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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의 시간 ㅣ 교유서가 다시, 소설
김이정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9월
평점 :
낯선 이름의 소설이었지만 ‘유령의 시간이라니 도대체 어떤 시간일까?’하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이 책을 집어 들게 했다. 개인적으로 책 리뷰를 남기는 것이 삶의 낙 중에 하나인 사람으로서, 도서 추천이나 이벤트가 있더라도 끌리지 않는 책은 구매하지 않는데 “우리 시대 소중한 문학적 성취 40년 만에 완성한, 잊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는 시간의 유구함이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소설일지 모른다.
방금 전까지 사람이 앉아 있었거나, 여전히 앉아 있지만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이 앉아 있을 것만 같은 표지... 사막 모래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나무 의자와 금방이라도 울먹이며 비를 쏟을 것 같지만 의자를 옮겨 앉으면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회색빛 구름, 그 옆으로 빗겨 짜 놓은 물감인지 굳어버린 말똥인지 알 수 없는 형체의 검은 무언가도 형이상학적 추상화를 떠올리며 소설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데 한몫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처음 들어보는 등장인물들의 낯선 이름이 많아서 누가 누군지도 구분이 잘 안 되어 연신 다시 앞 장으로 넘겨 보거나 번역의 요상함 때문인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소설은 ‘이걸 왜 산 걸까.’하며 하품이 쏟아지기 딱 좋지만, 작가가 경험한 지방이 어디 어디일까 궁금해지는 사투리들과 일본에서 온 가짜(?) 고모의 아이들로부터 시작해서 낯선 이름들이 쏟아지는 소설임에도 선명히 기억되는 각각의 등장인물과 술술 읽히는 글 묘사, 가속도로 시간을 넘나드는 흥미로운 내용 전개로 딴생각을 할 새 없이 읽은 소설이었다.
포동포동하고 웃음기 가득했던, 집안에서 가장 어린아이 지우의 죽음으로 돌연한 사라짐의 슬픔을 다룬 부분에서는 어떤 장면이 떠올라 눈물이 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한반도의 평화를 통한 한민족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했을 때 일어날 미래에 대한 경고처럼 느껴졌다... 이 땅에서 벌어진 잔인한 식민지배와 해방 그 이후 전국적으로 국민들이 원치 않았던 신탁통치를 통한 남북 분단이 남북전쟁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이었음에도, 김일성, 김정일의 사후에도 여전히 지속돼 온 정치적 이유에서의 이념 논란은 날아다니는 택시를 개발하고 있다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자신들의 부패를 막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인지 더 심각하게 국민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작가는 김일성을 욕하는 아버지와 장기 집권을 위한 독재를 위해 시민들을 깔아뭉개 온 독재를 비판하는 사회 선생님의 분노에 혼란스러워하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어느 쪽이 옳다는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았지만, 어떤 쪽이든 잘못은 비판하더라도 이 땅에서의 전쟁은 절대 용인할 수 없고 한반도의 평화를 사수해야 함에도 아직까지 일본의 잘못을 욕하면 친중이라거나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면 빨갱이라는 이념 논쟁은 지리멸렬함을 넘어 우리나라는 앞으로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 있다.
“엄마, 아파. 아파. 아파...”
돌연 사라져버린 지우의 마지막 음성 ‘아프다’는 물리적인 신체와 관련된 아픔 외에도 정신적 괴로움에 해당하는 아픔도 해당되는데 한반도가 그간 겪어온 아픔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살고 있는 남-북한 국민들 모두가 과거사로 인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직까지도 겪고 있는 육체적, 신체적 불안감과 괴로움을 가장 잘 표현할 단어는 “아프다”라고 느껴졌다...
그것이 잠시 잠깐의 쇼(?)였대도 남북의 정상들이 꼭 가보고 싶은 백두산에까지 올라 백록담의 물과 한라산 천지의 물을 나누어 담고 함박웃음의 사진을 찍었던 찰나의 해빙기는 온데간데없이, 옆 나라의 전쟁 특수로 호황을 누렸던 가깝지만 먼 나라보다 못한 섬나라의 방해로 이웃의 평화를 뜻하는 종전선언마저도 반대하는 그런 이웃도 이웃이라고 돈 로비로 휘둘리고 있는 인간들이라니... 그들도 정치적 반공을 위해 더욱 심각한 괴물로 묘사된 간첩이나 다름없는 자들일 것이다.
유령은 “뭐든지 뜨거운 마음으로 해야 돼.”라고 삶에서 의무감이 아닌 온 마음을 다 바쳐야 한다는 교훈을 남기고 떠나간 소설 속 아버지 이섭이 아니라, 타국의 설경이 아름답다며 홋카이도는 극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한반도가 하나가 되었을 때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의 일출”과 “백두산 자생식물인 노란 두메양귀비”와 같은 천상의 아름다움을 하나된 나라의 한민족을 이루어 자랑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미래의 불안감을 품은 채 이념 논쟁의 희생양이 되어 서로 싸우도록 조종당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 모두가 유령이며 헛된 유령의 시간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