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기아스 / 프로타고라스 - 소피스트들과 나눈 대화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프로타코라스>는 소크라테스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로 유명한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 간에 이루어진 '미덕(arete)'에 관한 대화편이다.

 

소크라테스는 프로타고라스에게 당신의 제자가 되었을 경우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묻고, 프로타고라스는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대답을 한다. 같은 소피스트 였던 고르기아스는 이와 유사한 질문에서 수사학을 통해 성공시켜 주겠다는 대답을 하는(<고르기아스> 中) 반면,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적인 내면의 수양에 집중하고 있다.

 

'힙포크라테스는 그대의 제자가 되고 싶어 하며, 그대의 제자가 됨으로써 어떤 이득을 보게 되는지 알고 싶답니다.'(318a)
'자네는 날마다 계속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걸세.(318a) 내가 가르치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을 훌륭하게 판단하는 것이오.(318e)'

 

소크라테스는 이에 대해 미덕은 가르칠 수 없다는 자신의 의견을 표시하고, 프로타고라스는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 소양인 염치와 정의는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후천적인 교육을 통해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대는 국가경영술에 관해 말하며 사람들을 훌륭한 시민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시는 것 같은데,(319a)... 분명 그들이 그런 것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가장 지혜롭고 가장 훌륭한 시민들도 자신들의 이러한 미덕을 남들에게 전수할 수 없으니까요.(319e).. 프로타고라스님, 나는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320b)

'인간은 생존을 위한 지식은 얻었지만 국가를 경영하는 기술은 아직 갖지 못했소.(321d).. 제우스는 우리 인간 종족이 완전히 멸종하지나 않을까 두려워서 헤르메스를 인간에게 보내 염치와 정의를 가져다주게 했는데, 공동체를 구성하고 우애를 맺는데 이것들이 원칙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소.(322c)...(정의와 염치를) 모든 인간이 나눠 갖게 하라. 다른 기술들처럼 정의와 염치가 소수의 것이 되면 국가가 생길 수 없을 테니까.'(322d)
'다음에 내가 그대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미덕이 타고난 것도 저절로 생긴 것도 아니며 그것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애쓰고 노력하여 배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오.'(323d)

 

또한, 프로타고라스는 정의와 절제와 경건함이 국가가 존재하려는 하나의 자질(미덕)이라고 말하고, 미덕의 부분들로 정의, 절제, 경건이 부분으로 존재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분들이 서로 다르며, 각자 고유한 기능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제 그대가 훌륭한 사람들에 관해 제기한 더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소. 국가가 존재하려면 모든 시민이 가져야 하는 한 가지 자질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324e)... 만약 그 한 가지 자질이 정의와 절제와 경건함이라면, 그것이야말로 모두 다 가져야 하는 자질이오.'(325a)
'미덕은 단 하나의 자질이고, 그대가 묻고 있는 것들은 미덕의 부분들이오.(329d)

 

소크라테스는 정의와 경건함을 통해 부분들 간에 공통되는 요소가 있음을 보이며, 프로타고라스를 논박한다. 프로타고라스는 닮은 점의 정도 차이를 말하며 응수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반대되는 요소들이 여러 개 있음을 보이면서 프로타고라스의 논리를 재논박한다.

 

'정의는 올바른 것이라고 대답할래요(330d).. 그렇다면 경건함은 올바른 것이 아니고, 정의는 경건한 것이 아니라는 말인가요? 그러니까 경건함은 올바른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것이고, 정의는 불경한 것이라는 뜻인가요?'(331b)

'사물들이 닮은 데가 있다 해도 닮은 점이 적으면 닮았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며, 사물들이 다른 데가 있다고 해서 다르다고 해서도 안 될 것이오.(331e)'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것에 반대되는 것은 하나뿐이라는 데 동의했어요.(332d).. 어리석음은 분별력에 반대되겠지요? 그대는 우리가 앞서 어리석음은 지혜에 반대된다는 데 동의한 일이 기억나세요?(332e)...어떤 것이든 그것에 반대되는 것은 하나뿐이라는 주장을 포기할까요, 아니면 지혜와 분별력은 서로 다르지만 둘 다 미덕의 부분들인데, 둘은 서로 다를 뿐더러 얼굴의 부분들처럼 그 자체로도 그 기능에서도 서로 같지 않다는 주장을 포기할까요?'(333a)

 

 다시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간에 미덕과 그 부분들에 관한 논의가 시작된다. 프로타고라스는 모두 미덕의 부분이지만, 용기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유사점이 있지만, 용기는 다르다고 말한다.

