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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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하나는 유럽 국가들이 재편을 맡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왕조, 국가, 정치시스템만 구축해놓고 그것들이 지속될 수 있는 대책 마련에는 소홀한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1914 ~ 1922년 사이 영국과 연합국이 취한 조치는 유럽의 중동문제만 종식시켰을 뿐, 중동의 중동문제는 오히려 새로 불거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p863) <현대 중동의 탄생> 中


 데이비드 프롬킨(David Fromkin, 1932 ~ )는 <현대 중동의 탄생 A place to end all peace>에서 1차 세계대전 전후 오스만 투르크를 둘러싼 유럽 열강의 갈등이 현대 중동 문제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14년 당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막 끝냈던 영국과 러시아는 오스만 투르크를 중립지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당시 영국은 여러 면에서 중동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켜야할 필요가 분명하게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 이해관계는 현재 중동 문제의 뿌리가 된다. 현대 중동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를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식민지 중에서도 전설로 가득찬 동방에 대해 가장 큰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의기양양함에는 뜻밖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 인도를 손에 넣어 승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좋았으나, 수송로와 병참선이 지나치게 멀어져 여러 곳에서 끊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중동의 토착 정권들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유럽 국가들의 이런 팽창을 막으려고 했다. 중동을 지배할 의도는 없었으나 유럽의 경쟁국들이 그 지역을 지배하는 것 또한 결단코 막으려고 했다.(p51)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전략적 관점으로 봐도 중동은 케이프타운에서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로 연결되는 노선의 끊어진 부분을 이어줌으로써,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에 걸친 영국제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곳이었다.(p464) <현대 중동의 탄생> 中


 그렇지만, 당시 영국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방대한 영토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은 그대로였지만, 주변 상황은 달라지고 있었다. 신흥 강국 독일의 급부상, 철도의 발달로 인한 육상 전력의 중요성 증대 등은 오랜 제국 영국에게 위협요소로 다가왔고, 영국은 이러한 위기를 중동에 대한 직접지배력의 확대를 통해 극복하려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제물이 되어야만 했다.

 

  1871년 1월 18일부로 공식 출범한 독일제국(제2제국)이 그로부터 몇십 년 뒤에는 러시아를 누르고 영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최대 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세계정치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산업이 쇠퇴한 것도 정세 변화의 일부 요인으로 작용했다. 영국은 화학과 공작기계처럼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도 독일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군사적 요인도 정세 변화에 한몫했다. 철도의 발달로 해군이 힘을 못쓰게 되어 육군과 해군의 전략적 균형이 바뀐 탓이다.(p57)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식민지 수립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달랐지만 중동의 오스만제국이 언젠가는 와해될 것이고, 그러면 유럽 국가들이 거기서 떨어질 떡고물을 얻게 되리라는 점에서는 양측의 견해가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의 하나가 되었다.(p59)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동맹국으로 참가한 오스만제국은 당시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다. 제국 내의 인종/언어 문제는 발전을 가로막았고, 한때 16세기에 빈을 포위하며 오스트리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국의 위엄은 20세기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크림전쟁(Guerre de Crimee, 1853 ~ 1856)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허약한 모습을 알고 있었던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손쉬운 상대로 본 것도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오스만제국은 지리멸렬했다. 지배자들의 인종도 제각각이었다. 언어는 튀르크어를 사용했지만, 지배자 대부분이 발칸과 여타 지역 기독교 노예의 후손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고, 많은 경우 서로에 대한 애착도 크지 않았다. 이렇듯 오스만제국은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사람들이 모자이크를 이룬 다민족, 다언어 제국이었다. 그나마 접착제 구실을 한 것이 종교였다. 오스만제국은 튀르크족의 나라라기보다는 무슬림 나라에 가까운 신정국가였다.(p6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사진] 갈리폴리 전투(출처 :https://warfarehistorynetwork.com/daily/military-history/what-events-led-to-the-battle-of-gallipoli/)

 

 그렇지만, 승리를 자신했던 영국은 1차 대전에서 다르다넬스 작전(갈리폴리 전투)을 실패하며 대(對)오스만 전선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데 실패하고 말고 영국 역시 과거와 달라진 제국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이후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었지만, 영국제국의 운명은 매우 불투명했고,  중동 문제에 직접적인 개입이 어려워진 시점에서 승전국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오스만 제국 해체를 위한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였다.


