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할 수 없는 것은 오늘날 인간이 ‘소비하는 인간’, 완전한 소비자가 되기 시작했고, 이런 인간상이 새로운 종교적 비전의 성격을 띤다는 사실이다. 이 비전에서 천국은 모두가 매일 새 물건을 살 수 있는, 바라는 모든 것을 살 수 있고 이웃보다 조금 더 많이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거대한 백화점이다. 이런 완전한 소비자의 비전은 사실상 세계를 정복한 새로운 인간상이다. 정치 조직이나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인간은 공허감을 느끼고 이 허전함을 상징적으로 채우기 위해 다른 사물, 바깥에서 들어오는 사물로 자신을 채워 마음의 공허와 쇠약을 극복하려 한다. 불안하거나 우울한 기분이 들면 무언가 구매하거나 냉장고를 열어 평소보다 더 많이 먹으려 하고 그러고 나면 약간 덜 우울하고 덜 불안해진 모습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수동성의 결과는 무엇일까? 중요한 결과 중 하나는 누가 봐도 확실하며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 바로 소비하라는 강제, 소비하는 인간이 되라는 강제다. 소비하는 인간은 내면이 공허하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안으로 불어넣어야 한다. 수동성 탓에 실제로는 공허하지만 꽉 찼다는 허울을 선사할 물건으로 자신을 채워야 한다. 세계를 지배한다고 잘난 척하는 어른임에도 그는 젖을 달라고 우는 영원한 젖먹이다. 실제 그의 분주함과 게으름은 같은 것이다. 즉 내면 활동성의 결핍이다.

정치적 수동성에서도 똑같은 것을 목격한다. 오늘날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척하며 거기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선거와 이런저런 후보에 대해 열을 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에 무관심하며 완벽하게 숙명론적이다. 어떤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며 그 후보가 이기면 정말로 스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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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마광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에 주의 세종(世宗, 후주의 2대 황제인 곽영)과 같이 한다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그의 몸을 아끼지 않고 백성들을 아꼈으니 만약에 세종과 같다면 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무익(無益)한 것으로 유익(有益)한 것을 폐기한 것이 아닙니다.

무릇 현명한 사람을 나아가게 하고, 불초(不肖)한 사람을 물러나게 하는 것은 그 재주를 거둬들이기 위함인데, 은혜로 구휼하고 진실하게 믿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묶기 위함이고, 공로를 이룬 사람에게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그들의 힘을 다 쏟게 하기 위함이며, 사치한 것을 버리고 쓰는 것을 절약하는 것은 그 재물을 풍성하게 하기 위함이고, 때에 맞추어 부리고 거둬들이는 것을 적게 하는 것은 그 백성들을 커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 재주 있는 사람이 이미 모여지고, 정치적인 일들이 이미 잘 다스려지며, 재물의 쓸 것이 이미 충분하고, 사민(士民)이 이미 붙어있기를 기다리고, 그런 다음에 들어서 이를 사용하면 공로는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무릇 공격하여 빼앗는 도리는 반드시 그 가운데 쉬운 것을 먼저 처리하는 것입니다. 당(唐)과 우리는 경계를 맞댄 것이 거의 2천리나 되는데, 그 형세는 쉽게 시끄럽게 됩니다. 이를 시끄럽게 하는 것은 당연히 아무런 대비가 없는 곳에서 시작하여야 하는데 동쪽을 대비하고 있으면 서쪽을 시끄럽게 하고, 서쪽을 대비하고 있으면 동쪽을 시끄럽게 하면 저쪽에서는 반드시 분주하게 다니며 이를 구원할 것입니다.
분주하게 다니는 사이에 그들의 텅 빈 곳과 알찬 곳 그리고 강한 곳과 약한 곳을 알게 되고 그런 다음에 알찬 곳을 피하고 텅 빈 곳을 치며 강한 곳을 피하여 약한 곳을 치는 것입니다. 아직은 반드시 대규모로 거병하지 말고 또 경무장한 군사들로써 이들을 시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황상이 시중드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경들은 불상을 훼손(毁損)한다고 의심하지 말라. 무릇 부처는 선한 도리를 가지고서 사람을 교화하는 것이니 진실로 선에다 뜻을 두면 이것이 부처를 섬기는 것이다. 저들 구리로 만든 모양이 어찌 이른바 부처이겠는가? 또 내가 듣기로는 부처는 사람을 이롭게 하는데 있다 하니 비록 머리나 눈이라도 오히려 버려서 보시(布施)하는데 만약에 짐의 몸이 백성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역시 아까워 할 것이 아니다."

