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혁명의 구조 - 출간기념50주년 제4판 까치글방 170
토머스 S.쿤 지음, 김명자.홍성욱 옮김 / 까치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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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과학의 실행이라는 단일한 전통 속에서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면, 과학적 사실과 이론은 범주로서 분리되지 않는다. 여기에 예기치 않았던 발견이 단순한 사실로 도입되지 않은 이유와, 과학자의 세계가 근본적으로 새로운 사실이나 이론에 의해서 양적으로 풍요로워질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변형되는 이유가 있다.(p70)...이 책에서 과학의 발전이 비누적적인 단절들에 의해서 끊어지는 전통에 묶인 시기의 연속으로서 묘사되는 한, 그 논제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것이다. <과학 혁명의 구조> 中


 토마스 쿤(Thomas Samuel Kuhn, 1922 ~ 1996)은 <과학 혁명의 구조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에서 과학의 발전이 비연속적이며, 단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당대 상식(common sense)으로 받아들여진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다른 사실에 의해 대체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은 과거에 있었던 하나 이상의 과학적 성취에 확고히 기반을 둔 연구 활동을 뜻하는데, 여기서의 성취는 더 나아간 실천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특정 과학자 공동체가 한동안 인정한 것을 말한다.(p73) <과학 혁명의 구조> 中


 저자는 논리를 펼치기에 앞서 '정상과학'을 정의한다. 현재 과학자들에 의해 널리 받아들여진 연구 결과를 정상과학이라 할 때, 제도권 학자들의 연구 활동은 정상과학의 범주안에 머문다. 그렇다면, 기존의 정상과학의 발전은 누구에 의해 이루어지는가? 저자에 의하면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소수에 의해 변화가 시작된다.


 전반적으로 과학 활동 전체는 종종 유용하다고 증명되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질서를 표출하며, 오랫동안 받아들여진 믿음을 시험한다고 간주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상연구의 문제에 종사하는 개인들은 이런 유형의 활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일단 과학에 몸담게 되면 과학자의 동인(動因)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띤다.(p110) <과학 혁명의 구조> 中 


 발견으로든 이론으로든 간에, 자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우선 개인이나 소수의 마음에서 나타난다. 과학과 세계를 다르게 보는 방식을 처음 익힌 것은 바로 그들이며, 전이를 일으키게 하는 그들의 능력은 전문 분야의 대다수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공유되지 않은 두 가지 상황에 의해서 성숙된다.(p253)... 질문들의 시급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것들이 이미 정립된 과학 이론의 검증(testing), 입증(verification) 또는 반증(falsification) 등에 한 철학자의 탐구에 과학사학자가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재해석의 방법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p254) <과학 혁명의 구조> 中

 이제 우리는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가장 유명한 용어 '패러다임'을 만나게 된다. 세상을 다르게 보는 이들에 의해 기존의 정상과학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론이 제기되고, 새로운 이론은 새로운 관찰과 실험에 의해 지지되거나 반증(反證)되면서 새로운 이론은 자리잡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 Physica>, 프톨레마이오스의 <알마게스트 Almagest>, 뉴턴의 <프린키피아 Proncipia>와 <광학 Opticks>... 이 저술들은 두 가지 본질적인 특성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 그것들의 성취는 경쟁하는 과학 활동의 양식으로부터 끈질긴 옹호자 집단을 떼어내어 유인할 만큼 놀랄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재편된 연구자 집단에게 온갖 종류의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남겨놓을 만큼 충분히 융통성이 있었다. 이 두 가지 특성을 띠는 성취를 이제부터 '패러다임(paradigm)'이라고 부르기로 한다.(p74) <과학 혁명의 구조> 中


