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유라시아 초원은 멀고 소박한 곳, 자원은 부족하고 문명 세계의 증심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청동기 후기에 초원은 대륵가장자리에서 생겨난 그리스, 근동, 이란, 인도 아대륙, 중국 문명을 잇는다리가 되었다. 전차 기술, 말과 기마, 청동 야금술 그리고 전략적 위치가 초원 사회에 그때까지 한 번도 갖지 못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 P646

우리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 특히 선사 시대 부족 사회에 살던 이들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고고학은 그들 삶의 어떤 부분에는 밝은 빛을 비추지만 대부분을 어둠 속에 남겨둔다. 역사언어학은 이어두운 구석들의 일부를 비출 수 있다. 그러나 선사고고학과 역사언어학의 결합은 고약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 두 가지 다른 증거가 섞일 때, 순진하든 악의적이는 수많은 허구적 환상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위험스럽게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할 방법은 없다. 에릭 홉스봄이 한때 지적했듯 역사학자들은 심각한 편견과 민족주의의 원료를 제공할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홉스봄도 이것이 무서워 역사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 P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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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가타상이 조선의 독립을 바라는 그 우정을 나는 믿습니다. 한데 어떻소? 진보적인 사상을 가진 당신, 천황을 부정할 수 있습니까?" 오가타는 당황한다. 불의의 습격을 당한 듯 순간 어쩔 줄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그, 그거는, 네, 아직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역시 어려운 일이겠지요." "......" "그게 대부분 일본인들의 한계가 아닐까요?" 오가타 얼굴에 막연한 표정이 지나갔다. _ 박경리, <토지 14> , p593/708


 <토지> 독서 챌린지 28주차. 앞서 인실과 오가타의 대화에 조선과 일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실렸다면, 이번 주차 찬하와 오가타의 대화는 내용면에서 앞의 대화를 잇는다. 예정없이 명희를 만나고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반응에 쫓기듯 떠난 찬하와 오가타. 이들의 대화는 천황제(天皇制)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천황을 부정할 수 있느냐는 찬하의 질문과 대답하기 곤란해하는 오가타. 과연 천황은 일본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번 페이퍼는 이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천황의 기원은 멀리 오노 야스마로(太安萬呂, 660 ~723)의 <고사기 古事記> <천손강림 天孫降臨>편에서 찾을 수 있다.


  아메노우즈메노카미(天宇受賣命)가 가서 물으셨더니, 답하여 "저는 국신으로, 이름은 사루타비코노카미(猿田彦大神)입니다. 나와 있는 것은, 천신이신 어자(御者)가 천강하신다고 들었기 때문에, 선두에 서서 모시려고 생각하고, 마중하러 올라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아뢰었다. 그래서 아메노코야노미코토(天児屋命), 후토타마미코토(天児屋命), 아메노우즈메노미코토(天鈿女命), 이시코리도메노미코토(石凝姥命), 타마노오야노미코토(玉祖命), 합하여 다섯 명의 부족장 신을 나누어 대동하고 천강(天降)했다...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는 "여기는 카라쿠니(韓國, 한반도)를 향하였고, 가사사노미사키를 똑바로 통해 와서, 아침 해가 바로 비치는 나라, 저녁 해가 비치는 나라이다. 그런 까닭에, 이곳은 참으로 좋은 땅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대반석 위에 기둥을 굵게 세우고, 타키아마노하라에 이르게 용마루를 높이 세우고 사셨다. _ 오노야스마로, <고사기> , p310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의 손자 니니기노미코토가 거울(銅鏡), 옥(玉), 구나사기 검(劍) 등 3종의 신기(神器)를 가지고 고천원(高天原)으로부터 내려와 신아다도히메(神阿多都比姬)라는 여인과 결혼하면서 천황가는 시작되었고, 끊김없이 현재에 이른다. 그렇지만, 실상 천황의 권세는 오랜 역사만큼 크지 못했고, 천황은 다른 실권자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지켜봐야했던 명목상의 존재였다.. 작가는 찬하의 입을 빌려 천황을 '정신적인 힘'으로 규정하고, 실권자들에 의해 이러한 '정신적인 힘'이 맹목적으로 강요되면서 '철학이 없는 문화'로 일본 문화를 비판한다. 


