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들은 평화 회담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1919년 5월 7일 독일 대표단에게 전달된 베르사유 조약의 최종안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독일은 영토의 14퍼센트를 내주어야 했고, 그로 인해 인구의 10퍼센트와 철광석 절반, 석탄 매장량의 4분의 1을 내주어야 했다. 또한 모든 해외 식민지를  포기해야 했으며, 해외에 투자한 자금과 특권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전쟁 배상금에 대한 요구였다. 10년 동안 그들은 석탄 생산량의 60퍼센트, 상선 90퍼센트, 거의 대부분의 기차 내연 기관, 철도 차량, 젖소 절반, 화학 제품과 의약품 4분의 1 가량도 양도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독일 군대는 육군 1만 명과 해군 1만 5,000명으로 제한되었으며 탱크와 비행기, 잠수함과 독가스 보유가 금지되었다.(p270) <케임브리지 독일사> 中


 <평화의 경제적 결과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에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은  제1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열린 파리평화회의와 그 결과로 만들어진 평화조약(베르사유조약)을 비판하였다. 능력을 넘는 과도한 전쟁 배상금과 승전국의 요구 속에서 저자는 이미 다른 세계 대전의 불씨를 예견하였다.

 

 독일을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서부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채택되고 거기에 미국의 재정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하늘은 유럽인 모두를 도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서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교묘하게 중부 유럽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면, 감히 예견하건대, 머지않아 복수전이 펼쳐질 것이다.(p246)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약속을 존중하고 정의를 충족시키는 것이 파리평화회의의 임무였다. 그러나 삶을 재구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임무는 승자의 아량이라는 원칙에 따라 필요한 것 못지않게 유럽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p36)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파리평화회의는 세계대전 후 유럽의 재건을 위해 당사국 모두가 '관용(寬容)'의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었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베르사유 조약이 패자에게 특히 가혹했던 조약이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베르사유 조약은 강력한 이웃을 가지지 않으려는 프랑스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 1841 ~ 1929)의 경계심과 미국 대통령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 ~ 1924)의 무능력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 ~ 1945)의 욕망이 결합된 결과로 분석한다.


 프랑스 정책의 솔직한 목적, 즉 독일 인구를 제한하고 독일 경제 체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윌슨 대통령을 위해 자유와 국제적 평등이라는 장엄한 언어로 포장되었다.(p65)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협상의 다른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독일로부터 일반적인 전쟁 비용을 받아내겠다는 약속을 선거운동에 활용한 것은 영국 정치인들이 언젠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정치적 무모함의 극치를 보여준 행위라고 나는 믿는다.(p143)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각국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나라와 개인을 위해 패전국에 강요한 조약의 결과는 가혹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조약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기에 한편에서는 극우 파시즘(Fascism)이, 다른 한편에서는 극좌 공산주의(Communism)가 집권하는 계기를 주게 되었다.


 경제적 박탈은 아주 쉽게 일어나며, 사람들이 그런 박탈을 인내하는 한, 바깥 세계는 그 문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육체적 능률과 질병에 대한 저항력은 서서히 약화된다. 그러나 삶은 어쨌든 계속된다. 그러다 결국엔 인내의 한계에 닿게 될 것이고, 절망과 광기의 구호가 무력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선동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분발하여 일어나고, 인습의 끈들은 풀리게 된다. 그것이 곧 위기이다... 파리에서는 평화조약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하고 또 희망을 걸만한 것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인내할 것인지, 또 사람들이 불행을 피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p229)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관용'에 입각한 전후 처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성(理性)보다는 감정(感情)이 지배한 평화회의장의 모습 속에서도우리는 계몽시대(Enlightenment)의 종언을 확인할 수 있다. 더이상 볼테르(Voltaire, 1694 ~ 1778)의 주장을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연약한 존재이므로 서로를 도우시오. 당신들은 무지하므로 서로를 가르치고 용인하시오. 만약 당신들 모두가 같은 의견이고 단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이라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여러분 각자가 책임이 있기 때문이오... 당신들 인간들이 걸핏하면 벌이는 잔인한 전쟁 한 복판에서도 나 자연만이 당신들을 결합시킬 수 있소. 나는 당신들 인간에게 땅을 경작할 팔을 그리고 자신을 인도해 줄 한 줌의 이성(reason)을 주었소. 이 싹을 꺽거나 썩히지 마시오.(p178) <관용론> 中