 나는 세 가지 유형의 문제들, 즉 의미 있는 사실의 결정, 사실의 이론과의 일치, 그리고 이론의 명료화 등은 실험과학과 이론과학 양쪽에서 정상과학 문헌을 모두 차지한다고 본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자에 의해서 다루어지는 문제들이라고 할지라도, 그 압도적 다수는 보통 안에서 요약한 세 가지 범주 가운데 하나에 속하게 된다. 패러다임 아래서의 연구는 여타의 방법으로는 수행될 수 없으며, 그 패러다임을 버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 정의하는 과학의 실행을 중단한다는 뜻이 된다. 우리는 곧이어 실제로 그러한 패러다임이 폐기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 폐기가 바로 과학혁명이 돌아가는 축이 된다.(p105) <과학 혁명의 구조> 中 


 개인적으로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패러다임의 전환(paradigm shift)이라 여겨진다.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이라는 말처럼 새롭게 제시되는 패러다임은 내용면에서 혁명적이지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전 패러다임의 용어를 빌려올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은 기존의 용어들이 아니다. 마치 노자(老子, BC 601 ? ~ ?)의 <도덕경 道德經>의 자연(自然)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자연(nature)의 의미가 다른 것처럼, 기존 용어들은 새로운 구조 안에서 변형되어 재탄생하게 된다.


 위기에 처한 패러다임으로부터 정상과학의 새로운 전통이 태동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에로의 이행은 옛 패러다임의 명료화 확장에 의해서 성취되는 과정, 즉 누적적 과정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그러한 변화는 오히려 새로운 기반에 근거해서 그 분야를 다시 세우는 것으로서, 그 분야 패러다임의 많은 방법과 응용은 물론이고, 가장 기본적인 이론적 일반화조차도 변화시키는 재건 사업이다.(p175) <과학 혁명의 구조> 中


 우리는 이미 경쟁하는 패러다임의 추종자들이 어째서 상대방의 관점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가에 대한 몇 가지 이유들을 살펴보았다. 그 이유들은 총괄적으로 혁명 이전과 이후의 정상과학 전통에서의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이라고 표현되었다.(p258)... 그러나 여기에는 표준의 공약불가능성 이상의 것이 개제되어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들이 옛 것들로부터 탄생된 것이므로, 그것들은 보통 전통적 패러다임이 이전에 사용해왔던 개념적이며 조작적인 용어와 장치의 많은 부분을 포함한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은 차용한 이 요소들을 전통적 방식으로 사용하지는 않는다.(p260) <과학 혁명의 구조> 中


 [그림] revolutionary science(출처 : https://edtosavetheworld.com/2014/05/28/1-thomas-kuhn-the-structure-of-scientific-revolutions/)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정상과학으로 인정받는 기존 패러다임이 새로운 관찰과 이론에 의해 전환된 패러다임의 도전을 받는다는 것과, 전환된 패러다임이 기존 패러다임의 틀에서 파생되었지만, '혁명(革命)'이라는 화학적 변화를 거친 전혀 다른 구조임을 말한다. 때문에 그가 말한 과학의 발전은 점진적 진화(進化 evolution)에 의한 생명체의 발전보다는 대멸종(大滅種 mass extinction)에 의한 생명체 진화를 설명한 것에 가깝게 느껴진다. 다만, 쿤은 새로운 이론의 제시가 즉각적인 기존 패러다임의 대체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봤다. 객관적인 과학도 결국은 과학자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일까. 시간이 문제의 해결사임은 과학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생각된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p263) <과학 혁명의 구조> 中


 이제 <과학 혁명의 구조>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패러다임을 통해 과학이론의 수용과 폐기를 설명한 <과학 혁명의 구조>는 단순한 과학이론의 수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식틀은 과학을 넘어선 우리 삶의 전반적인 구조에 적용가능하며, 우리는 이를 통해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다.