 거의 대부분 천황은 권력 밖에 있었고 군주가 아니었다, 물리적인 힘을 말하는 거지요. 그러면 천황은 무엇이냐, 정신적인 힘, 여기 와서 애매해지거든요. 당신들 공격의 대상이 되며 조선의 식자들은 대개 이 문제를 거론하는데 현인신, 그 현인신으로 얽어두지만 사실 종교도 철학도 도덕도 아니거든요. 그 세 가지를 때에 따라서 조금씩 필요한 만큼 치장을 해주지만요. 현재도 그렇지요. 국민들을 모조리, 정신적으로 말입니다. 천황에게 붙들어 매놨다가 물리적인 힘이 그것을 필요한 만큼 갖다 쓰고 있는 형편이 아닙니까. 대단히 불경스런 얘기지만 국민정신의 저장고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종교도 철학도 도덕도 그 어느 것이라 할 수 없는 애매한, 해서 맹목적일 수밖에 없고 맹목이라는 것을 깨달아도 자기 기만을 할 수밖에 없고 긴 역사 속에 국민들은 자기 기만도 깨닫지 못하게 길들여졌습니다. _ 박경리, <토지 14> , p598/708


 일본 천황이 정신적 중심이라는 것은 앞서 살펴본 <고사기>의 내용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학자들은 <천손강림>을 곡령의 풍요를 의미하는 것으로 고대의 천황의 의미를 '곡식'으로 해석한다. '살아있는 곡식'으로 천황을 해석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의미를 같은 벼농사 문명인 동남아 문명을 통해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해 J. G. 프레이저 (James George Frazer,1854 ~ 1941)는 <황금가지 The Golden Bough>에서 식물과 관련된 원시신앙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아마테라스오호미카미의 명을 받고 아시하라노나카쯔쿠니(葦原中國)로 천강하는 신이 아메노오시호미미노미코토(天之忍穂耳命), 히코호노니니기노미코토(日子番能邇邇藝命)로 불리는 등 모두가 곡령의 풍요를 의미하고 있는 것은 고대의 천황이 천강하는 곡식으로 여겨지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탄생한 신생의 니니기노미코토가 천강한다는 것은 천황의 즉위의례를 천신의 어자로 새롭게 탄생하는 것으로 여긴 고대신앙의 반영이다. _ 오노야스마로, <고사기> , p312  


 생명의 원소를 일단 식물의 영혼이라고 해두자. 흔히 인간의 영혼이 그 몸에서 분리될 수 있는 생명의 원소라고 여겨지듯이 말이다. 모든 곡물의례는 바로 식물의 영혼에 대한 이론과 신화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모든 사자死者에 대한 의례가 인간 영혼에 대한 이론이나 신화 위에 기초하고 있는 것과 같다.(p158)...  버마의 카렌족도 농작물의 풍작을 위해서는 벼의 영혼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잘 붙잡아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벼가 잘 자라지 않으면, 벼의 영혼 kelah이 벼에서 떠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일 그 영혼이 다시 벼한테 돌아오지 않으면, 그해의 벼농사는 실패하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_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2> , p160


 프레이저는 <황금가지>에서 벼농사문화권에서의 애니미즘(animism)에 대해 서술한다. 벼에 깃든 정령(精靈)을 숭배하던 사회집단에서 사회분화에 따라 주술사 계층이 세력을 얻고 왕권(王權)을 확립하는 것이 역사의 흐름이었다면, 일본신화에서 <천손강림>의 내용 역시 농사와 관련된 일련의 지배층이 한반도로부터 건너온 청동문화를 바탕으로 권위를 확립하고 이후 권세를 세웠다는 표현이 아닐까. 다만, 다른 문명권에서는 이들이 중앙집권적인 권력을 형성했다면,  '신성왕가' 와 다른 별도의 세력가들이 있었음은 일본문명의 특수성이라 할 것이다. 정신적 중심점과 권력의 중심점의 차이. 마치 '두 점에서 거리의 합이 같은 점들의 집합'인 타원(Ellipse)과도 같은 일본문화의 독특한 성격은 19세기 후반 흑선(黑船)의 출현과 개항(開港)이라는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변곡점에 다다른다.


