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이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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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일리아스>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오뒷세이아>

무기들과 한 전사를 나는 노래하노라.... 무사 여신이여, 신들의 여왕이 신성(神性)을 어떻게 모독당했기에 속이 상한 나머지 그토록 많은 시련과 그토록 많은 고난을 더없이 경건한 남자로 하여금 겪게 했는지 말씀해주소서! <아이네이스>

<아이네이스>는 한 사람과 무기들(전쟁)을 노래한다. <일리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오뒷세이아>는 오뒷세우스의 고난이 주제라면, <아이네이스>는 아이네아스의 시련과 전쟁이 주제다. 이 `무기들`은 아이네아스의 전쟁이 아니라, 작가 베르길리우스가 그리고자 한 로마의 `전쟁`일 것이다.

<아이네이스>는 철저하게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를 의식하고 쓴 작품이다.

오뒤세우스는 괴수 스퀼라와 퀴클롭스 손 아귀에서 벗아난 후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동료를 격려했다.
˝우리는 비통한 마음으로, 그러나 비록 사랑하는 전우들을 잃었어도 죽음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하며 항해를 계속했소˝. < 오뒷세이아 제9권 565>

아이네아스 역시 같은 상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의연하게 대처한다.
˝그러니 이제 정신을 차리고 불행과 공포는 잊어버리시오. 아마 이 고생도 그대들에게 언젠가는 즐거운 추억거리가 될 것이오.˝ <아이네이스 제1권 201>

아이네아스 속에는 오뒷세우스 뿐만 아니라,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우스의 면모도 담겨있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미움을 받아 12고난을 겪으며, 아이네아스는 역시 유노(그리스명 헤라)의 미움을 받아 지중해를 떠돌며, 나라를 건설한다. 또한, 아이네아스는 예언녀로부터 제2의 아킬레스라는 예언도 받는다<아이네이스 제6권 89>

오뒷세우스는 저승으로 가서, 오랜 동료인 아킬레우스, 아이아스, 어머니 등을 만나는데, 아이네아스 또한 지지않고 저승으로 가서 데이포부스, 디도 여왕, 아버지 앙키세스를 만난다. 오뒷세우스는 그곳에서 원한을 품고 자신을 피하는 아이아스를 보고, 영웅 아킬레우스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이네아스 역시 자신을 피하는 디도 여왕을 보고, 영웅 데이포부스와 이야기를 나누는 구조 역시 동일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저승에서 자신과 로마에 대한 예언을 듣는다.

˝자, 이제 너에게 다르다누스의 자손들이 어떤 영광을 누리는지, 이탈리아의 부족에게서 네가 어떤 후손들을 기대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겠다...˝<아이네이스 제6권 756>
그의 입에서 로마와 `무기들`이 노래된다...

아이네아스는 헤라클레스의 고난, 오뒷세우스의 지혜, 아킬레우스의 용맹을 담은 영웅이라는 것이 책 전반에 깔려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혈통이 당대의 지배자였던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의 `율리아` 가문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통해, `아이네아스-카이사르`로 이어지는 고귀한 혈통의 계보를 완성한다. 다만, 이 경우 아이네아스부터 카이사르까지의 시간적인 간격이 벌어지기에, 중간에 `로물루스-레무스` 등의 이야기도 들어간다.
이러한 구조는 마치 우리나라 <용비어천가>에서 태조 이전에 `6조`를 넣어, 시간적인 간격과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이네이스>는 <일리아스>와 <오뒷세우스>의 영향을 받았지만, `개인의 서사시`가 아닌 `국가의 서사시`다. 작품 곳곳에 로마제국으로 이행하면서 그들이 극복해야했던 대상이 나온다.
그들 스스로 `트로이야의 후손`으로 자처했기에, `트로이야`를 멸망시킨 `다나이족(그리스)`에게 선조들에 대한 복수가 필요했다. 또, 후에 포에니 전쟁으로 지중해 패권을 두고 경쟁해야했던 `카르타고`와는, `디도 여왕`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통해 역사적으로 하나될 수 없었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고대 유대인들은 BC 597에 `바빌론 유배`라는 혼란속에서 <타나크(구약성경)>, <토라(모세오경)>을 만들었고, `이스라엘 멸망`을 `우상 숭배`로 규정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통해 오랜 내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제국으로 발돋움하려는 로마제국에 역사성을 부여했다.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리라.

책을 읽을 때 <아이네이스> 곳곳에 나타난 또는 숨겨진 <일리아스>, <오뒷세우스>의 모습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로마인들의 세계관과 역사인식을 단편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던 좋은 작품이었다. 내가 라틴어와 그리스어도 할 수 있었다면, 원어로 작품을 비교해서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겠지만, 실력의 한계로 누릴 수 없었던 부분이라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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