  영국 경제는 1920 ~ 1921년 사이에 붕괴했다. 물가가 폭락하고, 수출도 둔화되고, 폐업하는 회사가 속출하고, 온 나라가 전례가 없을 정도의 대규모 실업과 씨름을 벌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정치인들도 국내외에서 벌여놓은 각종 사업을 시행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는 외교정책의 모험을 감행했고, 국내에서도 사회적 평화를 얻기 위한 사업을 벌였다.(p590)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918년 1월 8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제안한 '평화 14개 조항'이었다... 윌슨은 오스만제국과 미국이 교전 중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에 관련된 내용도 12조에 포함시켰다. 이런 내용이다. "12조. 현재의 오스만제국 중 튀르크인들이 차지하는 영토의 주권은 확실히 보장되어야 하며, 튀르크 지배를 받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확실한 생활의 안전과 방해받지 않는 자율적 발전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에 앞서 작성된 초안에는 터키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내용이 명기돼 있었다.(p399)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이같은 분위기에서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인 시온주의(Zionism) 는 보다 활성화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을 자극시키는 이러한 움직임을 당시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지하였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현대 중동 문제의 가장 커다란 씨를 뿌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민족주의가 정치적 악폐를 근절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었던 만큼 누군가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답으로 민족주의를 제시할만도 했다.(p421)... 연합국이 팔레스타인에 가진 유대인의 열망을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시온주의 운동은 유대인 국가의 보호국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경우 시온주의 운동이 영국을 보호국으로 택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p45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영국 외무부는 미국의 유대인 사회와, 특히 러시아의 유대인 사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영국정부는 계속해서 러시아 유대인들이 러시아 정부가 연합국 진영에 계속 남아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러시아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영국 외무부는 더욱더 유대인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혔다.(p456)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921년 6월 처칠은 하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랍인들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부를 확대하고 그곳의 자원을 개발하는 정도의 유대인만 정착시키고, 그 이상의 유대인 정착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p782)... 1922년 7월 22일에는 국제연맹이, 영국이 요르단 강 서안에 밸푸어선언을 실행하도록 명시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안을 최종 승인했다.(p79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현대 중동의 탄생>은 1922년 이루어진 연합국간의 협정이 현대 중동의 모습을 결정짓는다고 지적한다. 석유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부각되지 않은 시기에 중동은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고 말았다.


 1922년의 타결은 단일한 법령, 조약, 혹은 문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중동문제가 대개는 그해에 성립된 법령, 조약, 문서들로 정리되어 붙게된 명칭이다.(p857)... 중동에서의 러시아 문제도, 정치적 국경은 러시아가 터키,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과 체결한 조약들 및 어느 정도는 영국과 맺은 교역 협정으로 1921년부터 모습을 드러냈고, 오스만제국의 술탄제가 종식되고 터키 민족국가가 창설된 것 또한 1922년 대국민의회 투표에서 만들어진 결과였으며... 중동의 영국 세력권에 적용될 법령과 조약도 대부분 1922년에 확정되었다.(p858)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중동 분규가 특별했던 것은, 1922년 초 영국과 프랑스가 합의한 내용에 따라 그 즉시 모습을 드러냈거나 혹은 종국에는 모습을 드러내게 될 나라들의 규모와 경계는 물론이고 그 나라들의 존립권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더욱 본질적 문제가 내포돼 있다는 점이다. 그곳이 지금까지도 국가의 생존을 위해 빈번히 투쟁을 벌이는 세계적 분쟁지역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쿠르드족의 정치적 미래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정치적 운명과 같이 독특하고 해결 불가능한 사안들의 저변에, 중동에 이식된 유럽의 현대적 정치시스템이 중동이라는 생소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 문제가 내재돼 있는 까닭이다.(p864) <현대 중동의 탄생> 中


 또한 저자는 본문에서 이러한 지정학적 문제 외에도 외부에서 이식된 현대 정치 시스템의 문제가 중동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랜 무슬림의 전통 지배 체제를 부정하고 강제로 서구의 시스템을 강요는 중동의 또다른 분열요소가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2010년 '아랍의 봄'을 통해 뒷받침 된다.



[사진] 아랍의 봄(출처 : https://www.history.com/topics/middle-east/arab-spring)


 <현대 중동의 탄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의 수많은 국가가 만들어진 이유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툼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책에 서술된 중동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유대 - 아랍 민족의 갈등과 수니 - 시아 파의 종교 반목을 활용하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 이들이 시리아 내전 등으로 발생한 중동 - 아프리카 난민 문제에 인도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세기 자신들이 뿌려놓은 갈등의 씨앗을 생각한다면, 이들 지역에 대한 난민 수용은 단순한 인도주의 차원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아랍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해 직접 책임 있는 일부 유럽 국가들과 우리 나라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100년전 독립의 희망으로 봤던 민족자결주의가 사실은 영국 패권 유지와 오스만 제국의 해체를 위한 이론 근거였음을 <현대 중동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족자결주의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 많은 희생을 불러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중동의 불행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중동의 탄생>은 제법 두껍다. 그러지만, 본문만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지만, 내용은 깊지 않아 현대 중동 문제와 기원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중동 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은 한 번정도 읽기를 권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PS. 난민 문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해야한다는 개인의 생각은 여전하지만, 유럽은 몇 명 받아들였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조금 받아들였는가하는 단순한 수치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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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6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6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5-1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지역을 중동이라고 해야 할 지, 서남아시아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문화적인 면이 우리 나라와는 많이 다른 지역이라서 책으로만 알게 된 것들은 어쩐지 많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님,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9-05-17 18:21   좋아요 0 | URL
^^:) 우리 입장에서는 서남아시아가 유럽 입장에서는 중동이 될 것 같네요. 날이 많이 흐린 초여름날씨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좋은 주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