 원시사회에서 기능적으로 고만고만한 자들에 의해 수행되던 직능이 점차 상이한 계층들에 분할되면서 보다 완전하게 수행되었다. 아울러 특수 노동에 의한 물질적, 비물질적 생산물이 모든 사람들에게 분배되면서 공동체 전체가 이익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경과하고 이런 분화과정이 계속되면서 주술사 계급 자체가 질병을 치료하는 주술사나 비를 내리게 하는 주술사 등의 여러 계층으로 세분화되었다. 그 중에서 가장 강력한 주술사가 추장의 지위를 획득하고 나아가 신성왕神聖王으로 발전했다. 이에 따라 주술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주술적 기능이 점차 퇴화하고, 대신 사제 직능 혹은 신적 직능이 나타나면서 종교가 주술을 배제하기 시작했다. _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황금가지2> , p274 


 미 페리제독(Matthew Calbraith Perry, 1794 ~ 1858)에 의한 강제개항 이후 세력을 회복하려던 막부(幕府)정권과 이에 대항하는 삿초 동맹(薩長同盟)세력간의 다툼에서 메이지 천황(明治天皇, 1852 ~ 1912)이 사쓰마-조슈 동맹에 손을 들며 이른바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라는 개혁이 일어나게 된다. 천황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양자의 구애에서 삿초군을 선택한 천황의 결정은 일본 천황이 네팔의 살아있는 여신 '쿠마리'와 같은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적극적인 현실개입자, 또는 '천손강림' 이후 '현실강림'의 계기가 된다. 이후 천황은 일본제국의 정신적 중심에서 실제적인 권력의 중심으로 대중 앞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화려한 군주> 리뷰에서 자세히 다뤘으므로 넘기도록 하자. 


 하나의 복잡한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양측 모두 천황에 대한 경외심을 부인하지 않았고, 메이지 국가의 건설자들이 그들의 작업을 끝마쳤을 무렵 모든 행위자들은 자신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천황을 보호하고 강력한 존재로 만들기를 열망했던 것으로 기억했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 투쟁에서 패한 사람들은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함으로써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려 했고, 승자는 천황의 깃발을 앞세워 자신들의 야망을 미화할 수 있었다. _ 마리우스 B. 잰슨, <현대일본을 찾아서 1> , p488


 1월 4일 메이지 천황은 고마쓰노미야 아키히토친왕(小松宮彰仁親王, 1846 ~ 1903)을 정토대장군(征討大將軍)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금기의 절도(節刀)를 내렸다. 이것은 아키히토 친왕에게 적대하는 자는 조정의 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진작부터 전투 상대는 조정이 아니라 사쓰마 번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금기(錦旗)는 천황의 옹호자라는 정통의 자격을 사쓰마번에 주었다. 수많은 자료에서 막부군의 패배 요인으로 금기의 절대적인 효과를 들고 있다. 금기는 '관군' 삿초군의 사기를 북돋우고, 조정의 적이 될까 주저하는 막부군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_도널드 킨, <메이지라는 시대 1> , p169/556 


  근대화 과정에서 천황을 중심으로 새롭게 체제가 정비되었던 것이지만, 세계대공황 이후 변화된 국제정세와 새롭게 등장한 이익집단은 1930년대 일본 체제에 변화를 가져온다. 서구화된 제도가 정착되고, 세대가 바뀌면서 변화된 가치와 이익 추구는 일본을 군국화(軍國化)의 길로 이끌었고, 그 과정에서 전쟁으로 가는 길에 '너와 나'의 구별이 없었음을 <현대 일본을 찾아서>는 잘 보여준다. 잰슨에 따르면 일본의 전쟁 책임은 일본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1930년대의 수많은 성취는 사실 대중문화와 참여정치의 발전이 선행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군부의 득세와 지배가 근대 메이지 국가의 제도적 틀에 뿌리박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현상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권력의 축이 이동했다는 것이다. 변화를 조절하고 중재해줄 근대국가 건설자들의 영향력이 사라졌고, 이데올로기에서 군대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창안한 통치기구는 이제 나름의 동력을 갖게 되었다. 그들이 만든 제도는 반대를 일삼는 강력한 관료와 이익집단을 탄생시켰다... '군부'가 하나로 똘똘 뭉쳐 있었던 것도 아니고, '문민' 정부의 평화주의자들이 군부의 준동에 시종일관 반대했던 것도 아니다. 다양한 집단이 제휴하여 침략을 획책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에 발달한 대중매체가 팽창과 전쟁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선동했다. _ 마리우스 B. 잰슨, <현대일본을 찾아서 2> , p870  


