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발명 - 인류의 지知와 종교의 기원, 카이에 소바주 4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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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발생과 신의 출현은 아무래도 서로 깊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두 과정은 마음의 토폴로지에 일어나는 같은 유형의 변화에 의해 발생한 듯합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대칭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사회로부터 왕과 국가가 발생하고, 그와 마찬가지로 스피리트 세계 내부로부터는 신이 출현하는 셈입니다. _ <신의 발명>, p128


 뫼비우스에서 토러스로.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신(神)이라는 주제를 뫼비우스라는 '대칭'이 깨지며, 대신 토러스라는 '비대칭'의 변화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마치 현대 물리학에서 우주 초기 '대칭성의 깨짐'을 통해 힘과 입자가 분리되었듯, 역사 속에서의 대칭성 깨짐을 통해 왕의 권력과 신의 초월이 생성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수학적 모형을 은유로 표현한다. 뫼비우스의 띠와 토러스. 안과 겉의 구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해 분리되지 않고 관여하는 다신교의 스피리트와 도넛 모양으로 도형의 내부와 외부가 단절된 토러스처럼 유일신의 그레이트 스피리트. 저자는 이들의 건널 수 없는 균열을 권력(power)의 구조와 연관 짓는다 


 겉과 속이 연결된 뫼비우스의 띠에서는 '어디에서나' 분리되지 않는 여러 신(多神)의 모습이 발견되는 반면, 초월적 존재로서 내부가 비어있는 토러스처럼, 외부에서 가까이 가고자 하지만, 겉면만 돌아나올 수밖에 없는 유일신의 교리는 인간의 지知, 언어가 다가설 수 없게 만들었다. 건널 수 없는 초월적 공간과 삶을 연결해주는 것은 믿음이 될 것이고, 신에 대한 믿음은 권력자에 대한 믿음으로 대체될 수 있었다. 


 국가를 갖지 않은 사회, 신이 존재하지 않고 스피리트만으로 이루어진 '초월세계'를 가진 사회, 수렵이나 채집을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 - 이런 사회에 사는 인간이 세계를 체험하는 구조를 '뫼비우스의 띠'를 모델로 해서 생각해보면, 이제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_ <신의 발명>, p109


 책을 읽으며 성(聖)에서의 신(神)과 속(俗)에서의 왕(王). 중앙집권적 구조를 통해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던 스피리트는 점차 소멸되는 대신, 이를 대신해서 관념적인 그레이트 스피리트가 절대적 권위로 고착화되는 과정을 확인하게 된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저자가 '균질화+정보화+상품화'로 특징지은 현대사회에서 유일신은 물신(物神)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있는 듯하다. 화폐가 모든 가치의 척도이자 우선 가치가 되어버린 현실은 뫼비우스의 야생성을 잃고, 자본이라는 토러스의 표면을 맴도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


 그레이트 스피리트란 매우 순수한 관념으로, 어떤 이미지하고도 연결시킬 수 없으며 어떤 상像으로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모든 존재를 관통해서 흐르고, 모든 존재에 적당한 거처를 제공하며, 동물이나 식물이나 인간과 같은 생물에게도, 그리고 바위와 같은 비생물에게도 똑같이 존재의 숨결을 불어넣는, 그런 순수한 관념이었습니다. _ <신의 발명>, p119


 <신의 발명>을 통해 저자는 신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저자에게 신은 인식의 구조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틀이다. 저자는 종교를 신앙(信仰)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세계를 연결하는 '인식의 틀(Frame)'이자 '다리'로 바라본다. 그렇기에 이 책은 뜨거운 믿음보다는 차가운 분석에 가깝다. 종교적 열정이 없는 부분이 다소 건조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열정적인 믿음을 대신한 냉철한 지성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신과 종교의 기원을 생각하는 시간과 종교의 현대적 의미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토러스의 빈 곳(초월적 공간)을 어떻게 봉합시킬 수 있을까. 토러스에서 뫼비우스 띠로의 봉합에 대한 과제를 안고 독서를 마무리한다...


