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전기/ 전자부문 '공룡 기업'인 지멘스가 바삐 움직인다. 지멘스는 신재생에너지 시대에 맞춰 사업성이 떨어지는 화력발전 사업 부문 7천명을 줄이는 등 강도 높은 구조고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 케저 지멘스 회장은 대형 유조선인 지멘스를 성능이 뛰어나고 유연한 소형 선박으로 구성된 선단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가 지멘스라는 대기업을 작고 민첩한 단위로 분할하려는 이유는 영미계 추자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조 케저의 위험한 프로젝트는 지멘스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 내부에선 그가 독단적으로 지멘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p61)


 Economy Insight 2월호 기사에는 독일의 최대 엔지니어링 회사인 지멘스(Simens)가 생존을 위해 기업 확장 대신 소규모 사업 단위 운영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인력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격변하는 시대 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추구하는 지멘스의 전략은 얼핏 보면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연상시키지만, 구체적인 내용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 : 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에서 E.F.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경제분야에서 거대주의(gigantism) 대신 최소주의(Minimalism)를 지향하며,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말한다. 그리고, 최소주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소비, 생산, 분배 측면에서 '가치관의 전환', '교육'과 '중간기술', '공동소유'의 중요성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는 강조한다. 


1. 소비 : 가치관의 전환과 교육


 가. 가치관의 전환


 저자는 경제학을 파생된 사유체계인 메타경제학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위해 경제학을 인간적인 측면과 외부적인 측면(자연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한 소비 패턴과 인간 노동에 의한 생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보다 만족스럽게 꾸려갈 수 있다. 외부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자연(自然)에 대한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 개발 대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생(再生) 가능성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우리 삶은 바꿔질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경제학은 '일정한' 틀 내부에서만 정당하면서도 유용하게 작동하는데, 이 틀은 완전히 경제적 계산 영역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학이 제 발로 서 있는 학문이 아니라거나 '파생된' 사유체계, 즉 메타경제학(meta-ecomomics)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p63)


서구의 물질주의라는 메타경제적 토대를 버리고 그 자리에 불교의 가르침을 수용한다면 경제법칙이나 '경제적' '비경제적'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될 것인가?(p70)... '올바른 생활(Right Livehood, 正命)은 불교의 팔정도(Noble Eightfold, 八正道) 가운데 하나이다.(p71)... 불교 경제학은 물질주의자의 부주의(heedlessness)와 전통주의자의 부동성(immobility) 사이에서 올바른 발전 경로인 중도, 즉 '올바른 생활'을 발견하는 문제이다.(p82)


모든 일들은 생산자로서의 인간이 '비경제적으로 사치'할 만한 여유가 없으며, 그래서 소비자로서의 인간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바로 그 필수적인 '사치품' -건강, 아름다움, 영속성-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필요하며, 부유해질수록 그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점점 더 없어진다.(p148)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값이 싸며, 소규모 이용에 적합하고, 인간의 창조적 욕구에 부합될 수 있는것. 이러한 세 가지 특성으로부터 비폭력이 생겨나고, 영속성이 보장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출현한다.(p47)


나. 교육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영속성이 강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변화되어야 할 가치관의 전환 역시 전달이 중요하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치관의 전환이 확산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달라질 수 있게 된다. 


근대 세계는 근대 형이상학의 산물이며, 이 형이상학은 근대 교육을 틀지웠으며 이 교육은 다시 과학과 기술을 산출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이나 교육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근대 세계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p187)

오늘날 과학 기술의 진보로부터 생겨난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교육의 힘에 의존하는 바가 그렇게 크다면, 교육에는 스노경(Charles Percy Snow, Baron Snow, Kt., CBE, 1905 ~ 1980)이 주장하는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과학 기술은 노하우(know-how)를 생산하지만, 노하우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p104)... 교육이 무엇보다도 먼저 가치관(ideas of value), 즉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념(ideas)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p105) 


3. 생산 : 중간기술(대중에 의한 생산)