 아니면 소가[蘇我]나 후지하라[藤原] 같은 권신이 왕이나 다름없는 실권을 쥐고 있어서, 그 이상의 칭호를 필요로 했는지 모르지요. 땅은 우리가 다스릴 터이니 당신은 하나님으로 있으라, 이전에는 오오기미[大王. 大君]로 칭했거든요.(p390)...  그것저것 다 아닐 거요. 실력자라기보다 실력군(實力群)이라 해얄 겁니다. 오오기미노 헤니코소 사나메에(대군, 즉 천황 곁에서야말로 죽을지어다) 그런 사람들이겠지요. 참본(參謨本部) 중에서도 알짜, 비밀참본, 뭐가 꿈틀거리고 있는지 모를 그들 일군, 그리고 관동군(關東軍)일 게요." _ 박경리, <토지 14> , p393/708


 그렇지만, 이러한 전쟁 책임을 바라보는 일본 지식인의 입장은 조금 다른 듯하다. 대표적인 지식인 가라타니 고진 (柄谷行人, 1941 ~ )의 <윤리21>에 언급된 천황제와 천황의 전쟁 책임에 대한 글은 일본 지식인들의 입장이 잘 표현된 글이라 여겨진다. 고진은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해 일본인 개인에게 묻기 전 제도에 물어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인식을 본문에서 말한다. 이 같은 말은 얼핏 옳은 듯 하지만 전후에도 천황은 존재했고, 욱일기(旭日旗)가 해상자위대에서 버젓이 사용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고진의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 최근까지도 천황제를 유지해야한다는 일본인들의 찬성비율이 80%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고진의 말처럼 천황제도가 문제라 할지라도 - 일본인들의 전쟁 책임 문제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개개인이 과거를 깨닫고 반성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미묘하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먼저 최고책임자의 책임을 물은 후에야 비로소 국민 개개인의 정치적 책임이나 도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일본인에게 과거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천황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정부는 여러 번 침략전쟁에 대해 사죄하고 천황 자신도 '유감'의 뜻을 표명했습니다. 그런데 왜 사죄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일까요. 그것은 같은 천황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기 때문입니다.(p160)... 천황 개인보다는 구조가 문제이기에 그것을 폐지하여 천황 개인을 인간적으로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구조론적인 인식을 할 때 개인의 책임은 괄호에 넣어야 합니다. 하지만 '책임'을 물을 경우에는 그 괄호를 벗겨내야 합니다._ 가라타니 고진, <윤리 21> , p162


 가라타니 고진은 일본 근현대사의 흐름을 메이지 유신으로부터 도쿠가와 체제로 가는 '죽음의 충동'으로 해석한다. 공격충동이 가득했던 유기체인 메이지 시대로부터  무기질 상태인 도쿠가와 체제로의 회귀. 그것은 팽창정책에 대한 겸허한 반성으로 고진은 해석하지만, 일본의 극우화로 인해 헌법9조의 개헌 움직임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것을 보면 역사를 왜곡하고 잘못된 기억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언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진 본인은 천황제에 반대할지 모르겠으나, 반성없는 일본 사회 전반의 분위기 속에서 일본을 경계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토지>에서 천황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찬하의 물음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메이지유신으로부터 36년 후 러일전쟁이 있었고, 그로부터 40년 후 일본은 제2차 대전으로 패전을 맞이했습니다. 메이지유신과 더불어 개시된 프로젝트는 77년 정도에서 좌절되었습니다. 전쟁 기피 반응은 단순히 메이지 이래의 전쟁 체험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좀 더 근원적으로 '도쿠가와의 평화'와 이어지고 있습니다.(p86)... 도쿠가와 체제는 오랜 전란 후에 만들어진 시스템입니다. 도쿠가와 체제란 '전후(戰後)'의 '국제(國制, constitution)'인 것입니다. 그것이 목표로 삼은 것은 다양한 금지를 통해 공격충동의 발생을 억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에 의해 도쿠가와 체제에서 '무기질'적인 상태가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쿠가와의 평화'입니다. 그런데 메이지 이후에는 개국(開國)을 하고 외부로 향했습니다. 그것은 공격충동의 발생입니다. 그것이 패전과 함께 자신의 내부로 향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헌법 9조인데, 이는 동시에 '도쿠가와의 평화'에 있었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복하자면, 헌법 9조의 뿌리는 메이지유신 이후 77년 동안 일본인이 목표로 삼아온 것에 대한 총체적 회한에 있습니다. _ 가라타니 고진, <헌법의 무의식> , p87


