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잠을 자고 마침내 깨어 고요한 겨울 아침을 맞게 된다. 창문틀에는 눈이 솜이나 솜털처럼 따듯하게 쌓여 있고 넓어진 창틀과 성에가 낀 유리창은 은밀한 빛을 받아들여 실내에 포근한 기운을 더한다. 아침의 고요는 무척 인상적이다. 들판 너머 확 트인 곳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려고 창 쪽으로 갈 때면 발아래에서 마루가 삐걱거린다. 쌓인 눈을 무겁게 지고 있는 지붕도 보인다. 처마와 담당에는 눈 종유석(鍾乳石)이 달려 있고 뜰에는 숨겨진 나무 고객이를 덮으며 석순이 서 있다. 나무와 관목들은 하얀 팔을 하늘 곳곳으로 치켜들고 담장과 벽이 있던 곳에는 어둑한 풍경 위로 마구 장난을 친 것처럼 환상적인 형태들이 펼쳐져 있는데, 자연이 사람들에게 예술의 본을 보여주려고 밤사이에 새로운 도안을 뿌려놓은 것 같다.(p76)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中


 어제 아침부터 띄엄띄엄 내린 눈이 밤 사이에 제법 쌓였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올려 봅니다.



 입춘(立春)도 지나 봄의 문턱에서 내리는 눈이 조금은 뜬금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눈없는 겨울을 보내기에는 아쉬웠는데, 밤사이 쌓인 눈에 아쉬운 마음도 함께 묻힙니다. 저는 겨울의 풍경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쳤지만,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그 안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나는 길을 가다 멈춰 서서 어떤 시기와 환경에서든 앞날에 대한 걱정없이 자라는 나무의 모습을 보며 감탄한다. 사실 나무가 사람처럼 시기를 기다리는 법은 없지만, 지금이야말로 묘목이 자라기에는 황금 같은 시기다. 토양, 공기, 햇빛과 비가 아주 적절하니 태초의 환경도 지금보다 더 낫지 않았다. 나무들에게는 "그들의 불만스러운 겨울 winter of their discontent"이란 결코 오지 않는다. 잎이 하나도 없는 자생 포플러 가지 위에서 서리에도 아랑곳 않고 기운차게 돋은 눈을 보라.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p37)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中


 이러한 소로의 말을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역(周易)의 '지뢰복(地雷復)' 괘(卦)가 떠오릅니다. 땅 밑에 우뢰가 있으니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생명력을 나타내는 이 괘와 겨울 나무를 바라보는 소로의 시선은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동양사상에도 관심 많았던 소로이니 만큼, 아마 주역을 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소로 보다 200여년 앞선 독일의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가 주역을 읽고 주석까지 달았던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 여겨집니다.


 음이 극에 달하면 양으로 돌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여러 음이 양을 박식(剝蝕)하여 박락(剝洛)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되살아나게 됩니다...'복(復)'괘는 바로 하나의 양이 아래에서 되살아나는 형상으로 '복'은 본원으로 돌아와 원래의 상태를 회복한다(返本回復)'는 뜻입니다... 이는 동지(冬至) 즈음 음기(陰氣)가 극성하고 추위가 맹위를 떨칠 때 오히려 한 가닥 양기가 회생하여 광활한 대지에 봄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것과도 같습니다.이때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 발랄한 생명력은 어떻게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니, '형통'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p357) <주역 周易> 中


 아침에 내린 눈을 누구나 반갑게 맞이하지만, 오후에 먼지를 먹은 검은 눈은 천덕꾸러기가 되겠지요. 사람의 마음에 간사한 면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저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생각해보면 눈(雪)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육아(育兒)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그렇게 예쁘더니 '고난의 행군 100일'을 지나고 나면, 그 좋았던 마음도  많이 약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와 '눈'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연의에게 조금 더 잘 해야겠습니다.


 고양이는 봄가을에 털갈이해 여름철 더위와 겨울철 추위에 대비합니다. 이른 봄부터 점차 털이 빠져 한여름 즈음에 말쑥하게 털이 정리되고, 가을부터는 보온 기능이 뛰어난 겨울털이 빽빽하게 자라나지요. 털갈이 시기에는 평소보다 털이 많이 빠지므로 훨씬 세심하게 브러싱하세요.(p64)  <달콤살벌 고양이 수업> 中


창밖에 쌓인 불구하고,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2월이면 꽃대가 올라오는 긴기아난(Kingianum)과 군자란(Clivia miniata)과 함께 겨울이 끝난 다음 '고양이 털파카'를 만들어도 될 만큼 털갈이를 해대는 귀요미 녀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녀석이 고양이가 아니라 누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말 모처럼 씻기고 쉬고 있는 녀석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인사드립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주말 되세요!



 쌓인 눈은 우리를 가두지만 집이 제공하는 편안한 느낌을 더해주기 때문에 가장 추운 날에도 우리는 난로 위에 앉아 굴뚝 꼭대기를 통해 하늘 보는 것을 즐거워한다. 굴뚝 주변 따뜻한 구석에서 누릴 수 있는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즐기거나 길거리에서 소들이 우는 소리나 긴 오후 내내 멀리 떨어진 곳간에서 도리깨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맥박을 재면서 말이다.(p97)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中


PS. 그렇지만, 역할 놀이는 정말 적응이... 어려서도 안하던 것을 딸 때문에 하려니 마치 '밀린 숙제'를 해야하는 심정입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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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2-16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로의 일기>에도 자연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소로를 자연을 사랑하는 작가로 꼽습니다.
고양이가 졸린 듯 보입니다. 잠자는 모습은 더 귀엽겠지요.

겨울호랑이 2019-02-16 23:54   좋아요 0 | URL
페크님께서 말씀하신 <소로의 일기>는 <소로의 야생화 일기>를 말씀하신 듯 합니다. 혹 제가 잘 모르는 다른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페크님 말씀처럼 소로는 자연을 사랑하는 작가의 모습을 <월든>을 비롯한 그의 여러 책에서 아낌없이 보여준다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로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니었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양이는 낮에 졸고 밤에 돌아다녀서 지금은 아주 생생하게 뛰어나니네요. 아까는 귀여웠는데, 지금은 놀아달라고 보채니 귀찮아 집니다.ㅋ 페크님께서도 편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2019-02-17 10: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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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1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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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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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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