 

'지혜, 절제, 용기, 정의, 경건함은 하나에 대한 다섯 가지 이름인가요, 아니면 이들 이름 각각에는 어느 것도 다른 것과 같지 않은 고유한 기능을 가진 별개의 실체가 대응하고 있나요?'(349b)

'소크라테스, 내 주장은 그것들은 모두 미덕의 부분들이고, 그중 넷은 서로 상당히 닮았지만, 용기는 다른 것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것이오.(349d)... 대담성은 인간들에게 기술이나 분노나 광기의 결과물일 수 있지만, 용기는 타코난 본성과 혼의 적절한 계발의 결과물일 수 있기 때문이라오.'(351b)

 

용기가 지혜의 다른 속성과 같은 것을 입증하기 위해 다른 논의가 시작된다. 즐거운 것과 좋은 것에 대해 대화가 시작되고, 두 사람은 쾌락은 좋은 것이며, 좋은 것(쾌락)의 측정을 통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선택을 위한 지식(지혜)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이룬다.

 

'즐거운 것들은 즐거운 것인 한 그것들에서 다른 어떤 것이 생기든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닐까요?(351c)...그대도 지식이 다른 모든 것들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노예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지식은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고상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352c)
'지식과 지혜야말로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강력한 것이라고 주장하오'(352d)
'사실 여러분이 나쁘다고 여기는 것은 고통이고 좋다고 여기는 것은 쾌락이오. 여러분은 쾌락의 경험 자체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쾌락을 앗아가거나 그것이 주는 쾌락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주면 나쁘다고 부르니 말이오.(354c)... 쾌락과 고통의 올바른 선택에, 그러니까 그것이 더 많으냐 아니면 더 적으냐, 더 크냐 아니면 더 작으냐, 더 멀리 있느냐 아니면 더 가까이 있느냐의 올바른 선택에 우리 삶의 구제가 달려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일종의 측량술이 아닐까요?(357a)... 일종의 측량술이라면 필연적으로 일종의 기술과 지식이겠지요?... 지식보다 더 강력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어디서나 지식은 쾌락과 그 밖의 모든 것을 지배한다(357c)'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용기가 지혜의 부분임을 밝히면서, 용기가 미덕의 다른 부분과 차이있다는 프로타고라스의 견해를 최종 반박한다.

 

'겁쟁이들의 대담함이 수치스럽고 나쁜 것은 다름 아니라 무지와 무식의 소치인가요?(360b)... 그대는 무엇이 사람을 겁쟁이로 만든다고 말하시오?-비겁함이오.(360c).. 그렇다면 비겁함은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 모르는 무지이겠네요?(360c).. 그렇다면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고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는 지혜가 용기이겠네요?'(360d)

 

 이러한 논증 결과, 소크라테스는 지식이 미덕이라는 입장으로 바뀌고, 프로타고라스는 지식(용기)가 미덕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게 되어, 결국 '미덕을 가르칠 수 있는 가?'하는 논의 자체가 흐지부지된다.

 

'소크라테스여, 그대는 처음에는 미덕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더니 지금은 그에 반하는 주장을 하느라 열을 올리고 있소. 그대는 정의, 절제, 용기 등 모든 것이 지식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데, 그런 식이라면 미덕은 분명 가르칠 수 있는 것일 테니 말이오.(361b)... 한편 프로타코라스는 처음에는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지금은 반대로 미덕은 사실상 지식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열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럴 경우 미덕은 사실상 가르칠 수 없는 것이 되겠지요.'(361c)

 

<프로타고라스>의 소크라테스와 프로타고라스간 문답식 대화를 따라 가다보면, 생각없이 대답하게 되고, 다 읽고 나면 멍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들의 논의와 관계없이 생각해보자.
정의, 절제, 용기 등 미덕은 가르칠 수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가르칠 수 있지만, 모두가 배운 대로 실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보다 타당한 대답일 것이다.(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더 좋은 대답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프로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의 대화가 흐지부지 된 것은 기본전제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가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알지 못하면 행위할 수 없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기 때문에 '지식(지혜)'에 초점을 두고 논의가 되었고, 결과는 위와 같이 난다. 그렇지만, 현실은 머리로 아는 것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이들의 대화는 방향이 잘못 잡혀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개인적으로  플라톤의 여러 대화편을 읽으면서 생겼던 의문이 있었다. '과연 플라톤이 말하고자 했던 'arete'가 우리가 생각하는 미덕(美德)과 같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다. 예를 들면, 영어로 honesty는 '정직'으로 번역된다. 그렇지만, hoensty안에 '공자의 정직'을 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葉公語孔子曰, “吾黨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孔子曰, “吾黨之直者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섭공이 공자에게 말씀을 건네었다. 제가 다스리는 마을에는 궁(躬)이라는 정직한 청년이 삽니다. 그의 아버지가 양을 훔치니 아들이 아버지가 죄인이라고 증언했습니다.
공자 왈, 실망했소이다 섭공. 당신은 통치의 편의를 위해서 정직이라는 핑계로 아들이 아버지까지 고발하게 하였소이까. 우리 마을의 정직한 자는 이와 다르오이다. 아버지는 자식을 숨겨 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숨깁니다. 정직이란 그런 속에 있는 법이외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말하는 '용기', '절제' 속에는 한국인이 잘 모르는 또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보다 용어의 정확한 정의와 본문에서 쓰이는 의미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없이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라톤을 접하면서 내 자신의 한계를 더 많이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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