 다시 <토지>의 찬하와 오가타의 대화로 돌아가자. 찬하의 천황제를 부인하냐는 질문은 단순한 왕조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본 정신의 근원을 부정하고 진정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인가를 묻는 질문이며, 이것은 오가타에게 매우 강한 압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앞서 인실과의 대화에서는 자신의 사랑은 민족을 뛰어넘는 것이라는 확신에 찬 대사를 읊었던 오가타지만, 구체적으로 정신적 구심점을 타격해오는 찬하의 말에는 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은 오가타의 한계가 아니라 전후 책임지지 않는 일본의 한계임을 고진의 글 속에서 답을 찾는다. 찬하가 묻고 고진이 답한 천황제의 문제. 


 사실 그것은 일본 근대화의 문제가 아닐까. 인간 이성(理性)의 힘으로 신(神) 중심의 체제를 극복하고 새롭게 인간 중심의 체제로의 전환, 종교에서 과학으로 체제를 지탱하는 힘의 전환이 근대화(近代化)라고 한다면, 일본의 근대화는 종교를 바탕으로 이전 시대의 마술을 부활시킨 역행(易行)적인 운동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키스 토마스 (Keith Thomas, 1933 ~ )의 <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 Religion and the Decline of Magic and Man and the Natural World>에서는 17세기에 대중적으로 일어난 정신적 변화가 전근대적인 마술(점성술, 주술) 등을 극복하는 일련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일본의 근대화는 다분히 전근대적인 요소 위에 지어진 사상누각(砂上樓閣)에 불과함도 함께 깨닫게 된다.(17세기의 전반적인 변화 이전에는 16세기 문화혁명이, 15세기 르네상스의 영향이 있겠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다루도록 하자.)


 17세기에 진행된 것은 기술적 변화라기 보다 정신적 변화였다. 이 시기에 다양한 활동영역들에서 인류의 사업은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새로운 믿음이 출현했다. 빈곤을 통제하고 유랑민을 없애려 한 튜더 시대의 시도들은 지속되었고 확장되었다(p432)... 우리는 마술적 믿음들을 대체할 효과적 기술이 고안되지 않은 조건에서 그 믿음들로부터 해방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17세기 사람들이 이런 진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마술을 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요, 그들 종교가 초자연적 존재에게 도와달라고 빌기 전에 스스로 할 일부터 찾으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p436)... 해묵은 마술적 믿음이 쇠퇴한 것은, 도시생활이 성장하고 과학이 발전하고 자조 이데올로기가 확산된 추세와 관련될 수 있다. _ 키스 토마스, <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 3 >, p441


 일본에서 종교가 형식적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밀착하지 못하는 이유, 철학과 사상이 없는 이유, 그런 것들의 영향이 약하기 때문에 아까 오가타상이 말한 대로 쾌락에 대한 관대함도 사람들 의식 속에 심어졌지만, 여하튼 그 이유는 바로 천황의 존재에 있는 겁니다. 천황에게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천황은 실상이지 가상은 아니지 않아요? 천황은 분명히 눈앞에 있고 분명히 인간이면서, 서로 다 납득하에 신격화하고 있거든. 거기서 일본인은 딱 걸음을 멈추어버린 겁니다. _ 박경리, <토지 14> , p609/708


