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씌여진 <동국세시기 東國歲時記> 는 우리의 세시풍속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다만, 많은 풍속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고 있어 학계에서 논란이 없지는 않지만, 책에서는 당대의 풍속과 이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이 잘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동국세시기>에서는 설날 조선의 풍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서울 풍속에 설날 가묘(家廟)에 인사드리고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茶禮)라고 한다. 남녀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입는데 세장(歲裝 : 설빔)이라고 한다.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라고 한다. 제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 사돈지간의 부녀자들은 서로 곱게 단장한 어린 계집종을 보내 새해 안부를 묻는데, 이런 어린 종을 문안비(問安婢)라고 한다. 조선 영조 때의 참봉 이광려(李匡呂)의 시에 "어느 집 문안비가 문안하러 어느 집에 가는가?"라는 구절이 있다.(p38) <동국세시기> 中


  저자 홍석모(洪錫謨, 1781 ~ 1857)가 묘사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모습에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이어져 오는 풍속이 담겨있어 전통(傳統) 명절인 설날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민간에서는 잘 아는 젊은이를 만나면 "과거 급제해라", "벼슬해라", "재물 얻어라" 따위의 말로 덕담을 하며 축하한다... 오행점(五行占)을 쳐서 새해의 신수를 점친다. 오행에 각기 점사(占辭)가 있는데, 나무에 장기알처럼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를 새겨 일시에 던지고, 바로 놓였는지 뒤집혔는지 보고서 점괘를 얻는다.(p43) <동국세시기> 中


 새해의 첫 날을 경사스러운 날로 보고 덕담을 건네고 점을 치는 모습은 우리에게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를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BC 43 ~ AD 17)의 <로마의 축제들 Fasti>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십시오, 게르마니쿠스 공이시여, 야누스가 공에게 축복받은 한 해를 알리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대들은 나쁜 것은 말하지도 생각지도 마시오. 오늘은 좋은 날이니 좋은 말만 해야할 것이오. 

소송에 귀 기울이지 말고 사악한 말다툼일랑 당장 멀리하시오. 

오늘은 그대들의 일을 뒤로 미루시오(제1권 63 ~ 73)...

시작에는 전조가 들어 있는 법이라오. 

그대들은 맨 처음 듣는 말에 조심스럽게 귀를 세우고 

복점관(卜占官)은 맨 처음 눈에 띄는 새를 풀이하지요. 

이때는 신들의 귀도 신전처럼 열려 있어서, 어떤 혀도 

헛된 기도를 올리지 않고 말하여진 것은 무게가 나가는 법이라오."(제1권 1월 178 ~ 182) <로마의 축제들> 中


[사진] 떡국(출처 : 위키백과)


 맵쌀가루를 쪄서 큰 판자 위에 놓고 자루가 달린 절굿공이(떡메)로 수없이 찧고 길게 늘여서 기다란 다리 모양의 떡을 만드는데, 흰떡이라고 한다. 동전처럼 잘게 썰어서 육수에 넣고 끓인다. 쇠고기, 꿩고기, 고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는데, 떡국(餠湯)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대접하니, 빠뜨릴 수 없는 세찬이다.(p38)<동국세시기> 中


 동시에, 지금과는 다른 설날의 모습 또한 확인하게 되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세뱃돈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 전통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동국세시기> 역해자가 세뱃돈의 유래를 추측했듯, 저도 <로마의 축제들>안에서 세뱃돈을 주는 풍습이 퍼진 이유를 넘겨짚어 봅니다.


 세뱃돈에 대한 언급은 조선 말기의 <해동죽지 海東竹枝>를 제외한 여타 세시기 및 세시기속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시대의 도덕 관념상 친지에게 세배를 하고 돈을 받는다는 것은 수긍하기 어렵다. 추측이지만, 문안비에게 주는 수고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p48) <동국세시기> 中


 지금은 돈이 제일이오. 재력이 관직도 가져다주고 

재력이 우정도 가져다주며 가난한 자는 어지서나 유린당하지요... 

옛날에는 구리를 선물했으나 지금은 금이 더 좋은 전조로 통하니까 

옛날 돈이 새 돈에게 져서 자리를 내둔 것이지요. (제1권 1월 217 ~ 223) <로마의 축제들> 中

 

설이 오기 전날인 2월 4일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入春)입니다. <로마의 축제일>에서도 음력 설날 즈음인 2월 9일을 봄의 시작을 알리는 때로 보고 있습니다.

 

 닷새 뒤에 샛별이 찬란한 빛과 함께 바닷물에서 떠오르면 

 그때는 봄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속지 마십시오. 아직도 추위가 남아 있습니다. 

 떠나는 겨울은 큰 흔적을 남기는 법입니다.(제2권 2월 149 ~ 152) <로마의 축제들> 中


[사진] 입춘대길 건양다경(출처 : 서울신문)


 이제는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으로 유명한 춘련(春聯)을 예전처럼 문에 붙이지는 않지만, <동국세시기>에 있는 춘첩자에는 좋은 내용의 글이 담겨 있어 이를 그대로 옮겨 봅니다.


 대문과 방문의 신령이 불길한 것을 물리친다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평안하며 집안은 넉넉하고 사람은 풍족하다

 비바람이 순조로워 계절이 온화하고 풍년이 든다

 산처럼 장수하고 바다처럼 부유하다

 모든 재앙 물러가고 온갖 복이 찾아온다

 입춘이니 대단히 길하고(入春大吉) 봄이 오니 경사가 많다

 요임금의 세월, 순임금의 세상

 임금 사랑하여 도가 태평하길 바라고 나라 걱정하여 농사가 풍년 들기 원한다

 부모는 천년 동안 장수하고 자손은 만대에 걸쳐 영화롭다

 천하는 태평한 봄날이요, 사방에 아무런 일도 없다

 나라에는 좋은 때 만나는 경사가 있고 집에는 먹고 살 걱정이 없다

 재앙은 봄눈 따라 녹고 복은 여름 구름처럼 일어난다

 북당의 훤초는 푸르고 남극성은 밝다

 하늘은 봄날에 가깝고 인간 세상에는 오복이 온다

 닭이 울어 새해의 덕을 알리고 개가 짖어 작년의 재앙을 쫓는다

 땅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여려 온갖 복이 온다

 봉황은 남산의 달을 보며 울고 기린은 북악의 바람을 맞으며 노닌다

 대문으로 춘하추동 복을 맞이하고 방문으로 동서남북 재물을 들인다

 여섯 마리의 자라가 절하며 남산같은 장수를 바치고 아홉 마리 용은 사해의 보배를 실어온다

 하늘은 세월을 더하고 사람은 수명을 더하며, 봄은 천지에 가득하고 복은 집에 가득하다(p61) <동국세시기> 中


 위의 글을 읽으니 올 한해 토정비결 괘가 위와 같다면 좋은 일만 가득한 한 해가 될 듯 합니다. (아마 힘들겠지요?) 입춘이 '작은 설날'로 들어온 올해, 이웃분들 모두 입춘을 통해 액운을 쫓고 설날 복 많이 받으시길 기원하며 이만 인사드립니다. 행복한 설 연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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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0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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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0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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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09: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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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1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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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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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3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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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19-02-05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떡국도 맛있게 드시고요~~^^

겨울호랑이 2019-02-05 08:4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