 저자는 생사 측면에서는 자본재(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적정량의 생산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중간 기술'로 이름지으면서, 해외 원조 역시 자본재 수출이 아닌 중간 기술의 수출이 이루어졌을 때 피원조국은 바람직한 경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간디가 말했듯이, 대량 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대중에 의한 생산만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p196)... 대량 생산 기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생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하며,인성을 망쳐놓는다..대중에 의한 생산 기술은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필자는 이를 중간 기술(ntermediate technology)라 명명한 바 있다.(p197)


중간 기술은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에 기여한다... 필자는 기술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방향은 기술을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하는 것이며, 이는 또한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p204)


4. 분배 : 공동소유


 저자는 책을 통해 분배면에서는 '공동소유'를 강조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점은 민간대기업이 공공부문의 많은 부문을 이용하면서도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공공기관에 의한 민간대기업 소유를 제안한다. 


공동소유(commom ownership)나 공동체는 이윤 분배나 공동 경영이나 집단 소유(co-ownership), 또는 개인이 공유기업에서 부분적인 이해 관계를 보일 수 있는 온갖 형태(scheme)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들은 공유(woning thing n commom)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래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공동소유는 독특한 장점을 갖는다.(p352)


필자는 공공기관이 민간대기업의 배분이윤 중 절반을 수령해야 하며, 그 방법은 이윤세가 아니라 기업 주식의 50%를 소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정할 것이다.(p361)... 이는 민간 부문의 유연성을 관료적 경직성(ponderousness)으로 대체하지 않더라도 대기업의 소유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이 구상은 점진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으로 도입할 수 있다. 즉 가장 큰 기업에서 출발해서, 기업이라는 요새에서 공익이 충분히 존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때까지 점차 규모가 작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p369)


[사진] 몬드라곤 협동조합(자료출처 : 동아일보)

저자가 강조한 이러한 공동소유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우리는 몬드라곤(Mondragon)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그만 협동조합수준을 넘어 이제는 그룹(group)으로까지 성장한 몬드라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슈마허가 강조한 생산과 분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저자의 이러한 의견은 국내 주식 시장에 20% 넘게 투자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의 국민연금의 운용현황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노후 소득이 없는 이들의 주요 소득원을 국내대기업의 운명과 연동시키는 것이 옳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업에 운영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시된 공동소유의 모습과는 같은 듯 분명 다르다.



[사진] 몬드라곤 그룹 규모(자료출처 : YTN)


[사진] 국민연금 자산군별 기금규모 (자료출처 : 연합뉴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보다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속에 담겨있는 철학(哲學)의 깊이 때문이다. 책의 본문 한 장(章)에서 구체적으로 '불교 경제학'을 말하고 있지만, 불교에만 한정되지 않는 인류 보편적 사상이 담겨있다. 일례로 노자(老子, BC604 ? ~ ?) 의 <도덕경 道德經>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아마도 다음 구절일 것이다.

80章 小國寡民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사인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불상왕내.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으며, 편리한 기계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은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지만 쓸 일이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새끼를 엮어 쓰게 하고 먹던 음식을 달게 여기고, 

입던 옷을 좋게 여기며, 살던 곳을 편안히 여기고, 각자의 풍속을 즐거워하게 하니,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p314)


 그렇지만, 슈마허의 '작은 것'은 노자(老子, BC604 ? ~ ?)가 말한 소국(小國)과는 결을 조금은 달리 하는 것 같다.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최소한의 문명(文明)'을 강조한다면,  저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적절한 문명의 유지'를 강조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도덕경>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소비자로서의 인식전환, 중간 기술에 의한 노동(labour) 중심의 생산, 공동소유로 대표되는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미 1970년대 주장한 대부분의 논의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과거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요즈음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주장하는 내용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는 면에서 이 책은 경제학의 현대 고전(古典)이라 여겨진다.


PS. <도덕경>은 그런 책이 아니라는 강신주 박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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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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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1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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