 찬하는 '천황제'라는 과거의 장벽 앞에 멈춰선 일본 정신과 일본 양심을 말한다. 고대 농경의 풍요을 바라던 소박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제도는 수천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괴물이 되어 버렸다. 과거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외치며 주변을 손절하는데는 익숙한 일본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기를 거부하는 일본의 모습을 <토지> 속 찬하와 오가타 대화의 짧은 몇마디에서 발견한다. 이러한 한계로부터 생겨난 사상적 빈곤이 만들어낸 허상(虛像)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움베르트 에코의 <미의 역사>와 <추의 역사> 그리고 <전설의 땅 이야기>와 연결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칼로써 힘을 빼는데 무한한 힘이 소요되는 창조에 바칠 힘이 있겠느냐, 일본의 문화적 빈곤은 바로 거기에 이유가 있고 칼을 삼가며 치지 않고 내 나라를 지키는 데 그친 조선은 당연히 창조에 그 힘을 살렸다, 전 그렇게 보고 싶은 거예요.(p547)... 그야말로 야만적이며 그로테스크한 것을 아름답고 숭고하게, 따라서 사람에 틀림이 없는 천황이 현인신(現人神)도 될 수가 있었던 거예요. 가치전도, 전도된 진실에 순치(馴致)되어온 일본인은 비극이라는 감각도 없는 채 비극 속에 있는 겁니다. 그것은 다 약탈의 도구며 장치예요. 보다 높은 곳을 향하는 이상이나 고매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와 같은 도구 장치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거지요. 당신네 나라에 사상이 없는 거지요. _ 박경리, <토지 14> , p549/708


 일본의 무사들이 칼을 갈고 어느 길모퉁이에서 지나가는 사람을 죽일 때 조선의 선비들은 글을 읽고 먹을 갈았습니다. 상무(尙武)정신이 당신들 나라의 오늘을 있게 했다면 성인군자의 길을 닦던 조선의 선비들은 당신네들 침약을 막지 못하고 오늘의 비운을 당하게 했어요. 그러나 당신네 손들은 피에 젖어 있어요. 악(惡)의 승리지요. 승리는 악을 지고선(至高善)으로 끌어올려 놨고 야만이 문명으로 둔갑합니다. _ 박경리, <토지 14> , p543/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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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사상의 향연- 언어와 교육 그리고 미디어와 민주주의를 말하다
노암 촘스키 지음, C. P. 오테로 엮음, 이종인 옮김 / 시대의창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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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3- 민중이 권력에 저항하는 방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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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2- 권력이 세상을 지배하는 방식에 관하여
노암 촘스키 지음, 피터 R. 미첼 외 엮음, 이종인 옮김, 장봉군 삽화 / 시대의창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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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 선거를 3개월 앞둔 프랑스에서는, 이번에도 좌파가 패배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막상 선거가 닥치면 좌파의 다양한 분파가 단합할 것이라고 가정해보더라도, 좌파 구성원 간에 남아있는 공통분모가 없다. 따라서, 좌파의 패배를 점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세금제도, 퇴직 연령, 유럽연합(EU), 원자력 존속 여부, 국방정책, 미국, 러시아, 중국과의 관계 등 핵심 사안들에서 서로 대립하는 이 다양한 좌파 분파들이 어떻게 연합해 국가를 이끌 수 있겠는가? 극우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직도 좌파를 결집시키는 유일한 공통분모다. 지난 40년간 프랑스에서 '좌파'가 집권한 세월은 20년에 달한다(1981~1986, 1988~1993, 1997~2002, 2012~2017). 그런데 그 동안 극우는 꾸준히 입지를 다졌다. 다시 말해 극우의 부상이라는 위험을 저지하기 위해 좌파가 취한 전략은 처참히 실패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2022년도 4월에 프랑스 대선이 있어서인지 최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기사의 상당량은 선거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덕분에 거의 같은 시기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2022년 1월호 기사 중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는 사회주의 세력이 쇠퇴하는 여러 원인에 대해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는데, 과거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았던 대안으로 사회주의의 위상과 업적을 생각한다면 '언제나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좌파'라는 제목은 관심을 끈다.   

 

서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지난 100년간 얻은 주요 성과는 자본주의를 문명화한 것이다.(p610)... 사회주의자들은 복지 제도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계몽주의의 진정한 계승자들이고, 시민권과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었다. 그들은 투표권이 제한된 시절 투표권을 확대하기 위해 싸웠다. 다른 어떤 정당보다 일관되게, 일찍부터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구체제의 견고한 권리와 특권을 폐지하기 위해 싸웠다. 그들은 인종 차별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모든 투쟁을 지지했다. 사형 제도 폐지와 동성애 합법화, 낙태의 비非범죄화에 중요한, 때로는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_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 p611 


