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두 책의 주제는 List(目錄)이며,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같은 듯 다른 두 책의 내용을 이번 페이퍼에서 비교, 대조해 봅니다.


1.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 공간(空間) 속의 목록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에서 일본 언론인, 작가, 평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 (立花隆 たちばな たかし, 1940 ~ )는 자신의 서재이자 작업장인 '고양이 빌딩'에 소장된 책을 소개하고 있다. 마치, 가이드처럼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는 책의 구성 덕분에 저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는 느낌을 준다. 


'이쪽 서가는 저자별로 되어 있어요.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 에드워드 윌슨 등 과학론이 모여 있습니다.(p96)... 여기에 있는 <멋진 신세계> 등 올더스 헉슬리의 책들은 고서점에서 세트로 산 겁니다. 그 고서점에서는 낱권으로 팔지를 않았거든요. 본격적인 고서점들 중에는 그런 곳이 꽤 됩니다...(p97)'


 이 책에서는 단순히 소장도서를 소개하는 것에 그지 않는다. 언론인인 저자가 취재하면서 얻은 내용도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깊이 있게 들어간 내용도 발견하게 되며, 이를 통해 저자의 넓은 지식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대표적인 부분이 <구약성경>의 창세기(Genesis)의 전승자료와 관련한 다음의 내용이라 생각된다.


'구약성서에는 사실 천지창조 신화가 둘 있습니다. 하나가 이 1장 1절에 나오는 대로 신(엘로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구절입니다. 여기서는 신을 엘로힘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E자료에 의한 천지창조 신화라고 부릅니다. 또하나의 천지창조 신화는 2장 4절 이하, 즉 에덴동산과 아담과 이브가 나모는 대목입니다. 이쪽은 신의 이름을 야훼JHWH라고 한다는 점에서 J자료에 의한 천지창조 신화라고 합니다.'(p202)


[사진] 고양이 빌딩(출처 : 한겨레 블로그)


[사진] 고양이 빌딩 서재 모습 (출처 : http://m.yna.co.kr)


 책 본문에서 저자는 여러 분야에 걸쳐진 책의 내용과 현재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책의 내용 속에서 우리는 저자의 공부법에 대해서도 짧게 나마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 소개된 책의 대부분이 일본서적이기 때문에 소개된 책 다수를 우리가 한국어로 접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아쉬움을  감수한다면, '넓은 지식'을 쌓으려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쪽에는 <싱할라어사전>, <피진어 사전>, <이누이트어 사전> 등 여러 나라 언어의 사전들이 있습니다. 물론 마이너한 언어들만이 아니라 라틴어도 있고 중국어도 있지요.'(p88)


 '석유 이야기에서 이스라엘과 중동 이야기로. 공산당 이야기에서 중핵과 혁마르, 그리고 적군 이야기로. 하나의 주제를 기점으로 취재할 것이 점차 증식되어 가는 것. 이것이 제가 일을 하는 방식이죠.'(p334)


2. <궁극의 리스트> : 시간(時間) 속의 목록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가 '서재'라는 공간(空間)속에 놓여진 책을 바탕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1932 ~ 2016)는 호메로스(Homeros, BC 9C(?) ~ 8C(?))로부터 앤디 워홀(Andy Worhol, 1928 ~ 1987)까지의 시간의 흐름 안에서 <궁극의 리스트>를 만들어 간다. <궁극의 리스트>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와 달리 주제를 문학, 예술로 한정하여 보다 깊이 있는 목록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궁극의 리스트>는 '깊이있는 지식'을 쌓으려는 독자들에게 맞는 책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일리아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일리아스>에 나오는 선박 카탈로그 사이에도 그만큼의 많은 세월이 존재한다. 이 책은 바로 <일리아스>에서 단서를 얻은 것이다. 한편 호메로스의 바로 그 책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서술적인 모델을 발견한다. 조화로운 완성과 종결이라는 기준에서 영감을 얻어 주문한 아킬레우스의 방패라는 모델이 그것이다.'(p7)


[사진] 아킬레우스의 방패 (출처 : http://valarmorghulis.tistory.com/5)


 다음은 <일리아스>에서 시인이 출전하는 함대의 목록을 읊기 전 나오는 대사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묘사한 장면의 일부를 가져와 본다.


