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물리와 철학 - 근대 과학의 혁명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조호근 옮김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8년 4월
평점 :
코펜하겐 해석을 이해할 때의 진정한 어려움은 다음의 유명한 질문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자 수준의 사건에서 '실제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이 경우 관찰로 얻어낸 결과는 확률함수, 즉 우리가 아는 사실에 대한 가능성 또는 경향성에 대한 수학적 표현일 뿐이다.(p57) <물리와 철학> 中
만약,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 1901 ~ 1976)의 <물리와 철학 Physics and Philosophy>을 관통하는 핵심어를 묻는다면, '관찰(觀察, observation)'이라 생각된다. 양자론(量子論 Quantum theory)의 세계에서 관찰이라는 행위는 사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며, 행위 결과는 확률함수의 주관적 요소 때문에 불연속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는 저자의 '불확정성 원리(不確定性原理, uncertainty principle)' 내용 중 일부이기도 하다.
관찰 자체는 확률함수를 불연속적으로 변화시킨다. 모든 가능한 사건 중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다. 관찰을 통해 계(界)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불연속적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이를 수학적으로 표현한 결과 또한 불연속적으로 변화하여 소위 말하는 '양자 도약 quantum jump'이 발생한다... '가능성'이 '실재'로 번환되는 사건은 관찰이라는 행위가 벌어지는 도중에 발생한다.(p62) <물리와 철학> 中
확률함수에는 객관적인 요소와 주관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그 일부는 가능성이나 더 나은 쪽을 향하는 경향성과 관련된 기술이며, 이런 기술은 완벽하게 객관적이라 관찰자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다른 일부는 계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과 관련된 기술이며, 이는 관찰자가 바뀌면 달라지는 요소이므로 당연히 주관적이다.(p60)... 상호 작용을 감안하면, 한때 '단순 사건'이었던 확률함수에는 경향성에 의한 객관적인 요소와 불충분한 지식에 의한 주관적인 요소가 혼재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관찰 결과를 확실하게 예측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p61) <물리와 철학> 中
현대 물리학자인 하이젠베르크의 입장에서 철학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 철학의 많은 부분이 현대 물리학 명제를 설명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은 정확한 실상(實狀)이 아니다. 현대 물리학은 관찰과 실험에 의해 이론이 지지되지만, 고대 철학은 일반 경험에 기반한 이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주관적이며, 물리학에 비해 현실의 한계가 명확하다. 특히, 철학과 물리학의 차이점은 '언어(言語 language)' 문제에서 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고대 철학의 주장 중 일부는 현대 물리학의 명제에 꽤나 근접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는 실험을 수행하지 않아도, 자연계에 대한 일반적인 경험을 쌓고, 이 경험에서 일반 법칙을 도출하고 질서를 부여하려는 부단한 노력을 반복하면, 인간의 사상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를 확실히 보여준다.(p90) <물리와 철학> 中
현대 물리학과 그리스 철학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며, 이는 현대 과학이 가지는 실험과 실증적 탐구 방식에서 유래한다. 갈릴레오와 뉴턴의 시대 이래로 현대 과학은 자연에 대한 세밀한 탐구와 실험에 의해 입증된, 아니면 적어도 입증될 수 있는 공리에 기반을 되어왔다... 현대 과학은 그 시작점부터 그리스 철학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훨씬 단단한 기반 위에 서 있는 것이다.(p69) <물리와 철학> 中
저자에 따르면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언어(또는 철학 언어)로 물리학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일상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내용에 대해서는 결국 '수학의 언어'가 활용될 수 밖에 없게 된다는 저자의 말은, 현대 물리학의 단단한 기반은 수학 위에 기초한다는 이야기로 바꿀수 있다.
양자론의 수학 기호와 일반 언어의 개념은 명확한 상호 관계를 형성하며, 실험 또한 이 상호 관계를 통해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이번에도 문제가 남는 것은 사실쪽이 아니라 언어 쪽인데, 일반 언어로 기술할 수 있는 '사실'의 개념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p223)... 모호하고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언어를 사용하다가 난점이발생하면, 물리학자는 그냥 수학 공식으로 퇴각해서 공식과 실험적 사실 사이의 명확한 상관관계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p224) <물리와 철학> 中
온갖 난해한 정의와 판별을 피하려면 언어를 사실, 즉 실험 결과를 기술하는 일에만 한정하면 된다. 그러나 원자의 입자 자체에 대해 언급하고 싶으면 오직 수학의 언어를 사용하여 자연언어를 보완하거나, 또는 변용된 논리나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은 논리를 사용하는 언어와 조합해야 한다.(p232) <물리와 철학> 中
생각해보면, 철학 내에서도 우리는 이미 언어의 모호성을 경험한다. 스피노자의 '나투라 나투란스(Natura naturans 能産的 自然)과 노자 <도덕경 道德經> 안의 '자연(自然)'이 결코 같은 의미가 아님에도 같이 '자연'으로 번역되기에 우리는 이를 이해할 때 다소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가 다른 분야 학문을 설명할 때 생기는 모호함은 더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리하면 <물리와 철학>에서 저자 하이젠베르크는 '관찰'이라는 행위를 통해 상대성 이론의 세계와 양자론의 세계를 설명하고, '실험'과 '경험'을 통해 '수학 언어'와 '일상 언어'의 세계인 물리학과 철학의 세계의 차이를 밝힌다. 이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에 독자들에게 현대 물리학과 철학의 차이, 양자론과 상대성 이론의 차이가 간결하고도 알기 쉽게 설명된다. 또한, 리뷰에서 언급하지 못한 다양한 철학자들의 우주론(宇宙論 Cosmology)가 <물리와 철학>소개되기에 독자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다만, 간략하지만 많은 철학사상과 물리학 이론이 핵심적으로 소개되기에 용어가 낯선 독자들은 어려움을 느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때문에, 이 책을 너무 깊이 있게 읽기보다 용어 정도 익숙해진다음, 다른 과학 교양서를 읽는다면 의미있는 독서가 되리라 생각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