능히 사람을 알고 공정한 사람을 선발하여 재상(宰相)으로 삼고, 백성들을 아끼며 하소연 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수령(守令, 태수와 현령)으로 삼으며, 재물을 풍부하게 하여 먹을 것을 넉넉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금전과 곡식을 관장하게 하고, 원래의 정서를 알 수 있고 법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형옥(刑獄)을 관장하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폐하께서는 다만 명당(明堂)에서 팔짱을 끼고 그들의 공로와 허물을 보아 상을 주거나 벌을 준다면 천하가 어찌 다스려지지 않을까 걱정하겠습니까? 왜 반드시 군주의 존귀함을 내려 신하의 직분을 대신하며 귀한 지위를 낮게 하여 천한 일을 친히 하시니 마침내 정치를 하는 근본을 잃는 일이 없겠습니까?"

황제가 고평에서의 전역(戰役)23을 통하여 비로소 그 폐단을 알았는데, 계해일(12일)에 시중을 드는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무릇 군사는 정병(精兵)을 만들기에 힘써야지 많게 하기를 힘쓸 것이 아니고, 지금 농부 100으로 갑사(甲士) 한 명을 기를 수 없는데 어찌 백성들의 기름진 것을 빼앗아 이러한 쓸데없는 물건을 길러야 하겠는가? 또 건장하고 나약한 것이 구분되지 않는데 무리들에게 어떻게 권고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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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경제적 이성의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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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스가 제기했던 사용가치, 교환가치, 그리고 가치라는 세가지 핵심개념은 근본적으로 서도 다른 시간과 공간의 차원들과 각각 관련되어 있다. 사용가치는 사물의 물리적인 물적 세계 속에 존재하고 이 세계는 절대적 공간과 시간이라는 뉴턴과 데까르트의 개념들로 묘사될 수 있다. 교환가치는 상품들이 움직이고 교환되는 상대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고, 가치는 이와 달리 오로지 세계시장이라는 관계적인 시간과 공간의 맥락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맑스가 이미 확실하게 보여준 것처럼 가치는 교환가치 없이 존재할 수 없고 교환가치는 사용가치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세 개념은 변증법적으로 서로 통합되어 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시간과 공간의 세 형태(즉 절대적, 상대적, 관계적 형태)도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적/지리적 동학(動學, dynamics) 내에서 변증법적으로 서로 관계되어 있다. 이것이 지리학자로서의 나의 주장이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 p78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1935 ~ )의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A Companion to Marx's Capital>가 다른 <자본 Das Kapital> 입문서와 가장 차별화된 부분은 '운동성(運動性)을 중심으로 한 설명'이라 생각된다. 다른 입문서들이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의 '운동'을 빼놓지는 않지만, 하비는 자신의 강의의 중심을 '운동'에 놓는다. 다른 입문서들이 일반적으로 '절대성'과 '상대성', '질(質)'과 '양(量)', '개별'과 '특수'라는 정(靜)적인 용어 해설에 치중하는 반면. 지리학자인 하비가 선택한 시공간(space-time)상의 관계에서 빚어지는 상황에서 모순을 발견한다는 방식은 보다 독자들에게 역사성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 여겨진다.


 맑스의 변증법은 모순의 끊임없는 확대만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맑스의 변증법을 하나의 완결된 분석방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용납하기 어렵다. 그의 변증법은 완결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것은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으며 바로 여기에서 그는 그것이 정확하게 어떻게 확대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잇는 것이다. <자본>을 읽어나갈 때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앞에서 이미 읽은 내용만을 토대로 재음미해야 한다. <자본>에서 논의가 전개되는 방식은 모순의 영역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확대되는 방식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에서 왜 그렇게 많은 내용들이 반복되는지를 설명해주는 이유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 p123


 <자본>에서는 여러 모순적 상황이 제기된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의 반복은 단순한 반복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자본주의의 동적인 구조를 통한 하비의 설명은  현 단계의 모순이 앞 단계에서 모순의 연결상에 있음을 독자들에게 분명하게 인식시킨다. 그리고, 독자들은 매단계마다 계속 논의의 발전을 저해하는 차단막과 같은 '모순'속에서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붕괴될 수 없다는 저자의 논리에 설득당하게 된다. 이것이 하비의 설명이 다른 입문서와 구별되는 지점이라 여겨진다. 


