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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 그리스어 원전 번역, 개정판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10월
평점 :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한 삶에 대한 저술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모든 인간 활동은 '좋음(to agathon)'을 추구하며, 그 중에서도 '최고선(最高善)'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정치학'을 제시한다. 결국,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정치학>의 예고편이며, '국가 공동체의 윤리학'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음을 아는 것은 가장 주도적이며 가장 권위있는 학문의 관심사인 것으로 생각되는데, 정치학이 바로 그런 학문인 것 같다."(제1권 1094a 26)
"국가의 좋음과 개인의 좋음이 같은 것이라 해도, 국가의 좋음을 실현하고 보전하는 일이 분명 더 중요하고 더 궁극적이기 때문이다. "(제1권 1094b 26)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의 부분을 보자.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을 통해, 손가락을 위로 쳐든 플라톤과 손을 아래로 받쳐든 아리스토텔레스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알려져 있다. 정말 그러한지 <아테네 학당>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옆에 끼고 있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통해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좋음'은 플라톤의 '이데아(idea/eidos)'와는 다르다고 주장하며, 플라톤을 비판한다.
"우리 벗들(플라톤과 그의 제자들)이 이데아(idea) 이론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정든 것들이라도 버리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제1권 1096a 12)
"이런 이유들 때문에라도 지나침과 모자람은 악덕의 특징이고, 중용은 미덕의 특징이다."(제2권 1106b 34)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좋음은 '행복'으로 정리된다.
"무엇보다도 행복이야말로 무조건 궁극적인 것 같다." (제1권 1097b 1)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B.러셀이 <서양철학사>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결론이라고 하는 부분을 보자.
"그런데 지성에 걸맞는 활동을 하며 지성을 가꾸는 사람이 최선의 심적 상태에 있을 뿐더러 신에게 가장 사랑받는 것 같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신들이 인간사에 관심이 있다면, 신들은 최선의 것이자 자기들을 가장 닮은 것 곧 지성을 좋아할 것이고, 그리고 지성을 가장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보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신들에게 소중한 것들을 돌보며 올바르고 고귀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질들은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이 갖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신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아마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점에서도 지혜로운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도 더 행복할 것이다.(제10권 1179a 24-35)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도 '관조적 삶'과 '지혜로운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이와 같은 결론은 플라톤이 <국가>에서 철인(哲人)정치를 주장한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 것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덕은 '혼의 미덕' 이며, 행복은 '혼의 활동'으로 정의한다.(제1권 1102a 17) 미덕은 '지적인 미덕'과 '도덕적 미덕'으로 나뉘는데, 지적인 미덕에는 기술, 실천적인 지혜, 직관, 철학적인 지혜, 실천적인 지혜와 정치학, 심사숙고, 판단력, 분별력과 고려 등이 있다. 한편, '도적적 미덕'은 후함, 통 큼, 명예, 작은 명예, 분노, 사교, 진실성, 재치, 수치심 등으로 분류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中庸)'은 미덕 중에서도 '도덕적 미덕'으로 제한 적용된다.
"미덕도 혼의 이런 구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우리는 철학적인 지혜, 이해력, 실천적인 지혜 같은 것을 지적인 미덕이라 하고, 후함과 절제 같은 것은 도덕적 미덕이라고 부른다."(제1권 1103a 5-7)
"그리고 미덕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어떤 기술보다 더 정확하고 더 효과적이라면, 미덕이야말로 중간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여기서 미덕이란, 도덕적인 미덕이다."(제2권 1106b 14-17)
"그러나 모든 행위들과 모든 감정들 중에서 중용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그것이 나쁜 것이라는 것을, 이미 그 이름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악의, 파렴치, 질투가 그렇고, 행동의 경우에는 간음, 도둑질, 살인이 그러하다. 이런 것들과 이와 비슷한 것들이 나쁘다고 불리는 것은 그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지, 그것들이 지나치거나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다... 따라서, 불의하거나 비겁하거나 절제없는 행위에도 중용과 지나침과 모자람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불합리하다."(제2권 1107a 8-20)
결국, 아리스토텔레스도 전체적으로 플라톤와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습관에 의해 형성되는 '도덕적 미덕'(제2권 1103a 17)은 중도적 입장을 가지고 추구해야한다고 주장을 하는 것이다. '도덕적 미덕'이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결국 이데아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니, '좋은게 좋은거다'는 식의 절충주의를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아테네 학당>을 보자.
두 사람이 큰 건물 아테네 학당에 같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그들의 학문적 입장은 큰 틀에서 같다는 것이 그림에도 표현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2권부터 10권까지 대부분의 내용이 이에 대한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미덕에 대해 분석한 내용은 마치 성경 <집회서>, <지혜서> 등 지혜 문학의 내용을 실증한 느낌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내용은 <니코마코스 윤리학> 자체보다 주제별로 다른 저서와 연계해서 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제5권의 '정의' 는 존 롤스의 <정의론>,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와 연계해서 볼 수 있을 것 같고, 제8권과 제9권의 '우애'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같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제9권 10장에서 정체(政體)의 종류에 대해 언급하고, 제10권 9장에서는 정치학으로의 이행(移行)을 예고한하면서, 내용이 끝난다.
"to be continued.."
<니코마코스 윤리학>은 당시 주류였던 실증적인 반론이 제기된, 아리스토텔레스만의 색채가 나타난 작품이라 생각된다. 또한, 이 책의 내용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관(經濟觀)과 평등관(平等觀) 등 그의 전반적인 세계관(世界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표작의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화폐의 교환적 가치에 대한 설명
"따라서 교환되는 것은 무엇이거나 어떻게든 비교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돈(to nomisma)이 도입되어 일종의 중용 역할을 하는 것이다."(제5권 1133a 19)
"돈이 우리에게 하는 일은 미래의 교환을 담보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지금은 필요 없지만 언젠가 필요하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돈은 척도(尺度) 노릇을 하며 물건들을 계량화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균등화한다." (제5권 1133b 11-17)
남녀의 차이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
"정치적인 정의나 불의는 법을 전제로 하며 자연스럽게 법을 받아들이는 공동체, 곧 그 구성원들이 통치와 피치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공동체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는 아버지와 자식 또는 주인과 노예 사이에서보다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더 잘 실현된다.(제5권 1134b 13-17)
노예제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식
"말이나 소에 대해서도, 그리고 노예가 노예인 한 노예에 대해서도 우애는 있을 수 없다. .. 노예는 생명 있는 도구이고, 도구는 생명 없는 노예이니 말이다. 따라서, 노예는 노예인 한, 노예에 대한 우애는 존재할 수 없다. (제8권 1161b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