 종교는 마음의 구조에 대한 심오한 표현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마음의 구조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며, '정신의 고고학'에 의하면, 이 언어의 구조 역시 현생인류의 뇌에 일어난 혁명적인 뉴런조직의 변화과정에서 출현한 유동적 지성의 작용에 의해 탄생한 것입니다. _ <신의 발명>,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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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은 창조적인 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자신이 행한 것 가운데 가장 나쁜 행위가 아니다. 가면 뒤에는 단지 교활함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간계에는 교활함 못지않게 호의(好意)가 존재한다. - P-1

고귀한 품성과 풍요로운 영혼을 지닌 사람은 낭비하듯이 자기 자신을 거의 돌보지 않고 관용의 덕을 악덕에 가깝게 베푸는데 이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보존할 줄 알아야만 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 P-1

위대한 것은 위대한 인간을 위해, 심연은 깊이 있는 인간을 위해, 미묘함과 전율은 섬세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모든 귀한 것은 귀한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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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예술학과 인류학의 창조적 융합을 위하여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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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나카자와 신이치 외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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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 이야기- 나카자와 신이치 교수의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양억관 옮김 / 교양인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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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자본론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구혜원 옮김 / 북드라망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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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 예술학과 인류학의 창조적 융합을 위하여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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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마음의 본질을 이루는 것은 논리 구조 같은 것이 아니라 유동적 지성에 의해 작용하는 고차원적 사고이며, 그것을 저는 '대칭성의 지성'으로 부릅니다. '대칭성'이라는 표현은 신화 특유의 사고법에서 유래한 것입니다.(p73)... '무분별지(유동적 지성)'가 활동할 때 인류는 이 세계에서 결코 고독한 존재가 아닙니다. 제가 구상하는 학문에 대해 '대칭성의 지성'을 기본 틀로 삼는 학문이라는 의미에서, 구조인류학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대칭성 인류학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_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p75


 예술인류학과 대칭성 인류학. 저자 나카자와 신이치는 유럽적 사고를 움직여왔던 구속의 원리, 신화의 논리를 거부한 근대의 과학적, 이분법적 기준을 들이대던 논의를 전면 거부한다. 논리 구조를 통해 1과 0, True와 False로 명확하게 분리하는 방식은 근대 이후의 '비대칭적 시스템'을 작동시켰고, 결과적으로 현대 사회의 여러 병폐들이 생겨났다.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칭성의 지성을 통한 사고의 전환'과 '예술을 통한 실천적 노력'을 강조한다. 


 예술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야말로 '예술인류학'이 나아갈 길을 인도해주는 부동 不動의 북극성이다. 여기서 '예술'이라는 단어는 온갖 사고력이 모여드는 순수한 췌점 萃点을 의미한다. _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들어가며 中


 저자는 '예술'이라는 단어에다 서구적 세계에 편입된 적이 없는 '아프리카적 단계'에 속하는 마음의 제반 활동을 탐구하는 학문인 '인류학'을 결합해, '예술인류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겉과 안이 구별되지 않고 그 자체로 전체가 표현되는 신화의 구조.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별 대신 서로 교차되는 역할 분담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진정한 의미를 저자는 대칭성 인류학이라는 철학적 기반 위에 예술인류학이라는 행위를 통해 발견하길 원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은 저자의 <카이에 소바주 총서>의 주제들이 하나로 응축되어 폭발하는 '췌점'과도 같다. <카이에 소바주> 총서를 읽기 전 독자들에게 이 책은 좋은 독서의 틀이 될 것이고, 읽은 후라면 좋은 정리 시간을 선사한다. 


 (신화의 이야기는) 중간 과정에서 비틀림이 발생해, 처음에는 안과 겉처럼 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던 것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연결되죠. 그러면서 신화는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결합 상태, 통일된 상태를 종종 만들어냅니다. 신화는 이야기 구조를 이용하여 직감적인 복논리를 통해 이해된 전체적 진리를 표현하고자 합니다. _ <나카자와 신이치의 예술인류학>,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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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내란 - 댓글 전쟁 - 민주주의는 어떻게 조작되는가?
황희두 지음 / 시월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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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질문으로 혐오의 메커니즘을 드러내야 한다. - 본문 中 - 왜곡된 정보와 댓글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저자는 기계적 중립자가 아닌 가치판단자로서 자리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비록, 그 질문은 각자의 가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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