 문학사, 음악사, 미술사, 정치 발전사, 그리고 다른 여러 인간 활동을 연구하는 역사가들은 오랫동안에 자신들의 주제를 같은 방식으로 서술해왔다. 스타일, 취향, 그리고 제도적 구조에서의 혁명적인 단절에 따라 나눈 시대 구분은 그들의 표준적 수단이었다.(p339) <과학 혁명의 구조> 中


 역사적으로 조선(朝鮮)이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받아들이기 위해 고려(高麗)를 멸망시켜야 하는가, 역성(易姓)혁명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14세기  신진사대부들에게 일종의 패러다임 과제로 주어졌을 것이다. 역사학적으로 또한, 우리는 E.H. 카(Edward Hallett Ted Carr, 1892 ~ 1982)의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도 새롭게 생각할 수 있다.. 과거의 패러다임과 현재의 패러다임이 다르고, 그 안의 사용되는 용어들이 다르다면, 당대의 악인(惡人)이 오늘날의 악인과 기준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패러다임 전환의 측면에서 모든 역사적 사건은 재해석되어야한다는 카의 주장에 한층 더 공감하게 된다. 이런 면에서 <과학 혁명의 구조>는 결국 인간 인식의 구조를 다룬 책이라 여겨진다.


 이것으로 리뷰를 마무리 하지만, 여기에 더해 쿤의 다른 저작인 <코페르니쿠스 혁명 The Copernican Revolution>을 추가적으로 더 살펴보고자 한다. 과연 코페르니쿠스의 혁명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말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혁명이었을까. 이를 위해 다음 페이퍼에서는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과학 혁명의 구조>의 내용과 비교해 살펴볼 계획임을 밝히면서,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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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주제는 놀이와 문화의 관계이므로, 놀이의 모든 형태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놀이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그것을 주로 다루기로 한다. 무엇보다도 모든 놀이는 자발적 행위이다. 명령에 의한 놀이는 더 이상 놀이가 아니다.(p41)... 놀이의 두 번째 특징은 '일상적인; 혹은 '실제' 생활에서 벗어난 행위라는 점이다. 놀이는 '실제' 생활에서 벗어나 그 나름의 성향을 가진 일시적 행위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p42)...  또한 놀이는 시간과 공간의 특정한 한계 속에서 "놀아진다(played out)". 놀이는 그 나름의 방향과 의미를 갖고 있다.(p45) <호모 루덴스> 中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 ~ 1945)는 <호모 루덴스 Homo Ludens>에서 인류 문화의 기원을 '놀이'에서 찾는다. 놀이가 단순한 심심풀이가 아니라 '문화 文化'  자체라는 하위징아는 <호모 루덴스>에서 놀이의 특성을 위와 같이 자발성, 비일상성, 한계성으로 규정한다. 오랫만에 <호모 루덴스>를 꺼내든 것은 작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고,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지난 한주 동안 외부 출장이 있어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한동안 아빠 얼굴을 못봐서였을까. 딸아이가 지난 주말 내내 함께 놀자고 졸랐다. 주말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출장 정리를 하려고 밤에 책상에 앉으니, 조용히 들어와 그림 한장을 내민다.


[그림] 아빠, 놀아주세요(by 연의)


 일요일 밤이라 할 일이 있어 내 마음도 울고 있었지만, 얼마나 함께 놀고 싶으면 이런 편지까지 쓸까 싶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밤늦게 놀고 일을 마무리 한 후 아이와 놀이, 그리고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가족과 놀이. 프랑스 역사 학자 필리프 아리에스(Philippe Aries, 1914 ~ 1984)는 <아동의 탄생 L'enfant et la vie familiale sous l'ancien regime> 에서 근대 유럽 교육제도의 발달이 가져온 가족 내 아이들과 어른들의 분화를 지적한다.

 

 가족과 학교는 함께 어른들의 세계로부터 아이들을 분리시켰다. 학교는 이제까지는 방만했던 아동기를 점점 더 엄격해진 규율 체제속에 가두었다. 이 규율 체제는 18~19세기에 아동기를 완전히 기숙사에 감금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p648)... 근대의 가족은 공동체 생활로부터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 대부분의 시간과 관심사를 박탈했다. 그것은 사생활과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켜주었다. 가족 구성원들은 감성, 습관, 그리고 생활양식에 의해 결합되었다.(p649)... 새로운 사회는 각자가 전용 공간 속에서 각자의 생활양식을 누리는 것을 보장했으며, 그 공간 속에서 주요한 특징들은 존중되어야 했다. 그리고 각자는 관습적인 모델, 이상적인 유형을 따라 했으며, 결코 축출이라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러한 모델에서 일탈하려 하지 않았다.(p651) <아동의 탄생> 中


