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사회학 - 근대 민주주의의 과두적 경향에 관한 연구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6
로베르트 미헬스 지음, 김학이 옮김 / 한길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형태의 과두정을 분쇄하는 것에 이론적인 존립 근거를 두는 사회혁명 정당과 민주 정당들에게서, 그들이 공격하였던 그 경향이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의 핵심적인 과제는 바로 그 물음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p55) <정당사회학> 中


[사진] 로베르트 미헬스(출처 : 뉴스앤조이)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 1876 ~ 1936)의 <정당사회학>은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추구하는 정당(政黨)에서 역설적으로 과두정(寡頭政)에 의한 운영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헬스가 생각하는 과두정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정당정치의 토대가 외면적으로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다가는, 모든 정당이 귀족정,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두정으로 변형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문제는 혁명을 지향하는 정당들조차 보수 정당 못지 않게 과두적 경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데 있다.(p54) <정당사회학> 中


1. 과두정의 배경 : 정당 조직의 필요성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에서 정당은 항상 전쟁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표를 얻고 정권을 얻기 위해서는 중앙집권형 조직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근대 정당은 군대처럼 조직화 되었다.


  근대 정당은, 정당이란 단어의 정치적 의미에서 '전쟁 조직'이다. 정당이 준수해야 하는 전술학의 기본 법칙은 전투 태세이다... 중앙집권은 예나 지금이나 결정의 신속성을 보장한다. 대규모 조직은 그 자체로 둔중한 기구이다. 만일 대중 정당이 신속한 결정이 요청되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대중으로 하여금 제한적이나마 일정한 판단력을 갖추도록 조치해가면서 당을 운영한다면, 시간적 손실과 공간적 거리 때문에 순수한 형태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전쟁을 치르는 근대 정당에서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불가피하다.(p82) <정당사회학> 中


  조직은 과두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당은 지도하는 소수와 이를 따르는 다수로 자연스럽게 나누어지게 된다. 결국 미헬스에 따르면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정당의 조직은 변화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정당의 모습은 과두제(寡頭制, oligarchy)로 흘러간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밑바탕에는 '무지한 대중'이 놓여 있다.


 조직은 정치의 필수적인 원칙이다... 조직이란 곧 과두정에의 경향이며, 본질적 성향은 귀족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조직의 메커니즘은 견고한 구조를 창출함으로써 조직화된 대중을 심대하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조직은 대중과 지도자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조직은 정당과 노동조합을 지도하는 소수와 추종하는 다수로 이분(二分)시키는 것이다.(p68) <정당사회학> 中


 대중은 정당의 기본 문제를 정식화하거나, 정식화된 사항을 검토할 능력이 모자란다. 대중의 무능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몇몇의 문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사실 지도자 권력의 가장 견고한 기반은 바로 대중의 무능이다. 대중의 무능은 지도자의 권력에게 현실정치적인 정상성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한다.(p124) <정당사회학> 中


2. 조직화의 조건 : 무지한 대중 


 참정권을 보유한 국민들 중에서 공무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의 수가 극히 소수라는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그리 강렬하게 의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국가라고 지칭되는 조직이 개인의 사적인 일과 안녕과 일상에 미치는 작용과 반작용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p88) <정당사회학> 中


 저자에 따르면 대중은 무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무(公務)에 많은 관심이 없다. 

 이들은 군중심리에 따라 움직이며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선동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소수의 지배자들에게 위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다수는 자신을 대신하는 소수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소수의 지도를 받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는 곧잘 영웅 숭배로 연결되고, 그 욕구는 조직화된 노동자 정당에서도 한계를 모른다. 그 보편적인 구습집착증(Misoneismus)은 그렇지 않아도 각종의 진지한 개혁 노력을 좌절시켜 왔는데, 그 현상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p92) <정당사회학> 中


 대표의 도덕적 권리는 '위임'으로부터 발전된다. 일단 대표자로 선출된 자는, 정관이 바뀌거나 아주 특별한 일이 생겨 대표 업무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한 그 직책을 유지한다. 그리하여 원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설치된 선출직이 종신직이 된다. 관습이 권리가 되는 것이다.(p84) <정당사회학> 中


3. 과두제의 정착


 반면, 지도자가 된 이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신이 맡은 지위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게 된 지도자들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본(資本)과 같은 속성을 가진 권력(權力)은 점차 확대되고 세습화 된다. 