 하비는 자신의 <자본 강의>에서 이러한 모순을 '상품물신성(commodity fetishism, 赤弊物神性)'의 개념을 반복적으로 제시하면서 은폐된 사실 관계를 밝혀나간다. 이런 점에서 맑스의 사상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 책의 장점이지만, 반면 이러한 역동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개념 및 용어에 대한 사전 이해가 필요하기에 개인적으로 하비의 이 책은 <자본>을 읽은 후 들여다 본다면 더 의미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권 <교환의 세계>와 관련하여 화폐의 물신성 등의 개념을 잠시 정리해본다...


  물신성 개념은 그의 논의 속에서 경제체제의 중요한 성격이 "이율배반"과 "모순"을 통해 은폐되고 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방식의 서술을 통해 이미 예고되어 있다(p78)... 여러분은 상추를 구매하기 위해 그것을 생산한 노동에 대해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다. 극도로 복잡한 교환체계 속에서 그 노동이나 노동자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것이 곧 세계시장에서 물신성이 불가피한 이유다. 최종 결론은 다른 사람의 노동활동과 우리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물적 존재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은폐된다는 것이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 p82


 제2권의 처음 세장을 다루면서 나는 화폐, 생산, 상품이라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창을 통해 자본유통과정을 살펴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요점은 분명하다. 즉 서로 다른 순환들이 서로 얽혀 한데 어우러지고 끊임없이 서로 관계하며 운동한다는 것이다. 각각의 운동은 다른 것들의 운동을 위한 조건을 이룬다.... 총괄해서 보면 "과정의 모든 전제가 과정의 결과[즉 과정 스스로가 만들어낸 전제]로 나타난다. 모든 계기는 제각기 출발점, 통과점, 귀착점으로 나타난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2> , p113


 맑스는 상업자본과 생산자본의 활동이 서로 뒤엉키면서 얼마나 쉽게 물신적인 개념들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신랄한 논평으로 이 장을 마무리한다. "재생산의 총과정에 대한 피상적이고 전도된 모든 견해들은 상인자본의 관점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_ 데이비드 하비,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2> , p271


 경제는 얼핏보면 생상과 소비라는 두 개의 거대한 영역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 같다 : 소비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완수되고 파괴되며, 생산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소비한다"라고 마르크스는 썼다. 정말로 지당한 진리이다. 그러나 이 두 세계 사이에 세번째의 세계가 끼어들어간다. 그것은 바로 교환의 세계이며 달리 말하자면 시장경제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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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확산 - 대륙별 구석기 문화 케임브리지 세계사 2
데이비드 크리스천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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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 시대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이동에 관한 이야기다. 때로는 다른 생물이 잠식하지 않은 생태 환경의 빈 공간(niche)을 찾아 들어가기도 했고, 행동 양식의 한계를 극복하여 이전에는 살 수 없었던 곳으로 진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동은 대개 수축과 팽창의 과정이었다(p235)... 인류의 확산이 특히 흥미로운 이유는, 이동 과정에서 해부학적, 기술적, 사회적 변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뇌 용량의 변화, 뾰족한 돌촉을 부착한 발사체의 발명, 교환 체계의 발달 등이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237


 데이비드 크리스천(David Christian, 1946 ~ )의 < 케임브리지 세계사 2 Cambridge World History Vol. 2 : 인류의 확산>에서 우리는 빙하기(氷河期)에 이루어진 인류의 확산과 간빙기(間氷期)에 이뤄진 문화의 다양성을 접하게 된다. 이와 함께, 인류 문화사에 있어서 현생 인류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준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석기 시대 문화 전체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석시 시대 후반부 문화 일부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현생 인류 문화가 고인류(古人類)가 만들어낸 문화의 기반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프리카의 후기 석기 시대 층위, 그리고 아프리카 바깥의 후기 구석기 층위에서 발견되는 유골은 언제나 완전한 현생인류의 유골이라는 사실이다. 반면 중기 구석기 혹은 중기 석기 시대와 관련된 지층에서 발견된 유골은 예외없이 다른 고인류의 유골이다... 요약하면 아프리카 고인류는 중기 석기, 다른 고인류는 중기 구석기, 완전한 현생 인류는 후기 석기 및 후기 구석기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115


