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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 장준하의 항일대장정
장준하 지음 / 돌베개 / 2015년 5월
평점 :
'창세기 28장 10 ~ 15절에 나오는 야곱의 "돌베개" 이야기는 내가 결혼 일주일 만에 남기고 떠난 내 아내에게 일군 日軍 탈출의 경우 그 암호로 약속하였던 말이다. 마침내 나는 그 암호를 사용하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대륙에 발을 옮기며 내가 벨 "돌베개"를 찾는다고 하였다... 그 후 나는 "돌베개"를 베고 중원 6천 리를 걸으며 잠을 잤고 지새웠고 꿈을 꾸기도 하였다. 나의 중원 땅 2년은 바로 나의 "돌베개"였다. 아니, 그것이 나의 축복 받는 "돌베개"여야 한다고 생각했다.(p7)'
<돌베개>는 독립운동가, 정치인, 종교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였던 장준하(張俊河, 1918~ 1975) 선생의 삶 중에서 1944 ~1945년간의 일을 다룬 기록이다. 이 시기를 통해 일본군의 징용을 피해 광복군에 합류한 후 시안(西安)에서 OSS 훈련을 받으며 국내 진공 작전을 기다리다 광복(光復)을 맞이할 때까지 삶의 여정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야곱은 브에르 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러 해가 지자 거기에서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돌 하나를 가져다 머리에 베고 그곳에 누워 자다가, 꿈을 꾸었다.(창세 28 : 10 ~ 12)'
<창세기>에서 야곱은 그의 형 에사우의 축복을 가로채고 어머니 라헬의 고향 하란으로 자신의 외삼촌을 찾아 떠나게 된다. 하란으로 가는 도중 베텔이라는 곳에서 지친 야곱은 잠시 잠을 청하고 꿈을 꾼다.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었던 저자는 그러한 야곱의 모습 속에서 자신을 느끼지 않았을까.
'내가 이 광야에서 벨 베개는 돌베개임을, 벌써 일군을 탈출하기 전 마지막 편지로 아내에게 말하였고 또 각오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부터 내가 베어야 할 나의 돌베개는 어느 지점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가. 나의 고행은 어디서부터 정작 시작되어 어디까지 가야할 것인가.(p91)'
[지도] <돌베개>에서 저자의 주요 경로
항일 대장정(抗日 大長征)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쉬저우(徐州)에서 충칭(重慶)으로, 다시 시안(西安)으로 2년 동안 이어지는 그의 여정 속에서 '못난 조상이 또다시 되지 말아야 한다', '돌베개'라는 말이 주문(呪文)처럼 이어지고 있다. 지쳐 쓰러질 듯한 상황속에서 저자를 버티게 한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우리는 글 속에서 느낄 수 있다.
'나의 희생으로 우리의 다음 대는 또다시 이런 고생에 시달리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대를 남기는 것보다 훨씬 보람된 나의 일생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으리라.(p226)'
'내가 자원한 것은 국내 공작이었다. 국내 공작의 목표는 결국 나의 죽음이다. 내가 나의 죽음을 지불하면 내 능력껏 그 대가가 조국을 위해서 결제될 것이다. 나의 각오는 한 장의 정수표다... 한반도에 대한 연합군의 공략은 일본의 본토 사수의 결의를 꺾자는 데 있는 것이다. 이 공략을 돕기 위해 경무기로 무장된 우리가 잠수함이나 낙하산으로 투입되어 우선은 첩보활동, 다음 단계로 정보 송신, 그리고 최종으로 유격대 조직 및 군사시설 파괴공작을 수행하도록 미리 결정되어 있었던 것이다.(p289)'
그렇지만, <돌베개> 속에 저자의 애국심(愛國心)만 표현된 것은 아니다. 저자는 힘든 중에도 자신의 주변을 살피며 당시 주변 정세를 예리하게 판단해간다. 또한 힘든 장정의 상황에서도 <삼국지연의 三國志演義>의 주인공 제갈량(諸葛亮, 181 ~ 234)의 사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애국가(愛國歌)를 부르면서 통곡하는 저자의 모습이 표현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속에서 저자의 사람됨과 당대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다.
'후방도 아닌 전방지대에 사단장이라는 지휘관은 수십 명의 처첩을 거느리고 다니고, 박격포를 메고 가야 할 그 어깨엔 그 대신 지휘관의 처첩들의 가마가 올라앉는가 하면, 정규군의 모습이 아닌 이 미련한 중국국. 일군에게 밀리면서 또 홍군과 맞붙어 싸우며 떠다니는 유랑의 군대. 그런가 하면 일군은 점과 선만을 차지하고 타협도 해가면서 대륙을 들쑤셔놓는 그 약삭빠른 허세의 군대다. 이들의 사이에서 어부지리를 얻는 공산군만이 진실로 공간과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p176)'
'장제스군에게 막대한 양의 미제 신식무기가 공급되었어도 이 신무기를 사용할 줄 모르는 정도의 한심한 병정들이었다. 그들의 무식은 신무기 활용을 해득하지 못했고, 분해, 결합과 같은 손질에서 병기 파괴 손실이 더 컸으며, 이들의 정신 상태에서는 중공군으로 넘겨주고 돈을 받는 일이 항다반사였다.(p211)'
힘든 여정을 거쳐 충칭의 임정에 도착하지만, 분열된 임시정부의 모습 속에서 그는 깊은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저자의 좌절감 역시 <돌베개> 속에서 가감없이 표현되고 있다.
'6천 리의 대륙횡단 끝에 찾아온 충칭도 채 석 달이 못되어 다시 떠나버리게 되었다. 충칭에 더 머무른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 자신에 대한 자학과 모욕같이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순수했던 기대와 불같던 정열과 끓던 정의감은 안개처럼 차차 꺼져버리고 오히려 실망과 허탈감으로 우리가 괴로워해야 했던, 그 짧지 않은 석달을 묻어두고 새로운 결심을 했다.... 슬픔이란 아주 간단한 철학이요, 순진한 감정이었다. 심해의 풍랑 속에서 찾아온 등대불이 꺼져버린 그 순간의 실망이라고나 할까. 일군을 탈출해 찾아와 몸 바칠 곳을 찾아 헤매다가 시안에서 시작되는 한미 합동작전을 위한 훈련을 받기 위해 떠나는 우리 일행 30여 명은... 감정 없는 슬픔을 가숨에 담고 새로운 투쟁을 찾아가는 혁명의 철학을 새겨야 했다.(p276)'
광복을 위해 투쟁했지만, 청년 장준하가 준비했던 광복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투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돌베개>는 존경받는 정치인, 사회운동가로서 장준하 선생의 사상(思想)적 기반을 확인할 수 있는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돌베개>를 이웃분에게 선물받았기에 더욱 그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돌베개>를 선물해 주신 이웃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청년 '장준하의 꿈'을 함께 짐작해보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세워져 있고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는데,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나는 네가 누워있는 이 땅을 너와 네 후손에게 주겠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너는 서쪽과 동쪽 또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 28 : 12 ~ 16)'
PS. 원래 이번 리뷰는 두 명의 군인을 비교해서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일본군->광복군'으로 자신의 이력을 만든 장준하 선생과 '만주군->일본군'으로 변신해 간 다른 인물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를 비교해 보려 했습니다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먼저 리뷰를 올립니다. 나중에 여건이 되면 '두 군인(軍人)의 길'을 비교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