 지난 30년 동안, 좌파와 대중 유권자들이 멀어진 것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에서 비롯됐다. 정치적으로는 공약 불이행에 대한 배신감, 경제적으로는 3차 산업의 확대, 자본화, 세계화 때문이다. 이념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헤게모니, 사회학적으로는 교육받은 계급들의 능력주의 찬양, 인류학적으로는 계산적이고 상업적인 합리주의로 인한 삶의 다양성 와해 때문이다. 또한 지리적으로는 대도시의 주변 지역 잠식, 문화적으로는 사회 투쟁에 대한 상류층의 투쟁 때문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의 기사는 그 원인을 좌파가 이전까지 여러 차례 정권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실패한 것에서 찾는다. 정책수행을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우파와 타협할 수 밖에 한계점. 그것은 좌파가 갖는 한계점이기도 하다. 헌법에 보장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체제 안에서 지속적인 정당활동과 차기집권을 위해서 이들의 개혁안은 한계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러한 한계점은 그들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실망감으로 바꾸면서 좌파와 대중들의 분리가 시작된다고 기사는 분석한다. 


 이런 성공에도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폐지하지 못했고, 경제계획을 통해 자본주의를 이끌지도 못했다. 이 실패의 원인은 정치와 현대자본주의, 그 둘의 관계에 내재된 속성에 있다... 자본주의자들의 활동에 전부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아무리 커도, 그것이 자본주의에 악영향을 미쳐서 실업과 저성장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 권한은 억제될 수밖에 없다(p612)...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은 두 가지 뚜렷한 제약 내에서 자본주의를 규제하려고 했다. 첫째 제약은 자본주의 자체를 존속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둘째 제약은 민족국가로, 모든 규제의 틀에 법적 테두리를 제공했다. _ 도널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 p613


 하지만 두 가지는 분명히 해둬야 한다. 첫째, 좌파는 단순히 좌파의 강령 실천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파의 강령을 실천했다. 둘째, 좌파가 타협을 최대한 연기하려 할 때마다(프랑수아 올랑드는 취임 첫날부터 그랬다) 좌파를 굴복시킨 것은 쿠데타도 외국 군대도 아닌 재정 질식이었다. 2015년, 당시 그리스 재무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는 "아테네의 봄과 프라하의 봄을 짓밟은 것은 탱크가 아니라 은행"이라고 요약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좌파는 왜 패배하는가> 中


 여기에 더해, 좌파의 세력구성은 수많은 '결'들로 구성된다. 좌파를 구성하는 여러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느슨한 연합구조를 갖는다. 현상을 타파하기 위한 동맹. 동맹을 위한 수많은 협상과 양보를 거치면서 최초의 개혁안에서 상당부분의 후퇴는 불가피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은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離合集散)이 반복되며 체계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사회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에서 1860년대 이후 한 세기 동안 두 가지 상호 보완적인 원칙이 유효했다. 사회주의는 언제나 좌파의 고갱이었고 좌파는 언제나 사회주의보다 그 범위가 넓었다. 사회주의자들이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목표를 수행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동맹자들을 필요로 했다 - 선거에서 겨룰 때나 정부를 구성할 때, 파업을 조직할 때나 공동체의 지원을 구축할 때, 선동을 수행할 때나 제도 안에서 활동할 때나 공적인 영역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공언할 때나 언제나 그러했다. 1960년대 이후 사회주의자들이 좌파 안에서 헤게모니를 잃고 다른 급진주의자들이 좌파의 정치 공간에 진입함에 따라 이러한 협상의 조건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_ 제프 일리, <더 레프트 1848 ~ 2000 : 미완의 기획, 유럽좌파의 역사>, p617