 우리 이야기의 기본 틀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기후 변화는 딱 한차례뿐이다. 약 15만~ 20만 년 전으로, 빙하기 관련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호모 사피엔스의 최초 출현이 연결되는 시기다. 호모 사피엔스가 이례적으로 확정된 시기는 약 10만 년 전이었다. 그때 문화적 변화도 함께 일어났다. 당시는 빙하기였다. 빙하기는 훨씬 전부터 지속되어왔으며, 약 2만 년 전에 가장 극심했다... 1만 8000년 전에서 1만 5000년 전 사이, 기온이 다시 올라가는 온난기가 시작되었다. 온난기가 시작되면서 빙하가 녹아내렸고, 결과적으로 바닷물의 온도가 내려갔다. 그 영향을 받는 위도의 범위에서는 일시적으로 기후의 전체적 흐름과 반대되는, 즉 기온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류 문화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다양성이 출현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66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는 문화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고인류가 창조한 문명을 빼앗은 종족일지도 모르겠다. 지구상 여러 곳에서 살던 고인류들은 10만년 전 빙하기에 대륙 여러 곳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한 호모 사피엔스의 도전은 점차 거세지면서 5만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거의 멸종의 상태에까지 이른다. 생체적인 능력으로는 고인류에 미치지 못했지만, 이 시간 동안 이들은 추상적인 '사고'와 '언어'의 힘을 통해 우세종으로 살아남아, 세상 끝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성공한다. <창세기>의 선악과를 선택한 이브와 아담, 그리고 낙원으로부터의 추방은 호모 사피엔스의 선택과 승리를 묘사한 것이었을까. 


 중동과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있었고, 아시아에는 데니소바인을 비롯하여 아마도 다른 종류의 고인류들도 있었던 것 같다. 다른 고인류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들은 이후로도 수천 년 동안 살아남았으나, 먹이와 자원을 두고 완전한 현생인류 조상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밀려났다(p109)... 혼종(混種) 사례도 몇 건 보고되어 있다. 현생 인류 조상의 유골에서 소량의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추출된 사례가 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110 


 해부학적 현생인류와 완전한 현생인류는 전혀 달랐다. 완전한 현생인류는 지구상 거의 모든 기후 조건에 적응했다. 그리고 이들의 진출 때문에 네안데르탈인을 비롯한 다른 고인류들이 멸종했다. 10만 년 전 아프리카를 벗어난 아프리카 고인류는 이처럼 모든 기후 조건에 적응할 능력이 없었고, 다른 고인류들과의 경쟁에서 그들을 압도할 능력도 없었다. 그러나 기원전 4만 8000년경 우리 모두의 조상인 완전한 현생인류는 이러한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115


 호모 사피엔스의 특성은 정신적 능력과 관련이 있다. 아마도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그 특성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아는 한 정신적 능력이 인류가 가진 매우 예외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정신적 능력들 가운데 문화 다양성과 관련해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상상력(imagination)이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과 관련된 진화의 부산물이 두 가지 더 있다. 바로 기대(anticipation)와 기억(memory)이다. 내가 보기에 인류 문화에 자유를 부여한 힘은 바로 상상력이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64


 현생인류의 특징은 생물학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 모든 종류의 고인류와 달리, 또한 다른 모든 영장류 동물과 달리 완전한 현생인류는 질식사할 위험이 매우 컸다. 그러나 장점도 있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언어 소통에 필요한 모든 소리를, 특히 기본 모음(primary vowels)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현생 인류의 언어생활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장점은 분명 생존에 유리한 조건이었고, 그 이익은 당연히 생물학적 단점을 충분히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118


 <케임브리지 세계사> 2권 <인류의 확산>에서는 호모 사피엔스가 빙하기라는 기후의 특성을 활용해 기술의 힘을 갖고 현생 인류가 앞선 종(種)을 대체하고, 석기 문명의 주권을 잡은 역사가 서술된다. 진화(進化)의 역사에서 그들은 육체적 능력을 다소 반납하고, 대신 정신적 능력을 선택하면서 살아남게 된다. 모든 대륙이 빙하로 연결되던 시기에 가능했던 이들의 확산은 이제 간빙기가 되어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지역은 서로 다른 환경에 고립될 것이었다. 서로 다른 환경에 고립된 호모 사피엔스들에게는 이미 전(前)시대에 만들어진 신분제가 있었고, 다음 시대 농경 시대는 신분제에 의해 또다른 변화가 예정되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당시에 인류가 거주하던 지역 어디를 가더라도 문화의 핵심 요소는 비슷했다. 언어, 정치 구조, 사회생활 등은 이미 상당히 다양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비슷한 기술을 이용해서 수렵채집 경제생활을 했고, 비슷한 종류의 음식을 먹었고, 비슷한 수준의 물질문화를 향유했다. 그리고 우리가 아는 한 종교 생활의 양태도 비슷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90


 이주의 원인은 모호하지만 이주의 결과는 명확하다. 이주 때문에 사람들의 관계, 집단의 규모와 조직, 세계를 보는 방식, 다른 생물들과 관계 맺는 방식 등이 모두 바뀌었다. 이때 바뀐 여러 가지는 이후로도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결과 중 하나는 성별에 따른 역할 구분이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82