 '이제 말씀해주소서. 올륌포스의 궁전에 사시는 무사 여신들이여! -그대들은 여신들이라 어디나 친히 임하시므로 만사를 아시지만 우리는 뜬소문만 들을 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나오스 백성들의 지휘자들과 지배자들은 누구누구였습니까? 하나 군사들에 관하여 일일이 이름을 들어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이기스를 가지신 제우스의 따님들인 올륌포스의 무사 여신들께서 일리오스에 간 모든 이들에 관하여 일일이 일러주시지 않는다면, 설사 내게 열 개의 입과 열 개의 혀가 있고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와 청동의 심장이 있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일리아스 Ilias> 제2권 (484 ~ 493)


 '거기에 그(헤파이스토스)는 대지와 하늘과 바다와 지칠 줄 모르는 태양과 만월(滿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별들을, 플레이아데스와 휘아데스와 오리온의 함과 사람들이 짐수레라고도 부르는 큰 곰을 만들었다. 큰곰은 같은 자리를 돌며 오리온을 지켜보는데 이별만이 오케아노스의 목욕에 참가하지 않는다.'<일리아스 Ilias> 제18권 (483 ~ 489)


 <일리아스>에서 모든 병사들까지 다 말할 수 없기에, 주요 지휘관들과 지배자들만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주제별로 한정된 내용을 다룰 수 밖에 없다. 다만, 다룬 내용 중 헤파이스토스가 세상 만물을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촘촘히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움베르트 에코는 지식의 목록을 가급적 촘촘히 새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궁극의 리스트>에 언급된 주제와 관련한 모든 작품을 언급하는 작업은 올륌포스의 무사 여신들께서 일러주시지않는다면 호메로스도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호메로스에 미치지 못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목록에 대해 살펴보고 가볍게 넘어가도록 하자.


 '미학에서 무한이란 우리가 찬양하는 유한하고 완벽한 완전성에 따라오는 하나의 느낌인 반면, 지금 말하는 재현 형태는 거의 "물리적으로" 무한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것은 끝이 없으며", 형태로 종결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재현 방식을 "목록" 또는 "카탈로그"라고 부를 것이다.'(p17) 


3. 그리고 만남 : 교점(intersection point)


 공간적인 리스트를 X축으로 놓고, 시간적인 리스트를 Y축으로 놓는다면 실제로 이들 서재의 책들은 이들 사분면에 대응될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공통된 책을 찾기 어렵다. 굳이 찾는다면, <구약성경> ,<신약성경> 정도 추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양이 빌딩에 수많은 책을 소장한 다치바나 다카시와 마찬가지로 움베르트 에코 역시 책목록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책의 교점(intersection point)은 '목록을 통한 즐거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책 목록에 대한 취향은 세르반테스부터 위스망스, 칼비노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을 매혹시켜왔다. 더욱이 애서가들이 고서점의 카타로그(확실히 실용적 목록으로 만들어진)를 무릉도원이나 욕망의 땅에 대한 황홀한 묘사처럼 읽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쥘 베른의 독자들이 고요한 심해 탐험이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과의 조우에서 즐거움을 얻듯이, 그들은 책 목록에서 즐거움을 얻는다.'(p377)


 마지막으로, 이 두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작업이 미완(未完)의 작업임을 고백하면서 서문을 마치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독서, 공부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 작업이기 때문에 리스트는 죽는 날까지 update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리스트의 완성(完成)'이고, 이는결국 우리의 몫이고 평생에 걸친 작업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목록을 조사하는 것은 어떻게든 우리가 이 책에 포함할 것을 추려 내는 작업이었다기보다는 제외해야 할 모든 것을 추리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 책은 "기타 등등"이라는 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궁극의 리스트> (p7)


'내가 늘어놓은 이야기가 이런 식이다보니 서가 앞에서 펼치는 나의 이야기는 경계를 넘어 끝없이 뻗어나가고, 한 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이야기를 정리한 텍스트에 일단 교정의 붉은 펜을 대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가필하면서 또 사고가 끝도 없이 펼쳐져서, 이 책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간신히 여기서 끝낸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p12)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와 <궁극의 리스트>는 모두 독서를 위한 좋은 안내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종교, 과학, 역사 뿐 아니라 임사체험, 항공기 제작 등 넓은 분야의 책을 폭넓게 다루는 반면, <궁극의 리스트>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양의 문학, 예술과 관련한 책들 문장을 짚어주고 있다. 전자(前者)가 넓다면, 후자(後者)는 깊다고 해야할까. 그런 면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각나게 된다. 

 

子曰 知者는 樂水하고 仁者는 樂山이니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靜하며 知者는 樂하고 仁者는壽니라.  <논어 論語>옹야(雍也)편 제21장


 우리 자신의 리스트를 만들 때  스스로 슬기롭다 생각하는 사람(知者)는 물과 같은 리스트를 만들면 좋을 듯 하고, 스스로 어질다 생각하는 사람(仁者)는 산과 같은 리스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페이퍼를 마친다. 


PS. 슬기롭지도, 어질지도 않은 자신이기 때문에, 제 자신의 리스트는 더운 날을 피해서 산이나 바다로 한 번 놀러간 후에 천천히 만들어야겠다고 슬그머니 빠져나가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8-06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6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