  산업화와 민주화로 대표되는 근대세계는 개인에게 사생활(私生活)을 가져다 주었지만, 가족 내 구성원들을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가족 내 다른 사람들과 느슨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아리에스의 진단이다. 전문화된 '학교(學校)'에서 또래집단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부모와는 단절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오늘날 우리 자녀들의 현실이라면 이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대한 답은 도올 김용옥(檮杌 金容沃, 1948 ~) 의 <효경 孝經 한글역주>에서 찾아본다.

 

 어찌하여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것만이 효가 될 수 있는가? 앞서 말했듯이 <예운> 편에서 말하는 십의(十義)는 어디까지나 쌍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효의 원초적 본질을 아래로부터 위에로의 방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의 방향에 있는 것이다. 효의 가장 원초적인 사실은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과 관련된 것이다. (p156)... 그러나 그 효가 도덕적 차원으로 발전하면 할수록 그 핵심에 있는 것은 부모의 자애이지 자식의 효도가 아니다. 부모의 자애 때문에 자식의 효도는 마땅한 당위로 인식될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리적 코딩(coding)을 넘어서는 도덕적 "베품"이기 때문이다. 이 "베품"의 전제가 없이 아랫사람의 복종이나 희생, 헌신을 요구하는 것은 권위주의적 강탈이요, 복종주의적 강압이다.(p157) <효경역주> 中


 <효경한글역주>에서는 효(孝)의 본질이 내리사랑임을 밝힌다. 갓난 아이가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며 손을 내밀 때, 이에 대한 대답이 '효'라면, 딸아이가 부모에게 함께 해달라고 조를 때 함께 해주는 것. 이것 역시 효의 실천이 아닐까. 한편으로 노는 것을 너무 진지하게 바라본 것은 아닐까 여겨지기도 하지만, 하위징아의 놀이해석에 따르면 아이들과의 놀이가 어떤 교육보다도 중요한 의식임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종합하면 자녀와의 놀이는 효의 표현이자,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 수단이다.


 긴장의 요소는 놀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긴장은 불확실성과 우연성을 의미한다. 문제를 파악하여 그것을 해결하는 노력을 가져온다. 그는 자신의 노력이 성공을 거두기를 바란다. 이들은 뭔가 어려운 일을 착수하고 성공하여 긴장을 끝내기를 바란다... 놀이 그 자체는 선과 악을 초월하지만, 놀이에 내재된 긴장의 요소는 놀이하는 사람의 심성 즉 용기, 지구력, 총명함, 정신력, 공정함 등을 시험하는 수단이 되므로 특정한 윤리적 가치를 부여한다. 그는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강렬한 욕망에도 불구하고 게임의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p47) <호모 루덴스> 中


 늦은 밤, 뒤늦게 일을 마무리 하느라 조금 피곤하기는 하지만, 놀이가 시간적/공간적 한계성을 가지는 것처럼, 효 역시 시간적/공간적 한계성이 있음도 생각해 본다. 나이들어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려고 하나 기다려주실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자녀들 역시 우리가 여유를 가지고 함께 하려고 할 때에는 이미 우리 품안에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작은 것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나중의 그 어느 순간보다 필요하고 중요함을 깨닫는다. 비록,  그것이 유치하게 보이는 놀이일지라도.


 아이의 작은 그림 편지를 보면서, 가족과 효, 그리고 부모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양육(養育)은 부모와 자녀를 함께 성장시키는 상호작용임을 다시 생각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 한다. 

 

PS.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놀이의 최고단계는 '역할놀이'라 생각한다. 아이의 생각과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5분을 넘기기 힘든 놀이가 역할놀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역할 놀이를 잘 해 주는 아빠들을 보면 마음 깊이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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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8 16: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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