 우리 인간은 추위의 산물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분명하게 시작되는 시기는 기온이 낮은 상태(기존 표현으로 "빙하기")가 지속되는 와중이었다. 그동안 특이한 문화적 분기가 발생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만 년 남짓 전의 일이었다. 그 뒤 지구의 기온이 다시 오르자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뒤 지구의 기온이 다시 오르자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61


 이주자들의 동기가 무엇이었든 분명한 것은 그들에게 충분한 이동기술과 후속 번식력이 있었다는 사싱이다. 불을 이용한 요리도 아마 인구 성장을 가능케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요리를 하면 음식을 더 쉽게 소화할 수 있다. 우리 인간처럼 소화기관이 짧고 턱이 약하고 이가 뭉툭한 데다 위가 하나뿐인 동물이 섭취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상당히 제한적이다. 결과적으로 요리는 인류의 진화에 매우 유리한 요인을 제공했다. _ 데이비드 크리스천 외 , <인류의 확산> , p80


빙하기에는 유라시아 대부분이 툰드라였다. 사냥을 하기에는 빙하의 끄트머리와 툰드라가 만나는 부근이 가장 좋았다.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은 체내에 지방을 효율적으로 저장하도록 진화되어 있었다. 지방은 오늘날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듣지만,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시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방을 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이 세상에서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은 식재료가 바로 동물성 지방이다(p85)... 그들이 좋아한 음식은 그들에게 미학적, 감성적, 지성적 삶을 가져다 주었다. 적어도 그 영향은 부정하기 어렵다. 빙하기의 예술가들에게 지방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예술 작품 중 하나가 바로 <빌렌도르프(Willendorf)의 비너스>다. - P86

고인류의 발성으로는, 비록 다양한 소리를 낼 수는 있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사물이나 동작에 대한 소통만 가능했다. 이에 비해 완전한 현생인류는 문장 구사 능력을 통해 끝없이 어휘와 의미를 만들어냈다. 문장을 만들어내려면 반드시 추상 능력이 있어야 했다. 즉 사물과 경험을 분류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또한 자신이 획득한 지식을 일정한 패턴으로 조직화하는 능력과, 직접 주어지지 않은 대상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다(p119)... 무엇보다 중요했던 점은 완전한 문장 구사 능력으로 사회적 협력의 규모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이 능력 덕분에 친족 구조의 개념화 및 정형화가 가능해졌고, 이를 기반으로 더 큰 영역의 사회 집단과 집단 간 협력적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 P120

완전한 문장 구사 능력이 형성되던 시기부터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여전히 남아 있는 언어 능력을 언어학적으로 분석해보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가 기원이 되는 단 하나의 언어로부터 전해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원 언어의 방언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상호 진화해왔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같은 언어의 역사는 인구학적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즉 예전 고인류의 언어적 의사소통에서 완전한 문장 구사 능력으로 넘어가는 사건이 비교적 좁은 지역, 지리적으로 연결되어 상호 교류가 가능한 공동체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 P122

고인류를 포함한 인류 전체 가운데 진정한 유럽인은 네안데르탈인(Homo neanderthalensis)이 유일한 것 같다. 이러한 결과는 네안데르탈인의 진화가 유럽의 환경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럽의 환경이란 지역적 자연환경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과 분리된 지리적, 유전자적 고립을 의미한다(p211)... 네안데르탈인이 그 이전 조상들과 다른 점은 빙하기에 적응하는 능력이었다... 그들이 빙하기 기후에 적응하는 데 결정적이었던 것은, 매머드나 털코뿔소 등의 대형 동물을 사냥하는 기술이었다. 이런 사냥감은 그들에게 풍부한 단백질과 지방을 제공했다. - P213

기후 변화는 동식물 생태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고, 물론 인류도 예외일 수 없었다. 온난하고 습한 시기에는 인류와 다른 생물들이 북쪽으로 서식지를 넓혔다. 대개는 원래 살던 곳에서 수직 방향 북쪽으로 이동했고, 서식 환경이 적당한 이웃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기간 동안 서로 다른 집단 간의 교배가 이루어졌다. 환경이 좋아질 때는 개체수도 증가하기 마련이었다. 춥고 건조한 시기에는 서식지가 축소되고 지역에 따라 사람들이 사라지는 경우가 생겨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피난처에 국한되었다. 이처럼 인류의 아시아 지역 거주지는 기후 변화에 따라 좌우되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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