류국이라 부르는데, 그 땅의 넓이가 남북으로 5만 리요 동서로 2만여리이다. 이 땅을 모두 합하여 말하면 환국이오. <桓國本紀> 中(p340)
'國'이라는 단어는 한자 사전에 의하면 회의(會意)이며. 갑골문(甲骨文)에는 마을을 본뜬 글자에 창을 뜻하는 과(戈)가 결합하여, 무장한 마을을 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환국이 오래되었다면, 갑골문이 형성된 시기이거나 또는 그보다 이른 시기에 존재했을텐데. 국(國)의 의미가 마을 또는 도시 정도의 규모를 넘지 않음에도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의 영토를 가진 나라를 같은 뜻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환단고기>에는 이에 대한 반박 또한 실려있다. 근대에 이르러 사용된 용어가 혼용(混用)된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며, 만일 그렇다고 해도 <환단고기>가 위서임을 증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환단고기>p102 참조).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논거의 타당성에 대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의심을 거둘 정도의 설명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환단고기>가 만약 위조되었다고 하다면 무슨 의도가 있을까? 이에 대해서 환단고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점이 일제(日帝)강점기라는 상황을 고려해볼 때, 같은 시기 중국에서 등장한 <이하동서설 夷夏東西設>을 놓고 함께 바라본다면 어느 정도 의도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1933년 푸쓰녠(傅斯年, 1896 ~ 1950)에 의해 주장된 하상이원론(夏商二元論)에 따르면 역사 속의 하(夏)나라와 상(商, 은 殷)나라는 다른 민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들이다. 푸쓰녠은 하나라는 서쪽의 화하족(華夏族)에 의해서, 상(은)나라는 동쪽의 동이족(東夷族)에 세워졌으며, 중국문명은 이러한 상이한 두 민족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주장인데, 현재는 퇴조한 사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하동서설>은 이러한 푸쓰녠의 사상이 담긴 책이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하동서설>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전문적인 내용은 학자들의 몫이겠지만, 이 주장이 나온 1930년대에 대해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에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으로 일본 관동군이 만주(滿州)를 침략해 이듬해인 1932년 만주국(滿州國)을 세우게 된다. 대륙침략의 야욕이 드러난 이 시기에, '이하동서설'이 나온 것이다. 동쪽의 오랑캐와 중원 민족의 다툼이 1930년대에 시작된 것이 아니라 고대로부터 있었다. 그러니, '중화민족이여 깨어나라!'라는 목소리가 '이하동서설'에 전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도] 만주사변(출처 : http://crisissome.blogspot.com/2016/03/manchurian-incident-and-manchukuo.html)
이와 대칭적으로, <환단고기>에서는 몽골-만주-조선-일본의 대동이(大東夷)가 환국(桓國)의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중국 왕조를 신민(臣民)으로 삼았다는 내용은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의 역사적 기원이 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다 여겨진다. 그렇게 본다면, <이하동서설>과 <환단고기>는 20세기 민족주의(民族主義) 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일종의 어용(御用) 사학이 아니었을까.
<이하동서설>과 <환단고기>의 내용을 실증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말하기 어려우나 이들 책이 나온 시점은 그 의도가 불순하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여겨진다.
사람은 부족함이 많기 때문에 많은 실수를 해왔다. 그리고, 역사(歷史)는 부족함이 많은 인류(人類)의 기록이다. 때문에, 마치 수험생들의 기출문제처럼 우리는 역사 속의 교훈을 통해 앞으로 나갈 방향을 찾는 것이고, 이것이 '과거와 미래의 대화'의 진정한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부끄러운 역사와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깨닫지 못하는 부끄러운 자신 또는 역사의 교훈을 깨달은 똑똑한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현세의 이기적 목적을 위한 역사의 왜곡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며, <이하동서설>과 <환단고기>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吾桓建國이 最古라. 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 되었다.<삼성기전 상 三聖紀全 上>(p17)
<환단고기>이 일부인 <삼성기전 상 三聖紀全 上>의 첫 문장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