 이에 대항하는 우파 - 특히 극우파 - 의 논리는 비교적 단순하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를 근간으로 자신들의 논리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사유재산침해,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인종과 국가를 우선하는 정책을 주장하며 감정에 호소한다. 간결한 메세지와 애국심 등 감정에 호소하는 전략. 여기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적한 '언론장의 보수화'까지 더해지면, 우파는 선거에서 질래야 질 수 없게 된다. 개인적으로 좌파의 느슨한 연합은 '측정할 수 없는 이념들의 질(質)적인 연합'인 반면, 우파의 연합은 '측정가능한 이익의 양(量)적인 결합'이라는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이것은 선거철이면 재등장하는, 극우가 내세우는 모든 공약의 핵심이다. 또한, 프랑스에 과거의 명성을 되돌려줄 현자의 돌이다. 실업부터 공공적자, 주거에서 이민까지, 범죄에서 연금까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다. 이것은 바로 '국적 우선제'다. 국적 우선제 장점은 많다. 우선, 개념이 쉽고 단순하다. 또한, 자원이 부족한 위기상황에서 확산되는 국수주의적 반응을 자극함으로써 논쟁이 될 '예산' 없이도 부차적인 모든 관심사에 응용할 수 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1.12> <극우파의 만병통치약, '국적 우선제'> 中


 사회는 하느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신비로운 '자연력'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사회는 인류에 의해서 창출되었다. 사회가 계속해서 진화할지 혹은 쇠락할 것인지는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사회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는 개인적 판단의 문제일 수 있지만, 죽음보다는 삶을, 고통보다는 행복을, 비참함보다는 후생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를 수용해야만 한다. 그리고 사회가 존재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권도 제한이나 유보 없이 수용해야만 한다. _ 루트비히 폰 미제스, <사회주의 2> , p251/390 


 주로 시청률에 발목이 잡혀 정치적 경제적 제약에 점차 구속됨으로써 보다 더 타율적이 돼가는 언론장은 (사회과학장, 철학장 등의) 문화생산장이나 정치장을 비롯해 다른 모든 장을 구속하려는 속성을 보인다. 그런데 장이란 내부에 다수의 힘이 존재하고 상호 간에 영향력을 미치면서 투쟁을 벌이는 공간으로서, 이 투쟁의 주된 목표는 힘의 장에 변형을 가하는 데 있다. 즉, 하나의 장에서는 장내 투쟁의 쟁점이 되는 것을 정당하게 점유하기 위한 경쟁이 존재한다. 언론장에서의 쟁점은 다름 아닌 대중의 관심이다. 대중을 얻기 위해,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들(속보, 특종, 독점 정보, 유명 인사 등)을 점유하기 위해 내부에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재미난 점은 ‘자유의 전제조건’이라는 이 경쟁으로 인해, 상업적 통제 하의 문화생산장에서는 오히려 장의 획일화와 검열, 나아가 보수화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피에르 브루디외, <특정 세계관은 어떻게 자리잡는가> 中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기사는 프랑스 정치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문제점 등에 대해 지적하고 있기에, 오늘 우리 한국의 정치 상황과는 분명히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강의 기사 내용이 남의 이야기같지 않은 기시감(旣視感)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긴 페이퍼의 마지막은 '여론장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글을 옮기는 것으로 갈무리한다...


 기자와 여론조사 기관은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올라가자 자신의 영향력과 킹 메이커로서의 역할에 도취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자기중심적 본능에 무릎을 꿇었다. 시민들의투표 의사를 가시화하기 힘든 (어쩌면 실체조차 없는) 시기인,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선거 6개월 전에 투표 의사에 관한 여론조사를 한다는 것은 더 기이한 역설이다. 이처럼 후보 선정이  인위적인 구조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민주선거의 정당성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다. 과연 언제까지 이 환상이 유지될 수 있을까? 표본의 대표성이 신뢰할 만하지 않고, 계산이 정확하지 않고, 선거에서 승리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 때, 여론조사의 민주적인 이점에 대한 믿음은 사라질 것이고, 정당의 여론조사 담당자는 지쳐버릴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에 대한 비판과 품질 하락에도 불구하고 그런 상황이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반대 방향에서 어떤 강력한 흐름이 이것을 막고 있음을 의미한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22.1> <누가 대선 후보를 선택하는가?> 中


 언론이 대중의 대화를 촉진시켜야 한다는 대화 저널리즘의 임무는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시민과의 소통, 즉 대화다. 사람들을 단순히 뉴스 소비자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서 언론은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논의 과정에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언론이 시민과의 만남과 모임을 갖고 그 과정과 내용을 기사로 다루어 공동체 구성원들과 나누어야 한다. 언론이 공동체의 대화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소외집단이나 개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 주어야 한다. 언론은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만들어 낸 정보를 유통시키는 통로의 역할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시민적 담론을 위한 장(場)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_ 월터 리프먼, <여론> , p1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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