 대중은 지도를 욕구하지만 지도자에 무관심한 것과 대조적으로, 지도자에게는 타고난 권력욕이 있다. 그리하여 조직의 기술적 논리 때문에 발생한 과두 민주주의는 권력욕이라는 지도자의 보편적인 인성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다. 조직, 관리, 전략의 필요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심리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다.(p229) <정당사회학> 中


 일단 지도자로 올라선 사람은 결코 정치적 지위가 낮았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이는 사회적 모세혈관의 법칙에 반(反)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 의식은 과대망상을 부여한다. 게다가 인간의 가슴에는 좋건 나쁘건 권력에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심리학의 기초적 상식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가치를 인지하게 되고, 동시에 그가 대중 역시 지도자를 욕망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면, 그의 지배자로서의 천성이 발휘되기 시작한다.(p233) <정당사회학> 中


  당직자들의 독재 욕구는 당의 재산을 관리하는 경제적 권력까지 장악하도록 만든다. 지도부는 정복한 당의 재정권력을, 자신의 권력 지위를 공고화하고 안정화시키는 데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p163)... 권력은 권력을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권력을 수중에 넣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확대하며 권력 지위를 방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요새를 쌓아올리고, 대중의 주권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한다.(p235) <정당사회학> 中


4. 근대 민주주의 : 그들만의 리그(League)


 대중이 지도자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는 극히 드문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지도자들과 갈등에 빠져든 새로운 지도자가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힘있는 자로 거듭나는 경우, 즉 새로운 지도자가 기존의 지도자를 끌어내리고 그를 대체 하는데에 성공하는 경우가 통상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가 거둔 성취는 신속하게 무(無)로 돌아가고 만다.(p226) <정당사회학> 中


 이렇게 만들어진 근대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은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존재였다. 오랜 기간 잊혀졌던 대중이 다시 정치인들의 관심을 받게 될 때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때 뿐이었다. 결국, 민주주의가 향하는 길의 끝에는 과두정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정당사회학>은 마무리된다.


 오늘날 대중은 거의 언제나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설사 대중이 지도자들과 불화를 빚으면서 특정한 행동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언제나 대중이 지도자들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발행한 것일 뿐이다(p193)... 대중은 가끔 의식적으로 봉기하려 하지만, 지도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열정에 재갈을 물린다. 당 대중이 능동적인 배우로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하여 정당 과두 세력의 권력을 제거하는 때는, 오로지 지배계급이 혼망 속에서 억합을 과도하게 증대시키는 경우뿐이다.(p194) <정당사회학> 中


 저자 미헬스는 <정당사회학>을 통해 정권을 잡기위한 조직화가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게 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방법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기꺼이 소수 지배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며 권력의 맛을 본 지배자들은 경제, 정치 권력을 유지하고 세습하기 때문에 결국 민주주의는 과두정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결국 <정당사회학>은 민주주의에 대한 우울한 예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에 미헬스는 1914년에 이탈리아로 귀화하고,  파시즘(fascism)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그의 인생은 <정당사회학>과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진] 무솔리니와 히틀러(출처 : 위키백과)


 <정당사회학>은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음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전망이 현재도 유효할 것인가에는 의문이 따른다. 소수에게 정보가 과점되던 과거와는 달리 정보가 다수에게 공개되고, 이에 대한 반응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요즘 현실 속에서 미헬스의 '무지한 대중'이라는 전제는 절반 정도는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된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 1:22)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대중의 의사는 선거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정당사회학>과 달리 대중이 무지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실행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 여겨진다.

 


 얼마 전 tumblbug을 통해 6.13 지방선거 가이드인 <전국투표전도 2018> 제작을 후원했고, 책자를 받아 보았다. 현재 지방선거의 이슈와 지역별 투표율 등의 정보가 실려있는 책자 제작 후원은 예상보다 많은 후원을 받고 성공리에 종료되었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홍보 광고 같은 결론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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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6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7 0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1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0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6-1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확대가 모색되는 거 아니겠나요? 정당, 중앙집권식으로 체제를 만들면 대중의 힘이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정치로 분할시키면 더많은 대중이 참여할 수 있겠죠. 지금 체제도 결국 권력자들이 만들어놓은 판이고 뿌리가 깊어 궤도 수정이 어렵긴 하다고 생각하지만 다수의 의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죠.

겨울호랑이 2018-06-16 11:0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AgalmA님 말씀처럼 지금 당장은 기득권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있지만,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