 이러한 암울한 당대 현실 속에서 케인즈는 절망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대 흐름 속에서 그는 '교육'과 '상상력'의 역할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했다. 


 유럽이 파산과 쇠퇴를 겪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상태는 장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지금 나아가고 있는 길을 재점검토하고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볼 시간은 아직 있는 것이다. 미래를 좌우할 사건들이 지금 전개되고 있고, 유럽의 운명은 더 이상 몇몇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일어날 사건들은 정치인들의 교묘한 술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역사의 표면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숨겨진 물결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이 숨겨진 물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그 방법은 의견을 변화시킬 교육과 상상력의 힘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진실을 굳게 믿고, 망상을 깨뜨리고, 증오를 불식시키고,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을 활짝 열고 또 확장시켜야만 숨겨진 물결의 방향을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p270)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장기균형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강조한 그의 경제학 이론과 통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But this long run is a misleading guide to current affairs.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장기(長期)는 현재 사안에 대해 잘못된 안내를 해준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화폐개혁론> 中 [출처 : 위키백과]


 국가는 부분적으로는 과세를 통하여, 부분적으로는 이자율을 정함으로써, 그리고 또 부분적으로는 아마도 다른 방법을 통하여 소비성향(消費性向)에 대해 지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자율에 대한 은행정책의 영향력이 그 자체로서 최적투자율(最適投資率)을 결정하기에 충분하리라는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는 상당히 광범위한 투자(投資)의 사회화(社會化)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p455)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中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의 본문을 각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들은 대신 '전쟁의 경제적 결과'가 '피'임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비극이라 할 것이다.


 2019년 2월 28일.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별다른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낸 후 글을 쓰기 시작해서, 2019년 3월 1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일 새벽까지 글을 쓰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300년 전 3.1 운동을 불러온 베르사유 조약이 가져온 평화와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평화의 결과는 무엇이 될 것인지 되물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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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3-01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겨우 예상할 수 있었던 ‘결렬 시나리오‘가 막상 눈 앞의 현실이 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해 보게 됩니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2차 북미회담 직전까지도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어려움을 극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리 정부의 무분별할 정도로 지나친 낙관론을 이제는 좀 더 냉철히 되돌아볼 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트럼프의 말대로, 결국 ‘비핵화는 핵을 없애자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북한의 태도로 봐서는 ‘비핵화를 구실로 내세워 결국 UN의 제제 완화만 얻어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비핵화를 하자는 것인지, 핵무기 체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영변의 핵시설 폐기 등을 잘게 썰어서 ‘핵 장사‘를 하자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요.(이번 회담이 결렬되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측면들이 비로소 극명하게 부각된 게 이번 회담의 진정한 소득이라면 소득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더군요. 아무튼 북한 비핵화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만 가까스로 도달 가능한 매우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여의도의 세 배나 되는 면적에 400여개나 되는 건물로 둘러싸인 영변 핵시설만 해도 끔찍한데, 그거 말고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또 있다고 하니 정말 소름이 끼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9-03-01 18:22   좋아요 1 | URL
oren님 말씀처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갈 길이 참 멀어 보입니다. 저는 회담의 결렬 원인에 대해서 Oren님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서로 다른 북한과 미국의 기자 회견 내용을 접하면 혼란스럽기도 합니다만, 어제의 협상 결렬이 평화로 가는 과정이라는 점으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2019-03-02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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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2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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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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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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